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세종법당
아내의 공덕으로 정토회 사천왕 되다

매주 수요일 유쾌하고 재치 있는 진행으로 수행법회 모둠원들을 늘 웃게 만드는 세종법당의 큰어른 곽영술 님.
주인공은 1997년 아내가 <깨달음의 장>에 간다는 것을 계속 반대하다가 결국 확인 점검차 주인공이 먼저 가게 되어 정토회와 첫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퇴직 후 현재까지 불사 소임 등을 맡아 꾸준히 수행 봉사하며, 무엇보다 온 가족이 정토회 회원이라며 행복해하는 곽영술 님의 마라톤 수행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세종 원수산 쓰레기 줍기 모둠활동 후 가을 단풍 아래 주인공
▲ 세종 원수산 쓰레기 줍기 모둠활동 후 가을 단풍 아래 주인공

못 믿겠다면 당신이 먼저 확인하고 와주세요

1995년 저는 40대 후반으로 주어진 일에 집중하며 바쁘게 지냈습니다. 조급한 성격에 화가 많고 늘 내가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박봉에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혼자서 키우느라 애를 많이 썼습니다. 여러 어려운 여건으로 힘들어하던 아내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스승을 찾아 불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살고 있을 때, 아내는 이웃 주민의 소개로 정토회 서초법당을 방문해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감명 받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1997년경 근무지가 바뀌어 충남 공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어도 아내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씩 서초법당으로 불교대학을 다녔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4박 5일 일정의 수련을 간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겠다는 것인데, 저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고,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서 아내의 설명이 귀에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충 듣다가 '가지 마세요!'라고 답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족사진
▲ 아이들이 어릴 때, 가족사진

아내는 오늘 말해서 안 되면 내일 말하고, 이번 주 말해서 안 되면 다음 주에 다시 하고, 이번 달 말해서 안 되면 다음 달에 하고, 봄에 말해서 안 되면 여름에 하고, 올해에 말해서 안 되면 내년에 말하는 등 정성스런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그 사람 뜻에 따르게 되는데, 저의 우직한 고집을 잘 알고 있던 아내는 '그리 못 믿는다면 당신이 먼저 문경수련원에 가서 확인하고 오세요.'라고 하였습니다.

4박 5일 일정이라고 하니 어떤 곳인지,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등이 궁금하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제 눈으로 봐야 믿는 성격이라, 제가 먼저 <깨달음의 장>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사는데 많은 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1997년 12월 23일부터 28일까지 당시 <깨달음의 장> 수련은 대부분을 지도법사님이 진행하였습니다. 수련을 마치고도 명석하지 못하여 크게 깨닫지 못하였고 다만 수련 중 ‘사람이 사는데 많은 게 필요한 것이 아니구나!’ 알게 됐습니다. 비바람 막으면 집이고, 밤에 전깃불 들어오면 환하고, 물이 있으니 밥해먹고, 먹고 자고 그냥 이런 것도 사람 사는 모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살 수도 있음을 알게 되고 종교는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지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고, 욕구에 따라 먹고 마시는 삶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문경수련원을 다녀오니 아내는 제 얼굴이 환해지고 편안해 보인다고 좋아했습니다. 아내의 지극한 정성으로 다음 해 여름 휴가차 <나눔의 장> 수련을 다녀왔습니다. 문경에 가서 하루만 지나면 힘들어 후회되기도 하였으나, 마치고 돌아올 때는 심신의 편안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아내의 안내로 <나눔의 장> 수련을 두어 번 더 가고 2003년 8월 2일 <명상수련> 제1차 수련을 시작으로 매년 여름휴가로 명상수련을 하며 여러 해를 더 보냈습니다. 문경수련원은 제게 여름 휴양지와 같은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도반들과 (앞줄 맨 왼쪽)
▲ 부처님 오신 날 도반들과 (앞줄 맨 왼쪽)

아내의 정성으로 7년 만에 졸업하다

1999년 충북 청주에서 불교대학 저녁반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 시작 후 방일하다가 2006년 동래법당에서 7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제가 7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지극한 정성 덕분입니다. 수업 중에 들은 법문 중에서 자기를 바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제가 잘 바뀌지 않아서입니다. 저처럼 평범한 중생은 평생토록 수행하라는 말씀 같습니다. 1999년 3월 14일 천일결사 입재를 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정진하는 것도 저를 바꾸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경전반은 2007년에 졸업했습니다.

대전 둔산법당 개원을 준비하며 새 법당이 크고 춥고 낯설어 도반님들이 새벽기도에 어려움이 있으니 새벽기도 집전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뭐든지 시작을 하면 끝까지 하는 성격으로 3년 동안 집전 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많은 분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2000년 부산에서 만난 한 노보살님이 '아내에 맞추어 살아라.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이리 가면 이리 맞추고, 저리 가면 저리 맞추고 살아라.', '성질부리지 마라. 화내면 내가 죽는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기도문이 제가 살아온 방식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정토 연수원 개원식을 마치고
▲ 정토 연수원 개원식을 마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 같다

2009년 12월 말 퇴직할 당시, 연말 연초 명상수련에 참여했습니다. 수련기간에 밤에 잠을 자다가 문득 ‘이제 내가 나이 들어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는 허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직장생활을 마치니 특별히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이후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때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연하고 허전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퇴직 후 계획을 묻는 스님 말씀에 계획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여기 와서 부목이나 하세요.'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중에 부목(負木)의 뜻을 찾아보니 절에서 땔 나무를 떠맡는 사람으로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스님의 말씀이 인연이 되어 불사 소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인도 성지순례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
▲ 2015년 인도 성지순례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

불사 소임은 사천왕과 같은 역할이라고 하셨습니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일주문과 본당 사이에 천왕문을 세워, 그림 또는 나무로 깎아 만든 사천왕의 조상(彫像)을 모십니다. 아마도 제 외모나 처신이 그리 보였음인지, 사천왕처럼 정토회와 바깥세상 사이에서 불법과 정토회를 보호하고 세상과 타협해나가는 역할을 하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불사 소임을 미력이나마 정성을 보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보니 과거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고,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 어느덧 7년이 지났습니다.

내 옳다는 고집을 버리는 연습

불사 소임은 정토회의 각종 행정 자문과 토지, 도로, 토목, 건축의 감독과 관공서 관련 일 처리를 주로 합니다. 많은 이의 힘이 모여 대전법당이 개원되었습니다. 불사 소임은 문경 정토 수련원으로 이어져 정토로 개설, 법사단 숙소로 연결되는 사도개설, 확장된 솔숲길 배수로 설치, 우기에 무너지는 비탈면의 배수로 공사 등을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관할 행정관청의 협조와 많은 사람의 정성이 모인 것입니다.

문경 수련원 비탈면 배수로 공사 모습
▲ 문경 수련원 비탈면 배수로 공사 모습

모든 건축허가는 ‘도로’가 있어야 가능함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불사 소임을 맡고 제일 먼저 한 것은 도로에 관해 연구한 것입니다. 도로 형태와 도로 관련 법률도 여러 개여서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불사 소임 덕분에 실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게 된 것이 복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눈을 감으면 문경 뇌정산에서 문경 정토수련원 진입로까지 한눈에 그려집니다. 문경수련원 진입로, 1~4단지, 법사단 숙소까지 모두 소중한 결과물입니다. 매주 화요일이면 건축위원회 화상회의를 합니다.

퇴직 후에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할 일이 많으니 번뇌, 망상이 줄어서 좋습니다. 지도법사님의 가르침은 일은 이치에 맞게 연구하며 한다고 하셨으나, 저는 일을 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과 부딪히면 제 주장을 고집해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불사를 하면서 내 옳다는 고집을 버리는 수행 연습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소임이 복인 줄 알겠습니다.

앞으로 10년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2018년 6월 장수 죽림정사,  아내의 법사 수계식을 마치고 스님과 기념사진
▲ 2018년 6월 장수 죽림정사, 아내의 법사 수계식을 마치고 스님과 기념사진

나이 칠십이 되니 함께 해 준 아내에게 아주 고마운 마음입니다. 예전에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니, 앞으로 10년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살려고 합니다.

저 자신은 기본 오계에도 완벽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나 아내의 지극한 정성으로 서원행자가 되었고, 큰아이도 서원행자로 수행하고 있고, 저를 닮은 둘째는 현재 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소중한 선물 같은 우리 가족이 모두 정토회 회원임이 감사합니다. 아내의 안내로 불법 만나 두 아이와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곽영술 님을 <깨달음의 장>에 보내고, 7년 만에 불교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인도한 '정성이 지극한 아내'는 천안정토회 담당 향류법사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주인공은 귀갓길에 시장에 가서 오이 10개와 단감을 사야 한다고 합니다. 아내의 심부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10년은 장보는 도반님을 자주 뵐 것 같아 반갑습니다. 언제나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뵙기를 바랍니다.

글_길현정 희망리포터 (천안정토회 세종법당)
편집_강현아 (수성정토회 수성법당)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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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

정토회는 곳곳에 감동이 넘쳐납니다. 법사님 원력으로 정토행자 가정이 되심을 축하합니다.

2021-01-03 23:20:06

감동

유쾌한 웃음의 곽영술 거사님~~ 멋진 정토행자이십니다. ^^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셔요~~

2020-12-15 19:26:10

백슬기

드디어 곽영술거사님 인터뷰가 나왔군요 반갑고 감사합니다 ㅎㅎ 존경하는 거사님~^^ 늘 건강하세요!

2020-12-15 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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