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광주지회
새로운 길을 묵묵히 뒤따르겠습니다

광주정토회에 가면 키도 크고 늘씬한 몸매에 카리스마 넘치는 도반이 있습니다. 법당에서 법문을 듣던 시절, 법당에 가면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고 중심을 잡아 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 분은 도대체 무슨 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궁금했었는데 그 사연 한번 들어보실까요?

법당에서 도반과 함께(왼쪽 박영애님)
▲ 법당에서 도반과 함께(왼쪽 박영애님)

평역행보살인 남편을 만나다

저는 1960년대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새마을운동 노래가 전국에 울려 퍼지던 때 3남4녀의 막내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친정엄마는 당시만 해도 43세의 노산이 걱정되어 조산원을 가셨다고 합니다. 형제들은 많고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연로해지고 오빠, 언니들에게 학비받는 것도 힘들어 일찌감치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다행히 금융기관에 취직하여 별 어려움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은 늘 외롭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사랑고파병’에 걸려 있었고, 그 즈음 직장 후배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가진 것은 없었지만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으로 다가왔고 나머지 인생을 함께 해도 되겠다는 신뢰감으로 선택했습니디. 하지만 저를 정토회와 인연 맺게 해준 역행보살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4남 2녀의 장남에 효자 아들로 한 집에서 53세 홀시어머니, 중고등학생 시누이, 시동생들과 함께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기름에 물처럼 겉돌며 적응하지 못했고 남편이라는 상을 만들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음에 괴로워했습니다.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육아와 함께 비정규적인 일들을 병행하면서 오직 돈을 벌고 모으는 데 전전긍긍하며 집착했습니다. 남편의 건강 악화, 사업부도 위기 등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상황에 처하며 돈에 대한 갈증은 더 커졌습니다.

글귀 한 줄에 이끌려 찾아간 법당

갈증이 계속되면서 버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며 남편과 시댁 식구들을 원망하고 내 처지를 억울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 방황했고 갱년기 우울감까지 겹쳐 힘들었습니다. 둘째 아들 자모회에서 《정토》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펼쳐 든 《정토》지에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글귀에 흠뻑 빠져 혼자 동양목욕탕 건물 4층을 찾아갔습니다.

법당은 어두컴컴한 골목에 있어 찾기 쉽지 않았고 법당에는 두세 분이 썰렁하게 앉아 계셨습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법당을 그냥 나오지 않고 들었던 스님의 첫 법문에 녹아들어 매주 가지 않으면 일주일이 괴롭고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나와 가족밖에 모르고 어리석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법문을 통해 깨우치며, 원망하고 억울해하는 마음들이 모두 내가 지은 것이라는 불법의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씀을 믿고 수행법회 사회를 시작으로 법회 담당, 저녁팀장, 지부 저녁팀장, 법당 총무를 거쳐 지금의 정토회 총무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전반 졸업식(맨 오른쪽 영애님)
▲ 경전반 졸업식(맨 오른쪽 영애님)

봉사를 하며 가랑비에 옷 젖듯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법회 담당 때는 수행법회를, 저녁팀장일 때는 각 저녁 교실들이 여법하고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챙기고 도반들과 역할을 나누며 함께 했습니다. 그때는 법당에 한 분이라도 더 오셔서 부처님 법을 만나고 기뻐하는 모습에 저도 에너지를 받으며 주위가 절로 좋아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끈기도 없고 포기도 잘하는 제가 지금까지 활동하며 다니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돌아보면 꿈같은 시간들로 원도 한도 없이 정말 재미있게 15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많이도 울고 웃었던 지난 시간들을 보내며 삶이 많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졌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지금도 여전히 남편은 돈을 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밑 빠진 독에 물도 좀 고이기 시작했고 , 남편은 경주남산순례, 두 아들과 함께 동북아 역사 기행(그때는 회원이 적어 가족들도 동참이 가능한 시절), <깨달음의 장1>도 수료한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맡은 소임에 충실하면서 틈틈이 남편과 함께 즉문즉설도 듣고, 스님의 하루도 읽으며 정토회에 법륜스님 안 계시면 어떡하냐고 걱정도 해줄 정도로 이 시대에 진정한 스승과의 소중한 인연에 우리는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와 함께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감히 보름 동안 혼자 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 엄두도 못 내고 지내던 때, 2014년 활동가 320명과 함께 이 때 아니면 못 간다고 남편에게 숙이고 숙이며 인도성지순례 길에 나섰습니다. 그날도 새벽 일찍 안개가 가득 끼어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순례단과 함께 출발해서 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파 잠시 숲길에 앉아 있다 뒤따라가려던 중 수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스님의 음성이 작아지면서 황급히 뒤쫓아 달렸지만 갑자기 두 갈래 길이 나타나며 후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간 아찔해지면서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이러다 국제미아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과 공포로 정신없이 달리며 여기 누구 없냐고 진짜 온 힘을 다해 목청껏 소리쳤습니다. 한참이 지나 저쪽에서 '여기'라는 선주 법사님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울컥해버렸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겨우 네이란자강을 건넜던 그 순간이 인도성지순례 영상을 볼 때마다 떠올라 웃게 됩니다.

2019년 봄불교대학 졸업갈무리(첫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2019년 봄불교대학 졸업갈무리(첫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어렵고 힘든 경험들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다양한 성향의 도반들과 함께 하며 생기는 여러 상황들이 힘들었습니다. 늘 활동가가 부족해 몇몇 도반에게 업무가 편중되었고 그 또한 내가 안고 가야 할 상황이란 것이 많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든든한 도반들이 함께 해주었고, 일과 수행의 통일에 대한 법사님의 자상한 말씀과 점검들로 넘어지고 일어서며 한발 한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그 어느 것 하나 고맙고 감사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눈부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소임을 나로 삼게 되는 어리석음의 길임을 늘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들을 소중한 도반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길에 서 있음이 내 인생의 기적이고 성공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으로 도반들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충분히 더 들어주고 지켜보고 기다려주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 점은 앞으로의 과제로 삼아 나가겠습니다.

자유로 나아가는 길

이제 온라인 정토회로 세계 전법을 위한 2차 만일을 향해 나아갑니다. 총무란 단어도 역사의 뒤안길에 소중하게 간직되겠지만 '총무=엄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다양한 꽃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화단을 이룬 것처럼 여러 단위의 끝없는 소통과 질문, 의견들을 수용하고 어떤 칭찬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자로 살겠습니다. 늘 주위에서 나를 돌아보며 점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 저절로 수행이 되는 자리에서 마무리할 수 있음이 부처님의 가피임에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코로나19로 비롯된 급격한 변화의 물결 위를 온라인 정토회라는 배를 타고 나아가며 우리가 만들어가는 임시기간 지회장 소임도 도반들과 손잡고 나아가겠습니다. 아주 오래된 옛길을 먼저 가시며 이끌어 주신 스승님, 법사님의 뒤를 따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데 묵묵히 뒤따르는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요, 전법활동가입니다.

인도성지순례 중(맨 오른쪽)
▲ 인도성지순례 중(맨 오른쪽)


정토회 인연이 긴데 이제 보살님도 후배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저도 모둠장 소임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고 한번 마음먹으면 앞으로 밀고 나아가는 박영애님, 앞으로도 이 길에서 도반으로 함께 할 수 있어 든든합니다.

글_김혜영 희망리포터(동광주지회)
편집_이정선(진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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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중경

강한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불법 인연을 이어오신
길 대단하시고 머리가 숙여집니다
귀감이 되고 이렇게 수행담 들을수 있어
감사합니다.

2022-01-25 19:28:41

반청

광주법당가면 큰법당이라서 일이 많을텐데~라는 생각과함께 고맙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늘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2022-01-24 08:11:50

지명 이지원

늘 든든한 뒷산처럼, 흐르는 물처럼, 굽어지는 눈모양처럼 은은한 달 같기도 한 광주정토회를 지켜주시는 박영애 보살님~^^
얼마나 감사하고 존경하는지 마음을 내놓아 보여드리고 싶은데 참~
앞으로 그 마음 조금씩 조금씩 꺼내어 나누겠습니다^^
보살님도 따뜻한 마음으로 쭈욱~~ 함께 해요 ^_^

2021-05-25 18: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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