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해법당
부대낌의 시간을 지나 지금 이대로 감사한 날들

얼굴을 본적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적도 없는 희망리포터가 전화로 인터뷰를 부탁하자 두말없이 흔쾌히 응해주시는 이정숙 님! 목소리에서 ‘예! 하고 합니다.’라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행하는, 단단한 어떤 힘이 느껴졌습니다. 늘 망설이고 고민하는 제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시원시원한 대답에 기운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남편과의 부대낌 속에서도 이런 에너지로 10년 동안 그 많은 활동을 해낸 이정숙 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도반들과 (첫번째 이정숙 님)
▲ 도반들과 (첫번째 이정숙 님)

보듬어 주고 싶은 남자

어렸을 때부터 불심강한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절에 가면 편안했지만 책이나 절에 가서 마주하는 부처님의 모습이 참모습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제대로 부처님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원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봉사단체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들어하는 어머니와 내편이 사라졌다는 허전함을 느끼며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제 옆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저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 같아 불안하면서도 제게 맞춰주고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남편의 지지자가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독인줄 몰랐습니다. 결혼 전부터 늘 감정에 충실했던 남편이라 출근하는 것도 힘들어 했습니다. 월급도 거의 받아 오지 못하면서 지출은 늘 많았습니다. ‘결혼하면 나아질거야', '아이 아빠가 되면 나아질거야.’ 라는 착각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남편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이가 돌 즈음 되었을 때 경제적으로 힘들어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다. 당시 직장에 다니기 싫어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남편을 압박했습니다. 수입도 없고, 빚만 지는 체육관을 그만두고 적은 수입이라도 고정적으로 받는 직장으로 가길 원했습니다.

그냥 지켜보기

그렇게 직장을 간, 첫 출근날 남편이 쓰러졌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검사 결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제 수입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상황이라 남편에게 시골에 왔다갔다 하며 휴식을 하길 권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다시 몇 차례 체육관을 옮겨 다니며 운영을 했습니다. 그 사이 빚은 쌓여만 갔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빨간 스티커가 집안 곳곳에 붙여졌습니다.

결혼 십년 즈음 남편은 드디어 체육관을 정리하고 직장을 옮겼습니다. 책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저와는 너무나 다른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 잘못을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되었을 즈음 정토회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는 바 없이 가을불교대학을 접수하고 정토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매일 법문을 듣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절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남편에게 숙이기 싫은 업식이 올라왔지만 살기위해 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이 잘 극복되는가 했지만 남편은 또 사업을 했고, 몇 달만에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늘 부채 해결을 앞장서서 하던 때와 달리 남편이 해결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남편은 화가 나서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길 반복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책임을 감당하는 남편이 힘들어 보였지만, 부총무 소임과 기도의 힘으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나를 버티게 했던 봉사

2010년 가을불교대학 입학을 시작으로 매일 새벽 4-5시경 일어나 108배하고, 1시간 이상을 금강경1과 스님 법문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머리로는 남편을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나누기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사시예불을 계기로 거의 매일 법당에 나가 청소 등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2011년 창원법당 불사로 불교대학 담당자가 되었고 창원법당 회계소임도 맡았습니다. 월요일은 마산법당, 화~금요일은 창원법당에서 봉사도 하고 법문도 들었습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법당에 갔다 오면 숨이 쉬어지고 편안해졌습니다.

통일특별위원회 도반들과 함께(왼쪽에서 두 번째)
▲ 통일특별위원회 도반들과 함께(왼쪽에서 두 번째)

2012년 경전반을 입학 했습니다. 당시 2013년 창원법당 정순둘 님이 진해법당 불사를 권했습니다. 그때 진해에 살던 도반들은 마산법당과 창원법당에 나누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창원법당 도반을 중심으로 법당자리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 1년 반 이상을 보러 다니다가 지금의 진해법당 자리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2014년 9월 개원을 하고 부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제일 나이도 어리고 상황도 열악했던 저는 3년 동안 도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쳤습니다. 울기도 하고, 나눔의 장2에 가서 힘든 마음을 솎아내기도 했습니다.

2017년 통일특별위원회가 개설되면서 법당 밖에서의 활동을 주로 맡았습니다. 정해진 장소도 정해진 프로그램도 없었지만, 도반들과 참가자들의 도움으로 장소도 구하고 원활하게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3년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정해진 것이 없기에 도반들과 도움이 되는 책도 함께 선정해서 공부하고, 참가자들과의 활동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강연홍보도 하고 봉사도 하고 진해노인복지관에서 봉사도 6개월 이상 했습니다. 그때의 참가자들이 지금은 육아와 직장생활로 함께 못하지만, 《새로운 100년》을 읽고 평화통일을 이야기하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지난 3년을 이어 진해구역장소임을 맡아 행복학교3도 진행하고, 주어진 소임을 즐기며 수행과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와 노인복지회관 봉사(왼쪽)
▲ 행복학교 참가자와 노인복지회관 봉사(왼쪽)

부대낌의 시간을 지나 지금 이대로 감사한 날들

지금 사업은 안하지만 몸과 마음을 돌보지 못한 남편은 2년 전부터 거의 죽음을 오가며 병명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기에 예전보다 편안하게 바라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남편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감정기복이 심하고 금전적인 부분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감을 알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기에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부처님 스님 도반님 감사합니다.


처음 활발하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이런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고민과 어려움들 속에서도 수행과 봉사를 놓치 않고 꾸준히 정진한 이정숙 님의 시간을 통해 '어떤 일이든 좀더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글_손해경(창원정토회 진해법당)
편집_장순복(남양주정토회 남양주법당)


  1.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2.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3. 행복학교 행복해지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의식이나 프로그램을 배제하고, 법륜스님의 행복 메시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연습을 함께 하는 곳.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12강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
    행복학교 신청(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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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

정숙님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감동도 받고 생각이 많아지네요 늘 행복합시다

2020-09-22 22:30:39

백기순

정숙님
감동입니다!

2020-09-22 07:54:32

김애자

정숙님, 남편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2020-09-21 13: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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