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초법당
봉사하면서 도반을 보니 제가 비추어집니다

작년 여름, 가을불교대학 졸업식에서 학사생활 1년 동안의 변화를 담담히 이야기 하던 노현석 님. 다시 1년이 되는 시점에 그의 수행담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괴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어떤 관점의 변화가 생겼는지 그때 나누었던 수행담을 지금의 마음과 함께 전달 합니다.

지난 일기장을 꺼내듯

남산 순례에서
▲ 남산 순례에서

 2018년 봄 아내의 이혼 요구로 받은 충격과 자괴감을 감내하기 어려워 방황하다가 우연히 정토회와의 인연을 맺게 되었고, 부처님 법과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원망도 줄고, 괴로움으로부터도 많이 자유로와질 수 있었습니다. 평소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소극적 성격인지라 불교대학 수업에서 나의 변화를 되돌아보는 소감을 발표할 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치부와도 같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다 털어놓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이혼을 바라보는 나의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경전반 학생이 되어 1년여 흐른 지금, 학창시절 쓴 일기장을 꺼내 보듯 그 때의 소감문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 제가 정토회를 찾게 된 이유는 아내의 청천벽력 같은 이혼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감성적인 사람이라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아내의 마음은 이미 돌처럼 굳어져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완강한 아내의 마음을 알고 나니 저 또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불면증으로 약에 의존해 살았습니다. 갑상선 항진증과 중증의 급성 아토피로 괴로워하고, 얼굴 전체에 퍼진 대상포진으로 실명할 뻔한 아내를 1년 넘게 수발했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제가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삶만 중요하게 여기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제게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은 작년에 썼던 글의 일부분입니다. 당시에는 제가 겪은 일을 담담하게 얘기한다고 쓴 글이었지만 지금 보니 이제는 아이 엄마라고 부르는 아내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을 어떻게든 글 속에 녹여두려 했던 흔적이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고 말하려 했음에도 밑바닥에 흐르는 서운한 감정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몰래몰래 숨겨서라도 드러내려 했던 내 자신이 보이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꼭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아내의 입장을 좀 더 감싸는 마음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 속 얼음이 자연스레 녹아내려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아니면 “부처님 가르침을 좀 더 배운 수행자가 되어서 달라진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경전반 생활 1년을 반추해 보았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교대학 1년은 감당하기 어려웠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배웠습니다. 뭐든지 가르침대로 행하려 하였고, 앞만 보고 달린 시간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없음을 알고 상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라는 가르침을 배우면서 아내와의 관계도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저 자신의 괴로움도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또 수업 중 나누기를 통해 도반 얘기를 들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도반과 함께 봉사하며 나누는 삶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1년의 배움으로 불도를 이해하고 내 삶을 확 바꾸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부처님 제자들은 부처님 법문 한 번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데 우리는 왜 이리도 안되지?”라며 도반들과 나누는 농담이 사실은 저 자신의 진지한 고민거리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경전반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불교대학 학생이 될 때 보다는 한결 가벼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자유로와지기”에 더해서 “자리이타”의 삶을 실천해보고 싶다는 서원을 세우고 호기롭게 시작했습니다. 이 전까지는 보상 없이 내 시간과 노력을 남에게 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럴 이유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건조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 학생일 때 작은 봉사 일에 자주 참여해 보았는데, 거기서 얻는 긍정적 에너지를 체감하게 되면서 이런 서원을 세우고 행하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해보고 배우며 나아갑니다

9-10차 입재식 거사공연팀 준비 중
▲ 9-10차 입재식 거사공연팀 준비 중

정토회의 일은 수행자 스스로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에 봉사자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 참 많았습니다. 경전반 학생이 되었으니 불교대학 학생일 때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봉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27년을 다닌 해운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라면 수행에 집중해 볼 수 있는 지금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편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9월에 처음 받은 소임이 9-10차 입재식의 거사공연팀 참여였습니다. “아~ 이건 정말 아닌데....나한테 너무 버거운 소임이다.” 연습에 투입되는 할 시간은 둘째 치고, 그 많은 대중 앞에서 몸을 써서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에 일어나는 분별심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습니다.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아프다고 말하고 빠질까?”를 수십 번을 고민하다 결국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연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몸치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보려 엄청난 열정을 쏟아 붓는 법당 도반님들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작품 만들어 보려고 아이디어 짜내면서 묵묵히 반복연습을 하는 도반님들을 보면서 제 마음을 완전히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공연은 즐겁게 잘 마쳤고, 이 과정에서 저는 다시 한 번 도반을 거울 삼아서 내가 일으킨 분별심이 지레 겁 먹고 스스로 친 울타리에 불과하였구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저는 자신감 회복이라는 큰 소득도 얻었습니다.

다음으로 받은 소임이 11월 세종대 대강연 도서판매 꼭지였습니다. 학생으로서 받은 큰 소임이라 판매가 제대로 안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그만큼 컸습니다. 준비기간도 길었고, 에너지도 많이 들어갔습니다. 행사장에서 씩씩한 목소리로 자신있게 외치며 홍보하자던 현재 서초법당 총무님의 주문에 책을 높이 쳐들고 소리 지르던 20여 분의 판매부스 봉사 도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정말 모두 대단한 분들이었습니다.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얻어가는 것이구나

9-10차 입재식 거사공연팀(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 9-10차 입재식 거사공연팀(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입재식 때 입구 환영봉사(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 입재식 때 입구 환영봉사(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그 즈음에 곧 본부회관이 완공될 것이라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선 소방안전관리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알아봤더니 소방안전원에서 5일간의 전일교육을 받은 후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하여 바로 등록했습니다. 저는 문과생이라 내용 습득이 쉽지 않아서 5일 동안 잠을 설치며 공부했지만 첫 시험은 보기 좋게 낙방했습니다. “2020년부터 커트라인이 70점으로 올라가면 정말 어려워지는데...”라며 낙심하던 차에 다행히 응시자 결원이 생겨 12월 20일 재응시하였고 아슬아슬하게 1급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제 평생 처음 가져보는 자격이어서 기쁨도 컸지만, 본부회관 운영에 잘 쓰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본부회관 인수 및 관리 TFT에서 봉사하며 많은 전문가 봉사자들을 지원하고, 12월 본부회관 인수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원만한 운영을 위한 계획을 차근 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소중한 봉사소임 중의 하나는 토요가을불대의 조장소임입니다. 이제 거의 마무리 돼 가는데, 아직은 제가 처음 불교대학 입학할 때의 마음이 어땠었는지 생생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에 봉사하는데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게 아쉽지만 조금씩 바뀌어 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저의 초심을 잃지 않는데 많은 도움을 얻습니다. 또 이곳에 참여하는 봉사자들간의 훌륭한 팀웍을 경험하고 배우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도반이라는 거울을 통해

불교대학 수업 후 도반들과 함께(왼쪽 두번째가 글쓴이)
▲ 불교대학 수업 후 도반들과 함께(왼쪽 두번째가 글쓴이)

이제 제 사업을 시작하게 되어 낼 수 있는 시간이 줄었지만, 크고 작은 일 가리지 않고 기회가 되면 다 참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 것을 내어준다는 마음이 아니라 얻어 간다는 마음으로 행하고자 합니다. 모든 봉사 과정에서 많은 도반들과 함께 하게 되는데 이분들은 모두 훌륭한 수행자의 거울이었습니다. 

물론 의견이 맞지 않거나, 가는 방식의 차이로 마찰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것을 풀어나가는 것 또한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바꾸는 수행으로 받아들이니 편해집니다. 봉사하면서 끊임없이 이런 주고 얻는 수행을 지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창문 커버를 열어 두는 이유가 많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승객들이 외부상황에 깨어있도록 하는 것, 특히 엔진상태를 모니터링 하게 하여 화재 같은 긴급사태에 신속히 대응하고자 함이라 합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함께 깨어있으면서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고, 수행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정진하는 봉사를 한다면, 저의 수행은 더욱 단단하고 야물게 이뤄질 것이라 믿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20년 2월 본부회관 인수 준비모임에서(우측에서 두번째)
▲ 20년 2월 본부회관 인수 준비모임에서(우측에서 두번째)

이렇게 봉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 엄마에 대한 얘기를 덜 하게 됩니다. 제가 집중하는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물론 혼자 생활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 자주 떠오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20여년의 인연이라는 게 탁 내려놓고 한 번에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좋은 기억과 추억만 간직하려 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어주고자 합니다. 집착은 이제 내려 놓고, 작년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혼의 아픔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는 과거 얘기보다는 지금 얘기를, 아픔 보다는 희망에 대한 얘기를 그리고 원망보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얘기하는 정토수행자가 되고싶습니다. 아이 엄마 뿐만 아니라 제 주위 모든 도반들께 고마워하며 봉사하는 수행자가 되고싶습니다. 나무아미 타불~

 

글_노현석(서초법당)
편집_서지영(홍보국 편집담당)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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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산등

본부 인수팀에서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응원할게요 거사님~!

2020-07-03 11:50:07

김선형

거사님 ~ 봉사소임으로 바쁘신데 가을불교대학 조장 끝까지 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거사님을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

2020-06-06 16:47:44

지혜성

원망을 부처님 가르침을 얘기하는 희망으로 승화시켜가시는 거사님, 존경합니다. 멋지십니다.!

2020-06-06 07: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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