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양덕법당
참회로 얻은 새 인생

양덕 법당에는 편안하고 차분하게 수행 정진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도반, 이동조 님이 있습니다. 첫 천일결사1 입재 후 한결같이 묵묵히 수행 정진하는 이동조 님은 많은 도반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딛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이동조 님의 진솔한 삶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종갓집 맏며느리의 순종적인 삶

저는 시골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무척 예뻐했고 어머니는 모든 면에서 헌신적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계속 받으려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호롱불 켜는 초가집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에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별 어려움 없이 행복했습니다.

남편을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해서 종갓집 맏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제사가 많았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를 5년 동안, 치매 초기의 시할머니를 3년 정도 모셨지만, 맏아들인 남편에게 시집왔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친정어머니가 시부모에게 헌신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 자라서인지 종갓집 맏며느리라서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에서(맨 왼쪽)
▲ 인도성지순례에서(맨 왼쪽)

그러나 남편은 짜증이 많았고 급한 성격이었습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조선 시대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고, 제가 순종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남편의 성격이 급해서 싸우면 손해 볼 것 같아 따지고 대들어보지도 못하고 참기만 하니, 저는 점점 주눅이 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남편이 뭐라고 하면 말도 잘 하지 않고 무시하며 착한 척을 했습니다. 이런 저의 행동들이 남편의 화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항상 집에만 있던 남편이 답답해서 못 살겠다며 어느 날 갑자기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저는 농원 일을 혼자서 하는 날이 많았고, 깜깜한 밤에는 농원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참는 게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희 아버지처럼 남편이 저를 사랑해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만큼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시부모님은 사이가 무척 안 좋았고, 남편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사랑이 너무 넘쳐도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세상을 잘 몰랐던 것이 탈이었습니다. 반대로, 남편은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상처가 깊었던 것이 탈이었습니다. 정반대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남편과 저는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우울한 날이 많았습니다.

법륜스님을 알게 되다

제 사정을 잘 아는 친동생이 어느 날 법륜스님 유튜브를 한번 들어보라며 유튜브 주소 줄을 보내주었습니다. 법륜스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지만, 심리학 공부를 하고 참 편안하고 자유롭게 사는 동생의 말을 믿고 유튜브 법문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사는 것과 정반대로 말씀하셔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들으면서 곱씹을수록 ‘아, 맞네!’라고 생각했고, 농원 일과 집안일을 할 때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밤낮으로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여러 개 망가뜨렸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에서(맨 오른쪽)
▲ 인도성지순례에서(맨 오른쪽)

삶의 변화를 가져온 불교대학과 수행 맛보기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2016년 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정토회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에, 부처님 사진만 있는 법당에서 아줌마들이 법복 입고 목탁치는 것이 낯설어 꼭 사이비 같았습니다. ‘잘못 왔나?’라는 생각도 들고, 심지어 ‘보시금을 받아서 어디에 쓰려고 저러나?’라는 의심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입학했기에 불법을 꼭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다니다 보니 서서히 정토회의 모습이 잘 보였습니다. 농원 일을 하고 수업을 듣느라 졸 때도 많았지만 법문 듣고 나누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차츰차츰 위대한 불법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불교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농원 일을 하면서 틈틈이 유튜브로 법륜스님의 반야심경2과 금강경3 등 경전 강의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마치 저를 구제하는 동아줄을 잡듯이 온 마음을 다해 법문을 들었습니다.

수행 맛보기는 저를 기도 정진으로 이끌었고 제가 변화하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절하는 것도 어색했지만, 수행 맛보기 후 바로 천일 결사에 입재했고 지금까지 아침기도를 빠지지 않고 합니다. 어느 날 등산을 하는데 산속에서 은은히 울리는 목탁 소리에 반해서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목탁 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고 불교대학 집전 봉사와 모둠장을 여러 차례 하면서 마음은 점점 편해졌고 잘 웃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중(맨 오른쪽)
▲ 불교대학 홍보 중(맨 오른쪽)

변화하는 저와 달리 남편은 여전히 밖으로 돌면서 저와 같이 살기를 힘들어했습니다. 남편이 뭐라고 해도 잘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저와의 결혼생활을 답답해하면서 더는 저와 살지 못하겠다면서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고 저도 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남편의 이혼 요구에 동의했습니다. 서로 좋아서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마무리를 잘해야 할 것 같아서 남편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서 힘들어하다가 내려놓으니 정말 가벼웠습니다. 이혼 후 어느 날 법당에서 스님 법문을 듣는데 “착한 여자 무서워요.”라는 스님의 말과 표정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 내가 저렇게 무서운 여자였구나. 그동안 무서운 여자하고 사느라고 남편이 참 힘들었겠다.’하고 진심으로 참회했습니다.

성지순례에서 마음의 실체를 보다

불교대학에 다니고 불자가 된 후 생긴 소망이 인도 성지순례였습니다. 남편과 같이 살 때는 보름 동안 집을 떠나기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원을 세우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이혼 후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꿈에 그리던 인도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사르나트 다메크 스투파4에서의 수계식 때는 소리 없는 눈물이 끝도 없이 흘렀습니다. 멈춰지지 않는 눈물 속에 세 가지 깊은 고마움을 깨달았습니다. 죽기 전에 인도에 가야지 하는 원을 세웠는데 갈 수 있어서 감사했고, 불법과 인연을 맺게 해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했고, 제가 힘들게 했던 주위 사람들에게 참회하면서 모든 인연에 감사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성지순례여서인지 새벽에 일어나서 걷는 강행군인데도 버스에서 자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인도 시골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풍경을 하나하나 제 눈에 꼭꼭 담았습니다. 비슷한 풍경인데도 모두 다르게 보였습니다. 하루는 바라나시에서 수자타 아카데미로 이동하는데, 해마다 건너던 다리가 통행 금지되어서 길을 찾아 헤매다가 버스가 돌아 나왔고 고속도로 상황도 좋지 않아서 16시간을 버스 안에 있었습니다. 10시간쯤 달렸을 때 법사님이 지도를 보시고 이제 겨우 4분의 1 정도 거리를 왔다고 했습니다. ‘아이고 밤새도록 가야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인도의 시골 모습을 구석구석 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차 안에서 밥 먹고 길에서 아무 데나 볼일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에서(가운데)
▲ 인도성지순례에서(가운데)

그렇게 오랫동안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 있을 때, 법사님이 이제 30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때까지 멀쩡했던 속이 갑자기 매스꺼웠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시달린 몸이 갑자기 힘들다 아우성쳤습니다. 15시간 넘도록 잘 왔는데 남은 30분이 별안간 지겹다고 느낀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짓는 게 맞네. 여태 괜찮았고 즐겁다가 30분 남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힘들어지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날의 경험으로 “우리 사는 게 다 내가 짓는 것이다.”라는 것을 확연히 알았습니다. 그 후 순간순간 어떤 경계에 부딪히면, ‘내가 짓는 것이다.’라고 되뇌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빨라졌습니다. 저는 진정 위대한 법을 만났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세계로

인도에 가보니 스님이 정말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실감했고, 부처님 법을 바르게 가르쳐 주시는 스님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밝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정토회가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정토회에 발만 들여놓았을 뿐인 지금, 저는 참 편안하고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저 혼자 사는 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인도에서 잘살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한국에서 못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은 저로부터 일어남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불법을 만나고 제 잘못이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일도 없고, 아침마다 참회의 절을 올립니다. 전남편이 부처님입니다. 전남편이 있었기에 불법을 만났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 감사합니다. 전남편이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이런 좋은 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활동가 남산 나들이에서(맨 왼쪽)
▲ 활동가 남산 나들이에서(맨 왼쪽)

곱게 물든 단풍잎처럼 늙어가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자유롭고 행복하게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겠습니다. 요즘 예불하러 새벽에 법당문을 열고 들어가면 저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 감사합니다. 제가 받은 은혜와 공덕을 널리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이제부터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곱게 물든 단풍잎을 보면 이동조 님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또한, 힘들었던 시간만큼 불법을 알게 된 기쁨이 큰 이동조 님의 이야기에 힘을 얻어서, 씩씩하게 수행 정진해보리라 다짐해봅니다. 진한 수행 이야기를 나누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자유롭고 행복할 이동조 님의 하루하루를 응원합니다.

글_이동조(경주정토회_양덕법당)
정리_하상의_희망리포터(경주정토회_양덕법당)
편집_성지연(서초정토회_서초법당)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반야심경 대승경전의 하나 

  3. 금강경 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4. 스투파 부처님 사리를 넣고 쌓은 탑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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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불교대학다닐때 집전봉사해주신 이동조보살님:-)
감사합니다 좋은수행담 들려주셔서
인도성지순례때 수계식 경험담 부분 읽으며 저도 울컥 감동했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하신모습 아름답습니다

2020-11-24 21:14:32

황혜선

이동조님~ 수행담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11-18 18:06:33

감사합니다

모든것은 내가 짓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가슴에 남습니다.
아직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많이 해매지만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2020-11-18 11: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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