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거제법당
소임을 통해 나를 돌아보다

정토회를 만나자마자 푹 빠져 온몸과 마음을 바쳐 소임을 해온 이영임님. 가정열린법회 소임을 시작으로 하여 저녁 팀장까지, 10년간 안 해본 소임이 없을 정도라고 하십니다. 이번에는 불사를 하며 온몸과 마음을 바쳐 소임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 소임을 맡으며 올라온 솔직한 마음들을 함께 만나러 가보시죠~

개원법회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네번째)
▲ 개원법회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네번째)

나의 말이 나에게로 돌아와

거제법당은 참여하는 사람에 비해 공간이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저녁의 경우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하니 공간이 많이 부족하였습니다. 활동가들이 수련하려고 해도 수련할 공간도 없고, 행사를 하려고 해도 공간이 없었습니다. 어떨 때는 3~4명이 앉으면 꽉 차는 조그마한 공양간에서 정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불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습니다. 8차에는 그런 좁은 공간 속에서도 봄 불교대학, 봄 경전, 가을 불교대학, 가을 경전반, 청년 불교대학 모두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9차에 책임팀장을 맡게 되면서 활동가들의 공간 부족을 이유로 들어 가을불교대학을 접었습니다. 경남지부에서 다시 가을 불교대학을 열라는 권유가 들어왔지만, 확장 불사가 시작되면 그 때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제가 던진 말이 저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2년 전부터 경남지부에서 불사 권유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선뜻하겠다는 마음을 내지 못했습니다. 불사는 간절히 원하긴 했지만, 불사는 부총무나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 저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법당 안에서 마음이 합쳐지지 않아 1년 가까이 불사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불사 권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 공간이 필요해서 불사를 누군가는 해야 하는 데 할 사람이 없어 못 한다면 그 할 사람이 나라면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나?!”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의 그 말은 제가 그간 정토회에 빠져서 정토회의 일을 많이 해서 얻은 과보의 말이었습니다. 남편의 절대적인 허락이 필요했기에 계속 설득을 했고, 어느 날 남편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9-10차 회향식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2번째)
▲ 9-10차 회향식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2번째)

나와 같길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외로움

 불사를 담당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일을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제 법당의 모든 분에게 동의를 받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동의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경남지부와 논의 하여 향자재 법사님을 보시고 작년 4월 간담회와 발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바로 법당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간담회와 발대식이 이뤄졌는데도, 불사를 반대하는 대중들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습니다. 또한 도반들이 확장불사 발원 정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의무적으로 하고, 법당 자리 찾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도 같이 공감을 하고 함께 움직이지 않음에 대한 외로움이었습니다. 법당을 찾아 헤매던 더운 어느 여름날에는 ‘모두의 법당인데, 왜 나와 몇몇 사람만 하고 있어?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법당이 필요하다 생각하시고, 같이 법당을 찾아주시는 도반들이 있었기에 법당자리를 계속 찾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내 생각과 다른 것이 순리이구나

하지만 정토회의 법당 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봤을 땐 너무 좋은 자리라고 생각을 하고 불사팀을 모시고 보여드렸는데, 법당 자리가 아니라는 말을 매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지부 국장님과 불사팀은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부를 때면 언제나 한걸음에 달려와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점차 우리가 놓쳤던 부분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건물의 어떤 부분을 봐야하는지 노하우도 점점 쌓여 갔습니다. 하지만 보여주는 것마다 계속 반려를 당했고, 150여 건물을 다 돌아보아도 이제 더 이상 보여줄 건물이 없었을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또 올라왔습니다. 저녁부에서 아름다운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일감 나누기를 할 때 봉사자가 불사팀에도 들어오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한 도반이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너무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그 도반은 아픈 다리를 이끌고 3일 동안 하루에 3시간씩 걸어서 법당자리를 찾으셨습니다. 비록 제가 본 건물과 90%는 겹쳤지만,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고, 감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고, 법당 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길을 가다가 안 보이던 현수막을 보고 찾아갔더니, 그 자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평수가 조금 작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곳도 보기로 약속이 되어있었지만, 그곳만 보고 불사팀에 요청해서 봐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보시고는 드디어 “바로 여기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까다로운 정토회의 불사 승인이 나기까지 또 2개월이 걸렸습니다. 그 도중 다른 사람과 계약이 될까 봐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정토회와 건물 주인 사이에서 조율하는 것 역시 참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건물 주인이 우리를 믿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건물 주인은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셨고, 우리는 정토회의 독실한 수행자인지라 통했는지도 모릅니다. 저와 같이 온 도반을 본 순간 마음이 편안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토회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신다고 이야기하시면서 공간을 내어줘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승인이 났고,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너무 좋아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승인이 나도 계약을 바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정토회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고, 공사 전날부터 월세가 적용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바로 계약을 요구했고, 불사팀과 함께 주인을 간곡히 설득하여 잘 해결되었습니다. 건물 주인이 많이 양보를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그 분이 보살님이셨습니다. 

확장 불대 발대식에서(두번째 줄 왼쪽 첫번째)
▲ 확장 불대 발대식에서(두번째 줄 왼쪽 첫번째)

내 일이자 내 일이 아닌 것

새 법당 청소 후 도반들과 함께(앞 줄 왼쪽에서 첫번째)
▲ 새 법당 청소 후 도반들과 함께(앞 줄 왼쪽에서 첫번째)

드디어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집안일, 직장일, 저녁책임팀장 소임, 불사까지 해내느라 참 바빴습니다. 집안에서도 저의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도와주지 않자 아이들의 힐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불사가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사기간 2주 동안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공사에만 집중을 하였습니다. 도반들은 편리한 공간구조를 만들어 달라는 이런 저런 요구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불사팀에서는 “법당은 편리하게 쓰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 아니라 수행하기 위해 만드는 공간이기에, 불편함 속에서 수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사팀의 말씀을 도반들에게 전달 할 때, 내 업식대로 말하고 행동해서인지 갈등이 생겼습니다. 법당 도반들은 도반대로 저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저 역시 서운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이 법당이 내 법당인가? 나도 몸이 좋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하는 이렇게 불사를 위해 애쓰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반이 “보살님, 본인 법당 불사한다고 생각하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세를 주면 되잖아요.”하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때 한 생각에 사로잡혔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래, 왜 남을 위해 불사한다고 애쓰고 있지? 이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인데. 그동안 내가 힘들다고 표현도 너무 많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서운한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렸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불사 후 300배 정진에서 도반들과 함께
▲ 불사 후 300배 정진에서 도반들과 함께

그렇게 이사까지 마치고 나니, 8년 전 처음 거제법당 불사하던 때도 생각이 나고, 대궐 같은 새 법당이 좋아보였습니다. 또한 새 법당에 재활용 가구를 많이 사용하여서 정토행자로서의 뿌듯함도 올라왔습니다. 어려운 일을 마쳤을 때 두려움을 이겨내고 해냈다는 큰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 제가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공사가 시작되자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마음을 모아 애써주신 도반들 덕분이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마음도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너무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모든 것을 쏟아 내고나니 몸이 지쳐 있었습니다. 또한 큰일을 끝낸 뒤의 허전한 마음과 도반들에 대한 서운함이 올라와 마음도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사 후 100일간 화합정진을 해야 하는데, 새벽마다 법당에 정진하러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던 중, ‘불사를 다 해놓고 내가 이렇게 할 일인가?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지, 뒤로 물러나는 사람은 아니잖아.’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불사를 담당했던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는 마음으로 돌이키기도 했습니다. ‘혹시 지금 정진을 주도해나가는 부총무님의 마음이, 내가 불사 발원 정진을 주도할 때 동참하지 않는 사람에게 올라왔던 나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매일은 못하더라도 함께 해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 수행이구나

행자의 하루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 행자의 하루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정진을 통해서 불사 과정에서 올라오는 마음을 본 것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때는 호수같이 잔잔한 마음이었고, 어떤 때는 꽃놀이를 하듯 들뜨는 마음이었고, 어떤 때는 풍랑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치는 마음이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누가 뭐라 해도 제가 가야할 길을 간다는 꿋꿋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 어떤 마음보다 제일 괴롭고 힘들었던 것은 서운한 마음이었는데, 그동안 쌓인 서운함은 전적으로 제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상대가 저에게 맞춰주길 바랬는데, 맞추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생긴 섭섭함이었습니다. 또한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생긴 저에 대한 아쉬움도, 그 서운함 안에 함께 있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은 남이 준 것이 아닌 제가 만들어낸 제 몫이라는 것을 압니다. 또한 이 서운한 마음이 하루아침에 극복되지 않을 것 역시 압니다. 꾸준히 수행 정진하여 시간이 지나다보면, 서운한 마음이 서서히 녹아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그동안 혹사시킨 저의 몸과 마음을 챙겨 더욱 건강한 저로 거듭나겠습니다.  이 모두가 불사에 함께 몸과 마음을 함께 해주신 도반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영임 보살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때로는 분별심에 사로잡혀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때로는 서운한 마음에 슬피 우는 평범한 사람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과 자유를 위하여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또 일어서는 수행자라는 것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눈물 나도록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도 이영임 보살님처럼 넘어지면 또 일어나 저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걸어가기로 다짐합니다.  

글_박경진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거제법당) 
편집_서지영(홍보국 편집팀)

전체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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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택

깨장후 10년만에 소식을 들을수있어서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2020-07-15 17:50:34

법자재

수고많으셨어요.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20-06-12 00:25:51

세명화 고명주

불사 과정동안 올라오는 생생한 마음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혼자 애쓰고 있는거 같을 때 섭섭한 마음 올라오는데, 그 마음에 끌려가시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시는 모습 인상깊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이 속히 재 충전 되시기를 ᆢ

2020-06-11 12: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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