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
우렁각시가 된 나이팅게일

진주법당에는 우렁각시가 있습니다. 이 소임, 저 소임을 마다하지 않고 척척 해내는 구미영 님. 주어지는 소임을 영양제로 생각하는 걸까요? 어떻게 그 많은 일을 즐겁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구미영 님이 봉사활동에 임하는 마음의 출발은 어디였는지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법당에서 행정 업무 중인 주인공
▲ 법당에서 행정 업무 중인 주인공

외할머니의 치매, 어머니의 뇌출혈

진주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 부산, 서울 등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서른 살 즈음 미국으로 갔습니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던 중 건강이 좋지 않아 다시 부모님이 계신 진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외할머니가 와 있었습니다. 외삼촌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자 혼자 남게 된 외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유일한 자식인 어머니의 몫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외할머니는 증상이 심하지 않아 큰 어려움 없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치매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가족들이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고 사흘 밤을 주무시지 않고 밤새 혼잣말을 하거나 가족들을 깨우는 일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새벽에 잠옷 바람으로 가방 들고 집을 나서면 자다가 뒤따라 나가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자 가족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외할머니를 요양원에는 절대 모실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아픈 외할머니를 원망하고 그런 외할머니를 놓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속상함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불교방송에서 즉문즉설을 하는 법륜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질문자와 스님이 주고받는 가벼운 대화 속에서 질문자가 어리석은 생각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하는 신기한 모습에 이끌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108배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것으로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지만, 기대만큼 저의 일상과 마음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2014년 12월 겨울,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엄마를 보며 이게 끝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으로 불안했고 ‘그동안 다른 딸들처럼 애교 부리는 일도 없고 원망만 하고, 이해해 주지 못한 딸이었던 것 미안합니다. 고맙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전하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서웠습니다. 몇 주가 지나 어머니의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거동이나 정신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아버지는 어머니의 간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만 외할머니를 돌보던 경험들이 어머니 간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외할머니를 원망만 하던 지난날이 후회되고 미안했습니다.

간호사로서 참여한 정토회 의료인 봉사 활동 (맨 왼쪽)
▲ 간호사로서 참여한 정토회 의료인 봉사 활동 (맨 왼쪽)

내가 받은 위로, 갚을 길을 찾다

어머니가 쓰러진 후, 가족들은 온 힘을 다해 간병했습니다. 하지만 보호만 하려는 아버지와 재활에 집중하려는 저는 치료 방법을 놓고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는 길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버스 안에서 삼거리에 걸려 있는 정토불교대학 홍보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외할머니 간병으로 어머니를 원망하며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가봐야겠다 마음먹고 2016년 가을 불교대학에 등록을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정토회와의 인연이었지만 처음부터 저의 마음을 다 내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진주법당에 있는 액자 속의 부처님, 스님은 안 계시고 법복을 입은 아주머니들, 제가 생각하는 법당의 모습과 너무도 달라 낯설었고 사이비 종교집단인지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입학 후 6개월 동안은 언제 그만둘까 하는 생각으로 영혼 없이 다녔습니다. 마음을 못 잡는 저의 모습이 다 읽혔는지 불교대학 담당자와 모둠장은 끈을 놓지 않게 하려고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는 저를 위해 수행 맛보기 후 나누기를 아침마다 개인 문자로 다시 작성하여 보내주며 정성을 쏟았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후배 도반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에 감동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끈이자 스승인 소임

기꺼이 마음 내는 선배 도반을 보며 불교대학 졸업까지는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은 마음의 변화도 놓치지 않았던 담당자는 '정말 하는 일 없다'며 경전반 모둠장(현재 조장) 소임과 '이왕 하는 일 없으니 천일결사 모둠장도 같이해 보는 것 어떻겠냐?'며 제안했습니다. 얼마나 하는 일이 없으면 두 개 소임을 권할까 하는 생각으로 홀린 듯 그렇게 소임을 맡았습니다. 9-1차 천일결사 모둠장 소임은 밀려오는 일거리에 속았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맡은 일은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소임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때 저는 소임으로 바빴던 것이 아니라 분별심 내느라 바빴던 것을 지금은 압니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 소임으로 작은 안내 하나에도 고마워하는 따뜻한 도반들의 마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듣는 법문으로 복습할 수 있었고, 하기 싫은 마음이 있어도 소임 덕분에 수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점점 늘어가는 소임들로 업무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헷갈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자는 가벼운 마음을 냈습니다. 스님과 선배 도반들에게 받은 감동을 갚을 수 있는 것이 봉사 소임이며 정토회와 저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자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중 수자타 학교 학생들과 나란히
▲ 인도 성지순례 중 수자타 학교 학생들과 나란히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

봉사 소임으로 바쁜 시간 속에서도 어머니의 간병은 계속되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진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외식하는 중에 화장실을 계속 가고, 4살 아이처럼 식사하다 일어나 혼자 나가버리는 행동으로 가족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그러나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금 이대로 좋다는 감사한 마음과 돌아가시고 안 계신 외할머니께 참회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뇌출혈로 아이가 된 아내의 모습에 아주 힘들어 했지만 시집와서 고생한 아내는 자신의 몫이라며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합니다. 당신의 시간을 온전히 아내에게 쏟고 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서로 소통이 잘 안 되어 의견 다툼을 겪었지만, 지금은 감사하고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어머니는 행복하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며 아버지의 사랑 속에 아이처럼 밝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가족들의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볼 수 있어 지금 여기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감사할 줄 몰랐던 지난날과 달리 불법 만난 후 가족, 친구뿐만 아니라 직장, 법당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에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가족들과 함께 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선배 도반들이 이끌어주고,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며, 행복한 봉사 소임 활동을 권해 준 덕분입니다. 선배 도반들처럼 저의 봉사 소임이 누군가의 행복 찾기에 도움되길 바랍니다.

  JTS 거리 모금 중 도반과 함께
▲ JTS 거리 모금 중 도반과 함께

은혜 갚는 우렁각시처럼

경전반 모둠장으로 시작한 소임은 2019년 자원활동 담당자로, 2020년 지금 진주정토회 교육연수 담당자, 진주정토회 행복한 회의 진행자, 봄 불교대학 주말 토요반 조장 소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다양해진 소임만큼 제가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스스로 감동을 합니다.

진주법당에 머물렀던 소임은 무럭무럭 자라 진주정토회로 성장했고, 전국 정토회에서 같은 소임으로 봉사하는 도반들을 통해 지금은 겸손도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은혜 갚는 우렁각시처럼 제가 받은 감동을 봉사 소임으로 정토회에 다 돌려주고 싶습니다. 나이 들어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어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잘 쓰이는 행복한 수행자 되기를 발원합니다. 지금 행복합니다.


도반이 스승임을 일깨워주는 인터뷰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하는 희망 리포터 활동이라 긴장되었지만, 소임이 복이라는 구미영 님의 행복한 수행담을 전하면서 제 소임에 감사함을 가지게 됩니다. 다음에는 어떤 분과 행복한 인터뷰 시간을 누릴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글_구미영 (진주정토회 진주법당)
정리_유미화 희망리포터 (진주정토회 진주법당)
편집_강현아 (수성정토회 수성법당)

전체댓글 22

0/200

박혜진

지금 이대로 좋다는 감사한 마음...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2020-07-25 16:55:53

이은영

우와~~미영법우님!
여기서 뵈니 더 감동입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봉사하고 꾸준히 수행하는 모습에는 깊은 뿌리가 있었군요!
언제나 응원합니다.

2020-07-15 18:22:33

전미리

어려운일을 겪으시고도 행복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7-12 14:20:56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