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마산법당
남편의 99가지 장점이 보입니다

모둠장으로 매끄럽게 모임을 진행하는 모습이 회의의 달인처럼 느껴지는 이선희 님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고민이 있다면 단번에 날려버릴 것 같은, 늘 당당한 이선희 님은 과거에 남편의 한 가지를 문제삼고 괴로워했다 합니다. 이제는 남편의 한 가지 흠보다 99가지 장점이 보인다고 하니, 불법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 이선희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서로 피난처이기를 바랬던 결혼

제가 기억하는 어릴 적 아버지 모습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있거나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 어머니는 농사일을 비롯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소처럼 일하며 자식들을 위해 평생 노력하고 희생하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저는 술을 마시면 아버지처럼 폭력적이고 무능해지니, 술은 절대 마시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고등학교 때 알고 지냈던 남편이 경제력도 있고 제가 의지할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그런 사람이길 기대하며 결혼하였습니다.

남편 역시 어려운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남편에게는 낳아주신 어머니와 또 한 분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한 달에 한 번쯤이나 볼 수 있었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삶이 힘들었던 어머니는 술로 마음을 달래며 알코올 중독이 되었고, 술 먹은 어머니의 뒤처리를 남편이 다 감당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남편은 포근한 누나 같고 어머니처럼 자신이 쉴 수 있는 그런 아내를 원하였습니다.

서로가 상대를 피난처로 생각한 것이 큰 착오였음을 알게 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바닷가에서 가족과 함께
▲ 바닷가에서 가족과 함께

가족에 대한 시비와 분별

결혼 후 저는 남편이 99가지를 잘했어도,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술을 마시는 한 가지에 눈이 멀었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취해서 들어오는 날이면 저는 남편에게서 ' 잘못했다' 소리를 들어야만 실랑이를 그쳤습니다. 남편은 잘못했다 소리를 죽어도 하지 않았고 저는 그런 남편에게 계속 시비했습니다. 하다못해 남편이 리모컨이라도 부셔야 그만두었습니다. 실랑이가 끝나면 저는 그 당시 사리 판단도 안 서는 중학생 아들을 앉혀 놓고 제 속이 풀릴 때까지 남편 욕을 하곤 하였습니다.

아이들 역시 제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자장면을 먹겠다고 하면 어제 자장면 먹었는데 왜 또 자장면이냐 했습니다. 짬뽕을 먹겠다고 하면 왜 또 짬뽕이냐고 일일이 하는 것마다 지적하고 시비하였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의 학교생활은 어떠한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사고를 치거나 왕따를 당해도 제 안중에 없었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술값을 모두 남편이 내고 다니는 것에만 문제삼고 괴로워하며 힘들어했습니다.

즉문즉설 애청자에서 불교대학 동문으로

저와 형님(손윗동서)은 평소 스님의 즉문즉설을 꾸준히 들으며 많은 대화를 하곤 했습니다. 형님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5살 3살 아이를 홀로 힘들게 키워서 며느리도 보았습니다. 이제 고생 끝이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며느리와 갈등으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때 제가 형님에게 정토 불교대학을 다녀보라고 권유해 형님은 2017년 봄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2017년 여름 형님이 보내준 가을 불교대학 모집 포스터를 보고 마음 변하기 전에 등록하고 입학금도 바로 냈습니다. 그렇게 형님과 저는 즉문즉설 애청자에서 도반이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식 날 어머니가 입원하셔서 입학식도 결석하게 되니 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이런저런 일을 견디며 겨우 졸업을 하였습니다. 졸업 후 경전반에 입학하였고, 경전반은 개근하였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가운데 이선희 님)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가운데 이선희 님)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경전반을 입학하고나서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습니다. 수련을 다녀오기 전에는 모든 불화의 원인이 제가 아닌 남편이나 자식, 타인에게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수련을 통해 오롯이 저만을 들여다보는 시간 속에서 밖으로 돌렸던 시선을 안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기중심적으로 남편과 아들을 바라보던 제가 그들을 제대로 숨조차 못 쉬게 힘들게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망이 감사함으로 바뀌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남편의 99가지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술을 마시는 것 역시 사업수완 능력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저지른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추진력이 좋은 남편의 능력으로 보였습니다. 술을 마시고 오면 가만히 잠만 자는 남편을 깨워서 시비하고 못살게 굴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지금은 남편이 술을 안 마시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역시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제가 변하니 모든 것이 편안해졌습니다.

정진하고 봉사하며 성장하기

2018년 9월부터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새벽 법당에서 500배 정진을 도반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담당하던 이추경 님이 바쁜 관계로 2019년 8월에는 제가 담당을 하였고 2019년 12월 불교대학 졸업 기념으로 새벽 1000배 정진을 하였습니다. 정진하면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리며 미움과 원망을 녹여내고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마산법당 10차모둠장회의 오픈진행 ( 뒷줄 왼쪽 두 번째 이선희 님 )
▲ 마산법당 10차모둠장회의 오픈진행 ( 뒷줄 왼쪽 두 번째 이선희 님 )

경전반 다니며 천일 결사에 입재해서 천일결사 모둠장, 봄불교대학 모둠장, 가을불교대학 사회자 봉사 소임을 하고 지금은 모둠장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9차 년도와 많이 달라진 소임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제가 언제 어디에 가서 이런 일들을 해보겠나 생각합니다. 업무를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고 시국의 변화에 맞춰 화상회의도 진행합니다. 2019년 봄 불교대학 모둠장 소임을 하면서 다른 도반들의 나누기를 듣고나니,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큰 올케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모둠원들과 함께 배우며 하는 일들이 저를 성장시키는 일들입니다.

한 불교대학 학생은 '무릎이 아파서 절을 못 한다, 절하기 싫어서 법당 오기 싫다, 왜 이런 걸 하라고 그러느냐.'며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랬던 학생이 천일결사에 입재해 꾸준히 수행정진하고 봄경전반에도 진학하였습니다. 지금은 〈깨달음의 장〉이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저의 일 인양 가슴 뿌듯합니다. 그리고 2019년 불교대학 졸업생 5명 전원 경전반에 진학한 것이 보람되었습니다.

위기 속에서 찾은 사랑과 평화

정회원 교육을 받으러 부산 동래법당에 가야 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무렵 어머니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전화도 받지 않아 가족 모두가 걱정하고 힘들어했습니다. 몇년 사이에 어머니는 허리협착과 디스크, 손목 골절, 무릎 관절, 맹장 수술까지 전신 마취 수술을 여러차례 하여 기력도 없고 활동이 불편하니 우울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서울 대학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하고 집 근처 요양병원에 1년 정도 있다가 시골에 혼자 지내던 중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부산 동래법당에 가지 않고 어머니에게 가겠다고 하니 남편이 직접 가볼 테니 교육 잘 받고 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 어머니와 함께

그날 남편이 어머니에게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무섭고 싫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날 마지막 준비를 마친 후였습니다. 남편은 급하게 119를 불렀고, 병원으로 옮긴 어머니는 일주일 넘게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습니다. 참 다행이고 다행이었습니다.

제가 불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순간을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감히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큰오빠에 대한 애착이 많은 어머니는 큰오빠 아이들(조카)을 20년간이나 키워주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이제 늙고 병들어 쓸모가 없어진 어머니를 시골로 내쳤다고 오빠와 올케를 몹시도 원망하고 미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상황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챙겼습니다. 의사를 만나서 상황설명도 듣고 오빠와 올케를 위로하였습니다.

평온한 일상에 고마운 마음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에도 경전반에 출석하였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 곁을 자신이 지키겠다고 하면서 법당으로 등 떠밀어 주던 남편은 한없이 고마운 사람입니다. 제가 불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과거의 아버지를 원망하고 어머니를 원망하고 오빠를 미워하는 어리석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는 병을 친구삼아 병원을 놀이터 삼아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봄불교대학 졸업기념 1000배 정진후 ( 둘째줄 왼쪽에서 두 번째 이선희 님 )
▲ 봄불교대학 졸업기념 1000배 정진후 ( 둘째줄 왼쪽에서 두 번째 이선희 님 )

앞으로도 900일 넘게 매일 하는 천일결사 기도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매주 토요일은 기도 후에 모둠원들과의 행복한 회의를 하고 있는데 잘 배워서 모둠원들과 행복한 대화를 나누는 재미있는 수다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를 잘 이해해주는 가족이 있어 고맙고, 평온한 일상이 고맙습니다.


〈깨달음의 장〉이전에 이선희 님은 ‘ 아니 그게 아니고’로 부정적인 말부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이제 ‘예,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로 하루를 시작한답니다. 이선희 님의 바람대로 업무를 잘 익혀서 행복한 회의가 행복한 대화를 나누는 즐거운 수다의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글_정명숙 ( 창원 정토회 마산법당 )
편집_임도영 ( 광주정토회 )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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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숙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도 함께하는 사람들을 시비하지 않겠습니다.

2023-03-04 05:16:56

99가지 장점도 1가지 단점도 상대는 만들지 않습니다.둘다내가 만들어서 괴로워 하는것입니다.이선희님 참 잘하게 있습니다.

2020-10-17 13:45:51

금강화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원망하는 마음으로 살았을 거라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저도 예, 잘 알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들도록 수행하겠습니다.

2020-09-14 05: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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