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부평법당
내 안의 나를 찾아서

갑자기 추워졌다 날씨가 푹하니 풀린 날 어느 늦은 가을 날, 아담한 체구로 배시시 웃는 모습이 일품인 최은선 님을 만났습니다. 인생에 큰 굴곡이 없어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연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래서 걱정스러웠으나 반짝이는 눈빛으로 의자를 당겨 앉는 모습에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우연히 들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마음이 움직여 새로운 세계로 과감히 발을 내디디고, 2015년 부터 수행, 보시, 봉사의 통일된 삶을 살고있는 최은선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가족 사진(오른쪽이 최은선 님)
▲ 가족 사진(오른쪽이 최은선 님)

아버지의 주사와 냉랭한 집안 분위기로 소심하고 내성적으로 자라다

저는 충남 공주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어렵진 않았지만, 남들이 말하듯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딸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다정하거나 애틋하지 않고 무뚝뚝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말수가 없는 데다 술만 마시면 가족들을 괴롭히기 일쑤였습니다. 술을 마신 날은 다 깰 때까지 주사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 날은 온몸이 부서져라 일만 했습니다. 너무나 싫었던 아버지의 주사, 그리고 냉랭하기만 했던 집안 공기로 저는 의기소침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격은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남 앞에 서는 일이 몹시 어려웠습니다. 학교에서도 친구 없이 혼자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나마 친구가 되어주던 막내 오빠마저 중학교로 진학한 뒤에는, 많이 외로워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며 더욱 움츠러들었습니다. 특별히 상처를 받거나 문제가 있지 않았음에도 자신감을 잃고 더욱 내성적으로 되었습니다. 얼른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습니다.

담당했던 불교대학생들 졸업식 날(첫 줄 왼쪽 최은선 님)
▲ 담당했던 불교대학생들 졸업식 날(첫 줄 왼쪽 최은선 님)

정토불교대학 다니며 비로소 아이들 모습이 눈에 들어오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자취를 했습니다. 드디어 집을 벗어나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만큼 가족들과 거리감이 생기고 소원해졌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 남편을 만났습니다. 아버지와 달리 다정하고 성실하며 유머까지 갖추어 4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다정한 남편도 있고 아들과 딸도 낳았지만 우울함을 떨칠 수 없었고,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얘기하고 주장하기가 어렵기만 했습니다. 심리치료를 받으며 극복하고자 애를 쓰던 2014년 가을,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고 가슴이 탁 트이듯 시원했습니다. 부지런히 수소문하여 2015년 봄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몹시 힘들었습니다. 특히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할 때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막막하고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발표할 때도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남들은 말도 잘하는데 저는 버벅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오직 졸업만 하자는 생각으로 다니던 중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소극적인 제 모습이 아이들에게서도 보여 삶의 자세를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당하게 나서고 능동적으로 일하며, 여럿이 있을 때 의견을 편안하게 얘기하려 노력했습니다.

나를 아니 상대를 헤아리게 되다

그 해, <깨달음의 장>을 갔고, 소심하고 내성적이기만 한 제가 사실은 고집쟁이임을 알았습니다. 고집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은 관점을 바꾸고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 연습으로 이어졌습니다. 남편과 다툴 때도 제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남편 입장을 헤아리게 됐습니다. 이런 변화만으로도 남편과 다툴 일이 적어졌고 남편도 제 마음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서로 존중하니 남편의 홀로 캠핑도 이해하고, 때로는 같이 여행도 하며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습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못 가 핸드폰에 빠져 살아도 예전처럼 조바심내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지켜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도반들과 함께(뒷줄 왼쪽)
▲ 도반들과 함께(뒷줄 왼쪽)

내 꿈은 이타적이고 소박하게 사는 것

2016년 경전반을 시작했습니다. 힘이 들 때는 도반에게 위안을 얻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안식처가 되는 사람이 도반입니다. 주저앉고 싶을 때 손을 잡아 준 도반들 덕에 경전반을 졸업했고, 졸업하면서 수행법회 저녁반을 담당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배워가며 소임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하며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자신도 없었지만, 그저 묵묵히 끌어주는 대로 가보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입학생은 15명이었는데 다들 저보다 연배가 높아서 더욱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매번 자신과 싸움이지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변하는 제모습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담당을 맡았던 가을불교대학 졸업식 날, 그 순간의 기쁨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끝까지 해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모둠장 소임을 하고있습니다. 부담은 있지만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해봤기에 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봄불교대학 진행자, 행복학교 스태프, 수행법회 등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과분한 소임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통일, 환경, 복지 등 제가 가치를 두었던 문제들로 눈을 돌리라 말합니다.

제 꿈은 소박합니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스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잘 물들어 곱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며 역량이 된다면, 소임을 어렵게 느껴 맡기를 망설이는 도반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늘길이 막혀 못 가는 인도성지순례도 다녀오고 싶습니다. 제가 모르는 또 다른 저를 찾아 이타적이고 소박하게 살고 싶습니다. 소심하고 소극적이며 자신감도 없던 제가 꿈을 갖고 오늘도 봉사하며 살 수 있어 너무나 고맙습니다. 오늘도 108배로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수행합니다. 저는 정토행자입니다.

JTS 거리모금 중(왼쪽이 최은선 님)
▲ JTS 거리모금 중(왼쪽이 최은선 님)


조용하고 담담하게 얘기를 마치고 해맑게 웃는 최은선 님. 가녀린 체구 안에 숨겨진 열정 가득한 또 다른 최은선 님을 만났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어 고맙습니다. 앞으로 최은선 님의 소박한 꿈들이 잘 영글어 가기를 바랍니다.

글_김혜옥 희망리포터(인천정토회 부평법당)
편집_도경화(달서정토회 구미법당)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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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원

말씀 감사히 잘들었습니다.
응원합니다^^

2020-12-03 20:02:37

박인순

정토행자님의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저랑도 많이 닮아있는데 이야기를 잘 풀어주시니 공감이 많이 갑니다.

2020-12-03 15:33:08

강상원

정토행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수행담에 감사합니다.

2020-12-02 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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