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울진법당
삶의 헛헛함을 정토회로 메우다

사철 푸른 바다를 따라 7번 국도를 달리면 그 한가운데 울진이 있습니다. 울진법당은 소규모 법회로 시작했지만, 2018년 5월 개원해 지금은 어엿한 법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울진법당이 자리하기까지 산증인이자 울진법당의 기둥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장흥중, 남효순 님입니다.

울진법당 경전반 청강생으로 참여한 장흥중 님(왼쪽)과 담당자인 남효순 님(오른쪽)
▲ 울진법당 경전반 청강생으로 참여한 장흥중 님(왼쪽)과 담당자인 남효순 님(오른쪽)

직장 후배와 상사로 만나 지금은 정토회 도반이 된 장흥중 님과 남효순 님은 아내들도 함께 수행하는 수행자 가족입니다. 어떻게 정토회와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울진법회가 울진법당이 되기까지 도반으로 함께한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장흥중 님입니다.

마을행사 때 장흥중 님
▲ 마을행사 때 장흥중 님

출가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

제가 농담 삼아 이름에 '중'이 들어가서 '절하고 인연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스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2 때 불국사에 출가하고 싶다고 전화했었습니다. 전화받은 분이 "몇 살이에요?" 하더군요. 18살, 고2 라고 하니 "졸업하고 오세요" 하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사춘기 방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그 미련이 남아 20대 초반에도 출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팔공산 갓바위도 기웃거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살다 보니 가정도 이루게 됐지만 사실 지금도 미련이 있습니다. 정토회와의 인연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응어리가 풀린 <깨달음의 장>

스님과의 인연이 있어 스님들과 다른 절에도 가고 하며 지냈는데 불교대학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곳은 그런 공부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라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정토회 불교대학 학생모집'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법륜스님 이름도 몰랐습니다. 친구가 즉문즉설을 보면서 같이 듣자고 해도 별 관심이 없어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수막을 보고는 바로 전화했습니다.

그렇게 2014년에 봄불교대학에 입학했는데, 그때는 법당이 따로 없고 포항 정토회에서 지원을 나와서 불교대학 수업을 열었습니다. 12명이 입학했는데 6월이 되니 저 혼자 남았습니다. 졸업이 3명까지 가능할 때였습니다. 8월에 여름휴가를 내서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아버지에 대한 응어리가 확 풀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통일의병대회에서 남효순 님(왼쪽에서 두 번째)과, 장흥중 님(옆)
▲ 통일의병대회에서 남효순 님(왼쪽에서 두 번째)과, 장흥중 님(옆)

일주일을 편안하게 한 불교대학

하지만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나오는 날 담당자한테서 수업이 폐강되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엄청 섭섭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일 년 쉬면서 예전처럼 술 마시고 하는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안 되겠다 싶기도 하고 공부가 너무 하고 싶기도 해서 '강릉으로 가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영덕에 법당이 생겼습니다.

영덕에 법당이 생겨서 2016년에 다시 시작했지만, 울진에서 영덕까지 거리도 퇴근 후 달려가기에는 만만찮은 거리입니다. 외향적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편인데도, 불교대학 공부를 하루 하고 나면 일주일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2017년에 울진에 재개설된 가을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때 아내도 불교대학에 흔쾌히 입학을 했습니다. 저는 이후 영덕에서 경전반까지 마쳤습니다.

울진법당 불사 봉사 중 장흥중 님(가운데)과, 남효순 님(오른쪽)
▲ 울진법당 불사 봉사 중 장흥중 님(가운데)과, 남효순 님(오른쪽)

집에서 이어간 법회

한창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하던 2017년 10월경에 갑자기 건물주로부터 사무실을 더 사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불교대학 수업을 전교조 울진지부 사무실을 빌려서 하고 있었는데 건물주가 전교조 사무실을 빼라고 한 거였습니다. 또다시 불교대학이 중지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 온 거였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어머님이 요양원에 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희한하게 건물주가 요구한 때에 요양원에 딱 맞춰 자리가 났습니다.

거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가 있게 된 겁니다. 아내와 의논했더니 또 아내가 선뜻 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에서 불교대학 수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게 수업을 하고 수행법회도 했는데 도반들이 의기투합해서 ‘법당 불사를 하자!’고 하여 작년 2018년 5월 2일 울진법당을 개원했습니다.

일상에서 더 바라는 점은 없습니다. 출가에 대한 미련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번 겨울에 인도 성지순례를 하는데 출가자의 마음으로 다녀오고 싶습니다. 백일출가도 고려 중입니다.

초파일 등달기 봉사 중인 남효순 님
▲ 초파일 등달기 봉사 중인 남효순 님

남효순 님은 장흥중 님의 직장 상사였습니다. 다음은 직장상사에서 도반이 된 남효순 님입니다.

해결 되지 않는 허한 마음, 불교대학에서 배우다

당시 같은 직장에 다니던 장흥중 님의 권유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음이 점점 헛헛해졌습니다. 값비싼 술을 마셔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그 헛헛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장흥중 님이 "허한 것도 욕심이니 불교대학에 와서 배워보소!"라고 해서 인연이 되었습니다. 저의 불법 배움의 길도 험난했습니다. 2016년 전교조 사무실에서 가을불교대학이 생겨 졸업은 했지만, 경전반 진학 인원이 모자라 개설이 안 되어 한 해를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에야 경전반이 생겨 올해 여름 경전반 졸업을 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할 때에는 뭔가가 절실했습니다. 도저히 헛헛함이 해결이 안 되어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학재단 같은 활동이나 여러 단체 활동이 있지만 그런 건 생색내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든든하게 차오르는 걸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장흥중 님이 권하니 부딪쳐보자는 심정으로 망설임 없이 선택했습니다. 같이 차 타고 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옳거니 뭔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제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두 명이 끝까지 남아서 졸업했습니다. 제가 무사히 졸업하게 된 것은 순전히 도반 덕이었습니다. 당시에 포항정토회에서 지원 나와서 불교대학 수업을 이어갔는데, 출발은 여러 명이었지만 중간에 학생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포항에서 여기로 오기가 쉽지 않은데도 매주 지원을 나왔습니다. 저도 만약에 중단을 한다면 그분도 끝낼 것 같아서 ‘끝까지 한번 가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나누기를 둘이서 할 때가 많았는데 불교대학 담당자가 제가 오히려 담임 같고 본인이 학생 같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이 제 성격과 잘 맞았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남효순 님(가운데)과, 아내(오른쪽에서 두 번째)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남효순 님(가운데)과, 아내(오른쪽에서 두 번째)

내가 먼저 바뀌니 주변과도 편안해져

공부하면서도 가정에서의 마찰은 간간이 있었고, 작년 4월까지 이혼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툭탁거리면서도 공부는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술 먹는 패턴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일주일에 4번씩 먹다가 지금은 한 번 정도로 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지금 경전반 학생이고 제가 경전반 담당자입니다. 이제는 전혀 티격태격하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좀 서먹한 관계였는데 지금은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한테 훈계조로만 말하니 아이들이 아빠하고는 이야기가 안 통한다고 피했습니다. 그런 첫째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야간 복무 중인데 제가 한 번씩 가면 "어, 효순이 왔어?"라며 농담도 합니다. 거리가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고3인 둘째 아이가 게임을 해도 큰 걱정을 안 합니다. 불교대학에서 공부한 대로 "건강하게 운동도 하고 밥도 좀 먹어가면서 하라"고 합니다. 그런 게 다 정리가 됐습니다. 처가와 직장에서의 관계도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제 목소리 톤이 낮아지는 게 그 증거입니다.

JTS 거리모금 중 장흥중 님(맨 왼쪽)과, 남효순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 JTS 거리모금 중 장흥중 님(맨 왼쪽)과, 남효순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우리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 우리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그런데 아직 해결 못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말하는 건 괜찮은데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이야기하기가 좀 떨립니다. 어릴 때는 회장도 하고 활동적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발표를 한다거나 하면 긴장이 되고 말이 어그러집니다. 제 차례가 되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정토회는 활동이 많아 약간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활동 덕분에 탐진치 삼독에서 조금이나마 헤어나오려고 합니다. 고와 락의 이치를 꿰뚫어 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이 보여 행복합니다.


본인들이 행복해진 것은 물론이고, 그 어렵다는 배우자에게도 전법해서 두 부부가 나란히 도반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고 고맙습니다. 두 분 모두 기복을 떠나 수행 보시 봉사하는 정토회가 너무나 잘 맞는다고 하는 천상 정토인들 이었습니다.

글_하상의 희망리포터(포항정토회 양덕법당)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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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지

이런저런 일이 생겨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수행하시는 모습...멋있습니다 ^^ 그러니 당연히 보살님들도 감명받으셨겠지요~

2019-11-27 14:09:21

세명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니 거의 세상을 다 얻은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저도기분이 좋습니다

2019-11-14 03:12:36

성준

울진법당에 불대 신청을 하고 취소를 했었습니다
지금은 정관법당에서 불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때 친절히 전화 받아주시던 분 일지도 몰라 이렇게 글을 남김니다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2019-11-13 22: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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