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
경청의 달인

“좋아요!”, “시원합니다.” 이것은 진주법당 봉사자들이 막힘없는 소통으로 행복에 겨워 내는 목소리입니다. 봉사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경청의 달인 진주법당 총무 정금도 님입니다.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다시 태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도반들과 지리산 수련원에서 봉사활동(맨 왼쪽)
▲ 도반들과 지리산 수련원에서 봉사활동(맨 왼쪽)

행복한 수행자가 되는 기적

직장동료들과 천배 정진까지 경험한 후 당연히 저는 불자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절 서가에 꽂혀 있는 한글로 된 경전을 읽는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불자가 경전도 모르다니 부끄러움이 올라왔습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경전 공부를 해야지 마음먹고 적당한 불교대학을 찾았습니다. 마침 서울 사는 동생이 정토불교대학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생소한 이름이라 인터넷으로 검색했지만 잘 찾아지지 않았고 신학기 준비로 바빠 입학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2014년 9월 가을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저를 완전히 뒤엎을 기적임을 모르고 첫 만남에서는 실망만 가득했습니다. 경전 공부하러 왔는데 근본불교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실망했습니다. 법당에 스님은 안보이고 영상 속에서 법문하고 계시니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이런 의구심 가득한 불편한 마음으로 불교대학을 다녔습니다. 6개월 먼저 입학한 동생이 3개월만 쭉 다녀보라고 권유하여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게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때는 ‘정토회에 뼈를 묻겠다’는 지금의 저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불교대학 , 경전반을 거치며 ‘부자 되게 해주세요.’, ‘직장 생활 탄탄하게 해주세요.’, ‘아이들이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하고 온갖 탐욕과 집착으로 이 절 저 절 돌아다니며 복을 구하던 불자는 행복한 수행자가 되어 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에서
▲ 인도성지순례 중에서

말 없는 조용한 아이

제가 두 살 때 어머니는 열병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저는 시골 할머니께 보내졌습니다. 할머니 옆에서 갓 결혼한 올케언니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빈자리에도 개의치 않고 시골 친구들과 어울려 쾌활한 아이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할머니 집과 어머니 집을 오고 가며 지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동생이 태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 집으로 완전히 옮겼습니다. 저는 점점 말 없는 조용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둘째 딸이었던 저는 부모님과 생활하게 되면서 귀여움과 애정을 한 몸에 받는 발랄한 동생에 대한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또한, 아픈 언니에 대한 양보와 배려를 강요받으며 부모의 꾸지람을 많이 듣다 보니 마음이 위축되었습니다.

감정 표현에 대하여 흉을 보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한 시간이 짧아 추억이 많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깨소금을 만드는 저를 보며 냄새가 싫다고 역정 내는 모습이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의견을 말해도 수용 받지 못하는 경험들이 쌓여 감정표현을 안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어머니의 지원으로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하게 되었습니다. 소극적이었던 저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인 남편을 만나 딸 둘을 낳았습니다. 1985년, 작은 아이 출산 후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저를 위해 친정어머니는 기꺼이 하시던 포목점 일을 접고 아이들 양육을 맡아주셨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어릴 때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늘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평생 자기 일에 자부심 가지고 살던 어머니였으니 그것이 얼마나 큰 결심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9차 회향수련 행사 중에서(맨 오른쪽)
▲ 제9차 회향수련 행사 중에서(맨 오른쪽)

아이들이 자라자 분가해서 살게 되었고 살림이 넉넉해지자 남편과 저는 주식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집 한 채를 날릴 정도로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다시 친정으로 들어갔습니다.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남편이 사업을 다시 시작했고 좀 성공하자 다시 분가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욕심을 부려서일까요? IMF 때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결국 저의 월급마저 압류가 들어와 정상적인 생활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갈 데 없는 우리 가족을 어머니는 또 아무 말씀 없이 받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어려울 때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어머니께 감사했습니다. 고마움도 컸지만, 한편으로 어린 시절 겪은 서운함으로 순간순간 올라오는 화가 있었습니다. 함께 생활하니 짜증과 잔소리도 많아졌습니다. ‘나 좀 구속하지 마.’, ‘내 인생에 간섭 좀 하지 마.’라는 생각 때문에 어머니와 갈등이 빈번해졌습니다.

‘자유로워지자.’는 수행과제를 가지고 계속 새벽 기도를 해나갔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매일 하는 수행 덕분에 어머니의 짜증과 화도 귀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애처로움마저 느껴져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제는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할 때 자유로워졌습니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 때문에 저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수행은 소심하고 말 없던 아이에서 멈춘 저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고 있었습니다.

도반들과 홍보 활동(맨 왼쪽)
▲ 도반들과 홍보 활동(맨 왼쪽)

원림이 되어 준 조카

그리고 저를 더 성장 시켜 준 조카가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언니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키운 조카는 외할머니를 뵙겠다고 자주 집에 왔고 저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 조카가 행동하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 났습니다. 법문을 듣고 조카 문제가 아니라 저의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정일사 과제로 삼아 마음 들여다보기를 계속했습니다. 꾸준히 참회기도와 감사기도를 하면서 제 문제를 분명히 알아차렸습니다. 조카를 제 마음대로 하고 싶었고, 제가 옳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조카에게 할머니는 엄마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내 입장만 생각했었구나.’ 깨닫는 순간 많이 미안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할머니를 어머니같이 살뜰히 챙기는 조카에게 감사합니다.

부활

수행 덕분에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저를 가족과 직장, 그리고 법당에서 좋아합니다. 예전의 저는 무엇이든 잘해야 되고, 잘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의 잘난 면은 부각하고, 상대의 부족한 면은 비판했습니다. 그 어리석음을 알게 되니 동료들과도 편안해졌습니다.

불교대학 담당, 모둠장, 3년 동안의 수행법회 담당, 진주정토회 지원팀장을 거쳐 지금은 진주법당 총무 소임을 받아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행복합니다. 함께 하는 도반들의 지지와 가끔 들려오는 불만들에도 출렁이지 않습니다. ‘권위적이지 않고 도반들의 의견을 공감하며 수용하는 경청의 달인 총무’라는 어느 도반의 말씀에 낯간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수행과 정토회에서 한 다양한 봉사활동 덕분입니다.

봉사의 아름다운 향기는 결국 자신이 제일 먼저 맡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봉사의 기회는 복 짓는 것임을 알고,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합니다. 봉사를 통해 개인적인 문제에만 머물러 있던 저는 환경과 통일 등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넓은 시야를 가진 행동할 줄 아는 시민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저를 제일 반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족입니다. 이상한 종교가 아닌가 걱정되어 정토회 활동에 불만이 많던 어머니도 “아직 법당 안 갔냐?”라며 물어 오십니다. 제가 변한 것을 제일 좋아했던 둘째 딸은 정토회 경전반까지 졸업하고 현재 봄 불교대학 꼭지를 맡고 있습니다. 첫째 딸과 맏사위가 이번 온라인 가을불교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의 긍정적인 변화가 곧 최고의 전법이었습니다.

가족전법, 딸들과 함께(맨 오른쪽)
▲ 가족전법, 딸들과 함께(맨 오른쪽)

잠이 많아 분주하기만 했던 아침이 수행 덕분에 여유롭고 하루가 평온합니다. ‘나는 늘 잘해야만 한다’는 욕심도 내려놓았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지적하던 내 민낯도 볼 수 있습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불교대학 과정의 수행맛보기 때 처음 접한 새벽정진을 지금까지 꾸준히 해 온 결과입니다. 무늬만 불자이던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진 지역 사정으로 주인공을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듣기만 해도 힘겨움이 느껴지는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환하게 미소 띤 얼굴로 담담하게 말하니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온라인 인터뷰에서도 충분히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경청과 소통 비결이 모두 수행에 있음을 알겠습니다. “지금도 행복하고 내 미래도 수행, 보시, 봉사로 삶이 가득했으면 좋겠어요.”라는 정금도 님의 바람을 응원합니다.

글_유미화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진주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전체댓글 19

0/200

노춘민

행복수행담 잘 보았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 하며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멋져요♥

2021-02-16 12:04:24

차보경

나의 긍정적인 변화가 최고의 전법, 제가 늘 품고 생활하는 목표라서 반가운 구절입니다

2020-12-12 11:14:55

박신영

정금도님의 수행담을 잘 읽었습니다 저도 금도님의 전법이 가장 확실한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변하는 긍정적인 모습 배우고 갑니다~

2020-12-11 06:14:39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