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제천법당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정토회!

어린시절 제때 치료 받지 못해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권위적인 남편과 가르치려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힘겹게 보낸 결혼생활. 정토회를 만나 "예"하며 시작한 법당 소임이 제 삶을 바꿨습니다. 여러분을 제 삶에 초대합니다.

환한 모습의 최인숙 님
▲ 환한 모습의 최인숙 님

치료 시기를 놓친 눈질환

제가 3살때,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홀로 된 어머니는 3남매를 키우느라 상상하기도 힘든 고생을 했습니다. 저는 6살 무렵 눈이 가렵고, 콕콕 찌르는 통증으로 많이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새벽같이 일을 나가서 늦은 밤 돌아왔기에 제가 아픈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치료 시기를 놓쳐 한쪽 눈은 각막혼탁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고, 다른 한쪽은 각막에 줄이 그어진 상태로 평생 살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익숙해서 별문제 없이 살았는데, 50세가 넘으니 좀 불편합니다. 안경이나 시술로 교정될 수 없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그냥 서운한 정도였습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아직 사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이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결혼생활

직장생활로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시골 청년에게 반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습니다. 결혼의 로망을 꿈꿔볼 새도 없이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남편은 가부장적인 데다 권위적이며 의처증까지 있었습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자주 다퉜고, 남편은 말로 안되면 폭언과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3형제 중에 막내인 저희가 모시게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가르치려는 시어머니에게 '여긴 내 집이고, 내가 주인'이라며, 참견받기를 거부했습니다. 무엇 하나 맞는 게 없는 고부간의 갈등과 남편의 폭언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지내야만 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쌓여만 가는 불행한 가정이었습니다.

삶이 피폐해질 무렵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절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습니다. 집안에 안 좋은 사정을 말하면 방편으로 부적을 써주는 맞춤형 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비방이라도 하면 뭔가 좋아질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무렵 지인을 통해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최인숙 님이 찾던 스승, 법륜스님과 함께(?)
▲ 최인숙 님이 찾던 스승, 법륜스님과 함께(?)

내가 찾던 스승을 만났으나, 정토회를 떠나다

법륜스님의 법문을 처음 듣는 순간, 무릎을 10번도 더 쳤습니다. 드디어 제가 찾던 스님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법륜스님 법문을 들어보라고 꽤 설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비디오 테이프가 있을 당시 지인들을 집으로 불러 지금의 행복학교와 비슷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법륜스님 법문은 좋은데, 자유롭게 다니던 습관이 있다보니 정토회가 불편해졌습니다. 융통성 없이 원칙만 내세우는 활동가들에게 분별심도 올라왔습니다. 빈 그릇 운동, 일회용 사용 안 하기 등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데 그때는 편안함을 더 찾았습니다. 불교대학을 마치고 경전반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 뒤에 정토회를 떠났습니다.

다시 돌아온 정토회

정토회를 떠나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워하고 원망하며 알게 모르게 지은 어리석은 일들이 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진할 때, 정토회가 떠올랐습니다. 5년만에 다시 돌아온 정토회. 타향살이를 끝내고 고향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낯설지 않았고 정겨웠습니다. 그동안 잘 있어 준 제천법당 활동가들도 정말 고마웠습니다.

수행법회에 다시 나갔고, 남편의 억지 때문에 갈 엄두도 못 냈던 <깨달음의 장>에도 다녀왔습니다. 이혼을 각오하고 말했더니, 너무도 쉽게 허락하는 남편이 어찌나 고마운지 가벼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깨달음의 장> 4박 5일은 그동안 고집하고 오만했던 모든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비로소 혼자가 되어보니,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출가자가 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인 최인숙 님(왼쪽 첫번째)
▲ JTS 거리모금 중인 최인숙 님(왼쪽 첫번째)

봉사 소임을 통해 하심(下心)을 배우다

법당생활을 어느 정도 했을 때, 봉사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뭔지도 모르고 덥석 받은 게 천일결사 담당과 저녁 수행법회 담당이었습니다. 취합부터 모둠 나누기, 봉사 소임 꾸려나가기 등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자활팀장과 자주 소통하며 도움을 받았습니다. 큰 소임인 만큼 모든 활동가와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하심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천일결사 입재부터 회향까지 백일동안 정토회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하나하나 놓칠세라, 세밀하게 잘 도와준 도반들 덕분에 긴장 속에서도 잘 꾸려갈 수 있었습니다.

3년 봉사 소임을 하는 동안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제가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내려놓기가 전보다 많이 되고,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혼 위기까지 갔던 남편은 법당 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는데 시선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제가 법당 가는 날은 늦어도 기다리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합니다.

지금 돌아보니 봉사 소임을 받을 때 "예"하고 받은 것이 가장 잘한 일 같습니다. 앞으로도 모자이크 붓다로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글_장영근 희망리포터(제천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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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수행 응원드립니다.

2020-03-18 10:18:54

김애자

반가운 소식이네요

2020-03-18 08:30:48

굴뚝연기

밝고 너무 예쁘신데,눈이 안타깝네요ㅜ
서울에 있는 큰병원 안과나,김안과처럼 안과전문병원엘 한번 다녀가보세요~요즘은 의술이 나날이 발전하니 ㆍ뭔가 길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의사선생님 잘 만나시면 한번 수술해볼 수도 있지않을까요?암튼 화이팅하시구요~~눈에도 기적이 일어나시길 바래봅니다^^*

2020-03-18 15: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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