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광주지회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제는 괜찮습니다!

격동의 2020년, 온·오프를 넘나들며 경전반 수업과 발심행자1교육을 동시에 받은 서지우 님. 휴대폰으로 전달된 졸업장을 받아들고 나날이 성장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놀랍고 감사하다며 졸업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개인 법당에서 모둠원 활동은 물론 온라인 법당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행정진을 실천하며 모자이크 붓다로 발돋음 하는 동광주지회(순천) 서지우 님의 수행담을 들어보겠습니다.

밝은 미소의 서지우 님
▲ 밝은 미소의 서지우 님

먹구름 드리운 유년기

할머니와 어머니의 고부갈등 속에서 집안을 이끌어 갈 아버지는 오히려 도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고래 등 같은 집은 무너지고 전답도 다 잡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쯤 이었습니다. 맏딸이라 동생을 거두며 겨우 합격한 상업고등학교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버지가 이모네 집으로 저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데려다만 놓고 여러 날이 되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모네는 안채가 따로 있고 밖으로는 숙박업을 했는데, 해마다 도 대표 선수들에게 밥을 해주는 숙소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눈치 보며 살고 있던 저는 이것저것 고를 수 없는 상황이어서 밥 짓고 허드렛일을 하며 야간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졸업할 무렵 서점 경리로 취직을 했지만 점심 값, 교통비를 제외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서지우 님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서지우 님

결혼, 교회, 이혼, 회의

이모 집에 하숙비를 낼 형편도 아니어서 전전긍긍하는데 같은 직장에 다니는 상사가 같이 살아보자고 했습니다. 정이 그리웠는지 이것저것 따지는지도 묻지도 않고 한 결혼은 남편의 외도로 오히려 벼랑 끝에 찬바람 신세였습니다. 커튼으로 가려진 아파트는 눈물로 쌓인 감옥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믿으면 영생 할 수 있다는 교인을 만나 기독교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저는 평탄하지 않은 부부 사이에 어린아이를 맡기고 수련회를 다녀오는 등 오로지 교회에 매달렸습니다. 남편은 교회에 빠진 여자하고는 살 수 없다며 헤어지자고 요구했고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내 의지로 이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다 정리되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니면 다닐수록 마음은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괴로움은 용광로처럼 들끓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괴로움이 괴로움을 업고 쳇바퀴를 돌다 20년 지난 후에 저는 이 길에 대한 회의감이 생겼습니다.

경전반 환경교육 후 팀별봉사중에(왼쪽 첫번째 서지우 님)
▲ 경전반 환경교육 후 팀별봉사중에(왼쪽 첫번째 서지우 님)

풀꽃이 아름답게 보이다

교회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 얻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서점에 들러 책을 둘러보다가 그때 저의 눈에 띈 책이 법륜스님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새로운 신세계를 접하듯 눈이 확 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아파트 공원 벤치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길바닥에 움트고 있는 풀꽃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때 “아름다움”이란 말을 생애 처음 떠올린 것 같습니다. 연이어 읽은 법륜스님의 《기도》 책은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길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제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법륜스님의 책으로 알게 된 불교는 법륜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통해 정토불교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교대학에서 만난 나

삶의 답을 얻은 것 같아 정토회 법당을 알아보았더니 집 가까이에 강동법당이 있음을 알고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혼자 가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혹 찬밥 덩어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발을 들여놓았는데, 저를 맞이하는 도반들의 따뜻한 말은 세상의 찬기로 얼은 저의 몸을 녹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불교대학은 부처님이 누구인지 그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마음 나누기는 어렵지만 저를 알게 한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즉문즉설 강연에서 봉사 중인 서지우님(왼쪽)
▲ 즉문즉설 강연에서 봉사 중인 서지우님(왼쪽)

저와 다르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올라오는 분노가 제 안에 가득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를 보듬으며 안정이 되어 갈 즈음 팔십 중반 된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 아버지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수행, 보시, 봉사한다는 것이 저를 속이는 것 같아 108배 정진을 하며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100일이 지나면서 그동안 아버지께 하지 못한 것을 제 수행 삼아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내며 당신이 사는 구례로 이사를 했습니다.

원망 대신 반찬 하나 더

시골 생활은 힘이 들었고 아버지의 일상생활도 옛날 보았던 모습에서 한 치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짐을 싸서 다시 떠날까 저울질하는데, 도반들의 나누기가 힘이 되었던 불교대학이 떠올랐습니다. 또한 경전반 입학했다가 법문이 어려워 포기했던 아쉬움도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미륵사 정진 중에 도반들과(뒷줄 왼쪽 첫 번째 서지우 님)
▲ 미륵사 정진 중에 도반들과(뒷줄 왼쪽 첫 번째 서지우 님)

호흡을 몇 번 가다듬고 군내버스, 시외버스 등 여러 대중교통을 갈아타야 다닐 수 있는 순천법당 경전반에 입학했습니다. 경전 공부를 하면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니 모든 것이 저의 문제지 상대방 문제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도 아버지에 대한 불편함과 원망이 올라오면 밥상에 반찬 하나 더 올리며 내려놓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제는 치매 증상까지 보이면서 오직 제 한 몸에 의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곁에서 남은 생을 동반자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불안 불화를 딛고 모자이크 붓다로

오랫동안 혼자 살아오면서 제게 떨어진 문제는 그 누구와도 상의 하거나 의논할 대상이 없었습니다. 죽으나 사나 제가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결과도 손해든 이익이든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만히 앉아있으면 불안으로 윗니와 아랫니가 달달 떨립니다. 반면 그동안 애쓰고 살아온 것이 고집 아닌 아집이 되어 저의 뜻대로 안되면 기가 넘어갈 만큼 화가 올라오고 그 화로 옳고 그름을 판단했습니다.

도반들과 온라인으로 법회와 모둠회의에 참가 중인 서지우 님(상-아랫줄 왼쪽, 하- 위에서 둘째 줄 오른쪽 두 번째)
▲ 도반들과 온라인으로 법회와 모둠회의에 참가 중인 서지우 님(상-아랫줄 왼쪽, 하- 위에서 둘째 줄 오른쪽 두 번째)

발심행자교육을 받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불교교리는 <스님의 하루>를 읽으면서 제 업식의 잔상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4박 5일의 온라인 명상울 하면서 ‘떨리는 입술이나 긴 한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출가열반재일 정진을 마치고 다음날 새벽에 명상을 하는데, 두려움, 불안, 초조로 엉클어진 지난 시간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습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답답한 마음을 긴 호흡으로 끌어가며 그 시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괜찮아 잘 살아왔어” “죽지 않고 살아왔잖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맺힌 눈물도 그지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제 명심문이 “나는 화나지 않습니다.”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로 바뀌었습니다. 항상 저에게 아버지로서 한 것도 없으면서 어찌 그렇게 당당하셨는지 이제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당신 덕분에 이 몸을 받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기꺼이 감사함으로 인연에 순응합니다. 섶을 여미며 이제까지 살아온 제 인생의 조각들을 꿰매보니 참 쓸 만합니다. 이 산 경험을 디딤돌 삼아 모자이크 붓다로 잘 쓰이겠습니다. 정토회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와 자매들의 단란한 모습(오른쪽 두 번째 서지우 님)
▲ 아버지와 자매들의 단란한 모습(오른쪽 두 번째 서지우 님)


주인공은 제가 담당한 경전반 학생이었습니다. 나누기도 활달하고 팀별 봉사도 적극적이고 무엇보다도 “스님의 하루”와 “정토행자의 하루”를 좋아합니다. 수행사례담을 부탁하였더니 이제 겨우 묻고 산다며 쑥스럽게 이야기를 내 놓습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는데 서지우 님의 훤한 이마에서 햇살 한 점이 탁 튀어 오릅니다. 불 자로 시작하는 낱말 중 불안, 불편, 불만, 불화는 떼어내고 불법만 가져가겠다는 말을 들으니 저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햇살처럼 밝게 살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물소리처럼 여여해집니다. 바쁜 가운데.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서지우 님께 감사드립니다.

글_ 최서연 희망리포터(광주전라지부 동광주지회)
편집_ 이종명(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1. 발심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회원가입 신청서를 제출해야 함. 발심행자 3년 후 서원행자 자격이 갖추어짐.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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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중경

누구나 삶의 과정은 비슷하지만
내면의 마음을 보며 진리의 길로
인연되어진것이 큰 복이었네요
흔들림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수행하시며 살아온 과정이 감동입니다
수행담 귀감이 되고 고맙습니다.

2022-01-25 19:08:33

남진숙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인생주인으로 살아가시는 도반님 모습이 제2의 법문입니다.

2021-05-14 19:38:35

박신영

서지우님의 햇살처럼 가벼워전마음에 응원합니다. 잘 살아오셨습니다.

2021-05-14 06: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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