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산법당
눈 뜨고 보니 행복은 곁에 있었네

최근 들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환해졌다, 화장품을 바꾸었냐 하는 칭찬의 소리를 자주 듣는 분이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예뻐진다는 말을 입증하고 있는 서산법당의 김현미 님이 그 주인공입니다. 경전반을 졸업하기도 전에 사회 활동 소임을 맡아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김현미 님의 수행담을 들어봅니다.

경전반 도반들과 함께(가운데 김현미님)
▲ 경전반 도반들과 함께(가운데 김현미님)

심신을 병들게 한 결혼생활

시골 보건진료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태안으로 전근 와서 근무하고 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환자로 알게 되었다가 진료소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와서 고쳐주는 남편의 자상함이 마음에 들어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하는 남편의 모습이 좋았고, 집이 부자라는 소문에 혹해서 몇 번 만나지도 않고 급하게 결혼을 해버렸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저의 환상은 와장창 깨졌습니다.

열심히 도서관을 다니던 남편은 결혼 후 도서관에 발길을 끊고 게임 중독에 빠졌고, 부잣집인 줄 알았던 시댁에는 빚이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저에게만 자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을 하지 못했던 남편은 시댁에 무슨 일만 생기면 불려가는 효자였습니다.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긴 했지만 돈을 버는 족족 시댁에 다 갖다 드리니 집에 가져오는 돈은 없었습니다. 당신밖에 모르고 아들에 대한 집착이 유독 심했던 시아버님은 날마다 전화해서 "너는 내 아들이랑 사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너는 우리 아들이랑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무슨 일만 생기면 바로 아들을 불러대셨습니다.

큰 시누도 아버님 성격을 똑같이 닮아 제가 시부모님께 조금만 잘못하면 바로 전화해서 퍼부어댔습니다. 또, "올케가 좀 더 배웠다고 내 동생 무시하면 가만 안 두겠다"며 윽박질렀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살다 살다 이런 사람들이 다 있을까 봐 정말 황당하고 억울하기만 했습니다.

수행의 힘이 되어 주는 도반들과 남산나들이(맨 오른쪽 김현미님)
▲ 수행의 힘이 되어 주는 도반들과 남산나들이(맨 오른쪽 김현미님)

그러다 결혼 5년 만에 첫째를 낳고 1년도 안되어 시어머님이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그때부터 저희는 시댁 붙박이로 살았습니다. 안면도에 있는 진료소로 옮긴 후에도 매주 김치를 담그고,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반찬 만들고 찌개 끓여 출근하는 남편 손에 들려 보냈습니다. 또 주말이면 갓난쟁이 아이들을 데리고 안흥 시댁까지 가서 남편과 함께 소처럼 농사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시댁 문제로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내가 이렇게 헌신하면 언젠가는 남편이 나랑 아이들을 봐주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전혀 나아짐이 없었고, 어느 날 그런 남편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아 “어느 정도껏 해, 당신 가정은 여기야. 대체 왜 그렇게 시댁 일에 목을 매?”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당신은 나 아니어도 잘 살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 없으면 못 산다고 했습니다. 결국 저랑 아이들은 남편 껍데기만 보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는 점점 화가 쌓이기 시작했고, 시부모님만 돌아가시면 남편한테 이혼장을 던지고 복수하는 꿈을 꾸고 살았습니다. 남편에게 의지가 안 되니 아이들한테 집착했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쥐 잡듯이 잡고 눈이 뒤집혀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제 몸까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5년 전부터 허리 디스크 협착이 심해지고 코와 난소에 혹이 생겨 암 직전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자는데 턱턱 숨이 막혀 숨이 쉬어지질 않았습니다.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로 인해 계속 불면증에 시달렸고, 새벽이면 거실로 나와 날이 샐 때까지 멍하니 창밖을 보며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계속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나를 보다

불교대학 입학(앞줄 맨 오른쪽 김현미님)
▲ 불교대학 입학(앞줄 맨 오른쪽 김현미님)

그러던 2018년 여름 심신이 모두 바닥났던 저에게 당시 서산법당 부총무이자 학교 선배인 백현희 님이 정토불교대학에 들어오라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어리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니기 힘들 것 같아 거절했는데, 법륜스님이 법문하신다는 말에 미친 척하고 입학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애 봐야지 어디 가냐며 반대하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불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 나누기가 부담되고 나의 치부를 들키는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수행연습을 하면서는 참회 기도를 하라는데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내가 왜 참회를 해야 하는데!’ 하는 억울한 마음이 계속 올라와 도저히 참회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누기를 할 때마다 계속 눈물이 나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울면서 다녔습니다.

2019년 봄 〈깨달음의 장1〉에 가서도 내내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나만 피해자라며 징징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나를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던 저는 이후 뭔가 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두터운 저의 업식은 여전하여 남편에게 화를 내고 시댁 식구들을 미워했습니다.

불교대학 도반들과 즐거운 남산나들이(앞줄 맨 왼쪽에서 세 번째 김현미님)
▲ 불교대학 도반들과 즐거운 남산나들이(앞줄 맨 왼쪽에서 세 번째 김현미님)

9-7차 천일결사에 입재해서 기도를 하면서도 처음 한 달간은 열심히 하고 나머지 한 달은 또 게을러지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경전반에 와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그동안 못 들었던 법문들을 많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수행자라면 내 업식이 어떻든 과거의 일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지금 현재에 깨어 있으라는 법문을 듣는데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도 분명 들었던 말인데 순간 그 말이 새롭게 들렸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왜 그랬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졸업하기 전에 이번 100일기도는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하고 10-1차 천일결사에 입재했습니다. 이번 100일만큼은 남편에게 진심으로 참회기도를 해보자고 마음먹고, ‘당신 뜻대로 하세요,’라는 마음으로 남편이 시댁에 어떻게 하든 무조건 “예, 알겠어요.”라고 했습니다.

행복의 비결, 수행의 시작! 수행연습(맨 왼쪽 김현미님)
▲ 행복의 비결, 수행의 시작! 수행연습(맨 왼쪽 김현미님)

어리석은 꿈에서 깨다

그렇게 꾸준히 기도를 하다 보니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사실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나 봅니다. 내가 주고도 준 것을 잊어버려야 하는데 내가 해준 만큼 돌아오기를 바라고만 있었고,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남편은 잘했다는 소리도 없이 더 큰소리치니 거기에만 사로잡혀 화를 냈던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내가 그동안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만 쓰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시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으로 항상 어깨가 무거웠지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의 끈을 놓지 못하고 꼭 쥐고 있으면서 놓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막상 놓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그렇게 가볍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인답게 살겠다고 마음먹고 너무 힘들면 시댁 요구를 거절하기도 하고, 시댁 식구들의 황당한 언행에도 씩 웃으면서 가볍게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몇 년을 시달린 불면증은 확실히 고쳤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맨 오른쪽 김현미님)
▲ 사랑하는 가족들과(맨 오른쪽 김현미님)

그리고 제가 바뀌니 가정이 편안해졌습니다. 분리불안이 심했던 큰아들도 조금씩 상태가 좋아져, 요즘은 제가 화를 낼라치면 “엄마, 법륜스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 엄마 법당 좀 가야겠어.”라고 합니다.

남편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놀아본 적이 없다 보니 혼자 아이들과 있는 것을 두려워해서 저더러 어디 나가지를 못하게 했지만, 이제는 제가 법회 때문에 집을 비우면 아이들과 함께 노는 방법을 익히고, 가끔 정토회 교육을 받으러 갈 때 기사 노릇도 해줍니다.

얼마 전부터는 아이들 수면 독립을 시키고 남편과 둘이 자기 시작했는데, 둘이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남편도 조금씩 본인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내 문제에만 급급해서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구나. 왜 진작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을까’하는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얼마 전 가족 여행을 가서 남편과 손을 잡고 걷는데 남편이 말했습니다. “준혁 엄마, 내가 그동안 잘못 산 것 같아. 부모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당신 마음이 어땠을지, 아이들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

저의 일상은 여전히 정신없고 바쁩니다. 올해 사회 활동 소임까지 맡아 더욱 바쁘지만 그만큼 더 부지런해지고 시댁 식구들의 푸념을 마음에 담아둘 여유가 없어 좋습니다. 요즘은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에 감사합니다.

당장 내가 잘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밥 세 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분별이 일어나겠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부처님, 이대로 감사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큰 복입니다.


벼랑 끝에서 한 생각 돌이켜 행복을 찾아낸 김현미 님의 수행담을 듣는 내내 그동안 견뎌왔던 시간들과 아픔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또 지금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허지혜 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서산법당)
편집_이정선(진주정토회 진주법당)


  1. 깨달음의 장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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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항상 지금 여기에 만족하고 깨어있는 수행자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0-06-26 13:48:05

광효 이상헌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_()_
시간이 지나면 또 넘어질 것이 분명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에 저도 힘을 냅니다.
고맙습니다 _()_

2020-06-25 12:35:01

일향화

감동입니다^^♡♡♡ 멋지세요

2020-06-24 0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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