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부모님이 다음 주 이혼한다

이번 주에 이혼하실까? 다음 주에 이혼하실까? 늘 부모님의 이혼을 기다리는 편집자의 글입니다.

또 시작이다

“느아부지? 내 뭐라 카드오? 거름을 그렇게 많이 주면 안 된다 안 카드오? 보소, 다 죽었네.”

거름을 많이 줘서 말라버린 고추
▲ 거름을 많이 줘서 말라버린 고추

지난주 심은 고추가 바짝 말라 죽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잔소리를 못들은척 조심스레 말라버린 고추를 들여다본다.

“와 만날 자기 멋대로만 하요? 와 남의 말은 귀담아 안 듣소?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해마다 와 그카요?”

살짝 귀가 먹은 아버지가 이럴 땐 다행이다. 아버지는 주섬주섬 꽃삽을 들고 고추 모종에 거름을 덜어낸다. 처음 부모님 밭일을 도우러 가서 엄마 아버지의 싸우는 소리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제는 지나가는 새 소리로 들린다. 또 시작이구나....

“엄마, 다음 주에 이혼해. 60년 가까이 살았으면 오래 살았다. 이혼해라. 요즘 황혼이혼 많이 한다더라. 남아있는 재산은 있나?”

콧구멍이 두 개라 살았다

나는 화난 엄마에게 일단 초를 한 번 친다. 부모님은 농사일에 의견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10여년 전부터 심심풀이로 농사를 시작했다. 말이 심심풀이지 죽을 맛이다. 시골에 사셨던 두 분이라 나름 농사를 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의견이 매번 부딪힌다.

“내는 느아부지랑 농사짓고 살았다카믄 진작 이혼했다. 내 몬산다. 저리 답답한 사람이랑 우찌 살끼고. 뭐를 먼저 해야할지도 모르고, 시키면 말 안듣고... 콧구멍이 두 개니까 숨 쉬지. 하나믄 벌써 죽었다.”

“나도 민여사랑 이혼 안할라꼬 농사 안 지었다 아이가.”

“지금 농담이 나오요? 그런 실없는 소리 듣기도 싫소.”

아버지의 농담에 엄마가 발끈한다. 엄마 인생에 농담은 5%도 안된다. 농담을 즐기는 아버지와 내가 깔깔거리고 웃으면 멀쩡한 밥 먹고, 시답잖은 소리를 한다고 혼낸다.

말라버린 고추를 돌보는 아버지
▲ 말라버린 고추를 돌보는 아버지

차라리 돕자

처음 부모님이 농사지을 때는 자식들이 싫어했다. 집에서 밭까지 거리가 멀어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했다. 부모님 고생에 자식들이 가만 있을 수 없어 우리 5남매는 돌아가면서 부모님 밭에 갔다. 다른 자식들은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서 그런지 크게 뭐라고 안하는데 나는 뼈 빠지게 농사짓는 부모님에게 많이 대들었다. 나이 80이 다 돼서 뼈 빠지게 농사지을 일이냐고.

농사 짓지 말라는 내 잔소리가 사그라든 것은 스님 법문을 듣고서다. 아예 부모님 농사짓는걸 못 본 척 하든지, 아니면 군소리 없이 가서 도와주던지, 선택하기로 했다. 부모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기에 돕는 걸 선택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50분 운전해서 부모님 집에 가서 부모님 모시고 다시 30분 걸리는 밭에 간다. 밭일이 끝나면 내가 싸 간 도시락으로 점심 먹고, 부모님 모셔다 드리고 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일요일이 다 간다.

이 나이에 뭘로 복지을끼고

부모님 밭에는 감자, 고구마, 상추가 있다. 농사지어서 파나? 아니다. 가족과 이웃들에게 나눠준다. 그것이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자식들에게 잔소리 들어가면서 농사 지어 나눠먹는다. 자식들 주는 것은 이해가 됐는데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고 솔직히 이해가 안갔다. 그때 부모님이 한 말이다.

이웃들에게 나눠줄 상추
▲ 이웃들에게 나눠줄 상추

“우리 나이가 많은데 돈을 벌어 보시할 수도 없고..., 느그들이 주는 용돈으로 사는데 돈을 맘대로 쓸 수가 있나? 농사는 그래도 우리 몸으로 지어서 나눌 수 있다 아이가. 이 상추 노인정에 갖다줘 보래? 을매나 사람들이 좋아한다꼬. 약도 안 치고, 밭에서 갓 따서 주면 진짜 맛나다. 감자 수확해서 좋은 거 부처님께 올리고, 사람들 나눠주면 다들 좋아한다. 그런 걸로라도 보시를 해야지. 이 나이에 뭘로 복 지을끼고.”

우리 부모님은 불자다. 카톨릭 신자였던 내가 불자가 되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부모님 영향이리라. 부모님은 반드시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 없다고 본다. 내가 명상할 때 깨달음을 얻을까봐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단지 부지런히 복을 짓겠다는 마음은 매우 크다. 내가 불교를 접하고 부모님에게 얄팍한 지식으로 '불교란 말이야'라고 설교했다가 지금은 입을 다물었다. 나의 불교 지식은 부모님이 부처님께 올리는 정성에 따라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다.

의문의 1패

밭에서 따온 상추를 신문지에 봉지봉지 싼다. 조금이라도 안 좋은 것은 빼서 당신들이 먹고 좋은 것만 이웃들에게 돌리는 부모님이다. 감자, 고구마를 수확하다 상처나고 잘잘한 것도 한 톨 버리지 않고 부모님이 챙기신다. 크고 좋은 것은 남주는 상자에 담는다. 예를 들어 부모님도 좋은 걸 먹고, 남도 좋은 걸 주면 조금 이해할 수 있는데 당신들은 나쁜 것만 먹어서 이해가 안갔다.

벌레가 파먹은 감자는 부모님이
▲ 벌레가 파먹은 감자는 부모님이

"나쁜건 누가 먹을끼고? 농사짓기가 얼마나 힘드노. 농사 지어 본 사람은 쌀 한 톨, 콩 한 톨도 못 버린다. 요즘 사람들은 농사를 안지어봐서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데 그라믄 죄받는다. 너도 농사일 도와봐서 이제 알끼구마. 이 감자 한 알이 어데 그냥 크는기가? 사람들이 그걸 모르니 나쁜 게 들어가면 자길 무시했다고 여기지. 그래서 남 줄 때는 제일 좋은 거 주는기다. 나야 내 입으로 들어가는긴데 나쁘면 어떻노. 나는 개안타. 남 줄 때 마음이 얼마나 즐겁다고. 사람들이 자꾸 공짜를 좋아하는데 몰라서 그러는기다. 주는 사람 마음이 훨씬 더 행복한기다."

깨끗한 감자는 이웃에게 주고
▲ 깨끗한 감자는 이웃에게 주고

내가 더운 날 땀 흘린 게 아까워 남들 나눠주는 걸 조금씩 담으면 부모님은 다시 수북히 담는다. 그 모습을 보면 수행한답시고 잘난 척하던 내가 부모님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한 기분이다.

업식아, 뽑혀라

내가 밭에 가서 하는 일은 김매는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잡초를 뽑는데 매주 뽑아도 뽑아도 새로 들이민다. 호미를 들고 김맬 때 행복하다. 내 안에 업식도 이렇게 잘 뽑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호미질을 한다.

잡초가 쉽게 잘 뽑힐 때는 두 가지 경우다. 비가 온 뒤가 그렇고, 싹이 막 나기 시작했을 때 그렇다. 올해는 비가 자주 와서 김매기가 수월하다. 촉촉한 땅에서 쉽게 쑥 뽑히는 잡초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잡초가 업식이라면 이 땅에 내린 비는 수행이겠구나. 비를 품은 땅의 잡초는 뽑기만 하면 쑥 잡아 올라온다. 매일 하는 아침기도가 비가 돼서 언젠가 이 업식도 쉽게 쑥 뽑힐 것만 같다.

비온 뒤 잘 뽑히는 잡초
▲ 비온 뒤 잘 뽑히는 잡초

불안해서 그랬다

나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싫었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내 중고등학교 일기장을 보면 한결같이 굳은 다짐과 결의가 많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가 핵심이다. 이유는 ‘돈돈돈’하는 게 싫었고, 다른 애들과 비교하는 게 싫었다. 수행을 십년 넘게 해도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 불편함은 가슴 밑바닥에 남아있었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던 엄마. ‘더더더’ 잘해야 인정을 해줄까 말까 하는 엄마. 늘 돈 없다는 말로 사춘기 나를 불안하게 했던 엄마.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죽어라, 노력했지만 엄마의 평가 잣대는 항상 더 높아져 결국 포기했었다. 수행하면서 부모님에게 감사 기도를 하고 많이 풀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밑바닥 감정에 미움은 존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참고 참았던 질문을 엄마에게 했다.

“엄마, 우리 집이 이렇게 잘 사는데 왜 엄마는 그렇게 '돈돈돈' 했어? 왜 그렇게 다른 애들이랑 비교했어? 심지어 나보다 공부 못하는 애랑은 착한 걸로 비교했잖아. 생각하면 너무 열 받아. 엄마는 칭찬은 안해주고 늘 '더더더' 잘하라고만 했어. 난 그게 너무 싫었어.”

엄마에게서 뜻밖에 말을 들었다.

“그때는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불안했다 아이가. 느그들이 몰라서 그렇지 내는(나는) 살림을 저울에 달듯이 살았다. 지금처럼 잘 살 줄 알았으면 느그들 용돈을 맘껏 줬을끼다. 너도 알다시피 느아부지가 성실한 사람 아이가? 그런 사람이 뼈 빠지게 일해도 수입은 적지, 자식들은 많지. 항상 내 머릿속에 '이 자식들을 어떻게 하면 공부시킬꼬' 그 생각밖에 없었던기라. 느아부지는 아들만 대학을 보내자카는데 그게 말이 되나? 와 아들만 대학보내고 딸은 안보낼끼고? 그래서 내가 느그들이 공부 안하고 놀고 있으면 천불이 나서 다른 자식들이랑 비교했고마. 특히 너는 오기가 많아서 비교하면 더 잘할거라 생각했지, 상처를 줄라고 한건 아인데.... 미안하다.”

50년 미움이 감사로

내게 감사를 가르쳐 준 길
▲ 내게 감사를 가르쳐 준 길

훅, 눈물이 올라왔다. 운전하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가 '그때는 사는 게 너무 불안했다'는 말에, 딸들도 다 공부시키고 싶었다는 말에, 50년 넘게 품고 있던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 말을 들었을 시기에 나도 사는 게 불안했다. 엄마에게 자존심 상해서 말은 안했지만 당시 내 가게 매출도 들쑥날쑥해서 걱정이 많았다. 걱정되는 현실은 여전했지만 엄마 말에 위로를 받았다. 엄마는 나보다 자식이 셋이나 더 있는데 그 어려움을 잘 견뎌내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구나. 나도 엄마처럼 잘 이겨내겠구나. 용기가 생겼다. 그 후로 나는 엄마에 대한 미움이 많이 사라졌다. 내 생각에 갇혀 있다가 상대를 이해하니 무의식의 미움이 감사로 바뀌었다.

나는 정토회를 만나 수행하게 된 것도 무척 고맙지만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내 성격도 고맙다. 엄마를 닮아 한 성깔 하지만 중심이 있고, 아버지를 닮아 고지식하지만 바르게 삶을 살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있다. 아버지만 존경했는데 엄마까지 존경하게 되어 참 고맙다.

아마도 다음 주에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다시 부모님 밭에 갈 것이다. "느아부지!!!"로 시작할 것이 뻔한 일상이지만 그 소리가 정겹다. 다음 주는 뭘 가지고 싸우실까?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무엇을 알아채고 깨달을 수 있을까, 기대된다. 다음 주는 정말 이혼하셔야 할 텐데....

글_편집_정토행자의 하루 편집팀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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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아름답고 진실한 이야기, 살아있는 묘사. 잘 읽었습니다. 뭉클하고 나의 불안했던 시절도 함께 이해받은 것 같습니다.

2023-08-21 12:09:43

조선희

예전에 좋은생각이라는 월간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참 한때 좋아했었다. 일상에서의 공감과 잔잔한 울림이 있어서 그랬던것 같다. 지금 그런 기분이 든다. 어쩜 우리친정집하고 같을까? 피식웃음이 나왔다. 부모님 사랑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 건강하시고 우리들 곁에 오래사세요 ~"

2022-02-12 08:01:59

박은수

눈물 콧물입니다. 우리 부모님 생각나서....어쩜 그 시대 우리 부모님들은 불보살님 현신이신 것 같아요. 그 모진 고난 이겨내시고 지금과 같은 풍요의 시대를 주셨으니... 글도 참 맛깔나게 잘 쓰셔서 쓰나미 감동입니다. 감사~☆☆

2021-07-24 09: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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