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오렌지카운티법당
욕심으로 하는 수행에서 벗어나, 가볍게 시작합니다!

반항심 가득한 눈빛으로 엄마에게 주스를 쏟아붓던 딸의 모습에 놀라 모든 소임을 내려두고 천천히 딸과의 소통으로 진짜 행복을 찾아낸 정토행자가 있습니다. 이 절, 저 절 헤매다가 ‘소임 부자’가 되기까지, 미국 서부 오렌지카운티법당 전은영 님의 여정을 함께 들어봅니다.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기웃거리던 내가....

제가 정토회와 처음 인연 맺은 것은 2011년 오렌지카운티 새 법당 개원 후 처음 개설된 불교대학에서입니다. 그전까지 저는 외로운 해외 생활을 구실삼아 이 절, 저 절을 기웃거리기만 했습니다. 법륜스님 말씀대로 지난 45년 동안 정말,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을 다니면서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은영 님
▲ 전은영 님

그러다가 우연히 2011년 법륜스님의 강연회에서 제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저를 교회로 자꾸 인도하려고 합니다. 저도 동생을 불교로 전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은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은 듯하면서도 명쾌했습니다. 본인이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스님 말씀에 저는 그날로 오렌지카운티 정토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이 개설되려면 최소한 다섯 명이 되어야 한다 해서 그 당시 다른 절에 함께 다니던 도반 네 분을 설득해 함께 오렌지카운티법당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불교대학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옥죄는 '수행'에 대한 집착

그때부터 저는 매주 법비에 흠뻑 젖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불교대학을 진행해 주시던 교실 담당자분이 몸이 불편함에도 매주 5~6일씩 법당에 나와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며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어느새 정토에 살포시 발을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경전반까지 다 마친 후에는 불법을 다 배웠다고 한껏 자만하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천일결사 7-6차에 입재를 하고 저도 이제 ‘수행’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기도를 해야 잘될 것 같은 생각과 기도를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강박관념으로 시작된 제 기도는 ‘수행’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늘 스스로를 옥죄었습니다

8차 마지막 해에 오렌지카운티 부총무 대행소임을 맡으면서 제가 욕심으로 정토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윗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비굴하고 주변 사람에게는 잘난 티를 내고 싶었습니다. 사랑을 받고 싶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했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껄떡거리는 나의 업식을 보았습니다. 이런 업식으로 덜컥 맡게 된 부총무 대행소임은 나에게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선물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영어 통역 법회’에서
▲ ‘가족과 함께 하는 영어 통역 법회’에서

깊은 굴 속으로 숨어들다

겉으로는 법당을 잘 꾸려가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다음 9차에도 부총무를 계속해서 맡게 될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8살 딸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학원으로만 돌리면서 아이는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서원이 집착이 된 줄도 모르고, 그 집착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줄도 모르며 오로지 잘 보이고 싶다는 집착으로 저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딸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 채 외면한 엄마로 인해 아이는 마음의 병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의 아이패드를 뺏으며 야단을 쳤더니 반항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저에게 레몬 주스를 붓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아이의 차가운 표정이 너무나 낯설고 무서워 화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 사건 이후, 저는 수행법회에 참석하는 다른 도반들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행복하고 자유롭지 못한데 무슨 전법을 한단 말인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부총무 소임을 내려놓고, 맡았던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도 내려놓으며 깊은 굴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나는 불법을 만나 어떤 사람이 된 것인가?’ ‘중독된 사람처럼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된 것 말고 과연 나는 행복한가? 나는 자유로운가?’ 그러면서 아침마다 하던 수행도 그만두었습니다. 모두 싫었습니다. 이제껏 해왔던 강박관념으로는 아무리 수행해도 해탈은 못 할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 쉬면서 딸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딸아이에게 나는 잔소리쟁이일 뿐이었다는 것과 내가 엄청나게 심한 강박증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서 돌아섰던 아이의 신뢰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욕심과 강박으로 똘똘 뭉쳐진 마음으로 법당 일을 하던 모습과 그런 제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를 생각하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 수업중(가운데)
▲ 온라인 불교대학 수업중(가운데)

다만 주어지는 대로

이후 법당을 자주 못 나가던 상황에서 온라인 불교대학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소임은 컴퓨터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딸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할 수 있어 온라인 봉사가 제게는 꼭 맞는 옷 같았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 1기생들이 수료를 하고, 온라인 불교대학 2기생들이 졸업예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온라인 전법팀장의 소임도 맡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법당이 없어서 법회와 불교대학에 목말라 있던 많은 사람을 불법과 만나도록 도우며 저 역시 그분들처럼 하루하루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져 갔습니다.

3년 동안 온라인 봉사를 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함께 일하며 늘 수행자로서 모범을 보여주시는 김순영 국제국장님의 한결같은 마음자세는 제게 큰 가르침입니다. 이제는 저도 감히 집착과 욕심이 아닌 다만 주어지는 대로 행하는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 사랑해!

시간은 그냥 흐르는 법이 없듯, 그동안 제가 애쓴 시간은 딸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도록 해주었습니다. 딸이 아이패드와 핸드폰을 많이 사용하더라도 저는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속박에서 벗어나서인지 요즘은 딸도 편안해 보입니다. 제게 미술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며 자신감을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저는 물론이고 남편도 감사해합니다. 아이가 원치 않는 충고는 접어두고, 오직 아이의 괴로운 마음을 충분히 들어주기만 하니 요즘 아이는 ‘엄마, 사랑해!’라고 자주 말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뜻대로 되었다 기뻐하기보다는 무상(無常)을 마음에 되새깁니다.

딸 아이와 미술관 관람 중
▲ 딸 아이와 미술관 관람 중

가볍게 시작합니다!

다시 시작한 오렌지카운티법당 목요일 수행법회 진행자, 불교대학 담당자, 국제국 온라인 전법팀장의 소임을 해나가며 생각보다 많이 바빠졌습니다. 어떤 때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과 국제국 회의가 겹쳐 차 안에서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또다시 조급해지는 저를 봅니다. 그러면서 쫒기듯 하는 제 모습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일과 수행의 통일’을 실감합니다.

얼마 전, 목요법회 도반들, 그리고 경전반 졸업생들과 각자 봉사소임 한가지씩을 나누었습니다. 가볍게 내어놓은 제 마음이 통했는지 모든 분이 기꺼이 한 가지 이상의 봉사 소임을 맡아주었습니다. 법당에서 봉사 소임을 맡으니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느껴진다는 도반들의 고백(?)에 저는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모자이크 붓다의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온라인 전법팀장 소임을 하면서 그동안 불법에 목마름을 느끼던 많은 분과 온라인에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국에서 온라인 전법을 준비하면서 제2차 만일의 외국인 전법에 대한 가능성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10차년에 새로 맡게 된 국제정토회 총무 소임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잠시 잠깐 힘들기도 했지만, 그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안고 저는 또 가볍게 시작합니다.

나의 집착이 국제정토회 미래를 향한 서원으로 승화하기를 간절히 발원하면서 말입니다.

정리_백지연 희망리포터(엘에이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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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심

지혜롭게 대처하고
또다시 법회담당자로 활동하시는 도반님의 글이 감동입니다.

2020-03-04 12:04:11

금강장

엄마의 자리, 수행자의 자리.. 균형을 찾아가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3-03 09:39:37

유주영

전은영 보살님, 나누기 읽으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항상 에너지 넘치게 활동하시는 모습에 감동했었는데 보살님의 진솔한 수행담을 읽으며 이해되고 공감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국제정토회 총무 소임은 부담이 되는 부분도 있으시겠지만 옆에서 봤을때는 참 잘 맞으실것 같아요. 함께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2020-03-03 00: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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