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운정법당
스님과의 세 번째 만남

벌써 햇수로 5년째! <행복학교> 소임을 맡아 파주 운정 지역 주민들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금정숙 님. 넉넉하고 포근한 인상에 늘 작게 웃는 얼굴이라 그저 평탄하고 행복하게만 살아온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금정숙 님에게도 쉽지 않은 인생의 숙제가 있었고, 고비마다 법륜스님과 ‘세 번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부처님 말씀과 스님과의 신묘한 인연으로 장애 속에 배움을 실천하고 있는 금정숙 님의 이야기입니다.

<행복학교> 준비 중 잠깐 포즈를 취하는 금정숙 님
▲ <행복학교> 준비 중 잠깐 포즈를 취하는 금정숙 님

내가 죽어야 나를 보리라

28살에 찾아온 집안간의 혼담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시아버지와 두 명의 시동생, 그리고 시누이까지 챙겨야 하는 쉽지 않은 자리. 하지만 금정숙 님은 큰 고민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맞선 때 본 시아버지가 왠지 안쓰러웠습니다. 잘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 하지만 시아버지와 시댁식구들이 자신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점차 지쳐갔습니다.

“목동 살았거든요. 어딜 갔다 오는 길에 영등포 즈음만 되도 벌써, 집이 더 멀면 좋겠다, 그랬어요. 아버님은 내가 나가는 걸 싫어하셨어요. 어디 간다 하면 전날 저녁부터 아프다 하셨어요. 둘째 시동생은 성격이 불같아서 화를 잘 냈고요.”

답답한 마음에 의지처를 찾아 절에 가게 됐습니다. 원래는 천주교였지만 시댁의 종교가 불교였고, 그 편이 자연스럽고 편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던 시아버지는 절에 가면 아이처럼 웃었습니다.

‘내가 죽어야 나를 보리라’

당시 다니던 절의 큰 스님 말씀이었습니다. 나의 괴로움은 남이 아니라 나 때문에 생긴다는 이치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저 절에 다니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다 되는 걸까, 마음 어딘가가 빈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2014년 남편 조성원 님 생일 파티. 부부는 1986년 결혼해 슬하에 아들과 딸, 두 남매를 두었습니다.
▲ 2014년 남편 조성원 님 생일 파티. 부부는 1986년 결혼해 슬하에 아들과 딸, 두 남매를 두었습니다.

첫 번째 만남, 정토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차를 타고 집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습관처럼 불교 방송을 틀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젊은 스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정토’라는 한 단어는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법륜스님이었다는 건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나고 불교대학에 입학해서야 알았습니다.

“92년 즈음이니까 벌써 30년 가까이 됐네요. 정토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은 거예요.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이런 스님이 진짠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때 법륜스님을 찾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금정숙 님은 쑥쑥 크는 아이들에, 사업하는 남편 뒷바라지에, 시댁 식구들 수발에, 정신없이 바쁠 때였습니다. 그 와중에 기도도 하고 병원과 복지관을 찾아 봉사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잠시 나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금정숙 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둘째 시동생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장가보내고 이제 한숨 돌리나 했는데 문제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부부간 다툼이 생기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부모 탓, 형 탓을 하며 행패부리고 소리 질렀습니다.

“시동생 가게를 봐주다가 애들 유치원 올 때 돼서 간다고 하면 화부터 냈어요. 돈 해 달라 하는데 안 해주면, 집에 와 소리 지르고, 싸우는 거예요. 해줄 때까지... 두 형에게 막 덤비고... 애들은 아직 어린데 무슨 일 나면 어쩌나 불안했어요. 그래서 뛰어들어 말리고 달래고...”

두 번째 만남, 손 한 번 잡아 주세요

2010년 봉사 다니던 일산 동국대 병원에 법륜스님이 강연을 왔습니다. 처음 본 스님 모습이 따뜻하고 인자해 보였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복도 한편에 있는 스님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스님, 손 한 번 잡아주세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릅니다. 낯가림 많던 금정숙 님으로선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나름 잘 살고 있다고 했는데, 쉽지 않은 결혼생활에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갑작스런 요청에도 법륜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따뜻한 위로가 마음으로 전해왔습니다.

이듬해인 2011년 봄, 일산에도 정토 법당이 생겼습니다. 금정숙 님은 주저 없이 <불교대학>에 입학해 정토회의 일원이 됐습니다. 매주 법륜스님의 강의를 듣고, 정토회 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시동생이 힘든 건 여전했습니다. 부부싸움만 했다하면 ‘못 살겠다, 이혼할 테니 애들은 형수가 키워라’ 전화를 걸어 소리 질렀습니다.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2013년 <불교대학> 담당자 시절 - 경주남산 순례 (앞에서 둘째 줄 제일 왼쪽이 금정숙 님)
▲ 2013년 <불교대학> 담당자 시절 - 경주남산 순례 (앞에서 둘째 줄 제일 왼쪽이 금정숙 님)

세 번째 만남, 남의 인생에 간섭 마라

그 해 가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일산에서 열렸습니다. 강연 봉사를 맡았던 금정숙 님은 잊지 못할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질문에 ‘남의 인생 간섭 마라’ 하시는 거예요. 바로 내 얘기로 들렸어요. 그때까지 저는 맏며느리니까 동생도 돌봐야 하고, 맏이로서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아, 이건 남의 인생인데 내가 간섭했구나.”

그 날로 단번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시동생이 “아이를 데려가라”며 어깃장을 놓으면 “난 그런 거 할 수 없다, 고아원에 갖다 줘라” 당당히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전화가 오면 안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호랑이 같던 시동생이 잠잠해졌습니다.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니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수행자에겐 '안'과 '밖'이 따로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일산에서 <행복학교>를 시작하는데 담당자가 구해지지 않아 힘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나누는 도반의 곁을 떠나 정토회 밖에서 일한다는 것이 처음엔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수행자의 관점에선 <정토회>의 ‘안’과 ‘밖’이 다를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행복학교>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원래 말주변도 없고, 남들 앞에선 더 못하지만 그냥 하겠다 했어요. 이렇게 못하는 나도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쉽게 나올 거야, 그랬던 거 같아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시작할 땐 걱정도 많았는데 어느새 만 4년이 되어갑니다. 사람들의 변해가는 모습은 지금도 신기하고 감동입니다. 생각의 관점 하나 바꿨을 뿐인데 순식간에 그의 인생이 잿빛에서 벗어나 다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합니다. 수업 때도 아닌데 그런 사연을 담은 사진과 메시지가 수시로 금정숙 님의 핸드폰에 전해집니다. 금정숙 님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2019년 <행복학교> 시민과정 학생 스탭들과 함께 (제일 앞 줄 가운데가 금정숙 님)
▲ 2019년 <행복학교> 시민과정 학생 스탭들과 함께 (제일 앞 줄 가운데가 금정숙 님)

행복학교가 전하는 '행복 비결'

금정숙 님이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줬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아이들과 방긋 웃는 귀여운 아기 사진이 띄워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만삭의 임산부가 찾아왔어요. 첨엔 시큰둥하고 말도 잘 안했는데 어느샌가 달라지는 거예요. 시어머니하고 사이도 안 좋고, 남편은 집에 잘 안 들어오고, 아이는 넷이나 있는데 또 임신했고... 청소도 안 하고 애들도 잘 안 돌보고 있었대요. 죽으려고까지 했는데 이제 집 청소하고 왔다는 거예요. 아이 낳고는 <행복학교>에 못 나와서 아쉬워했는데 이제 온라인으로 다시 공부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있어요.”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은 아름다운 세상, <정토회>의 슬로건입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금정숙 님이 28년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정토세상’은 <행복학교>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법륜스님과 세 번의 만남을 이끌어준 오묘한 인연에 감탄하며 11월에 개강하는 제6기 <행복학교>에선 또 어떤 인연이 시작될지 기대해 봅니다.

글_전우성 희망리포터(일산정토회 운정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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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 내인생 내마음부터 챙겨야 니도행복하고 남도행복 하다는 말씀 잘 읽었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고 봉사하시는 모습 닮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1-03 06:09:47

현광 변상용

정말 인연은 어떻게든 맺어지는 것 같네요. 보기 드문 쉽지 않은 인연이네요.
정토회 안과 밖 일이 따로 있겠느냐는 말씀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행복학교와도 밀접한 관련도 있으시구 많은 분들을 행복하게 해 주셨을거 같아요.
원글도 마지막 마무리 글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2020-11-24 13:00:34

황소연

내 마음이 열려야 귀한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아요^^
진솔하고 큰 깨달음의 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2020-11-24 12: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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