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불심이 깊은 집안에서 자란 인연으로 대학생이 되어 한국 대학생 불교연합회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졸업 후에도 다니는 절의 행정적 업무와 갖가지 행사를 도맡았습니다. 업무로 인해 정작 하고 싶은 불법 공부는 뒷전에 밀려 있을 때 우연히 월간 정토라는 잡지를 만났습니다. 잡지를 통해 법륜스님 법문을 읽고 ‘세상에 이런 스님이 있구나’ 감동했지만 곧바로 정토회에 가지는 못했습니다.
20년 봉사한 사찰 행정업무에 치어 불법 공부를 못했던 기억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삼 년을 고민하다 은평구 걀현동 연신내 법당을 찾았습니다. 법당은 소박했지만, 솔선수범해서 공양간 보시하는 사람들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법륜스님 법문은 단 한 번의 강의에 모든 이치를 깨닫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두려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여기 있으면 사람답게 잘 살 수 있겠구나. 행동을 조심해서 끝까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법당에 나갔습니다. 스님 법문에 감명받아 6개월 내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반들은 ‘고생한 것 같지 않은데 가정에 문제가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합니다
정토회 입학과 졸업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소임을 했습니다. 소임이 주어지면 그냥 “네”하고 했습니다. 제가 필요할 때 기꺼이 쓰이고자 했습니다. 법당 총괄과 의전 지원 등의 소임을 하면서 도반들과 어떻게 화합해서 진행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순조롭게 소임들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법사님 추천으로 서원 행자의 길에 입문했습니다.
처음 만났던 연신내 법당에서 도반들과 새로운 도전을 위해 큰 길로 나오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열린 법당를 위해 새 법당 자리를 도반들과 찾다가 일단 남편 병원 휴무일에 병원 공간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법륜스님 즉문즉설’ 홍보물을 붙이고 사람을 모았습니다. 처음 3명으로 시작해 10명 정도 모여서 2년 3개월 동안 열린법회를 진행했습니다.
연신내 법당 자금 여력과 새롭게 찾고 있는 홍제동 부동산 시세 차이가 컷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 지인의 건물에 서대문 법당을 열었습니다. 월세도 받지 않은 지인과 인연을 경험으로 마포 법당, 용산 법당을 찾을 때도 지속적인 모연활동을 했습니다.
모연활동을 하면서 여러 갈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하고 더 모연이 되지 않을 때 주저하는 마음, 요청받는 사람에게 부담이 될까 하는 망설이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내 마음을 통해 상대의 마음도 편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거절하고 수락하고는 당사자의 마음이니까 그 사람 걱정할 필요 없이 당당히 요청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법회 활동을 위한 모연 활동은 중요한 수행의 과정이었습니다,
특별한 굴곡 없이 살아오면서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습니다. 30년을 넘게 병원 살림을 하면서 병원 내 모든 수술 가운을 제 손으로 세탁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딸이 회사에 다니면서 인정받기까지 최선을 다해 도왔습니다. 유학 중인 딸이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으면 만들어서 특별수송으로 보냈습니다. 극성스럽다는 말을 들으면서 정성을 다했습니다.
서러운 시집살이도 인내하며 정성껏 제 역할을 했습니다. 결혼 당시 남편이 군의관이어서 경제적 자립이 어려웠습니다. 시댁에서는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고 지방에 있는 시누이와 시동생들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집안일은 혼자 도맡아 했고 도시락 반찬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문을 박차고 나가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며느리는 시댁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 되었습니다. 저도 어머니에게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엄격하며 주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학에서 돌아와 직장 생활하던 딸이 ‘엄마는 항상 본인만 옳다고 하는 파쇼’라고 말했습니다. 결혼한 지 45년 동안 남편도 저에게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는데 딸의 말에 잠깐 멈추고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가족들 말을 들어주는 척만 했지 진심은 아니었던 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왜 권리만 주장하지? 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데......’라는 생각으로 꽁한 마음이었습니다. 남편이 경제적 자립을 하면서 매달 시부모님께 용돈을 보내 드렸습니다. 시부모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동안 받은 것을 꼭 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에 꾸준히 보내드렸습니다, 이 또한 불편하셨을 수도 있는 시부모님 마음보다 내가 편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었습니다.
이렇게 잠시 멈추는 동안 스님의 법문이 마음에 와 닿았고, 정말 내면이 변하기까지는 6~7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저는‘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정토회 다니면서 스님 덕분에 국가관, 세계관을 확립했습니다. 통일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통일에 대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립했습니다. 예전엔 어디 가서 통일을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디서든 통일의 당위성을 말 할 수 있고, 어떤 반론에도 편하게 대응 할 수 있습니다. 통일 특강을 들으면서 깨우친 지금은 통일에 대한 확실한 주관을 형성했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하는 보름 내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해서 아이들을 직접 만났을 때 느꼈던 뭉클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손잡고 걸을 때 느껴졌던 따뜻함이 생생합니다. 또한, 섭씨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 선풍기와 냉장고 없이 일하는 봉사자들을 보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법륜스님의 “무엇인가를 너무 열심히 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한다.”라는 말씀을 늘 새기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그냥 일어나며 몽중일여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에는 스트레스나 하기 싫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잘 보내면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일어나다 보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납니다. 여행할 때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면 몸이 가볍고, 이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어서 편안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간 수행 법회에서 법문을 듣지 못할 때는 마음의 양식이 떨어짐을 느낍니다. 저에게 새벽 수행 정진과 오전 법회, 그리고 낮과 저녁에 있는 갖가지 정토회 활동은 삶의 힘이자 행복입니다. 저를 불러주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바라봐 주는 정토회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삶에 어려움 없이 평탄하게 살았다는 박금주 님의 코멘트는 수행이 내재화되어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터뷰 말미에 발견한 반전이었습니다. 감화 받은 법문을 늘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박금주 님의 자세가 도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유임을 느낍니다.
글_최문영 희망리포터(마포지회)
편집_임명자 (서광주지회)
전체댓글 14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마포지회’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