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거제법당
두 발을 담그다

거제 법당에는 적극적으로 법당 일에 참여하여 함께 하는 도반들에게 힘을 주는 비타민 같은, 양명선 님이 있습니다. 환한 미소로 법당을 밝게 해 삶의 시련과 고난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지하듯 정토회에 기대어 고난을 이기고 생명을 이어온 양명선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10년전 부터의 인연

 
시집올 때부터 원래 시댁이 불교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남편이 자꾸 자기는 절에 팔았다며 절에 다니면 좋겠다고 해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시어머니도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기복적인 신앙생활과 굿을 자주 했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굿 뒷바라지 하러 자꾸 오라고 하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때는 그게 너무 싫었습니다. 당시 남편이 트럭으로 골재 운반하는 일을 했는데 시어머님이 늘 길거리에서 굿을 했어요. 그때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저렇게 굿을 자주 하나' 싶었습니다. 이제 제가 시어머니 나이가 되어 보니, '남편이 운전하는데 사고 나지 말라고 길에서 그렇게 하셨구나!' 이해가 됩니다.

젊을 때는 시댁 식구들과 갈등이 많아서 반발심에 성당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까지 다 세례를 받았는데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옥포로 이사 오면서 성당도 쉬게 되었습니다. 근데 남편이 자꾸 절에 가자고 하니 '일단 절에 가더라도 뭔가를 좀 알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불교대학을 찾았습니다. 여기저기 공부할 곳을 찾는 와중에 마침 법륜스님이 거제에서 하시는 강연을 듣고 난후 정토불교대학 입학생을 모집한다는 말에 등록했습니다. 거제에 법당이 생기기 전이라 가정 법회에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법륜스님이 어떤 분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때가 오십 대 초반이니까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는 벌써 십 년이 넘었네요.
 

법륜스님 거제 행복 강연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양명선 님
▲ 법륜스님 거제 행복 강연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양명선 님

 
 

이런 세상이 있구나!

 
처음에는 불교가 뭔지도 모르고 절에 가면 형식적으로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삼배나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너무 좋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을 했습니다. "상을 짓지 말고 모든 것을 나 자신에게 돌려서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와! 이런 세상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참 환희를 느꼈습니다.

그전까지 참 사는 게 힘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집에 남편이 맏이이다 보니 밑으로 시누이 다섯과 남동생을 다 거두어야 했습니다. 남편은 ‘마누라는 또 얻으면 되지만 동생들과 어머니는 자신이 다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빚을 내서 동생들을 다 시집보내고 하다 보니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마음이 아주 편해졌고, 남편을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고픔을 이해하게 해준 지난날

 
불교대학 입학하기 전에는 아주 많이 힘들었죠. 유류 파동 때 원래 살던 지역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일 년 동안 일이 없어 가지고 있던 패물 다 팔았습니다. 그래도 양식이 떨어지면 친정어머니를 찾아가서 도움도 받고 하며 겨우 연명했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대우조선에 취업이 되어 먼저 거제도로 가고 혼자 남아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쌀독에 쌀이 다 떨어진 걸 시어머니가 보게 되었습니다. 양식 가지고 오겠다고 가더니 함흥차사예요. 알고 보니 시누이 집에서 하루 자고는 그냥 시댁으로 돌아갔더라고요. 그때의 서운한 맘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이 굶고 있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싶었지요.

그 이후에 그냥 남편 따라 무턱대고 거제로 왔습니다. 거제에 와서도 시누이들 시집보내며 빚진 걸 갚아야했습니다. 그 당시 월급이 17만 원이었는데, 이것저것 다 떼고 겨우 2만 원으로 한 달 생활을 했지요. 보답을 받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렇게 힘들게 살며 돈을 보냈는데 시누이들이 알아주질 않으니까 참 많이 서운했습니다.

도저히 생활이 안 돼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어려서 업고 걸리고 다닐 수가 없어 아이들을 집에 가둬두고 생선을 팔러 다녔습니다. 정작 아이들은 기억도 못 하는데 저에게는 아이들 어렸을 때의 일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JTS 거리 모금은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거리 모금 할 때마다 옛날 우리 애들 생각이 나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아직도 거리에서 JTS 멘트를 할 때면 울컥해요. 그래도 지나고 보니 옛날에 그렇게 고생한 게 오히려 복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제가 그런 배고픈 심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2019년 여름 JTS 거리 모금 활동 -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양명선 님
▲ 2019년 여름 JTS 거리 모금 활동 -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양명선 님

힘든 시기 만난 정토회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다는 절박한 맘으로 공장도 다니고 외판사원도 하며 악착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겨우 먹고살 만해지는가 했더니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집안에 우환이 한꺼번에 닥쳤지요. 딸이 대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간호를 하다가 저도 몸에 이상이 생겨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암이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도 경추를 다쳐 팔이 저려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딸이 퇴원한 바로 다음 날 제가 수술을 하고 남편도 수술했죠. 그래서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저 집은 완전 풍비박산 났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정토회를 만나니 ‘아,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었지요. 의지할 곳 없이 고통스러운 마음에 기댈 곳이 생기니 ‘아, 여기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 내가 어리석어 일어난 일이구나

 
수업마다 울었지요. 제가 너무 많이 우니까 불교대학 담당이 빨리 〈깨달음의 장〉을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수업하던 사람 중에 제가 먼저 〈깨달음의 장〉을 갔습니다. '두고 보자.'며 악착같이 보란 듯이 살겠다고 이를 악물고 살았는데 불교대학과 〈깨달음의 장〉을 통해 짐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며 ‘다 내가 어리석어 일어난 일이구나’하며 조금씩 알아갈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가서도 정말 많이 울었지만 다녀오고 나서 비로소 툭하면 울던 제가 눈물이 많이 줄었습니다.

남편이 시어머니께 '도대체 왜 양식을 가지고 온다고 하고 오지 않았는지' 물어봤더니, 속상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그 대답을 듣고 원망하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쌀을 사 먹지 굶고 앉아 있으니 시어머니가 보기에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제가 시어머니 나이가 되고 보니, 입장 바꿔서 제 며느리가 그렇게 굶고 앉아 있다면 저도 참 속상하고 답답할 것 같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이 저를 살려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살아야겠다

 
집안이 편한 날이 없어서 죽으려고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살다 정토불교대학을 만나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완전 다른 세상이었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가족관계가 좋아졌다는 겁니다. 제가 정토불교대학 다니는 걸 저보다 남편이 더 좋아했습니다. 문경에 바라지하러 갈 때도 남편이 늘 태워다 주고 태우러 오곤 했어요. 새벽기도 할 때도 제가 피곤해서 혹시 못 일어나면 깨워주고,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늘 데려다주며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지요.

마음이 아주 편해지고 좋아서 경전반을 바로 가려고 했는데 그다음 해 경전반이 열리지를 않아서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사이 남편이 아주 아프게 되었습니다. 마음도 편해지고 조금 살 만하니까 덜컥 병이 왔습니다. 선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일 년이 채 안 되어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떠나니 마음이 아주 힘들고 다시 우울증이 왔어요. 남편을 먼저 보냈다는 사실이 참 이상하게도 너무 부끄럽게 느껴져서 밖에 나올 수가 없었어요.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면 뭐 하나 싶어서 죽고 싶은 마음만 들고, 남편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남편 보내고 나서 전에 겪었던 우울증 증세가 다시 나타나는 걸 보고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제 발로 다시 법당을 찾았습니다. '나를 살려줄 곳은 법당밖에 없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 법당을 찾아갔습니다.

새로운 세상

그 일을 계기로 경전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전반 다니며 우울증이 치료되고, 살아봤자 뭐하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줄고 좋아졌습니다. 제가 좋아지니까 아이들도 불교대학에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불교대학의 인연을 지어줬습니다. 두 아이들은 모두 거제에 자리를 잡고 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살고 있는데, 우애가 좋습니다. 주말에는 늘 함께 캠핑도 가고 놀러도 가고, 그날 저녁에는 모닥불 피워 놓고 모여 앉아서 같이 나누기를 합니다. 우리 아들이 먼저 모여서 나누기하자고 하는데 그게 참 좋습니다.

엄마가 정토회에 가서 맘 편하고 행복하게 사니까 아이들이 그 모습이 좋다고 합니다. 엄마가 참 많이 변했다고 해요. 옛날 같았으면 집에 조그만 일만 생겨도 자식들을 들볶으며 “그것도 안보고 뭐 하냐, 그것도 신경도 안 쓰고 뭐 하냐”고 팔짝팔짝 뛰며 못살게 굴었을 텐데, 요즘은 부탁해서 '해주면 고맙고 안 되면 다른 곳에 부탁해서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별로 짜증이 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도 많이 들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도 많이 냈습니다. 근데 제 마음을 가만히 살펴보니 ‘너희가 오늘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게 다 누구 덕인데......’ 하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이제는 그런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그냥 자식들이 건강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엄마가 행복해하고 얼굴이 많이 밝아 보여서 자기들도 너무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정토회에 안 나왔다면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2019년 11월 저녁부 집전 교육 봉사 활동 - 앞줄 가운데가 양명선 님
▲ 2019년 11월 저녁부 집전 교육 봉사 활동 - 앞줄 가운데가 양명선 님

물들다

 
지금까지 정토회와 함께 한 시간을 돌이켜보니 어느 한순간 제가 확 변한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변하며 물들어 간 것 같아요. 전에는 저에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여차하면 나가면 되지 뭐’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천일결사 9차 회향식을 계기로 이제는 ‘바로 여기다! 온전히 두 발을 다 들여놔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 더디게 변하는 사람이긴 한데, 그래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게 정말 감사하지요.

정토회를 만나고 제 마음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고 참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요즘도 한 번씩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금방 돌이키게 되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전전긍긍하며 신경을 썼는데, 법문을 자꾸 듣다 보니까 내가 이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고 탁 놓아버리게 돼요.

봉사! 즐거움과 보람

제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늘 정토회가 있었습니다. 정말 정토회가 없었으면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정토회와의 인연이 제겐 참으로 각별하고 소중해요. 그런데도 경전반을 할 때까지 봉사한다는 생각은 못 했지요. 제 사정이 너무 힘들다 보니 그냥 한 쪽 발만 들여놓고 제 마음 편한 것만 생각하고 저 자신만 생각했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고 목탁 치는 법을 배워서 불교대학 집전 봉사를 하고, 수행법회 하면서 JTS 거리 모금 담당자로 활동하면서 비로소 봉사의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리모금을 할 때는 제가 이 일을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먹을 음식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고, 집전 교육을 하면서 교육생들이 빠른 속도로 실력이 느는 걸 보면 환희심과 보람을 느껴서 좋습니다. 여러 사람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좋고 사람들이 성장하는 모습 보는 것도 좋아서 봉사하는 게 참 즐겁습니다.

새해에는 불교대학이나 경전반에서 봉사하면서 학생들과 같이 법문을 다시 들어보고 싶습니다. 봉사하면서 법문을 듣는 것과 학생으로서 공부하며 듣는 건 차이가 크게 나는것 같습니다. 전에 이런 법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이 새롭게 들립니다. 앞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고 거리 모금도 더 열심히 나가 스승님과 정토회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요.


 
양명선 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오랜 세월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지나온 분에게서 느껴지는 지혜와 여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쪽 무릎을 인공관절 수술을 해서 불편한 상황에서도 더욱더 수행 정진하고 봉사하려고 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게 오래도록 정진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기를 바랍니다.
 

글_김형옥 희망리포터(마산정토회 거제법당)
편집_조미경(경남지부)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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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행

감동적인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정토회와 함께 행복한 새날 되시길 기원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2020-02-18 05:55:07

AllesGute

성불하십시요(__)

2020-02-10 06:55:31

덕승

울다가 웃다가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0-02-09 23: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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