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광산법당
아침에 눈 뜨기 싫어 잠들지 못했습니다

광산법당에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알록달록 예쁜 색깔의 마카롱과 부드럽고 달콤한 마들렌, 파운드 케잌을 손수 구워서 도반들의 눈과 입을 호강시켜주는 멋진 파티쉐가 있습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기억과 남편의 외도로, 아침에 눈 뜨기 싫어 잠들 수 없던 시절을 보냈다는 임현수 님은, 지금은 불법을 만나 '눈 뜬 김에 그냥 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준 은혜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임현수 님의 수행담을 들려드립니다.

임현수 님이 만든 마카롱
▲ 임현수 님이 만든 마카롱

남편의 외도가 이끈 불교대학 입학

2016년 3월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남편의 외도를 우연히 알게 되어 고민하고 있던 저는 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정토불교대학 홍보 포스터를 보고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할머니 집에서 자라 세 살때부터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정초기도, 부처님 오신날, 백중기도를 다녔습니다. 덕분에 법당에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지만, 대전 부사법당에 들어서니 스님도 계시지 않고 영상으로 하는 불교 의식과 수업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즉문즉설을 듣고 싶어 입학을 했는데 불교 공부를 하니 분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홍서원을 할 땐 울컥 눈물이 나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나누기 시간에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고 처음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인지 순종적이고 남 눈치도 많이 보는 소극적인 제가 수업 한 달이 지난 후부터 사회봉사를 하게 되어 부담스러웠지만 소임 덕에 지각하지 않고 성실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 이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처음으로 나를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JTS거리모금
▲ 아이들과 함께 한 JTS거리모금

따뜻했던 시골길의 손수레

7남매 중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한 후 철도청에 입사했습니다. 그러나 참전 트라우마로 환청과 기차소리를 힘들어하며 회사생활과 일상생활을 온전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새댁이었던 엄마는 아직 젖먹이인 저를 외할머니께 맡겨버리고 떠났습니다. 외할머니마저 위암판정을 받자, 엄마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고 있던 저를 업어서 할머니 댁에 데려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저는 그 누구에게도 한 번도 엄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과수원 농사를 도와드리며 평온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제가 10살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면서 제 학업을 걱정한 할머니는 작은아버지가 있는 강화도로 저를 보냈습니다. 그 당시 작은어머니는 보습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제가 학교 마치면 학원가서 공부하다가 수업이 끝나면 어린 사촌들을 돌봐야했습니다.

작은아버지 댁에서 저에게 할 일들을 미리 알려주고 상황 설명과 제 의견을 물어봐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었던 사춘기 저에게는 어린 사촌들을 돌보는 것이 버거웠습니다. 또 사촌들을 데리러가는 길에서 마주쳐야만 하는 큰 개가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다녀오니 책상서랍이 열려 있고, 책상 위엔 제 일기장이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작은어머니의 손찌검을 맞고 다시 할머니 댁인 대전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과수원 일이 끝나 할머니를 손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을 떠올리면 시골에서의 여유롭고 따뜻했던 유년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소통되지 않는 남편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진 제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부모가 있어도 힘들구나. 나는 세상의 은혜 속에서 자랐구나. 내가 감싸줘야겠다.’ 결심하고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사회를 보고 있는 주인공
▲ '부처님 오신 날' 사회를 보고 있는 주인공

결혼을 하니 남편과는 대화가 되지 않았고 남편의 직장생활로 서로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사업체가 중국으로 나가게 되어 남편은 중국에서 일을 하고, 저는 한국에서 아이 둘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몇 개월에 한 번씩 집에 오면 집이 지저분하다고 지적하고,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쪼그라들고 위축되어 입을 닫아 버렸습니다.

큰아이 임신 8개월 때 남편이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저의 엄마를 찾아 본인이 먼저 만나고 와서는 저에게 만나도록 권유했습니다. 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저지른 남편이 원망스러웠지만 엄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만나고 오면 공허하고 ‘어찌 자식을 떼버릴수 있었을까?’ 원망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지금의 저보다 어린 나이였던 엄마가 애처롭고, 이생에 엄마 얼굴이라도 한 번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암투병중인 엄마에게 저를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엄마를 원망하기엔 내 삶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감사해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저도 행복할게요.’ 라고 기도드립니다.

눈 뜨기 싫어 잠들지 못했던 시절

이혼이라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없는 시간 내내 눈물바람으로 보내다가, 아이들이 하원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면을 쓰고 웃어주는 저는 가식적인 엄마였습니다. 제가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기에, 자식들에겐 그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의 외도는 저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 108배를 하면서 제 불안의 원천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게 싫어 저녁에 잠들지 못했던 그 시절의 불안함과 강박감이 세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랑 외할머니 집에서 자고 있던 어린 아이가 눈 뜨니 할머니 댁에 와 있고 엄마는 그 날 이후 신기루처럼 나에게서 사라졌으니 눈 뜨는 것이 그리도 고통스러웠나 봅니다.

이유를 알지 못했을 때에 남편에게 신경질 부리고 기분 풀릴 때까지 그냥 두라고 화내던 제가, 남편 입장에서는 참 힘들고 어처구니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집스런 저를 사랑하며 저에게 아빠가 되어 주고 싶다던 남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부모로부터 인정받고싶은 욕구가 있는데, 채우고 받으려고만 하는 저로 인해 많이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며 남편에게 고맙고 참회하게 되었습니다.

딸과 함께 거리모금 중인 임현수 님
▲ 딸과 함께 거리모금 중인 임현수 님

마음을 표현하니 대화가 시작되다

대전 부사법당 불교대학을 다니며 사회소임을 맡았습니다. 경전반에 입학하면서 경전반과 수행법회 사회를 맡아 봉사하였습니다. 행복학교 시범수업도 하며 불법에 푹 빠져 주위 지인들에게 이 좋은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광주로 이사오면서 광산법당에서 불교대학 꼭지, 지원담당, 학사 모둠장을 맡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인터넷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집에서 불교대학 학생들과 수업하는 것을 보고 있던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커서 불교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신혼 초엔 대화가 되지 않던 저희 부부가 이젠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대화가 오고 갑니다.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일진 몰라도 2초도 대화가 되지 않았던 저희 부부에게는 엄청난 발전입니다. 남편이 별일 아닌 걸로 욱 할 때면 순간 당황은 하나, 예전처럼 회피하거나 쪼그라들진 않습니다. 퉁명스럽고 어색하지만 제 마음을 표현해갑니다.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하며 부드럽게 말도 건낼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수행 덕분에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 기분 상하지 않게 저의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할 수 있는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표현이 어색하고 부족했음을 알아차리고 오늘도 꾸준히 연습하는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세상의 은혜와 사랑으로 성장했음을

마들렌을 옮겨담고 있는 임현수 님
▲ 마들렌을 옮겨담고 있는 임현수 님

예전에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어린 시절의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고 원망스러웠습니다. 현실과 나약한 나를 부정하고 화려함으로 열등감을 치장한 저의 자존감은 바닥이었습니다. 항상 웃으며 다녔기에 제 속사정을 아는 이가 없었기에 저는 더 외로워지고 공허해져 갔습니다.

수행을 시작하며 세상의 은혜와 사랑으로 성장했음을 알았고, 항상 부족하다 여겼던 모든 것들이 제겐 큰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명심문은 '눈 뜬 김에 하기로 했으니 그냥 합니다.' 입니다. 아침에 눈 뜨는 게 괴로워 저녁에 잠들기가 두려웠던 그 때를 돌아보면 부처님 법을 만나 다시 태어나 제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받았던 큰 사랑과 따스함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오늘도 전법에 힘쓰는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달달한 달콤함 뒤엔 쌉쌀한 커피 한잔이 떠오르는 옛일들을 떠올리며 저랑 현수님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따뜻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소중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임현수 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글_ 전미숙 희망리포터(광주정토회 광주법당)
편집_김난희(홍보국 편집담당)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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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저도 아침에 눈 뜨기 싫어 잠들지 못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제목에 이끌려 끝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좋은 수행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2-01 16:11:11

김애자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1-02-23 08:41:18

박신영

현수님의 진솔한 이야기에 저 역시 가슴 뭉클하여 이새벽 기도 끝내고 현수님의 글을 읽고 눈물 짓습니다 제어린시절 생각도 나기도하고 현수님처럼 부처님의 법을 만나 마음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살고있습니다 응원합니다 ~~

2020-10-26 06: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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