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주법당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요

우리나라 젊은 엄마들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경주법당 이미자 님은 밝은 미소와 편안한 목소리로 오늘도 행복한 세상을 위해 바쁘게 달리고 있습니다. 탁상달력에는 깨알 같은 글자 하나를 넣을 공간도 없이 빼곡하게 스케줄이 짜여있습니다. 이미자 님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세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나는 도망자

저는 스스로를 도망자라 불렀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세상을 비판하고, 일하던 직장을 비난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회피하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늘 도망을 다녔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저를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항상 1등을 해야 해”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잘해야 한단다.”
“공부를 못하면 남들이 흉본단다”

저는 어머니 말씀을 따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항상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2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라곤 중소도시의 작은 여행사였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대로 초라하게 30대를 맞는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제가 꿈꾸었던 20대는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사를 그만두고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유행이었던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일본에서 봉사해 주신 수녀님과 함께 (오른쪽이 이미자 님)
▲ 일본에서 봉사해 주신 수녀님과 함께 (오른쪽이 이미자 님)

나만 알던 나, 봉사로 만난 새로운 세상

일본에서의 생활은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곳 주변에는 성당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수녀님들과 봉사자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을 위해 일본어 교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일본 음식과 다른 나라 요리들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요리하며 조금씩 친분을 쌓아갔습니다. 수녀님은 서투른 내 일본어를 다 받아주며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셨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봉사자 중 한 명은 바이올린 연주를 곧잘 했습니다. 가끔 세계 여러 나라의 동요를 연습해 우리에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연주곡들은 우리나라의 <고향의 봄> 같은 곡이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연주도 좋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면서 너무나 행복해 하시는 그들에게 감동 받았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다니...‘ 이제껏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던 저를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행복한 봉사활동

저는 주중에는 외국어 시험센터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 선생님으로 봉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이주민들과 8년의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설날이면 떡국을 나눠 먹고, 날씨가 좋을 때면 소풍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20대에 막연하게 느꼈던 30대의 초라하고 악몽 같았던 시간은 희미해졌습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많이 나아지고 근사해졌습니다.

어느 날 제가 담당하던 학생(외국인)의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습니다. 그가 센터를 방문하는데 무려 왕복 5시간이나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일엔 직장을 다녀야 했고, 일요일 하루만 겨우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휴일을 쉬지 않고, 5시간 동안이나 버스와 전철을 타고 센터에 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는 이 일을 겪고 나서 봉사활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은 내가 시간과 여유가 되면 하고, 힘들면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맡은 활동의 책임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의 관점을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도망간 스리랑카에서 만난 정토회

외국어 시험센터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시험센터에는 주로 학생들이 외국어 시험을 보러 옵니다. 그들은 상위 몇 퍼센트에 버금가는 집안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의 부모는 대부분 자녀의 출세와 명예에만 관심을 둘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시험장 인터넷 문제로 시험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다 같이 시험을 못 봤으면 아무 문제 없는데, 자기 아이만 시험을 못 본 것이 억울하다며 심한 말들로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그 상황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극악스러운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걸까?‘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서 어떻게 저런 마음을 내는 것일까?’

저는 그런 엄마의 언행과 마음 쓰임새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돈과 권력에 미쳐 극악무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이 싫었습니다. 그런 중에 오랜 꿈이었던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에 지원해 스리랑카로 해외 봉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지금의 남편 소개로 정토회를 알게 되었고, 〈깨달음의 장1〉 수련 프로그램을 소개받았습니다.

이제 그만 도망갈까봐요

행복학교를 함께하고 있는 도반, 남편과 함께
▲ 행복학교를 함께하고 있는 도반, 남편과 함께

스리랑카에서 잠시 한국에 휴가를 나왔을때 〈깨달음의 장〉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사회 지도층이나 종교 지도층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차이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장〉을 마친 후 저는 삶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법륜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적어도 엉터리로 살지는 않겠구나!’
‘드디어 정신적인 삶의 멘토를 찾았구나!’

법륜스님의 수행과 사회봉사는 제 삶의 가치관과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저 나름의 가치관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낱개로 진열은 잘 된 것 같지만,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가치관과 바깥경계가 부딪히면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도망치듯 상황을 회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토회를 만나고 사회 활동을 하면서 제 삶의 가치관이 정립되어 갔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제 삶은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가 있어 행복합니다.

내 안의 모순을 보다

행복학교 진행(둘째 중 오른쪽 첫번째)
▲ 행복학교 진행(둘째 중 오른쪽 첫번째)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제가 대인관계를 매우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봉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JTS 활동만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불교 대학이나 경전반 담당처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숨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고 싶어하는 업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불교 대학 담당을 맡으면 중도탈락자가 생겼을 때 제가 잘못해서 나갔다는 자책감에 빠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늘 긴장되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자나 더 큰 소임이 주어지면, 다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도망치면 분명 스스로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저만 손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까짓것 한번 해보자’ ‘잘못해 탈락자가 생기더라도 나 스스로 그만두지는 말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고 완벽한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친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저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성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고, 정토회 봉사가 적성에 맞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낯가림이 심해서 스스로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 자신의 완벽함에 대한 무의식적 방어기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 더 잘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간장 종지라고 생각합니다. 간장 종지 같은 사람이 대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어떤 직책을 맡는 것에 지금도 마음이 무겁고 떨림이 있습니다. 큰일이 주어져도 간장 종지의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일에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제 업식임을 알고 꾸준히 알아차림 해야 함을 압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온라인 행복학교[^각주35](윗줄 왼쪽 첫번째)
▲ 온라인 행복학교[^각주35](윗줄 왼쪽 첫번째)

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릴 적 완벽하지 못한 엄마를 보면서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할 거면 차라리 결혼도 하지 않고, 엄마도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행복학교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주간반을 담당했기 때문에 30~40대 아기 엄마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행복학교로 만난 이들 중에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자신이 불행한 마음으로 아이를 가지면 아이도 불행할 것 같아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남편과의 갈등으로 심리가 불안하여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행복학교를 다니는 동안 삶의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임신이 되었습니다. 저의 작은 봉사가 새 생명을 잉태하도록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학교와 함께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행복학교를 통해 엄마들의 삶에 관점이 잡히고 행복해졌습니다. 행복한 엄마의 품속에서 아이들도 행복해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법륜스님 강연 중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이 행복한 동행을 함께 할 것입니다.


제가 늘 꿈꾸던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이미 만들어가고 있는 이미자 님을 만나고, 제 마음 속의 꿈도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나 만의 삶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과 미래를 위한 행복학교와 환경운동까지 이미자 님의 행복한 동행에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글_신정순 희망리포터(경주정토회/경주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김해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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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옥

미자님~^^💑

늘~

아름다운 동행에 응원합니다🎶
받은 사랑 간직할께요!

파이팅!😊

2021-06-04 08:11:17

백은정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미자님 ~
작년 불대 생각나네요
늘 응원합니다 !!!

2021-06-03 18:35:06

신혜정

미자님~ 언제나 응원합니다.
고마워요.^^

2021-06-03 08: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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