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파주법당
세상 모든 존재는 다르다

몇 년 전 불교대학 학생이었던 제게 당시 법당 총무였던 최영화님은 의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를 왜 다니세요? 너무 바쁘시고 힘든 일도 많은 것 같은데요?”라고 질문하자 “노년에 봉사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정토회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라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주인공은 기억 못할 수도 있지만 저는 아직 그 대답이 감동으로 남아 지금까지 정토회에서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일산정토회 파주법당 터줏대감 최영화 님의 봉사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문경수련원 봉사활동 중
▲ 문경수련원 봉사활동 중

불법에 빠지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 놈이 바쁘긴 뭐가 바빠’ 이 말 한 마디에 출가를 결심했다는 고등학교 1학년 법륜스님. 저는 이 인터뷰 기사를 통해 스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인 듯 아닌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 궁금증에 스님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 인터넷을 타고 우연히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물리를 좋아했고, 대학에서는 사회과학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시작할 때는 심리학에 관심이 생겨 대학원도 다니던 때였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했고 알음알이가 많아, 이제 대충 새로울 것은 없는 것 같다 생각했는데, 불교대학 공부는 그때까지의 어떤 공부와도 다른 신세계였습니다. 내가 그동안 관심 있어 했던 내용들이 모두 들어가 있었지만 공허하지 않았고, 현실의 삶에 대한 지혜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환희심에 가득 차서 불교대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6월에 깨달음의 장1을 가게 되었습니다.

임진각 만배정진(가운데 영화님)
▲ 임진각 만배정진(가운데 영화님)

불같은 내 마음 안녕

저는 가난한 집 2남 2녀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막일하는 부모님이 부끄러워 학교 다니는 내내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었고, 친구들에게도 있는 그대로 내 속을 드러내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낳았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일주일 동안 동네에 술잔치를 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아닌 게 미안했는지 잘 울지도 않고 얌전한 아이였다고 엄마는 말합니다. 자라면서 이걸 해 달라 저걸 해 달라 요구해본 기억이 거의 없고, 그런 요구를 유치하다는 이름으로 내가 먼저 무질렀습니다. 마음에 억눌린 게 많아서인지, 아주 가끔 불같이 화를 낼 때가 있었는데 착하고 약해 보이는 부모님에게는 못하고 주로 동네 아저씨 아줌마, 자라서는 불평등한 세상을 향했습니다. 늘 화를 낼 준비가 반은 되어 있었는데, 나름의 객관성이라든가 사명감을 앞세워 폭발시키곤 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의 공부와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며 나도 어쩌지 못했던 불같은 감정의 정체를 볼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졌고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JTS 거리모금활동 중
▲ JTS 거리모금활동 중

열심히 해도 괜찮아

경전반을 다닐 무렵, 같은 기수 중에 거의 모든 행사에 얼굴을 비추던 도반이 있었습니다. 선배인 줄 알았는데 같은 기수라는 말을 듣고, 하루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그 도반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내가 묻는 말에 내가 놀랐습니다. 웃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시비를 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불교대학 법문이 좋다고 말하면서도 열심히 하는 사람, 특히 종교활동에 푹 빠져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저의 밑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 뒤로 어떤 봉사도 싫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종교활동 열심히 해도 괜찮아. 마음껏 열심히 하며, 소임이 주는 복을 누렸습니다.

통일축전 진행
▲ 통일축전 진행

정토회의 주인이 되다

봉사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처음으로 서초에서 정일사2를 하게 되었습니다. 법사님에게 질문하고 나서 여러 도반들 앞에서 유독 나만 면박을 당했다고 느껴졌습니다. 내 돈 내고, 내 시간 내고, 열과 성을 다했는데 내가 조금 분별했다고 칭찬은커녕 망신을 당한 느낌이라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이 소임 마무리하고 그만둬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말에 법당에서 총무님이 준비해온 콩국수를 먹으면서 정일사에서 당한 봉변을 신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면박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의 무거움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우러러보던 법륜스님, 법사님보다 옆에 있는 도반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파주법당은 작은 법당으로 개원하고도 봉사자가 많지 않아 아직도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그만두겠다는 결심은 ‘혹시라도 법당에 무슨 일이 생겨 문을 닫는다 해도 마지막까지 남는 1인이 되어야겠다’로 변화하였습니다. ‘정토회 일은 법륜스님이나 법사님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데, 20여년 전부터 나를 도와주기 위해 준비해주시고 힘든 일, 울타리 역할을 도맡아 해주시니 나는 그냥 이 작은 법당에 자리나 지키면 되는구나!’ 이렇게 관점을 바꾸고 내가 정토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법당 해산으로 인해 정리 중
▲ 법당 해산으로 인해 정리 중

8개월의 행복학교3가 준 선물 – 남편과 나, 우리는 다르다

대학교 때 만난 남편은 내가 보기에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똑똑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사회성도 있고 힘도 좋았습니다. 이 사람 하나만 내 옆에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겠다 싶었던 남편과 9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 10여 년이 지나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우리는, 사네 못 사네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한 차례의 고비를 넘기고 남편은 여전히 성실하고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지만, 다시 살가운 사이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와 놀이하듯 법당활동을 하면서 나는 밝아졌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편은 늘 무거운 수행과제로 남아있었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며칠 동안 짜증 내서 미안해" "언제?' "내가 짜증냈었는데 몰랐다고?" "잠깐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안 하던 사과를 하세요?" "정토불교대학 모집기간이라, 6개월인데..." "죄송합니다. 나는 아니야" 불교대학 입학을 권유하는 나에게 남편은 단호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깐 서운한 마음이 들고 나서 퍼뜩 떠오른 말은 이 사람과 나는 다르다입니다. ‘남편과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그 순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자 신기하게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동안 살가운 남편이기만 바란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 같기를 바랐고, 마음이 같기를 바라고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다르다’ 라는 전제를 하고 보니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하고 바랐던 것들이 참 어리석은 것들이었구나, 집착하고 기대할 아무런 이유도 필요도 없었음이 확연합니다.

8개월 가까이 행복학교를 진행하며 들었던, 세상 모든 존재는 다르다는 것만이 진실이라는 말씀이 이제서야 제대로 내 귀에 들어왔습니다. 남 얘기일 때 뻔히 보이던 것이 정작 내 문제가 되었을 때 캄캄하다가 이제야 분명히 보였습니다. 이제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고, 관점이 바뀌는 순간 그대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한 것은 행복학교 8개월의 기간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화상으로 하는 통일의병[^각주29]활동 중 두 번째 줄 왼쪽
▲ 화상으로 하는 통일의병[^각주29]활동 중 두 번째 줄 왼쪽


그동안 선배도반인 최영화님에게서 배운 정토행자의 바른 자세와 바른 마음을 토대로 올해는 조금 차분하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욕심에 끄달리지 않고 살아보기를 다짐합니다. 함께 해서 행복합니다.

글_최영화(일산정토회 파주법당)
정리_이경미(일산정토회 파주법당 희망리포터)
편집_이정선(진주정토회 진주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3. 행복학교 행복해지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의식이나 프로그램을 배제하고, 법륜스님의 행복 메시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연습을 함께 하는 곳.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12강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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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

제 와이프는 자기와 가치관이 같고, 마음이 같고, 수고한것을 인정해주길 바라는데,

오랜기간 행자의하루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우리와이프도 법사님인줄 착각하며 살고있는 1인 입니다.

2021-03-05 12:40:47

덕승

‘나와 다르다’
간단한 진리인데 쉽지 않은 수행과정에서 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1-03-05 06:25:11

박신영

최영화님의 나는기 잘 읽었습니다

2021-03-05 06: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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