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산법당
병고를 양약 삼아 흔들림없이
두번째 이야기

누군가는 인생 최대 걸림돌이라 여기며 넘어져 울고 있을 병고를 진실로 양약 삼아 씩씩하게 정토행자로서 발걸음을 내디딘 도반이 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힘든 암 투병기간을 견디어 냈다는 경산법당의 이순애 님입니다. 지난 2019년 10월 '정토행자의 하루'에서 만난 햇병아리 도반의 성장기를 전합니다.

나도 문경에 가고싶다

불교대학에서 매달 수업시간에 홍보영상으로 <깨달음의 장1> 신청 안내를 보았습니다. 그 당시 항암치료를 하고있던 저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와도 같았습니다. 저도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2019년 5월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졸업수련도 다녀오고 그해 7월 불교대학 졸업을 했습니다. 몸도 조금씩 회복이 되어 이제 <깨달음의 장> 한 번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매회차마다 신청 마감이 금방된다는 것을 들었던 터라 꼭 가고싶은 간절한 마음에 일주일동안 정토회 홈페이지에 신청페이지까지 들어가보고, 이름과 주소 등을 입력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법당 부총무 도반이 1분 안에 모든 사항을 입력하고 신청완료 버튼을 눌러야 접수가 되고, 1분을 넘어가면 금방 마감된다는 말에 작은아이에게 타이머까지 쥐어주며 연습했습니다.

일주일 간의 연습으로 신청서식 작성시간을 45초까지 줄이니, 남편이 ‘그 정도면 충분히 된다. 안되면 내가 법륜스님께 말씀드려서라도 보내줄게.’라고 합니다. 남편의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깨달음의 장> 접수가 완료되었다는 화면를 확인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2019년 8월 24일 토요일 아침입니다. 같은 날 가을경전반 실무교육에 가서 첫 마음나누기에서 아주 들떠 기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경전반 졸업식, 개근상을 받다! (왼쪽 첫번째)
▲ 경전반 졸업식, 개근상을 받다! (왼쪽 첫번째)

2019년 10월 16일, 드디어 서툰 운전솜씨로 문경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수련하는 동안 나 자신을 정말 많이 돌아보게 되었고, 수련을 마쳤을 때는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꼭 해결했으면 하던 것들을 모두 해결하고 돌아왔습니다.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시간

2019년 8월에는 경전반에 입학하여 죽림정사 사찰순례, 문경특강수련, <깨달음의 장> 회향수련 등 대부분의 활동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하기에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백중 입재식에서 주인공
▲ 백중 입재식에서 주인공

법회때마다 독송은 하지만 내용은 모르는 반야심경2과 말로만 듣던 금강경3 등 경전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무유정법, 반야심경에서는 원효대사의 화작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무유정법4’이 정말 좋아 수업할 때마다 같은 의미의 내용을 접하면 눈이 반짝반짝해졌습니다. 법무이법, 만법일여, 부존궤칙, 해인삼매... 경전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내용들을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 그냥 좋습니다. 무유정법하면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경전반 수업을 듣고나니 불교대학에서 배운 법문들이 경전을 알기쉽게 풀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경전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어려운 경전을 알기 쉽게 말로써 지도법사님이 법문을 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불교대학 교재들을 살펴보니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가슴에 와 닿습니다.

또 하나의 수행도반, 나의 가족

남편이 장난삼아 ‘아침에 기도할 때 나 돈 많이 벌고, 두드러기도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해.’라고 합니다. 저도 장난에 응대하여 그렇게 하겠다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둘째아이가 ‘엄마라면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 먼저 돈 벌게 하고 그 다음에 우리도 벌게 해주세요, 아빠보다 더 아픈 사람들 먼저 다 낫게 하고 그 다음에 아빠 두드러기도 낫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지요?’ 하며 도덕시간에 배운 ‘가치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토회 덕분에 멋진 엄마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은 한편, ‘정말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과 저녁운동 중에
▲ 남편과 저녁운동 중에

사춘기에 들어선 둘째아이의 버릇없는 말과 행동에 남편이 화가 많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화로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아이들을 불러내어 아빠가 화난 이유, 우리가 조심해야할 점과 배울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덧붙여 ‘아빠는 화가 났지만 우리는 아빠가 화 풀린 후에 언제든지 우리 곁에 올 수 있게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자.’라고 이르니 큰아이가 우리집에 수행자가 있어 참 좋다고 합니다. 저를 수행자로 봐주는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남편은 종종 저에게 또다른 가르침을 줍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봐야 상대가 이익을 본다며 한번씩은 마트보다 물건값이 조금 더 비싼 집 앞 편의점을 이용하기를 권유합니다. 편의점이 잘 되어야 우리 아파트 앞에 계속 있고, 집 앞이 밝으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다는 겁니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하는 저를 보고 남편은 ‘생각만 하면 뭐하노? 하나를 보고 하나를 들으면 가슴에 새기고 바로 실천해야지.’라고 합니다. 오히려 이런 말을 하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걸리는 모습을 봅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하면 그저 들어주고 아이의 마음만 받아주면 되는데, 남편은 '그거 먹으면 배 아프고 두드러기도 나니 안된다.'라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아이와 부딪힙니다. 제가 아이에게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는 경전 속 말씀이 저의 일상에서 실천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이의 일상을 보면서 그냥 아는 것과 수행으로 알아차리고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또 느낍니다. 그래서 수행은 꾸준히 해야되는 것이라고 남편이 저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한결같은 가르침을 깨닫다

어느 날 아침식사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지도법사님의 법문들이 생각났습니다. 모두 표면의 말씀은 달랐지만 그 속 뜻은 일맥상통하고 있었습니다. 지도법사님은 한결같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내가 어리석어 들으면서 ‘그렇지!’ 하고 돌아서서는 잊어버리곤 하였습니다. 나의 경험세계를 진실인양 이것을 나로 삼고 집착하며 분별을 일으키고 살았습니다.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알아차려가는 과정이 큰 기쁨입니다.

저는 현재 봄불교대학과 수행법회 꼭지를 맡고있고 정토회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꼭지로 수업에 참여하며, 후배 도반들의 나누기를 들으면 참 공감이 많이 됩니다. ‘나도 저 때는 저 마음이었지. 우리 후배 도반들도 곧 편안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제가 불교대학 학생이었을 때 저 한 명의 학생을 위해 수업을 진행해 준 선배도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받은 고마움으로 저도 무언가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봄불교대학 꼭지수업을 마치고(가장 오른쪽)
▲ 봄불교대학 꼭지수업을 마치고(가장 오른쪽)

수행법회를 담당하며, 우리법당 도반들이 백중5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마치 여럿이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듯 보입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하나씩 소임에 임하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어느 하나의 힘이 아닌 모두의 힘이 모여야 함을 느낍니다.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

며칠 전 불교대학 수업 후 제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보며 확인하고, 그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올라오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다음날 수행법회 마음나누기 시간에 진실은 알지 못한 채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거침없이 말을 내놓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수행을 하면서 유연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대로였습니다. 집에서는 항상 수행을 우선으로 두고 꼼꼼히 살피며 생활하니 예전에 비해 가족들과의 갈등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당에서는 순간 수행이 아닌 일로 여기니 깨어있지 못하고 예전 직장생활할 때의 그 업식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저는 은행에서 20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은행업무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고 매사에 정확해야 합니다. 그때의 은행은 규정, 지침을 많이 알고 원칙대로 일하면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또 많이 알면 근무평가 시험도 잘 치게 되고 승진도 빨리 하며 인정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근무환경이다보니 규정, 지침, 원칙들을 잘 믿고 우선하는 성향이었습니다. ‘책에 있는 대로 하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깨어있지 못한 순간, 이런 제 업식이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가르침은 저 먼 우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수행법회를 마치고(오른쪽 첫번째)
▲ 수행법회를 마치고(오른쪽 첫번째)

봉사소임이 없었다면 저는 아직도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도반이 해주었던 ‘소임이 복이다.’라는 말을 가슴깊이 느꼈습니다. 저와 마음나누기를 해 준 송현법당에 다니는 큰언니는 ‘소임을 하며 일어난 업식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도 2년동안 수행해 온 공덕’이라 말해주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업식이 사라진 줄 알았지 결코 나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업식이라는 것은 깨어있지 못하면 정말 한 순간에 튀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위해 지금부터 저의 수행은 다시 시작입니다.

글_이순애(수성정토회 경산법당)
정리_김정림 희망리포터(수성정토회 경산법당)
편집_김난희(홍보국 편집담당)


  1. 깨달음의 장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2. 반야심경대승경전의 하나 

  3.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4. 무유정법(無有定法) 정해진 법이 따로 없다는 불교 교리. 

  5. 백중불교 7대 행사의 하나. 돌아가신 조상님을 생각하며 천도재를 지냄.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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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종

순애보살님 글을 잘 읽었습니다. 술술 잘도 읽히네요. 공감도 많이 되었어요. 담백한 글 고맙습니다.
전에까지는 제가 무기력이 좀 있었나봐요. 이제야 읽었어요.

2020-09-22 21:50:26

무지랭이

업식은 한순간에 튀어 나올 수 있다는 말씀에 정진의 중요성을 새깁니다.
고맙습니다~^^

2020-08-27 11:21:22

최미희

직장을 그만두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 그렇지 업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수행이 잘 된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지요

2020-08-10 10: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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