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구리법당
두렵고 미웠던 언니, 정토로 이끈 은인이에요.

조계종 불교대학을 일찌감치 졸업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줄 알면서도, 스님이 되고 싶은 원을 버리지 못하던 구리법당 이미란 님. 언니 권유로 정토회와 인연 맺어, 일반 사찰의 스님 대신 정토회 법사가 되겠다는 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잘한 것도 없는데 행자의 하루 주인공이라니 민망하다는 이미란 님의 삶의 역정, 함께 볼까요?

40년 동안 친정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갇혀 괴롭게 살다

저는 1남 4녀 중 둘째로, 설움을 겪으며 자랐습니다. 2009년 갑작스럽게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6~7년을 왕래 없이 지낼 정도로 언니와 사이도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을 얘기하자니 코끝이 아릿하며 괴로웠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할머니께 구박받고, 절에서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빌던 엄마의 모습. 엄마는 결국 막내아들을 낳았습니다.

엄마는 제 생일날 미역국 한 번 끓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중2 설날 “니 절 받고 죽을 뻔했다.”는 말은 비수같이 날아와 가슴에 박혔고, 그 다음 절은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향해서였습니다. 엄마가 나를 하찮게 대하니 저 스스로도 하찮게 여기는 법을 먼저 배웠고, 늘 잘 보이기 위해 긴장했습니다. 40년 동안 친정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갇혀, ‘나는 절대로 사랑받아선 안 되는 사람, 누굴 사랑할 자격도 없는 사람’으로 알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창 시절이나 직장생활이나 행복한 적이 없었고, 결혼은 집을 탈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임진각에서 통일기도 하는 모습(제일 왼쪽 모자 쓴 사람이 이미란 님)
▲ 임진각에서 통일기도 하는 모습(제일 왼쪽 모자 쓴 사람이 이미란 님)

회사에서 많이 싸우던 남자와 결혼했고, 엄마와 반대로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딸들을 향한 집착은 유난히 조절할 수 없었습니다. 딸들이 전화를 안 받으면 수업 중이든 아니든 아랑곳없이 딸 친구들에게 계속 전화를 해댔고, 큰딸이 출가한 이후에도 딸 전화, 사위 전화, 집 전화 돌아가며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을 통해 큰 딸아이가 아기 목욕을 못 시키겠다며 아빠가 엄마 좀 말려달랬다는 힐난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딸도, 남편도, 친정어머니마저도 ‘나 때문에 불행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저 자신을 괴롭히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이 좋은 회사, 좋은 직위 버리고 퇴사한 것도, 자영업을 하다가 2년 만에 접은 것도 저 때문인 것 같았고, 저 아니면 더 좋은 여자 만나 잘 살았을 텐데 싶었습니다. 엄마도 저 아니었으면 행복했을 것 같았습니다.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은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되뇌곤 했습니다.

9년 터울로 우여곡절 끝에 얻은 엽렵한 둘째 딸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엄마를 챙기는데, 바로 옆 동 사는 첫째 딸은 제가 큰 수술을 했는데도 두 달이 다 되도록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습니다. 섭섭한 마음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안 하던 공치사도 해봤지만, 큰딸의 닫힌 마음만 재차 확인했습니다.

불교대학, 내가 몰랐던 나를 찾아가는 과정

여동생이 언니의 변화를 먼저 알아차리고, 언니가 달라졌으니 만나보라며 수차례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언니를 만나려면 두려움이 앞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내겐 너무 무섭기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언니에게서 이전의 뾰족한 말투와 신경질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준 정토회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갈 때, “너도 다녀봐.”라는 언니의 말에 정토불교대학에 등록했습니다.

나누기도 부담스럽고 녹화영상으로 진행되는 수업도 생경해 그만둘까 싶다가도, 달라진 언니가 떠올라 법당을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불교대학이 경전반보다 더 좋았습니다. 집착과 우울증으로 자신을 하찮게 여기던 제가 ‘하찮은 생명은 없다.’라는 법문에 깨지고 ‘자신을 칭찬하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과제를 수행할 수록 몰랐던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애들 잘 키웠고. 싸워도 남편 새벽밥 꼭 차려주고... 그동안은 생각지 못했던 장점들을 보물찾기하듯 캐며 점점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상반기 정일사 회향(온라인) 가운데 줄 왼쪽
▲ 상반기 정일사 회향(온라인) 가운데 줄 왼쪽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출석하는 도반, 퇴근 후 숨 쉴 틈 없이 달려오는 도반... 수업을 듣고 가는 도반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누기를 들어보면 밝은 얼굴 뒤에 저마다의 아픔이 있었고, 정토회 와서 밝아진 것을 알게 되니 저도 왠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나누기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벌렁거려 도반들의 말이 안 들릴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책을 덮고 말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고 그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서먹서먹하고 가까이하기 어려웠는데, 제 얘기를 끝까지 경청해주고 공감해주며 어느새 동반자가 된 도반들, 동기 도반들이 없었으면 경전반까지 못 갔을 것만 같습니다.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언니는 “졸업하면 옷 한 벌 사 줄게.”라며 저를 독려했고, 어느 날인가 “이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흔들리며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나를 찾고 행복을 찾는 길을 걸었습니다.

불교대 졸업식날 도반들과 (가운데)
▲ 불교대 졸업식날 도반들과 (가운데)

죽고 싶은 생각을 떨쳐 내준 <깨달음의 장>

<깨달음의 장>에서 저는 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폐쇄공포증으로 숨쉬기도 힘들고 허리 디스크로 앉아 있는 것도 괴로웠습니다. 첫째, 둘째 날은 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극도로 솟구치더니 셋째 날부터 숨통이 트이며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대학 때도 많이 줄었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남아있었는데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잠자리에 누우면서 ‘내일 일찍 일어나야 천일결사 기도를 하는데...’ 하는 즐거운 근심을 할 뿐입니다.

회향 다음 날 <깨달음의 장> 도반들이 생일 케이크를 보내고 축하해주었습니다. 살면서 생일 축하 문자를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너무 기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살아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날에도 언니는 잊지 않고 전화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자마자 있었던 정초 법회에서 법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지 법사님께 여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걸음도 못 뗀 게 뛰려고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JTS 거리모금 캠페인(오른쪽에서 세 번째)
▲ JTS 거리모금 캠페인(오른쪽에서 세 번째)

니 와이프도 갱년기 되면 정토회 보내, 와이프가 짜증을 안 내

예전에는 과거를 곱씹었는데 지금은 현재에 집중하며 삽니다. 딸과 통화한 지 한 달이 넘었어도, 손주는 보고 싶지만, 집착이 없으니 괴롭지 않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남편과 딸에게 생일날 미역국도 받아봤습니다.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 사진은 전화기에 늘 간직하는 보물입니다. 제가 바뀌니 남편도 바뀌었습니다. 몇 년 전 “살아줘서, 참아줘서, 잡아줘서 고맙다.”는 말에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부모도 싫어하는 저를, 데리고 살아주는 것만도 고마워서 늘 ‘네, 알겠습니다.’ 하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참고 삭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합니다. 옛날에는 남편한테 통장 잔액 빼곤 다 숨겼는데 숨기는 것도 없어졌습니다. 작년 제가 아플 때, 한 달을 밥 차리고 약 챙겨주고 출근했습니다. 애들 때문이 아니라 제가 필요해서 이혼하지 않고 살았음을 깨닫습니다. 남편이 친구에게 “니 와이프도 갱년기 오면 정토회 보내, 와이프가 짜증을 안 내.” 하니 홍보가 자동으로 됩니다.

가족 여행 (왼쪽부터 경전반 학생인 올케, 이미란 님, 동생, 언니)
▲ 가족 여행 (왼쪽부터 경전반 학생인 올케, 이미란 님, 동생, 언니)

동생과 올케까지 정토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10-2차 입재식 때는 마침 가족여행을 가서, 정자에 둘러앉아 바닷바람을 즐기며 입재식을 함께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환되던 시기, 셋째가 중도 탈락한 것이 안타깝지만, 형제간의 모습도 이전과 다릅니다. 친구들이 “너 참 행복해 보여.”합니다. 저는 “응, 행복해. 괴롭지 않으니까 행복한 거 맞지.”라고 답합니다.


이번에 법당 정기법회 담당을 맡은 이미란 님. 정회원 책임부담에 반감이 일었다가 ‘회피하지 마라.’는 법문을 듣고 마음을 돌이켰다고 합니다. 발가락 통증과 발목 염증으로 지금 몸은 힘들지만, 세수할 때 코를 만지듯 수행하며 살고자 합니다. 정토회와 인연 맺어준 언니에게 고맙다며 행복해하는 모습이야말로 바로 정토행자의 모습입니다.

글_심은서(남양주정토회 구리법당)
편집_도경화(달서정토회 구미법당)

전체댓글 17

0/200

송경미

감동입니다.
보살님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2020-12-02 06:47:24

태홍

그리고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자마자 있었던 정초 법회에서 법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지 법사님께 여쭸습니다

와 저 이때 같이 있었는데 ㅎㅎ 어느새 2년이 흘러가네요. 이렇게 정토행자의 하루에 나와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2020-11-19 20:11:48

김윤희

보살님~
정일사 릴레이 안부 전화목소리에 젊은 새댁인줄알았어요 ㅎ ㅎ
법당에서 뵐일이 줄어들고 이리 온라인화면에서나민 뵙게되네요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0-11-19 17:46:25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구리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