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기장법당
나를 찾아서 돌고 돌아온 길

기장 법당 저녁 법회 때면 항상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든든한 도반이 있습니다. 소리 없이 어떤 자리에도 함께 하며 문제가 생기면 해결사 역할을 하고, 후배 도반들의 고민거리에도 툭 던지는 몇 마디 말로 법문 같은 울림을 주는 김홍임님입니다. 주말까지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홍임님을 늦은 시간에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뷰하시는 김홍임님
▲ 인터뷰하시는 김홍임님

딸 부잣집 착한 막내딸

우리 집은 오빠 아래로 딸 다섯을 둔 딸 부잣집입니다. 제가 다섯째 딸입니다. 아들을 기다리시던 아버지는 다섯 째도 딸이라는 것을 아시고 산후 바라지도 안해주셨고, 그런 아버지가 섭섭했던 어머니는 갓 난 저를 윗목에다 올려두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성장하였고, 태어날 때부터 환영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저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늘 착한 행동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싫은 일에도 제 의견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욕구가 있어도 억누르고 쌓아두기만 했습니다. 다행히 아래로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아들 자리 판 덕분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되었지만 늘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말하지 못하고 숨기고 참으면서 살아가는 게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나’를 찾아서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부모님과 자연스럽게 함께 살게 되었는데 아이들도 봐주시고 살림도 해주실 거라고 좋은 점만 생각했는데 불편한 일이 많았습니다. 시부모님의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안 들고 불만이 있어도 표현을 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둔 감정은 큰 아이에게로 향했고, 때로는 화를 내고 때리기도 하며 쌓인 감정을 분출했습니다. 그런 나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불평하며 갈등을 안고 살아가다가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하지 못했던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만남으로 신세계를 만난 듯 어울려 다니면서 순간은 재미가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어딘가 허전하고 시어른에 대한 불만은 해소되지 않은 채 속을 끓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마음공부를 하러 다니면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무엇이 문제인지 곱씹어본 적 없는데 내 감정을 살펴보니 인정욕구는 많은데 표현하지 않으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여전히 불만투성이면서 먼저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나’가 있었습니다.

입재식에서
▲ 입재식에서

불법 만나 수행자의 길로

6년 정도 마음공부를 하면서 많이 편해지기는 했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내 잘못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자리를 맴 돌면서 답답해할 때 상담 선생님이 법륜스님의 강의 테이프를 권해주셨습니다. 집에 와서 듣는데 허전했던 한쪽이 온전하게 채워지는 듯 속이 후련해져서 계속 들었습니다.

그 후로 스님이 쓰신 책을 사보고 인터넷 자료를 찾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혼자 108배도 하다가 2008년에 해운대법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제가 정토회에 나가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습니다. 저는 스님 법문도, 불교대학 공부도 좋아서 가족들이 따라 하기를 바랐고 때로는 강요하기도 했는데 가족들은 그것이 부담스러워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절에 갈 때 법복을 입는 것조차도 보기 싫어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제가 좋다는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족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이 싫어하니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서 법당에 간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차츰 변하는 저의 행동을 보고 언제부터인가 가족들도 이해해줍니다.

기초사회자교육후 김홍임님
▲ 기초사회자교육후 김홍임님

배우려는 욕구는 불안을 낳고

이전에 이미 마음공부를 몇 년 한 터라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정토회의 프로그램을 ‘깨달음의 장’, ‘불교대학’, 인도 성지순례까지 체계적으로 따라가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고로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과정을 마무리하면 다 아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첫발을 내디딘 저의 착각이었고, 제대로 마음공부 한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욕심으로 서둘러 프로그램을 따라간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분별은 사라지지 않았고, 절실한 마음보다는 제 안의 욕구를 따라간 것이었기 때문에 마음은 늘 불안하고 허했습니다.

정초법회후 유수스님과 함께(맨 뒷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홍임님)
▲ 정초법회후 유수스님과 함께(맨 뒷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홍임님)

넘어지면 일어나길 반복하며

그 해에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하면서 천일결사 입재도 하고 아침 수행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맏이로서 끊임없이 내어주는데도 시댁과 친정 형제들의 불평을 듣게 되니 애쓰고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쌓였습니다. 또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셨는데 어머니 방식보다 제 방식으로 키우고 싶은 데서 부딪힘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욕심으로 아이들을 키우려던 것이 성장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화내고 야단치면서 키운 아이는 제가 한 방식으로 저에게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거울을 보듯 닮아가는 아이를 보면서 내려놓고 참회하며 아이도 서서히 안정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사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조금 편하다 싶으면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꾸준히 수행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집전교육후 도반들과(뒷줄 왼쪽 김홍임님)
▲ 집전교육후 도반들과(뒷줄 왼쪽 김홍임님)

상대의 입장에서 알아차리니 내가 편하구나!

기장법당이 생기면서 운영하던 가구점이 있는 기장으로 와서 활동하면서 법회담당, 지원담당, 집전교육담당, 사회자 교육, 법주, 사시예불 등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어디든 함께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내서 봉사를 하면서도 혼자 섭섭함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사시예불을 담당할 때 혼자 예불하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가 듣기 싫었고, 예불하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섭섭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실수나 부족함을 지적하며 고치려고 하는 마음,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 분별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수행하면서 차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하고 있구나, 그걸 보고 ‘지금 내 마음이 그렇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서 편안해졌습니다.

부처님오신날 행사 후(뒷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홍임님)
▲ 부처님오신날 행사 후(뒷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홍임님)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길목에 서서

2007년부터 운영하던 원목 가구점을 올해 5월에 문을 닫았는데 결정을 내리기까지 힘이 들었습니다. 정토회에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휴일에도 문을 열고 일하였고 직접 만든 가구들을 판매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기에 아끼던 가구들을 포기하고 문을 닫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구점을 지키느라 봉사시간도 빠듯해서 갑자기 생기는 일정에 분별도 일으켰지만 그곳에서 열린 법회도 하고 때로는 회의 장소가 되고 도반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는데, 문을 닫자니 허전한 마음도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은 가구점 운영이 어렵지만 한때 잘 되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언젠가는 그때처럼 잘 되겠지 하는 마음과 앞으로는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구나, 안 되는 것을 붙잡고 욕심을 내는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지고 탁 놓아졌습니다. 가구공장을 하던 남편도 일을 놓고 다른 일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 되지만 막연한 불안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도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즉문즉설 봉사 후(앞에서 두번째 줄 다섯번째 홍임님)
▲ 즉문즉설 봉사 후(앞에서 두번째 줄 다섯번째 홍임님)

내가 지어 내가 받는 인연 과보대로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소소한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 왔는데 돌아보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혼자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벅찼던 것도 관점을 바꾸니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 내가 하지 않은 것은 내게 오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면 섭섭하지도 않고,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표현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대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말로, 글로, 행동으로 표현하면서 가볍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 법 만난 덕분입니다.


별 거 없다며 손사래 치던 홍임님은 살아온 얘기를 내 놓으면서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중요하다고, 불법 만나 단단해진 만큼 걱정 없다고 하시며 덤덤히 웃습니다. 그 편안한 웃음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후배 도반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글_조영희(해운대정토회 기장법당)
편집_이정선(진주정토회 진주법당)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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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영

글이 진솔하게 다가왔습니다.
바깥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돌려
하나의 든든한 기둥으로 커지는 듯한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저 조금 긴 듯한 마음 나누기 같았습니다.
글이 편안하게 읽혀져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9-24 06:38:26

감사합니다

혼자 무거운 짐을 진것도 관점을 바꾸니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말씀이 남습니다.
관점바꾸기! 꾸준히 수행하겠습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9-21 06:40:23

유혜강

오늘 새벽때 절에 처음 가봤습니다. 좋았습니다. 도반님들이 절을 하고 계시더군요

2020-09-20 13: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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