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여동생: 언니, 환경 운동 차원에서 아파트 음식물 관리 때문에 지렁이 분양하는 곳을 수소문했거든? 그래서 정토회라는 곳을 알게 되어 방문했는데, 거기 좀 이상하더라?
나: 뭐가?
여동생: 절이라는데 불상도 없고, 일반적인 절 같은 느낌도 안 들었어. 사이비종교 같은 의심이 들더라고. 그런데 지렁이 분양도 하고 환경 실천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는 않거든?
여동생은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더 알아보겠다며 광주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동안 찾아 헤매던 불교를 드디어 만났다며 천일결사 입재식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2007년,여동생과 나눈 대화를 계기로 저는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서울로 이사해 살고 있었지만 얼떨결에 동생 따라 2008년 6-4차 입재식에 참가하였고 계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삶에서 가장 힘겨웠던 시기를 거쳐가고 있었습니다. 3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두 아이들을 기르며 이런 저런 일을 해보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습니다. 사기도 당해보고 장사도 망하면서 저는 어느새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싸움 닭이 되어 있었습니다.
혼자 두 아이를 기르며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던 2007년에는 아기를 24시간 돌보는 입주 보모(베이비시터)로 그 가정에 들어가 생활했습니다. 몇 개월 되지 않은 아기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자폐성 발달장애 1급을 안고 있었습니다. 급여는 좋았지만 일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기를 24시간 돌보아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아이 엄마와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의 부모와도 함께 생활하면서 제 눈에는 이해가 안되고 분별이 올라오는 모습을 접하다 보니 갈등이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동생 따라 2008년 입재식에 처음 참여했습니다. 뚜렷한 수행 관점이 없어도 좋다해서 집에서 무작정 절을 했습니다. 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안에서 올라오는 괴로움을 이겨내고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재 후에 무작정 혼자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 입재식의 인연으로 수행을 시작했지만 욕심만 앞서서 인지, 삶이 좀 힘들 때면 간절한 마음으로 참회 기도를 열심히 하다 가도 삶이 좀 느슨해지면 어느새 내 마음대로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변하지 않는 단단한 업식을 보았습니다. 마음을 다잡고자 6-9차 입재식에 다시 참여했고, 그 이후로는 법당에 나가 봉사하면서 업식에 얽매이지 않기 위한 수행을 꾸준히 했습니다. 수행의 공덕인지 들어주는 마음의 문이 열리며 아이 엄마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8-1차 입재식에서는 수행담을 발표했고 8-10차 입재식 때는 지도법사님으로부터 직접 천일정진기도상을 받았습니다. 고마움과 더불어 자신감이 높아졌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 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기일 때 만난 아이가 이제 사춘기를 지나 성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24시간 상주가 아니라 출퇴근하며 돌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손길이 필요한 아이입니다. 아이 엄마는 예전보다 불안한 마음이 줄고 많이 단단해졌는데 저의 공덕이 크다고 고마워 합니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저 또한 그들에게서 수행의 동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 매일매일 그만두려는 생각 뿐일 때 정일사 회향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상대를 가르치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직장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있는 게 좋다, 도망가지 말고 뛰어 넘어보라.' 그 조언이 힘이 되어, 일하면서 갈등도 많이 줄고 원했던 방식으로 일이 자연스럽게 풀려 아직도 같은 직장에 계속 다니고 있기에 참 고맙습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업식에 실금 하나 내기도 매우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그래도 간절한 마음으로 수행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수행의 잣대는 오로지 자신을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했던 모든 정토회 활동은 하나같이 다 소중합니다. 많은 활동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세월호 서명 운동입니다. 끔찍한 사고가 왜곡된 정보로 덮이는 현실을 보니 이건 정말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에 미친 듯이 밤낮으로 서명용지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바로잡으려면 적극적인 실천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라와 이웃이 어려울 때 물러서지 않고 함께 했습니다. 불법의 인연으로 가족끼리 법문도 공유하고, 카톡방에 기도 소감을 나누며 화목하게 살고 있습니다.
모둠장으로, 행복학교를 진행하며 활발히 활동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대부분 온라인 활동으로 전환되어 일은 더 많고 바빠졌으나 새롭게 배우며 적응하고 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정토회의 전법 활동가로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남은 삶의 목표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었습니다. 연일 1,300명 넘는 확진자가 나오면서 온 국민이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든 상황입니다. 위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정토행자의 수행담과 스님의 하루를 읽으면서 마음의 평온과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글_이재민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성동지회)
편집_도경화(대경지부 구미지회)
전체댓글 14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성동지회’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