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순천법당
마음에 감사함이 들어서자 괴로움이 물러나네요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조금씩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공감이 가기도 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또 서로 보고 배우며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으로 나아가고 있는 순천법당 부총무 소임을 맡고 있는 장혜옥 님의 수행담을 소개 합니다.

JTS 거리 모금 활동 중인 장혜옥님
▲ JTS 거리 모금 활동 중인 장혜옥님

나의 결혼 이야기

막상 수행 사례담을 전하려 하니 벌써 먼 옛날 일처럼 여겨지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힘들고 고단할 때 나를 잡아주고 일으켜준 것이 부처님의 법이요, 수행이였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전하겠습니다. 다들 삶이 고단하고 힘드셨겠지만 저도 결혼 후 험한 산을 굽이굽이 넘었습니다. 결혼 후 10년은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았습니다. 늦은 나이에 남편을 만났는데 어머니는 제가 결혼을 안할까봐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 라며 서둘러 결혼시켰습니다. 저 역시 효도랍시고 결혼을 쉽게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와 가치관과 생활습관이 달라도 너무 달랐고, 돈에 대한 경제관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돈을 벌면 바로 다 써버렸고, 도박까지 하느라 밤새고 들어온 날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돈이 없다고 돈 좀 달라고 하면 “은행가서 대출받아 쓰면 되지 왜 고민하느냐”고 하는 사람이 였습니다. 돈이 있든 없든 일단 쓰고 보자 였던 남편은 IMF때 다니던 지방 신문사가 통폐합되어 실직을 했습니다. 실직한 남편이 안되 보여서, 남편의 기를 살린답시고 제가 결혼 전 모아둔 적금과 공무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을 다 끌어 모아 컴퓨터 대리점, 석재사업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도록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번번이 허세만 부렸고, 일도 잘 안되니 다시 도박도 하고, 저 모르게 사채를 써서 빚 독촉이 왔고 그 빚이 온전히 제 몫으로 남았습니다. 남편은 오히려 큰소리 치며, 제게 돈을 더 주지 않으니까 일이 안된 것이라며 비빌 언덕 타령을 하였습니다.

바라는 마음이 만들었던 원망

즐거운 마음으로 불대 홍보 활동 중인 장혜옥 님
▲ 즐거운 마음으로 불대 홍보 활동 중인 장혜옥 님

저는 현모양처가 되어 남편을 잘 출세시켜서 의지처로 저의 행복을 삼으려고 물심양면 모든 것을 다해 도와주었는데 결혼 10년 동안 제게 남은 것은 빚더미와 배신감 뿐이였습니다. 그때서야 제가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러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지겠다는 생각에 일만 벌리고 책임감 없는 남편의 요구를 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과 전쟁이 시작되어 엄청 싸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화병, 우울증으로 매일 베개가 축축히 젖을 정도로 울다 잠들었고, 잠을 자면서 이대로 영원히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도 했습니다. 남편을 보기만 해도 원망이 올라왔고, 웬수 그 자체였습니다. 자식들 앞에서도 부끄러운지 모르고 감정의 날을 세우며 큰 소리로 시도 때도 없이 싸웠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분노로 가득찬 걸어다니는 다이너마이트였습니다. 그로 인한 과보를 지금 받고 있는지 두 아들은 결혼에 관심도 없고, 부모에 대한 존경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갑작스럽게 두 아들 모두 공황장애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나도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도반들과 함께 불교대학 홍보 중인 장혜옥 님(오른쪽에서 두번째)
▲ 도반들과 함께 불교대학 홍보 중인 장혜옥 님(오른쪽에서 두번째)

카톨릭 신자로 모태신앙을 가졌던 저는 불교신자이셨던 시어머님 49재를 지내며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고 불경의 뜻도 궁금했습니다. 마침 그때 법륜스님의 통일 강연회와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사물을 이렇게 푼다면 최소한 괴로울 일은 없겠구나 싶은 생각에 정토회를 찾았습니다.

2016년 봄불대 수업을 들으며 기복 신앙으로만 알던 불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깊이가 있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내용에 탄복하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면서 부처님이 너무 좋아 인도성지순례를 바로 신청했습니다. 16박 17일의 고단한 일정이였지만 신으로서의 부처님이 아닌 인간적인 부처님,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 살아계신 부처님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처님이 제 가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의 명쾌한 설명과 청정한 수행자로서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감동받았습니다.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와서는 정토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이곳에서 수행하고 봉사하며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뭐든 그냥 해보리라 생각하였고 천일결사 8-9차부터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저녁에 늦게 자던 습관으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힘들었지만,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던 과거의 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참회 기도를 하였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지만, 간사한게 사람 마음인지, 좀 살만 하다 싶으면 금세 기도 시간이 늦어지고, 대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지금은 5시에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수행을 통해 제 괴로움의 원인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삶이 무지개 빛일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남편 덕을 보려는 욕심과 의지심이 컸습니다. 결국 쥐가 쥐약을 먹은 셈이었습니다.

나를 돌이키면 놓아지는 괴로움

도반들과 함께 공양을 마치고(중앙)
▲ 도반들과 함께 공양을 마치고(중앙)

두 아들의 공황장애도 제겐 엄청난 충격과 아픔이 였기에, 옛날 같으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며 하늘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자책 했겠지만, 수행하면서 ‘이 과보를 달게 받겠습니다’ 라는 마음을 내게 되니 담담해지고 편안해졌습니다. 수행이 나를 많이 변하게 했지만 가장 늦게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바로 남편에 대한 관점 바꾸기였습니다. 제 속에는 내가 옳다, 내가 맞다,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꽉 차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이것만은 바꿀 수 없다 했던 것들이 법문 듣고, 수행하고 봉사하면서 조금씩 바뀌어갔습니다. 부정적 관점이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얼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 내려갔습니다.

삶은 가끔씩 저를 시험하듯 시련과 고통을 주지만 옛날처럼 울고불고하며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담담하게 ‘아, 나에게 어떤 큰 깨달음을 주려고 오는 것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이 수행하면서 얻은 가장 큰 힘입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알아가는 나

가을불대 담당, 사회활동팀장, 저녁책임팀장을 하면서 좀더 나를 잘 보게 되었고, 마음이 넓어졌습니다. 나의 업식이 잘 보이는 것만큼 처음엔 괴로움도 짜증도 많았지만 지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입니다. 앞으로도 참회하면서 안되는 것은 또 해보고 안되면 연구해서 또 해보겠습니다. 인도성지순례와 역사기행, 불교대 수업을 통해서 ‘배운 것은 행동으로 옮기자’였습니다. ‘생각은 사상누각과 같다. 이젠 실천이다’ 이제 머리만 쓰지 말고 좀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해보자 다짐하던 차에 총무님으로부터 거리모금과 복지, 통일을 담당하는 사회활동팀장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선선히 받았습니다. 결과보다는 수행적 관점에서 마음을 보고,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 정토회에서 진정한 수행공동체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수행과 봉사를 하면서 좋아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남편과 다툼이 많이 줄었습니다. 법당 일로 바쁘다보니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싸울 틈이 없습니다. 퇴근 후 법당 가서 봉사하고 늦게 집에 들어가니 반찬도 부실하고 청소를 못할 때가 많다보니 가족에게 미안해 도리어 더 잘하게 되고 부지런해졌습니다.

동북아 기행에서 압록강을 앞에두고 도반들과 함께(중앙)
▲ 동북아 기행에서 압록강을 앞에두고 도반들과 함께(중앙)

지금 마음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경제권과 시댁제사를 지내고 있는 내가 갑이라 여겨 큰소리 빵빵치며 교만하게 살았는데 이젠 남편과 가족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하며 숙이고 겸손해졌습니다. 가족과도 많이 화목해졌습니다. 늦게 오는 저를 이해해 주려고 하고 가끔씩 지지도 해줍니다. 남편이 어쩌다 피곤해 보이는 저를 보고 왜 힘들게 고생을 사서하느냐 묻습니다. 그럼 저는 “가정만 돌보고 살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큰것 같다”며 웃으며 자뻑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농담하는 지금의 저를 보며 ‘세상에는 좋고 나쁜 것이 정말 없구나’를 느낍니다. 그때는 왜 내게 이런 시련과 고통이 왔나 하늘을 원망했는데 지금은 이 좋은 부처님 법을 만나려고 그랬구나 싶어 감사히 여깁니다. 저를 여기까지 인도한 남편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는 아둔해지고, 기억력도 안 좋고, 눈도 침침해집니다. 이젠 뭘 하겠습니까? 명품을 들어도 표가 안 나는 이 나이에 몸이라도 건강할 때 많이 움직여 저 같은 중생들을 행복해지는 이 길로 인연 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돈이 안 생겨도 행복합니다. 많은 돈 이상의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거리모금하면서 천원의 가치도 알게 되었고, 어려운 이의 마음도 헤아려졌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사랑 활동가가 되었고, 일과 수행을 통해 나를 돌이켜보는 작은 힘도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인생의 남은 시간을 수행 보시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글_장혜옥(순천법당)
편집_서지영(홍보국 편집팀)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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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학

앞으로는 행복한날만 있을거예요 ~~^^

2020-06-01 10:27:13

견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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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0 01:13:00

노춘민

ㅎㅎㅎ행복한 웃음이 납니다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2020-05-29 15: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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