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소사법당
바삭바삭 쌀과자처럼

2016년도 정토행자의 하루 기사 취재 이후 서원행자까지 되셨다니 박선영 님은 꽤 진지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너무나 밝고 경쾌한 분이었습니다. 박선영 님의 카톡 프로필 ‘바삭바삭 쌀과자처럼!’ 문구처럼 정토회를 만나 가볍고 바삭해진 삶의 이야기입니다.

대학 시절 찾은 정신과

저는 학창 시절에 겉으로는 발랄하고 사교적이었으며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학교 행동발달 사항에도 학습 태도가 좋고 교우관계가 원만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밤에는 일기장에 항상 죽고 싶다 쓰고 야뇨증도 있었습니다. 엄마가 도망갈까 봐 자다가 뛰쳐나가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다는 걸 아는 게 죽는 것보다도 싫었습니다. 엄마는 체면을 중시하셨기 때문에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신 채 그 스트레스를 첫째인 저한테 다 푸셨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집이 화목한 줄 알고, 저도 친구들에게 밝은 모습만 보여줘서 이런 속마음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저는 정반대의, 두 가지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어렸을 땐 부모님께 받은 분노를 동생들에게 많이 풀었고, 사춘기 때는 욕도 잘했습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컨트롤이 가능했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니까 쌓여있던 우울증이 폭발했습니다. 학교도 결석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여서 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무엇이 저를 괴롭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회복되고 싶은 마음이 커서 혼자 병원을 갈 때 낯설고 무서운 마음 없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약만 처방해주는 곳이어서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즈음 이런 저를 받아주는 남편을 만나서 캠퍼스커플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 중 한 사람인 남편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서 의지가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동기들과 함께 ( 맨 오른쪽이 박선영 님)
▲ 불교대학 동기들과 함께 ( 맨 오른쪽이 박선영 님)

내 인생의 책《엄마수업》

어느 날, 큰아이가 학교생활을 힘들어해서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주의력 결핍 진단이 나왔습니다. 처음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내가 뭘 어쨌길래?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안 키우려고 애썼는데, 너는 왜 이래?’ 화나고 억울했습니다. 그때 제가 나름 잘 키우겠다고 학원을 8개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때리기도 하고, 책도 찢고...

아이가 아프니까 온갖 육아서적을 보다가 스님의 《엄마수업》을 읽었는데,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이가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부모 검사에서 만성 우울증이 나왔어도, 제 우울증은 아이 문제와는 별개이니 그저 아이를 고쳐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수업》을 통해, 아이의 심리는 엄마로부터 전해져 내려간다는 것을 알고, 저한테 문제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거리 모금 ( 오른쪽 두번 째 박선영 님)
▲ 거리 모금 ( 오른쪽 두번 째 박선영 님)

불교대학과 더불어 수행법회

《엄마수업》을 인연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자분이 수행법회가 정말 좋다고 하셔서 수행법회를 먼저 들었고, 불교대학 입학하고도 계속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계속 울고 다녔습니다. 수행법회 때 더 많이 울었는데, 엄마에 대한 즉문즉설을 들을 때, 엄마를 미워했었던 제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아빠랑 싸우고 맞으면서도 도망가지 않은 건, 나를 사랑해서였구나... 화를 내고 때리기도 해서 나를 힘들게 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거였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 시간에는 이론을 배우고, 수행법회에서는 직접 체험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총무님이 제 얘기를 많이 들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이시지만, 예비 불교대학생이라고 생각하니 화도 덜 나고,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연꽃 만들기 봉사 중 ( 맨 오른쪽 박선영 님)
▲ 연꽃 만들기 봉사 중 ( 맨 오른쪽 박선영 님)

나는 쓸모 있는 인간

저는 부모님이랑 함께 살면서 제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도 좀 하고 반장도 됐지만, 부모님의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제일 중요한데, 엄마가 인정을 안 해주니까, 속이 항상 허하고 불안했습니다. 선생님의 칭찬도 소용없었고, 밖에서 인정을 받을수록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저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도 저의 실체를 알고 속을 알게 되면 실망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 수업을 마치고 공양 후, 설거지하는데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게 매우 뿌듯하고, 처음으로 제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소도 봉사도 열심히 했습니다. 경전반 때는 불교대학 담당 병행하고 각종 교육과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힘들기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소임과 봉사로 하나씩 마음을 채우다 보니, 이제는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하고, 누구를 만나도 든든합니다.

수해 복구 봉사 중 (맨 왼쪽 박선영 님)
▲ 수해 복구 봉사 중 (맨 왼쪽 박선영 님)

엄마는 변신 로봇

경전반 다닐 때, 둘째가 저한테 ‘엄마 로봇 같아요!’라고 해서 이유를 물어봤더니, ‘로봇은 변신하잖아요! 엄마 변신한 거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정토회 활동을 하느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것은 아쉬워합니다. 그래도 제가 정토회 나가서 안 좋은 성격이 좋아지니까, 큰불만은 없고 오히려 자랑스러워 합니다. 남편도 뿌듯해합니다. 아침에 미역국 왕창 해놓고, 밥해놓고 나오면, 애들은 고맙게 잘 지냅니다. 이제 저의 방향은 수행자로 이미 정해져 있어 성적은 아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이 나쁘면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공부 못했다고 뭐라고 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런 성적을 받으면, 네가 원하는 걸 못하는 건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전에는 더 신경 써주지 못한 것들에 미안해했었는데, 이제는 안 그렇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정서가 불안하면 다 소용없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정토회 활동이 지금 당장 성적 10점 올라가는 것 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몇만 배는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관점이 딱 잡히니 괜찮습니다. 큰딸도 한창 공부하라고 구박했을 때는 무기력증에 빠져 방에서 안 나왔는데, 제가 마음공부 한 뒤에는 자발적으로 학원에 가고, 성적도 많이 올랐습니다.

행복 강연에서 ( 오른쪽 박선영 님)
▲ 행복 강연에서 ( 오른쪽 박선영 님)

제가 경전반 때 스님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딸이 와서 질문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딸은 수능을 앞두고 공부할 때 능률이 오르는 방법을 질문했는데, 딸에게 마음을 안정시켜준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인지 수능을 잘 봐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주의력 결핍이니까 그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하고, 많이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편안해지니까 아이들이 알아서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딸은 엄마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정토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건강을 챙기면서 하라며 응원해 줍니다.

번뇌 속 보리심

작년 여름에 서원행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분별심은 올라옵니다. 할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할 때, 한계가 있을 때, 재미있어하는 저와 다르게 도반들이 함께하지 않을 때, 분별심이 올라옵니다. 그때는 ‘내가 또 옳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미워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번뇌 속에 보리심이 있고, 깨달음이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분별심이 올라올 때마다 마냥 미워만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렇구나’ 알고,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합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번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서원 행자 대회에서 (오른쪽 박선영 님)
▲ 서원 행자 대회에서 (오른쪽 박선영 님)

'네!' 할 수 있는 힘의 원천

정신과를 포함해서 마음공부를 하러 이곳저곳을 다양하게 둘러봤지만, 스님 책과 영상을 보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정토회 와서 실제로 체험해 보니 제 확신이 맞았습니다. 마치 세상을 막 헤매다가 목이 마를 때, 시원한 감로수를 마신 느낌입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공부하고, 애들 과외 해주다가 바로 결혼했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제 적성이 뭔지 몰랐는데 이제 적성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정토회의 서원과 제 서원이 일치합니다. 정토회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네’ 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하게 됩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고 싶습니다.


박선영 님의 지난 기사는 "엄마는 법륜스님, 딸은 혜민스님"(눌러보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글_박난영 희망리포터 ( 부천 정토회 소사법당)
편집_임도영 ( 광주 정토회 )

전체댓글 21

0/200

정혜진

희망리포터 소재 좀 얻으로 들어왔다가 눈물 쏟고 갑니다.
저번에 언젠가 천일 결사에서도 마이크 잡으셨었죠?

2020-08-10 12:03:48

무승화

마음 속 아픔을 다 들어내시니, 치유가 쉽게 되셨나봐요. 고맙습니다.

2020-08-06 12:41:30

전경병

고맙습니다.

2020-08-02 23: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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