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전주법당
대물림을 끊고 나를 살린 수행

언제나 조용하고 상냥하지만 공부와 수행, 소임에는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흡수하여 자기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오늘의 주인공 구명선 님. 경전반 학생으로서 마음공부와 전주정토회 불교대학지원담당 소임까지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담담하게 소화해내는 구명선 님의 소중한 체험담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구명선 님
▲ 오늘의 주인공 구명선 님

꿈도 없던 시골 소녀

가난한 농사꾼이었던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도시로 나왔습니다. 허리도 안 좋고 기술도 없었던 아버지는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가정을 꾸리느라 어머니는 아버지와 자주 싸웠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화, 짜증을 하루도 안내는 날이 없었고, 그 시절 어머니의 웃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생업으로 바쁜 부모님, 특히 강한 어머니 덕에 사춘기 반항도 할 틈도 없이 형제들은 자립적이고 강하게 자랐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불만도 없었지만,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많이 들어서인지 소심하고 별다른 꿈도 없는 시골 소녀였습니다.

백일기도 정진과 퍼포먼스 중인 구명선 님(위-오른쪽, 아래-뒷줄 맨 오른쪽)
▲ 백일기도 정진과 퍼포먼스 중인 구명선 님(위-오른쪽, 아래-뒷줄 맨 오른쪽)

짜증의 대물림

결혼하고 맞벌이를 하며 연년생을 키웠습니다. 남편은 젊었을 때 준비해야 한다며 승진 공부를 했습니다. 승진 준비를 뒤로 미루고 같이 육아를 해주거나, 오로지 공부만 해서 빨리 끝냈으면 하는 제 바람과는 다르게 남편은 모임, 운동 등 하고 싶은 것을 다 챙기는 남편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내리 5년을 공부하다 승진을 포기했을 때 애들은 5살, 6살이었습니다. 혼자 육아를 했다는 억울함, 원망이 마음에 똬리를 틀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술과 사람을 좋아해 술값, 밥값으로 생활비의 3분의 1을 지출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에게 믿음이 안 가서 미워하고 무시하고 험한 말로 상처를 주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짜증 속에 아이를 키웠습니다.

2018년 고1인 둘째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아들이 겉도는 아이들과 어울린다고 했습니다. 전문가와 상담을 해도 뾰족한 답을 구할 수 없던 중에 도서관에서 법륜스님의 《엄마 수업》책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법당에서 도반들과 행복한 대화중인 구명선 님( 위, 아래 맨 오른쪽 )
▲ 법당에서 도반들과 행복한 대화중인 구명선 님( 위, 아래 맨 오른쪽 )

그때까지 법륜스님을 몰랐는데, 스님의 책을 읽고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아들이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제가 문제였음을 알았습니다. 항상 짜증 내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후, 결혼해서 저도 어머니처럼 남편과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불안 심리로 키워진 아들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무던하게 곁을 지켜준 고마운 남편

처음으로 법륜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들어보니 그 지혜로운 말씀에 ‘나를 건져주실 분은 이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수행 법회에 매주 참석하니 법회 진행자가 《수행 맛보기》책자를 주어 새벽 수행도 시작했습니다. 2019년 3월 9-7차 천일결사에 입재하고, 봄 불교대학에도 입학하였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매주 수행 연습이 참 좋아 지금까지 정진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수행을 하면서 참회 기도를 했습니다. 제일 미안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분별심과 불만이 많은 제가 18년 동안 남편을 못 믿고 상처 주는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 생각이 다 옳다고 고집하니 남편이 못나 보였습니다. 저의 그런 험한 말에도 맞서서 싸우지 않은 무던한 남편을 두고서 더 무시했습니다. 또 맘에 안 들어 2~3달에 한 번씩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불쑥불쑥 했습니다. 저 혼자 살림과 육아를 했다는 억울함과 손해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지배한 것입니다.

도반들과 용맹 정진 (맨 왼쪽 구명선 님)
▲ 도반들과 용맹 정진 (맨 왼쪽 구명선 님)

몇 달 전에는 남편이 꽤 큰 돈을 카드로 긁고서는 뭘 샀는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뭘 사든 상관없으니 그냥 말해달라고 해도 남편은 끝내 말을 하지 않아 서운했습니다. 그러다 스님의 즉문즉설 법문을 듣고 남편을 이해했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뭔가를 숨긴다는 것은 저를 겁내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아내가 잔소리와 야단을 치니 당당하게 꺼내놓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인연과보라는 걸 아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18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생은 제가 모시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방 한쪽에서 온라인 법회나 회의를 할 때면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고 이해해주는 남편이 참 고맙습니다.

도반들과 홍보활동중인 구명선 님(우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오른쪽,오른쪽 두 번째,왼쪽 두 번째,왼쪽 두 번째)
▲ 도반들과 홍보활동중인 구명선 님(우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오른쪽,오른쪽 두 번째,왼쪽 두 번째,왼쪽 두 번째)

관점을 바꾸며 얻는 평안

작년 초에 새로운 근무지로 옮겼습니다. 팀장 위치에서 새로 적응해야 하는 부하 직원들은 유난히 힘든 관계였습니다. 신세대 부하 직원은 자기주장이 강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성격이 강한 직원은 말투가 거칠고 감정기복이 커서 주위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이 많은 부하 직원은 저의 지시에 가끔 반기를 들어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상사는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보고받기를 원하니 일을 진행하기가 더디고 힘들었습니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괴로운 감정의 찌꺼기는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새벽 정진에서도 생각나서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괴로운 것은 관점을 잘못 잡기 때문이라는 스님 법문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먼저 당돌하게 느꼈던 신세대 부하 직원에게 과거 제가 가졌던 상사에 대한 공손함을 기대하며 대접받으려 했음을 알았습니다. 말투가 거칠고 감정 기복이 큰 직원은 유독 저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성격일 뿐이었습니다. 나이 많은 직원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세한 것까지 보고 받기를 원하는 새로 부임한 상사는 이제 막 승진해서 왔기에 더 알고 싶어 하는 열정으로 여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인정하니 편했습니다. 괴로울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었더니 제 삶이 편해짐을 경험했습니다. 저를 살리는 이 수행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법당에서 봉사중인 구명선 님(위-뒷쪽, 아래-왼쪽에서 두 번째)
▲ 법당에서 봉사중인 구명선 님(위-뒷쪽, 아래-왼쪽에서 두 번째)

함께 행복하기

남편은 북한 동포 옥수수 보내기, 작년 초 정토회관 불사 보시 제안에 흔쾌히 마음을 내주었습니다. 수행으로 편안해지는 저를 남편이 응원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문제라고 여겼던 당시 고1 아들은 고2부터 차분해지면서 작년에 수능도 잘 치렀습니다. 저에게 고민을 주었던 아들이 오히려 이 귀한 불법을 만나게 한 은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몸으로 직접 나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제가 좋으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봉사에도 참여하는 마음이 열렸습니다. JTS 거리 모금, 불교대학 거리 홍보, 즉문즉설 강연 홍보도 참여해보았습니다. 2020년에는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불교대학지원담당 소임을 맡았습니다.

JTS 거리 모금중 인 구명선 님 (위쪽 - 가운데, 아래쪽 -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JTS 거리 모금중 인 구명선 님 (위쪽 - 가운데, 아래쪽 -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다른 사람에게도 저와 같은 행복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륜스님의 책 《지금 이대로 좋다》와 월간지 《정토》 1년 구독권을 여러 사람에게 보시했습니다. 온라인 행복학교 ‘마음편’에 참여 해보니 참 좋아서 지인 5명을 온라인 행복학교와 인연 맺어줄 수 있었습니다. 한 지인은 ‘안 그래도 요즘 얼굴이 너무 편해 보여서 좋아 보였다’라고 말해주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역시 최고의 전법은 제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반들과 세상을 구하는 큰 원을 세운 구명선 님(맨 오른쪽)
▲ 도반들과 세상을 구하는 큰 원을 세운 구명선 님(맨 오른쪽)

저를 괴로움의 웅덩이에서 건져준 정토회와의 인연은 제 생애 최고의 행운입니다. 앞으로의 삶도 길가에 핀 은은한 향의 들꽃이 되고 싶습니다. 저의 작은 소망은 시골에서 작은 가정 법당을 지어 사람들과 좋은 법문 나누며 같이 수행자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앞으로도 스님과 도반을 믿고 정토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겠습니다.


수행담을 들으며 구명선 님의 이름이 괴로움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구조선과 연결 지어졌습니다. 왠지 구조선과 같은 운명을 타고난 이름이 아닐까 재밌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구명선 님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꾸준한 수행 정진과 봉사, 그리고 작은 일상도 놓치지 않는 소중한 체험을 이어가길 응원합니다.

글_구명선(전주정토회 전주법당)
정리_ 이종명 희망리포터 (전주정토회 전주법당)
편집_ 임도영(광주정토회)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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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계

수행의 교과서를 읽은것 같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이해할것인지 알고나니 모든것이 잘 살고 있는거내요.
예젠의 사고뭉치와 화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ㅎㅎ

2021-01-13 07:11:58

전경병

인연따라 잘 살겠습니다.
수행담에 진한 감동이 옵니다.
도반의 수행담은 또다른 한편의 인생을 살은 나를 느낍니다.
구명선님 성불하세요. 감사합니다.

2021-01-12 08:20:01

이의수

멋져요^^

2021-01-10 22: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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