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영통법당
이제야 좀 대화가 되네!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법당을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내어놓을 게 없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던 이경선 님. 쌀쌀한 법당의 공기가 조금씩 따뜻하게 느껴질 무렵, 진솔한 그녀의 이야기가 마음에 잔잔한 파고를 일으킵니다.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찾은 정토 ‘문화센터’

저는 정토회 오기 전에 한 번도 즉문즉설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법륜스님은 알고 있었지만, 정토회는 아예 알지 못했습니다. 가정주부로 살았으니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딸이 고2가 되니까 더 이상 제 마음대로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자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싶은데 내려놓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일반 절에 있는 불교대학에 다녀볼까 생각도 했는데 시간이 맞지도 않고 내용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정토회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더니 집 근처에 영통법당이 있었습니다.

경전반 도반들과 문경수련원에서(뒷줄 오른쪽 두 번째)
▲ 경전반 도반들과 문경수련원에서(뒷줄 오른쪽 두 번째)

제가 의지심이 많아서 동생도 부산에서 등록하고, 친한 언니에게 같이 가자고 해서 정토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인사하는 법, 불교 관련 용어나 예절 같은 것도 알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문화센터' 같은 개념으로 그냥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절하는 방법, 불교 예절도 알려 주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절에 열심히 다니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서인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이가 대학 잘 갔으면 좋겠다는 기복적인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와서 딱 보니까 아니었습니다. ‘쉬운불교’, ‘실천불교’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한 도반이 ‘법문은 약침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정말로 법문을 들으면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불교대학을 다녔는데 하다보니 시키는 게 많았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해봐야 되겠다 생각이 들었고, 경전반까지는 다녀봐야겠다 싶어서 그냥 하자는 대로 따라 갔습니다.

“이제야 좀 대화가 되네”

<깨달음의 장>도 숙제하는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계속 미루고 미루다 큰아이가 고3이던 2018년 5월에 갔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왜 연락이 없냐고 전화를 했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을 꾹 참다가 ‘당신도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다’ 는 말을 가까스로 하고 나서 전화를 딱 끊었습니다. 나중에 남편도 그때 제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상대를 원망하는 습이 있었는데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나니, ‘남편도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생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편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남편은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네가 항상 위를 쳐다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버거웠던 겁니다. 그랬던 제가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나서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요즘은 남편이 "이제야 좀 대화가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틀을 딱 깨버린 겁니다.

저는 결혼 전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슈퍼맨 같았던 아버지처럼 남편에게도 해결사 같은 역할을 바랬습니다. 부모님에게 받는 것이 당연해서인지, 결혼 후에도 시댁에서 받기만 바라는 철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습니다. 아이들 잘되고 남편 잘되는 게 소원이고, 제가 스스로 노력해서 이루려고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상대방을 통해 덕을 보려 한다고 했습니다. ‘나’라는 건 없이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남편이 직장에서 받아 오는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항상 더 위를 보았습니다. 비교 대상이 항상 높은 곳에 있으니 만족을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되어야 했고 마음먹은 것은 다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법문의 끈을 잡고 꾸준히 가는 이경선 님
▲ 법문의 끈을 잡고 꾸준히 가는 이경선 님

주재원인 남편과 외국에서 3년 정도 살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제 맘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다른 환경에 흠뻑 젖어 살다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한국에 돌아와 심지어 ‘바보’라는 말도 모르고, 한국말도 잘 못 했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 마음을 보지 못하고, ‘아이가 친구들하고 잘 지낼까?’ 보다는 ‘공부, 공부’ 했습니다. 아이 마음을 보듬어줘야 하는데 시험문제 한두 개 틀린 게 뭐라고 아이를 잡았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한 것이 그때 적응 못 하는 아이와 눈 맞추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은 그냥 크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준비가 안 된 엄마였습니다. ‘부모 역할’도 ‘지혜’도 배우는 것인데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아직도 가족들에게 분별심이 생깁니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라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런 저를 인정해 줄 수 있습니다. 여전히 번뇌와 욕심이 올라오지만 잠시 멈출 수 있고 적어도 화살이 가족에게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이유가 있겠지

2019년도에 정토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게 되었고 제가 잘 끌고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 연령이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보니 단합도 잘 되지 않고, 바빠서 수업만 듣고 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 이유가 있을 텐데 저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0명 넘게 입학했는데 공양하는 사람이 겨우 1~2명인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앞서서 적극적으로 끌고 가는 성격이 아니니 반 분위기가 처지는 게 아닌가 자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딪히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힘들었던 시간이 오히려 저한테 훨씬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내부봉사(오른쪽)
▲ 부처님 오신날 내부봉사(오른쪽)

올해는 경전반 스텝 소임을 맡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니까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습니다. 화상 나누기가 부담스러워서 하기 싫었습니다. 떨리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실수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나라도 편안하게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온라인 수업이 집중도 잘되고, 오롯이 나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수업의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수업 참여율도 더 좋아졌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다 보면 ‘선배들이 우리보다 먼저 왔으니 앞서야 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는 ‘왜 저렇게 행동을 할까? 선배도반은 우리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날 금강경 수업을 듣다가 ‘내가 정말 건방졌구나, 내가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리셋(초기화)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고 이제 웬만한 이치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불교대학, 경전반 봉사를 하면서 딱 느꼈습니다. 부딪혀야 하는구나. 아니면 절대 내가 깨치지 못하겠구나!

평소에 생활하면서 분별했던 것들이 싹 정리가 되니 정말 좋았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했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인연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매년 같은 법문을 듣더라도 불교대학 수업을 들을 때는 학생 입장에서 들렸는데 지금은 봉사자 입장에서 들립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의 경험치를 통해서 법문이 들립니다.

4년 가까이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젠 ‘나름대로 다들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더 공부시켜 주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분별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분별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 크게 기억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있을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겠다’는 지혜도 끊임없이 배우게 됩니다.

수원행복강연 홍보활동(앞줄 오른쪽)
▲ 수원행복강연 홍보활동(앞줄 오른쪽)

허했던 마음이 꽉 채워지다

앞으로 코로나가 좀 진정되면 바라지를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라지 했던 분들이 20대여서 그 정성스러움이 더욱 감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제 마음이 많이 허했습니다. 요즘은 마음이 꽉 채워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스스로 아주 당당해졌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저보고 '물욕을 끊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뭘 하고 싶다' 딱히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냥 지금이 좋습니다. 물론 힘이 빠질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점점 짧아집니다. 법문의 끈을 잡고 가다보니 아직도 그때 그때 걸려서 넘어지긴 하지만 더 이상 망상을 피우지 않고 멈추게 됩니다. 앞으로 그냥 지금처럼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이경선 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차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래 알던 언니처럼 편안합니다. 인터뷰가 아니라 희망리포터 이야기를 더 많이 한 것 같아 살짝 부끄럽기도 합니다. 기사가 나오기까지 서툰 대응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함이 많았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협조해 주신 이경선 님께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추천해 주신 경전반 스텝으로 다시 만나기를 마음 모아 기대해 봅니다.

글_차미나 희망리포터(수원정토회 영통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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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란

저는 (안동)불대 졸업예정자 이며 경전반 입학예정자 입니다 선배 법우님의 말씀 많이 공감이 갑니다 ㆍ저는 지금 저가 만든 가정이 일반적으로 조금 난감한 상황입니다 만 그래도 지금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순간에 약간의고민은 100일 출가 입니다ᆢ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ᆢ이번 봄불대를 통해서 두가지를 동시에 가질수 없다는 것 을 깨달았습니다

2021-01-16 04:49:19

박신영

깨달음장을 다녀와서 남편에게 많이 힘들었겠다 나때문에 란 대목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 마음의 빗장을 탁 열어놓은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저도 불대를 졸업하고 깨장을 다녀올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기를 바래봅니다

2021-01-12 06:11:45

김희선

수행담 나누어주셔서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딪혀야 알게 된다'는 말씀에 공감이 확 되네요^^

2021-01-07 07: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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