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나의 황혼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국제지부 북미서부지회 오렌지카운티 모둠에는 ‘은퇴 후 인생의 황금기(Golden Age)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는 도반이 있습니다. 73세 나이에 정토회 소임을 맡으면서 새롭게 컴퓨터를 배우고 팔리어를 배우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황윤의 님을 소개합니다. 경전반 진행자 소임만으로도 챙겨야 할 일이 많은데 국제지부에서 불교대학 교재를 영어로 번역하고 글을 다듬는 일에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50여 년간 미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과의 모임은 정토회가 처음이었고 한국말로 공부하고 마음 나누기를 하는 것이 참 재미있고 신기했다고 합니다. 황혼의 나이에 외국인 전법에 앞장선 황윤의(Merrill, Yoon) 님을 만납니다.

희망리포터와 인터뷰하는 윤의 님
▲ 희망리포터와 인터뷰하는 윤의 님

유학으로 시작된 미국에서의 삶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1남 7녀, 8남매의 장녀로 자랐고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부모님이 큰소리로 야단을 친 적도 없고 공부하라고 집안일은 아예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경기여중, 경기여고를 거쳐 원하던 서울대 화학과에 합격했고 1969년, University of Oregon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박사 과정을 공부하러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 대학원에서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과 어울리는 기회는 적었고 여러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미동부 여러 도시로 이사를 다녔고 저는 제약회사에 취직해 제법 경력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결혼 10년 후, 아들과 딸을 낳고, 첫 아이 출생 후부터 둘째가 네 살이 될 때까지, 직장을 쉬고 육아에 충실했습니다. 생후 만 3년 동안은 엄마가 주양육자가 되어 아이를 키우라는 스님 말씀을 몇 십 년 후에 듣게 됐는데 나름 애들한테 잘했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인생의 그림자

1993년 남편이 골수암 진단을 받으면서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불평할 시간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5년의 투병 기간을 힘들게 버텼습니다. 저는 직장, 육아, 남편 간호 이렇게 꼭 해야 할 일만 처리하며 지냈습니다. 너무 힘들 땐 차 안에 누워 하늘로 뻗은 나무와 구름을 쳐다보며 마음을 달랬고 오직 암환자 가족 동호회에서 어려움을 서로 나누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남편의 병은 점점 깊어져 신장까지 망가졌고 신장 투석을 받은 날이면 남편은 너무나 심한 고통으로 의자에 앉아 밤을 세웠습니다. 차라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죽음을 안도의 숨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이별을 준비했고 담담하게 남편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 해 가을,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아버지 이름을 기입하는 곳에 사망이라 쓰며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딸애가 학교 버스를 탈 때마다 아빠가 묻힌 묘지를 지나는 것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직장에 다시 나갔고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2012년 퇴직했습니다.

하와이 가족여행에서 아들, 딸과 함께
▲ 하와이 가족여행에서 아들, 딸과 함께

황혼의 나이에 정토회를 만나다

책을 좋아했던 남편 덕분에 서양의 역사, 전기, 문학, 철학, 경영 등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어려움과 의문을 철학책이나 영적 지도자(spiritual leader)로부터 찾고자 했습니다. 2008년부터는 위빠사나 명상 모임과 남방불교 공부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했습니다. 2015년, 명상센터에 오신 한국 분을 통해 정토회를 알게 되었고 스님의 법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과의 모임은 정토회가 처음이었고 한국말로 공부하고 마음 나누기를 하는 것이 참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접한 정토회는 수련 프로그램을 참여하는데 나이 제한이 있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신청 당시 70세 이하라는 규정에 간신히 맞춰 2017년 정월에 인도 여행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지구촌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인류애를 실천하고 계신 스님의 JTS 사회 활동과 자선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단체를 이끄시는 스님이 있구나하며 스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저도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 후, 부지런히 <깨달음의 장1>, <나눔의 장2>, 바라지, 불교대학, 경전반, 발심행자3 교육을 2019년 5월에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 불교대학 진행을 하겠다는 원도 세웠습니다.

사라진 평온한 일상

2019년 8월, 아흔이 넘은 어머니가 입원을 하면서 저는 간병에 관련된 모든 일에 총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먹을 밥, 미역국, 반찬 등 한국 음식을 따로 준비해서 아침저녁으로 방문하고 간호했습니다. 은퇴 후 해오던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과학관(Science Center), 병원 봉사활동도 모두 멈췄고, 불교대학을 진행하겠다는 원을 세웠지만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법회 참석도 어려웠고, 경전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에만 간신히 참석했습니다. 조용했던 제 일상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어머니 아프실 때 한국에서 방문한 첫째 동생과 함께(오른쪽 윤의님)
▲ 어머니 아프실 때 한국에서 방문한 첫째 동생과 함께(오른쪽 윤의님)

한때 정신과 치료도 받고 노숙 생활도 했었던 다섯째 여동생은 의사와 간호사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간병을 방해했습니다. 간호사들의 불평 전화가 올까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제발 어머니께 방문하지 말라고 부탁도 했지만 동생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동생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몸은 점점 나빠져서 음식 소화도 힘들어졌습니다.

스님의 법문과 서구 영적 지도자(spiritual leader)들의 강의는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고 나쁨이 없고 그럴만한 인연으로 일어난 일이다.’ 다 내가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상황이 속히 끝나기를 기다리며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 했습니다. 재작년 11월, 어머니가 눈을 감으셨고 제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요즘은 스님의 즉문즉설 법문으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동생을 대하게 됩니다. 수행을 하면서 동생에게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은 동생의 아픔을 이해하고 따뜻한 눈길도 보낼 수 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온라인 법회로 되찾은 삶의 활력

2020년 3월, 어머니와 관련된 일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온라인 법회로 바뀌면서 법회에 참여하는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나이가 들어 108배를 할 엄두도 못 냈는데, 스님이 천천히 108배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내 건강에 맞춰 천천히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작년, 정일사 수련부터 1년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8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원으로 세웠던 봉사활동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경전반 돕는이 소임을 맡으면서 정토회 온라인 전법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법당에서 공부하던 경전반보다 훨씬 향상된 온라인 경전반은 제게 기쁨과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알찬 수업내용, 법문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는 장점, 매주 나오는 실천과제 등 온라인 수업의 장점을 여기 저기 알렸습니다. 이렇게 소임을 맡고 꾸준히 수행하면서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컴퓨터 기술도 하나씩 배우고 익히면서 사는 것이 재미있고 활기차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수업과정을 실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주도록 제작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봄에는 경전반 진행 소임을 맡았는데 학생들의 경전을 이해하는 면, 실생활에 적용하는 면을 나누기를 통해 들으면서 그들의 깊은 수행에 경의를 표합니다. 매주 도반님들과 함께하는 수업시간이 즐겁고 기다려집니다.

황혼기에 일어난 변화

2017년 인도성지순례
▲ 2017년 인도성지순례

2차 만일결사의 목표가 ‘외국인 전법’으로 정해졌고 내년에 열릴 영어불교대학 준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 불교대학 교재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고 이제는 월요일마다 봉사자들과 함께 내용을 읽고 글을 다듬는 일을 합니다. 영어 번역본을 읽으며 불법에 따른 스님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는지 내 수행에 비추어 보고 일상생활에서 괴로움을 줄이는 목표에 부합되도록 문장을 이렇게 저렇게 고치기도 합니다.

그동안 영어로 남방불교를 공부하고 여러 종교 서적을 읽었습니다. 불교에서 쓰는 영어 단어도 익숙해지면서 번역에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10년간 격주로 참여하고 있는 외국인들과의 명상시간에 스님 법문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 있을 영어불교대학에 참여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여러 명 있어 설레는 마음입니다.

내 인생의 황혼기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정토회를 다니며 그동안 쓰지 않던 한국 이름도 다시 쓰게 됐고, 전혀 관심이 없었던 한국 사회와 정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로 변화된 나의 황혼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정토회에서 지난 30년간 한국인의 행복을 위해 마련하신 스님의 법문과 불교대학, 경전반이 앞으로 30년은 외국인 전법을 위해 쓰이도록 하려는 정토회의 커다란 원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뿌듯하며 내 능력껏 해보리라 다짐합니다.

경전반 졸업식
▲ 경전반 졸업식


황윤의님은 정기적으로 듣는 스님 법문과 수행, 불교대학, 경전대학 공부를 통해 삶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십니다. 황혼의 나이에도 여러 철학책과 서구인들의 강의, 그리고 스님 법문을 두루 들으며, 영어와 한국어로 법문을 이해할 수 있어 좋다는 보살님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윤의 님이 번역하는 영어불교대학 교재를 빨리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황윤의 님이 앞장서는 외국인 전법 원을 들으니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글_유경희(희망리포터 북미서남부지회)
편집_이정선(진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3. 발심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회원가입 신청서를 제출해야 함. 발심행자 3년 후 서원행자 자격이 갖추어짐.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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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혜

저도 조세핀 김님의 수행담을 읽은 덕분에 이렇게 황윤의 선배도반의 수행담을 보게 되었네요.
'수행.보시.봉사로 변화된 나의 황혼기는 이보다더 좋을 순 없습니다'는 얘기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어 보입니다.
저도 같이 따라 배우다 보면 행복하게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겠지요. 감사합니다.

2023-03-11 10:52:39

마경숙

어제 전달된 조세핀 김 님의 수행담을 읽은 덕분에 2년 전에 발행된 황윤의 님의 수행담을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외국인 전법'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래 전부터 불법을 공부하신 분들이 알게 모르게 준비해주신 덕분이구나, 감사의 마음이 사무칩니다.

2023-03-11 07:07:42

반야지

황혼의 나이에도 수행ㆍ보시ㆍ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음에 존경스럽습니다.
많은 힘을 얻게 됩니다.
저도 할 수 있는 만큼 하도록하겠습니다.

2021-06-11 09: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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