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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 따라 절에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서 윤리학을 전공하며 자연스럽게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생 불교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4년 동안 법회 참석, 수련회, 사찰순례 활동 등을 열심히 했습니다. 책도 꾸준히 읽고 불교신문도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직업이 교사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습니다. 마흔살 무렵 충청남도 태안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근처에 백제시대의 "마애삼존불" 이 모셔진 백화산이 있어 새벽이면 산에 올라 약수를 떠오곤 했습니다. 그동안 돈 벌고, 결혼하고, 교육운동이며 시민단체 활동도 하면서 가장으로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애삼존불 앞에 서서 ‘108배 100일기도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매일 물병 담긴 배낭을 메고, 염주를 손에 쥐고 집을 나섰습니다. 산에 오를 때마다 마치 세상을 얻은 듯 풍요로웠고, 기도를 마치고 내려올 때는 어깨가 쫙 펴지며 옹졸한 마음이 넓어지는 듯했습니다. 혼자만의 100일 기도를 회향 할때 대학 졸업 후 소원했던 부처님과의 인연이 다시금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도 종종 혼자만의 기도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천안으로 다시 터전을 옮긴 후 오랜 인연이 있는 집근처 사찰에서 법회와 불교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내의 권유로 2012년 겨울방학에 <깨달음의 장1>을 다녀왔습니다. 항상 바른 불교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터라,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 근처의 정토회를 찾았습니다. 당시 천안과 아산에서 가정법회를 하고 있었고 아무런 의심없이 갔습니다. 마침 2012년을 끝으로 가정법회를 접고 2013년 초 정토센터 개념의 법당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천안에서 개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12평 작은 공간의 천안정토센터(현재의 천안법당)의 첫 번째 불교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의 학생으로 다니면서 다른 학기 불교대학과 경전반의 담당을 맡았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을 입학했던 개원 1년 차, 천안정토법당 총무소임을 받았습니다. 1년을 지내며 12평 공간에서 52평의 넓은 공간으로 법당 이전 불사를 했습니다. 당시 도반들과 신나게 활동했습니다. 그 후 인근 지역 홍성법당과 당진법당, 서산법당이 개원하면서 천안법당이 4개법당을 총괄하는 천안정토회로 승격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천안 정토회 총무가 되었습니다.
정토회 총무소임과 직장 일을 병행하려니 시간도, 체력도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명예퇴직을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총무소임을 무사히 회향할 수 있었고, 9차때 대표, 상임위원 소임을 모두 회향하며 현재 또다시 천안정토회 대표소임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바른 불법을 만나기 전, 전형적인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하고 싶은 말도 참고, 화가 나도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폭발해 버리곤 하였습니다.
30대 후반 어느날 일입니다. 학년 부장선생님이 자기에게 허락받고 종례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담임인 내가 우리반 종례를 학년부장 허락을 받고 하라니..' 자존심이 구겨지며, 담임경력 10년차 선생인 저의 담임권한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그만 화가 폭발했습니다.
그 부장선생님에게 들고 있던 출석부를 집어던지며 욕설과 고함을 지르고 대들었습니다. ‘어? 저 사람이? 얌전한 사람인데?’ 평소 저를 착한 동료라 생각했던 학교 선생님들은 저의 이런 행동에 깜작 놀라며 당황했습니다.
어느날은 교감선생님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항의했습니다. 그때 들고 있던 출석부로 책상을 탕탕 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제가 교감선생님을 때렸다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저는 제 신념이 옳다고 믿었으므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때때로 이렇게 몇 번의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집에서도 웬만한 일은 꾹꾹 참았습니다. 그러나 꾹꾹 눌러둔 화는 어느 순간 엉뚱한 곳에서 표출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아내와 어머니 문제로 대화하다가 제 마음이 들지 않자 그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눈앞의 물컵을 집어 던졌습니다. 물컵은 냉장고와 부딪치면서 상처를 내고 산산이 부서져 거실 여기저기에 흩어졌습니다. 냉장고 문짝에 남은 스크래치에 예쁜 스티커를 붙여서 20년을 사용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냉장고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스티커는 저의 욱하는 성격을 반성하게 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났을 때쯤은 그런 저의 욱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잔잔해졌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전처럼 욱하는 마음이 화로 폭발하지 않습니다. 화로 번지지는 않지만 짜증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미세한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식사를 하고난 후 뒷정리를 해야 하는데 숟가락과 밥그릇만 정리하고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아내는 그런 저에게 종종 “뒷정리까지 해주면 좋겠어.”라고 가볍게 이야기를 합니다. 생활습관으로 오래 굳은 것이라 아내가 끊임없이 이야기 하지만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할 때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양말이 흙과 땀범벅이 됩니다. 발가락구조 때문에 발가락양말을 신는데 땀을 많이 흘리고 난 후 온몸이 덥고 힘들 때, 양말을 벗으면 뒤집혀 벗어질 때가 있습니다. 평상시는 바르게 벗어서 놓는데 안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내가 그 사실을 이야기해주면, ‘아, 내가 또 업식대로 하는구나.’ 받아들일 때도 있지만 때론 ‘아니, 내가 몰라서 그런가?’ 하고 아내의 말에 내 변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아내의 말을 또 잔소리로 듣는구나.’라고 다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얘기합니다. “내 마음은 이랬었는데, 나도 잘 안 될 때가 있어.”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습니다. 미세한 감정이 일어날 때 억양도 살짝 올라갑니다. 아내는 그런 순간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툭 던집니다. 아내의 말에 부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하고 돌이켜봅니다. 거기까지입니다.
지난 3월 그 동안 지역사회 교육활동의 인연으로 소규모 대안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여 교직원과 함께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먼저 내가 행복하기'를 조금씩 시작해 봅니다. 코로나로 학생들이 등교를 못하는 외로운 스승의 날 교직원에게 장미 한송이씩을 드렸습니다.
사별하고 혼자 살고 계시는 청소하시는 여사님이 ‘내 생전 남자에게 꽃을 처음 받아본다'며 좋아하였습니다. 교장실을 나누기 공간으로 구상하여 몇 명씩 초대를 했습니다. 머그컵에 차 한잔씩 준비하고 함께 앉아서 근무하면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듣기 시작했습니다.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상담을 받은 느낌이라며 다들 신기해하고, 억울함으로 답답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티타임이 되면 각자의 컵에 차를 준비해옵니다.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음을 보면서 뿌듯하고 가을에는 <행복학교2 >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불교대학에 입학한 선생님은 재미있다며 잘 다니고 있습니다. 장마철에는 제가 먼저 삽을 들고 수로를 정리하며, 먼저 호미 들고 꽃을 심고, 제가 먼저 예초기를 짊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장마철 풀을 베어내며 직원들이 함께 일하니 공동체 의식이 싹트는 듯합니다.
우리는 서로 외로운 섬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천천히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제게 있었습니다. 법륜스님을 통해 불법을 배우고, 이 법을 함께 나눌 직장의 식구들이 있으니 행복합니다. 4년의 임기동안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행복한 삶을 위해 오늘도 다만 합니다.
김민응 님의 인터뷰는 일요일 오후에 화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민응 님은 일요일이지만 학교개학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이 많아 학교에 출근했다고 합니다. 컴퓨터 화면너머로 소박한 책상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보이는 스탠드 옷걸이에는 밀짚모자가 덜렁 걸려있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는 그 밀짚모자를 쓰고 학교의 이곳저곳을 다녔을 김민응 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오전에는 학교일에 앞장서는 교장선생님으로 잘 쓰여 지고, 인터뷰 동안은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놓는 정토행자로 잘 쓰여지는 김민응 님을 보며 마음속으로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잘 쓰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_이애순_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천안법당)
편집_정지혜_편집자(해운대정토회, 반여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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