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군산법당
흔들리지 않는 수행자로 살아요

장수 법당 소속인 서선이 님은 직장 파견근무로 잠시 군산 법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선이 님의 나긋하고 포근한 나누기는 마치 또 하나의 법문처럼 귀에 쏙 들어옵니다. 정든 서선이 님을 떠나보내는 아쉬운 마음에 ‘정토행자의 하루’를 제안했습니다. ‘‘저는 쓸 게 없어요. 힘들었던 때가 없었어요.”라며 미소 짓는 서선이 님의 모습에 수행담을 듣기도 전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잔잔한 수필 같은 서선이 님의 수행담입니다.

맏딸이 살림밑천이던 어린시절

저는 평범한 농가의 대가족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조부모님과 고모, 삼촌 거기다 어린 우리 육 남매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늘 일 속에 묻혀 지내셨습니다. 주로 담배 농사를 지으셨는데, 다른 농사보다 더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을 써야 하는 작물이었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신 부모님 덕에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저는 당연한 듯 집안일을 해내고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대 식구의 식사는 물론이고 온 집안 살림을 도맡으며 농사철이면 한 달씩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지지배가 학교는 가서 뭣 허냐? 동생들이나 돌봐야지.’ 하시던 할아버지의 무심한 한마디에 서운했고, 학교를 제때 다니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이 마음 한 켠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상처인 줄도 몰랐고, 서운한 마음을 표현할 줄도 몰랐습니다. 또 부모님을 돕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묵묵히 주어진 일을 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할 때면 동생을 업고 산과 들에 나물을 뜯고 진달래, 머루, 다래 등을 따며 자연을 만끽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속상함을 달래며 애써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 것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JTS 모금활동 중 (왼쪽 세번 째 서선이 님)
▲ JTS 모금활동 중 (왼쪽 세번 째 서선이 님)

질책과 차별이 보배가 되다

그렇게 시골에서 가까스로 중학교를 마치고, 무작정 서울 이모네 집으로 갔습니다. 이모의 권유로 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서 전화교환원 자격증을 땄습니다. 졸업 후 전화교환원으로 일했지만, 이건 내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늦은 만큼 열심히 공부해 어렵지 않게 임용에 합격해 어릴 적 꿈이었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불법을 만난 후 가만히 돌이켜보니 할아버지의 질책과 차별이 도리어 저에게 약이었습니다. 어떠한 역경에도 견딜 수 있는 경험과 장애에 부딪힐 때 능히 이겨낼 수 있는 큰 보배를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는 힘들고 원망스럽고 상처받는 일이었지만, 수행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걸 다시 알아갑니다. 또한 할아버지는 그때 그 시대에 맞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이해하니 미워하고 원망하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 중 스님과 함께
▲ 인도 성지 순례 중 스님과 함께

수행의 터닝포인트 인도 성지 순례

저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해서 무조건적인 신앙심이 있었습니다. 절의 잔잔함과 소박한 문화가 좋아 일반 절에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스님들 법문에 관심이 많던 저는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제법이 공하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접했던 불교와 너무나 달랐기에 신선한 충격이었고 감동이었습니다.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장수에 불교대학이 있다는 걸 알고 망설임 없이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까지 직장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하며 바쁘게 다녔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무렵, 인도 순례에 관한 공지를 보는 순간 죽기 전 부처님 나라에 꼭 한번 가보겠다는 원이 있었기에 이도 저도 생각하지 않고 신청했습니다. 부처님 나라에 와서 한 걸음 한 걸음 부처님이 걸으셨던 땅을 걷는다는 게 감동이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상상했던 것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행자의 삶을 직접 체험하며 손수 모든 것을 제 손으로 해결했습니다. 서로 돕고 단합했던 열흘이 시간이 갈수록 더 소중해집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해내지 못하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또한 운이 좋았던지 스님과 한 버스에 탑승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대외적인 법문도 좋았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스님의 일상 모습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중 “내가 변하면 아이들과 가족들은 저절로 변한다.”라는 말씀은 마음속에 깊고 크게 자리잡았습니다.

법당에서 정진 후 (맨 왼쪽 서선이 님)
▲ 법당에서 정진 후 (맨 왼쪽 서선이 님)

인도 순례는 불교를 더 깊이 이해하고 수행자로서 관점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그전에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도 수행자라기보다는 스님법문이 좋아 정토회에 다녔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에 한쪽 발만 담그고 겉돌았습니다. 인도 순례 후 저는 믿음의 불교에서 정통 불교, 지혜의 불교로, 방향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가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부처님이 태어나고 수행하고 깨닫고 설법하셨던 그곳을 꼭 한번 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흔들림 없는 자유로운 삶으로

지인들은 저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합니다. 친정어머니를 닮아 그렇기도 하지만 내면에서는 참 많은 갈등과 분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분별과 갈등을 하지만 수행자로서, 있는 그대로 인연 따라 저를 돌아보고, 자신과 법에 의지해 흔들림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아침 정진도 빠짐없이 한 덕에 버거웠던 어린 시절 상처와 남편 사업 부도로 생활고에 힘들었던 과거를 상처가 아닌 경험으로 받아들일 힘이 생겼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값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감사한 일투성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다시 시작해준 남편과 바쁜 엄마 걱정시키지 않고 스스로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 준 아이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백중 입재 후 (왼쪽 두번 째 서선이 님)
▲ 백중 입재 후 (왼쪽 두번 째 서선이 님)

큰딸에게 전법 한일 또한 보람되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는 저보다 더 열심히 하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믿음직스럽습니다. 아이가 가끔 “엄마 정토회를 떠나지 못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 '아 ,이 아이는 어디를 가든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걱정할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떤 유산을 물려준 것보다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둘째 딸, 셋째 딸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습니다. 남편도 함께하고 싶지만 서두르지 않습니다. 설령 전법하지 못해도 남편에 대한 제 마음을 살피고 원인을 탐구하고 연구해볼 일입니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그냥 한다’라는 명심문대로 사니, 매사가 편안하고 행복해서 좋습니다. 이 자유롭고 행복한 길을 많은 사람이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하길 진심으로 발원해 봅니다.


내놓을 게 없다던 서선이 님의 수행담을 들어보니 내놓을 게 없는 게 아니라 내놓을 게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자식에게 전법 하기가 쉽지 않은데 평소 서선이 님의 삶을 짐작게 합니다. 내년엔 장수로 돌아가지만 같은 곳을 보며 함께 하기에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또 도반을 통해 배워갑니다.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흔들리지만,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기에 오늘도 법 만나 감사합니다.

글_조진희 희망리포터( 군산법당 전주정토회 )
편집_임도영 ( 광주전라지부 )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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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금찬

“내가 변하면 아이들과 가족들은 저절로 변한다.”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의 경전반 진행자님~_<

2020-11-27 17:54:31

노춘민

감동적입니다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0-11-27 11:17:47

고경희

서선이보살님에게 느끼는 내공의 원천을 알게 됩니다. 정말 이 감동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이 어렵네요. 잘 배웁니다() 참 고맙습니다()()()
맛깔스런 조진희 희망리포터님의 나누기 글이 두분의 멋진 조화를 보게되고, 그 맘이 절로 느껴져 덩달아 행복합니다.
군산법당 도반님들의 따뜻함이 전해집니다~~~

2020-11-27 07: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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