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주지회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전법 활동가를 선택한 자신을 스스로 축하해주는 공영순 님입니다. 묵묵히 정진하며 바위 같은 자신의 업을 녹여내는 영순 님, 걸림 없이 당당한 그녀의 마음 나누기를 함께 하겠습니다.

아들이 맺어준 정토회와의 첫 번째 인연

옥돌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외며느리인 제게 시부모님이 제일 먼저 바랐던 것은 첫 손주가 아들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딸을 낳으니 시부모님은 실망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나 시댁에서 몸조리 할 때 딸 낳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3년의 시집살이 동안 시아버님은 매일 드시는 반주 끝자락에 손자 타령을 하며 아들 못 낳으면 저를 내쫓고 새며느리를 들일 것이라고 대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아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체질을 바꾸려고 애썼습니다. 아들을 낳고 홀가분했고 기대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 왼쪽에서 두번 째가 공영순 님
▲ 불교대학 졸업식, 왼쪽에서 두번 째가 공영순 님

그런 귀한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갔는데 그날 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출한 친구가 집에 안 간다고 해서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밤을 새웠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사나이들만이 지켜야 하는 의리로 여겼습니다. 그동안 제가 본 아들은 우등생에, 만능 스포츠맨에, 친구 사이에 인기가 많았으며 잘생기기까지 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자거나 밖에서 잠을 자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가출한 아이들은 갈 곳이 없으면 밤 늦게든, 새벽이든 우리 집에 와서 잠자고 밥도 먹고 갔습니다. 우리 집은 학생들 사이에서 비행 소년들의 하룻밤 숙소처럼 소문이 났습니다. 심지어 아들 초등학교 친구의 친구나 다른 학교 학생들도 모여들었습니다. 아들 방에는 늘 일곱 여덟 명이 모여서 밤새도록 얘기하다 엉켜서 잤습니다. 아침이면 속옷이며 양말, 교복도 새것으로 나눠 입었고 한 상자의 라면은 두 세 번 만에 먹어 치웠습니다.

다정하게 대화를 곧잘 하던 아들이었지만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욕설도 아무렇지 않게 했습니다. 학교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선생님께 들켜 반성문을 쓰고 와서 도리어 저에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식을 보며 매가 부러질 정도로 때려도 보고, 경찰서에 데려가 청소년 담당 경찰관에게 교화도 부탁해 봤습니다. 여러 곳의 상담센터에 상담 신청을 했는데 아들의 비협조로 저만 교육을 들을 때가 태반이었습니다. 아들의 비행을 막아보려고 수 많은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했고, 아들이 벌을 받으면 선생님께 자처해서 엄마인 저도 반성문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교복차림의 공영순 님 부부
▲ 교복차림의 공영순 님 부부

중2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5년, 그 시간 동안 제 마음은 깜깜한 동굴 같았습니다. 하느님, 부처님이 계신다면 저를 도와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천배, 만 배 절을 하면서 오직 하나, 아들이 바른 길로 가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던 중 경산시민회관에서 법륜스님께 아들 걱정을 질문하니 오히려 아들이 친구가 많은 긍정적인 면을 보도록 해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아들의 현재와 미래에 항상 부정적이었고 하루라도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스님의 예상을 뛰어넘는 말씀을 들으니 마치 부처님께서 저에게 일러준 법문 같았습니다. 그때 떼지어 다니던 아들의 친구들은 수능을 치고 난 후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피자와 빵을 사 들고 와서 제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군대 간 녀석들은 휴가 때마다 화장품과 홍삼 세트를 사다 줍니다.

사람답게 살아 보자고 아들과 아들 친구의 머리통을 때려가면서 시험 기간에 공부시켰고 “너희들에게 향하는 비난과 화살이 부당하다면 내가 막아주겠지만 그것이 너희의 행동으로 만들어진 일이라면 회피하지 말고 당당히 받아들이고 책임져라!”라고 했던 말이 작은 열매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암흑 같은 동굴에 희미한 빛이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아도모례원 연등 이름표를 붙이며
▲ 아도모례원 연등 이름표를 붙이며

친구가 맺어준 정토회와의 두 번째 인연

대학 졸업 후 서로의 길이 달랐던 다섯 명의 친구가 20년이 지나서 모였습니다. 서랍 속에 묻어둔 액세서리로 한껏 멋을 내고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공연을 보고 레스토랑에서 설익은 고기를 썰며 카푸치노 한 잔을 마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보았던 다른 뮤지컬 이야기를 자랑삼아 늘어놓으며 일상이 늘 이렇게 여유가 있고 안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친구들은 그동안 일군 재산, 자랑할 만한 남편과 자식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했습니다. 그중 미혼인 친구가 정토회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즉문즉설을 통해서 법륜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며 아는 체 했습니다. 이절 저절 봉사란 명목으로 하루하루 정신없이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정토회는 법륜스님 개인 사찰 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날 이후 친구는 만날 때나 전화 통화를 할 때 정토회 이야기를 하고 정토회에 오기를 권유했지만, 저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는 각각의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2019년 여름 끝자락에 친구는 가을 불교대학 입학을 권하며 더 이상 친구들에게 정토회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며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며칠 뒤 다른 한 친구에게서 불교대학에 입학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은 절에도 안 다니고 크게 종교에 관심을 둔 적도 흥미도 없다며 정토회 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를 돌리던 친구였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나니 결단력이 부족한 저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날 바로 가을 불교대학에 등록했습니다. 2019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2020년 졸업하고 6개월 온라인 가을 경전대학 과정을 하면서 발심행자1 교육을 함께 받았습니다. 힘들었지만 그냥 했습니다.

연꽃잎을 달며
▲ 연꽃잎을 달며

불교대학 입학해서 수행 맛보기로 천일결사2 기도를 했습니다. 108배를 하면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괴로움인 줄도 모르고 쌓아두었던 일들을 휘저으니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런 답도, 길도 모를 때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는

작게라도 남에게 선행을 베풀면 우리 자식들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귀인이 나타나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았습니다. 복을 구하며 절을 했기 때문에 눈물이 나기보다는 간절함이 컸습니다. 이루어지면 이루어지는 대로 또 다른 욕심이 생겼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도에 더 집착했습니다. 왜 슬픈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절 저절 다니며 남의 이야기 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닌 일을 부풀려 전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이 생기면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문은 좁아져 갔습니다.

사랑스런 정토회

그런데 정토회는 달랐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하든 도반들은 그대로 들어주었습니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토회가 사랑스럽습니다. 정토회에서 기도하면서는 업식에 갇혀있는 어릴 적 저와 현재의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넉넉한 가정환경, 아버지의 광기, 주위 사람들의 배신, 나의 미래와 바꾼 남편, 시어른과의 갈등, 아들, 시기와 질투의 시선 등. 절을 하면서 상대를 탓하는 제 업식을 보면서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경전대학 수업 중에 듣는 스님 법문이 다 저에게 하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두북 수련원 봉사, 왼쪽에서 첫번째
▲ 두북 수련원 봉사, 왼쪽에서 첫번째

가볍고 행복한 수행자

경전반 수업과 발심행자 교육을 병행할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 웅큼 두 웅큼 빠지던 머리카락이 한 올 남김없이 다 빠졌습니다. 검사해도 뚜렷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고생시켜서 그런가 하고 눈물을 보였고 너무 힘들게 수행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만 빼고 모두 정토회 활동으로 채워졌으니 남편의 말이 이해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져도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저런 원인을 이야기하는 지인의 말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기회가 와서 법륜스님께 머리카락 빠지는 것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앞머리 깎기는 쉬워도 뒷머리 깎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뒤에 머리 깎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좋으냐 하시며 문제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니 지금은 머리카락이 조금씩 나고 있습니다.

발심행자 교육을 받으면서 봉사를 했습니다.'온라인 114' 소임을 맡아 잘 알지 못하는 컴퓨터를 열심히 배워서 도반이 물을 때면 담당자에게 다시 물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도반들은 제게 알람 이모티콘을 보내며 격려해줘서 매일 새벽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하나씩 알아가니 어느 순간 변화된 저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정토회에 인연 맺게 한 친구 수연과 경미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좌절하고 중단하는 일이 생겨도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걸어 갈 것입니다. 지금 저는 가볍고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인터뷰하는 찻집에 영순 님은 머그잔을 들고 왔습니다. 머리가 심하게 빠진다며 멋스러워 보이는 수건의 용도를 웃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여린 듯 굳건하게, 힘들어도 성실하고 당당하게 해내는 영순 님! 언제까지나 응원하며 함께 하겠습니다

글_김정림(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편집_한숙(서울 서초지회)


  1. 발심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회원가입 신청서를 제출해야 함. 발심행자 3년 후 서원행자 자격이 갖추어짐.  

  2.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18

0/200

큰바다

대단하시네요.
고맙습니다.ㅎ

2021-07-21 11:33:53

이의수

감동적인 수행담 잘읽었습ㄴ다

2021-07-13 12:32:31

이영수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부모의 역할을 참 잘하셨네요
걱정되는 일을 수행의 힘으로 극복하시는 모습도 감동 입니다. 성불하세요~~

2021-07-11 06:55:38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경주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