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아태지회
불행해지려 애쓰는 중생

내 눈에 야위어 보이는 아이들을 문제삼아 자꾸 먹이려 했습니다. 어르고 달래고, 억지로 입을 벌려 밥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어 그런걸까 하는 자책과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정성껏 만든 음식을 양껏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마냥 속상하기만 했습니다. 법륜스님의 질문 하나로, 비만도, 영양실조도 아닌 아이들을 걱정거리로 만들며 스스로 불행해지려 애쓰는 중생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인생의 성공과 행복의 의미를 스스로 다시 세워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우정, Sean Costello 님의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함께 합니다.

불행한 것이 정상이라고?

우리가족이 하노이에 오기 전 남편은 중국 상하이 국제학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특별한 종교 없이 지인을 따라 사찰이나 교회, 성당까지 두루 섭렵하고 다니면서도 신에 의지하는 나약한 인간의 의존성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신을 믿고 회개하고 의지하면 영생의 행복이 오리라는 말에 ‘뜬구름을 잡으려 하는 구나’ 라며 대부분의 종교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기반으로 한 한인집단과 어울리는 것이 해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쉬운 통로였고, 지인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이런 회의감을 숨기고 생활했습니다.

하노이에서, 이우정 님의 가족
▲ 하노이에서, 이우정 님의 가족

하루는 한 가정예배에 참여하여 국제결혼으로 겪는 문화차이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이에 대해 회개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어려움 없이 행복하다는 답변을 했지만 거짓없이 솔직하게 말하라는 요구를 재차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행복하다’ 는 저의 솔직한 답변을 너무나 당연하게 겉치레로 하는 거짓말인 것으로 여기고, 계속해서 솔직한 답변과 회개를 요구하는 것에 매우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현생이 행복하다는 말은 거짓이고, 모든 인간은 불행하므로 회개하여 영생의 행복을 찾는 것만이 진리인 것으로 여기는 믿음에 경악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종교에 대해 회의감만 더 깊게 할 뿐이었습니다.

행복을 구걸할 필요가 없구나

2019년 어느 날, 지인을 따라서 정토회 상하이지회 가정법회에 갔습니다. 법회에서 불교가 종교가 아닌 철학, 본인의 수행과제와 실천이라는 말씀에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수행자라면 부처님께 잘 되게 해 달라고 빌지 말고, ‘바쁘신 부처님은 푹 쉬십시요, 제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대로 행복합니다’ 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행복하다’ 하고 살아도 괜찮다니 한 줄기 빛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해답을 정토회를 만난 바로 첫날 찾은 기분이었고, 법문을 듣는 동안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아! 이거구나, 더 이상 내가 불행하다는 전제 하에 행복을 구걸할 필요가 없구나’ 를 알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법문도 자기 생각과 다르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자기 생각과 같으면 고개를 끄떡인다는 설법에도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오랫동안 제 갈 길을 몰라 방황하던 의문들이 가야 할 길을 찾은 것입니다.

불행하지 못해 안달난 중생

그 무렵 저의 가장 큰 걱정은 4살, 6살 된 두 아들이 너무 여위고 밥을 잘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도 한 방에 해결되었습니다.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육아 요리책에 건강 요리책을 보고 건강식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제 마음처럼 먹지 않는 두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늘지 않는 음식솜씨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JTS활동 준비를 돕는 아이들
▲ JTS활동 준비를 돕는 아이들

아이들 입을 억지로 벌려가며 혹은 달래가며, 어떨 때는 화내며 소리치며 음식을 먹였습니다. 다 먹지 않으면 벌을 주었습니다. 음식솜씨 없는 저 자신을 탓하고, 아이들이 살이 붙지 않아 속상함으로 보내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업식으로 아이들을 키웠다면 그 업보를 나중에 어떻게 감당했을지 아찔합니다.

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법륜스님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아이들이 영양실조인가요? 영양실조가 아니면 왜 자꾸 먹이려고 해요?”

그때 저는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고, 깜깜했던 눈앞에 불이 확 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비만은 고치려면 답이 없고 스스로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질병이지만, 음식을 먹으면 바로 고칠 수 있는 영양실조도 아닌데 왜 아이들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하는가 하고 되물었습니다. 영양실조도 아니고 건강히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내 눈에 야위어 보인다고 소리치고 악쓰고 있었습니다. 전혀 없는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 문제 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불행하지 못해 안달 난 중생이어서, 스스로 불행하기 위해 문제를 찾아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생각만 바뀌면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행복 그 자체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대로 행복해도 괜찮다’는 말에 안도하였습니다. 다시는 불행의 싹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주어진 행복에 감사하고,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인연을 찾아 은혜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하였습니다.

2019 하노이법회 여름캠프
▲ 2019 하노이법회 여름캠프

그 후 저는 불교대학에 입학하였고, 천주교인 남편을 설득하여 영어 번역 즉문즉설을 함께 시청합니다. 남편 Sean은 천주교와 불교의 차이점과 유사성을 비교하며, 종교가 아닌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성격이 직설적인 저는 가족에게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먼저 목소리가 커지고 화를 내며, 오랫동안 화를 삭이지 못하고 말을 하지 않거나, 가사일을 돌보지 않고 밥도 하지 않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결국 뜻하는 대로 하고 마는 성격입니다.

반면 남편은 제가 목소리가 올라가면 자리를 피합니다. 저는 그게 더 화가 나서, 따지기라도 하면 남편은 언제나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식으로 싸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남편이 왜 상대를 안 해주고 매번 자리를 피하는지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한숨을 쉬면서 제가 뜻하는 대로 해 주면, 괜히 상대하기 싫어서 저러나 하며, 끝까지 화를 풀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이후 수행법문을 들으면서 남편에게 ‘자기는 수행 안해도 부처다’ 라고 농담을 던지고는 합니다. 예전에는 무지해서 몰랐던, 다른 사람들, 인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날 나의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참 다행입니다.

성공의 기준과 행복의 가치를 다시 만들어야 할 때

남편 Sean Costello는 20여 년간 다양한 나라에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 청소년들이 겪는 좌절감과 실존적 불안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한국사회의 청소년들이 치열한 학문 경쟁에서 겪는 고통과 좌절을 알고 있으며, 일자리 문제에 부딪힌 젊은이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최초 온라인 영어 즉문즉설에서 질문하는 남편 Sean
▲ 최초 온라인 영어 즉문즉설에서 질문하는 남편 Sean

교육자로서, 부모로서 오랫동안 숙고해 왔던 한국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영어 즉문즉설에서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기술과 지식의 습득만으로는 젊은이들이 미래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으며, 새로운 가치관이 섭립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교육 시스템의 변화와 성공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이중 국적을 가진 두 아들이 장래 만 17세가 되어 선택하여야 할 미국과 한국의 국적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10여년 뒤 두 아이들이 한국의 국적을 선택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을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미국에 비해 우세한 한국의 복지를 감안하여 언젠가는 영적인 고향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농사 짖는 모습을 보면서, 은퇴하면 귀농하여 자연과 함께 소소히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정토회를 알고 난 이후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건강에 감사하며, 주어진 모든 일상이 축복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아이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 스스로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씀을 새기며, 아이들의 웃음이 집안을 채워주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행복해져도 좋다는 말씀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우정 님 부부와 아이들
▲ 이우정 님 부부와 아이들


자녀를 가진 부모로서 한국의 미래사회를 그려봅니다, 무엇이 인생의 성공인지 행복의 가치는 진정 무엇인지 나 스스로 되짚어보고, 아이들이 행복한 길로 나아가도록 지도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저부터 성공의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물질적인 성공보다는 심리적인 행복을 찾아 수행자의 길을 계속 걷고자 합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불행의 씨앗을 찾아 헤매면서, 행복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른 인연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을 깨닳아, 행복을 나누어주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주위의 인연이 행복할 수 있도록 행복의 씨앗을 심겠습니다.

글_이우정(베트남 하노이지회)
편집_이정선(진주지회)

전체댓글 26

0/200

느릿느릿

흐믓해 지네요~~
감사 합니다~~~^^

2023-11-01 08:37:57

감로음

행복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의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하게 할 분인것 같아 든든합니다

2021-07-16 08:27:45

세숫대야

그냥 바로 알아버리는 그 멋이 느껴집니다()

2021-07-11 19:48:35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아태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