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하노이법회
작은 걸음걸음으로 역사를 새로 쓰다

11월 하노이의 하늘은 파랗고 날은 ‘바삭바삭’ 합니다. 마치 한국의 초가을 같습니다. 바로 수행자의 계절입니다. 스님이 늘 말씀하시는 ‘바삭바삭’ 쌀과자 같은 수행자가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니 역사를 새로 쓰게 된 하노이법회 소식 전해 드립니다.

11월의 하노이는 하늘이 높고 파랗습니다.
▲ 11월의 하노이는 하늘이 높고 파랗습니다.

역사를 새로 쓰다

제목이 거창합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거창할까 궁금하실 텐데요, 해외에서는 작은 걸음걸음이 새로운 역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노이 법회는 해외 올해 1월부터 매달 JTS 거리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정기적인 거리 모금을 하는 것은 해외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한국에서는 매주 하는 JTS 거리 모금이 해외에서는 일년에 한두 번 하기도 어렵고, 지역에 따라서는 거리 모금이 사회적 여건에 따라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노이의 매달 하는 거리 모금은 놀라운 시도이며,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해외 정토회 JTS 거리모금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 되었습니다.

10월 거리모금: 경찰이 쫓아와서 30분 만에 철수했지만 표정은 밝습니다.
▲ 10월 거리모금: 경찰이 쫓아와서 30분 만에 철수했지만 표정은 밝습니다.

그냥 한번 해볼까?

올해 초, 사회활동담당을 맡고 있는 김경필 님이 ‘올해부터는 JTS 거리모금을 매달 했으면 좋겠다’라고 발심하였습니다. 좋은 의견이니 한번 해 보자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걱정이 한가득 올라왔습니다. 가뜩이나 없는 회원들 어떻게 불러 모으며, 그 쑥스러운 일을 매달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습니다. “매달 하자고 하면 회원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슬쩍 걱정을 흘렸지만, 김경필 님은 “혼자라도 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후 다른 분들도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1월 이후로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은 하노이에서 꼬박꼬박 거리 모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요즘 주로 모금활동을 하는 곳은 대표적 한인 밀집 지역인 미딩 송다 지역의 빅씨 마트 앞 입니다. 빅씨(Big C) 마트는 한국의 대형 마트와 같은 곳으로, 하노이 여행 오신 한국 분들이 한국에 가져갈 귀국 선물을 사기 위해 많이 들르는 곳이기도 하는 곳입니다. 현수막을 걸 적당한 나무도 있고, 매장을 오가는 현지인들도 많고, 한인들의 왕래도 잦아서 거리 모금하기에 아주 적당한 곳입니다.

저희가 처음부터 이 장소에서 모금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모금활동 장소로 정한 곳은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있는 대표적인 한인마트 앞이었습니다. 현수막 걸고 구호 몇 번 외치다가 금방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라는 경비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잔뜩 움츠러든 마음으로 길 건너편 한인 빵집 앞으로 장소를 옮겼는데, 거기서도 역시 제재를 받았습니다. 참담하고 울고 싶은 심정으로 제복 입은 사람을 피해서 자리를 잡다 보니 다른 노점상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막상 자리 잡고 보니 그곳이 명당이었습니다.

2월 한인마트 앞에서 거리 모금하는 모습: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였습니다.
▲ 2월 한인마트 앞에서 거리 모금하는 모습: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였습니다.

한국 사람이 베트남에서 모금활동을 한다는 것은?

이곳 베트남에서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소위 ‘갑’으로 삽니다. 갑질을 하는 줄도 모르고 갑으로 삽니다. 베트남에는 가게 앞에 종종 경비가 있습니다. 손님들이 타고 오는 오토바이를 관리하거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까지 수없이 상점을 드나들었지만 나는 손님이니까 푸른색 경비 옷을 입은 사람들이 허리 숙여 하는 인사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았고 대체로 신경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냥 풍경처럼 여겼던 경비들에게 막상 모금 활동을 하려고 아쉬운 소리를 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 너무도 어색했습니다. 그래도 모금활동 덕에 경비 일을 하시는 분들의 얼굴이 보였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가게 앞에서 모금 활동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가게 앞이 아닌 곳을 찾아 옮기면, 그곳에는 이미 자리잡고 있는 노점상이 있었습니다. 그제야 왜 하필 그 장소에 노점상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의 장사를 방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있는데, 그분들 역시 누구의 땅도 아닌 곳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저희가 와서 하는 모금 활동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달 가서 모금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걸어 놓은 현수막이 미끄러지려고 하면 다시 꽉 묶어 주기도 합니다. 거리 모금을 하지 않았으면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 연대감입니다.

9월 거리모금 모습: 다시 아이들이 함께하고, 현수막도 노점상분들의 도움으로 예쁘게 걸었습니다.
▲ 9월 거리모금 모습: 다시 아이들이 함께하고, 현수막도 노점상분들의 도움으로 예쁘게 걸었습니다.

모금활동을 할 때는, 한인들도 많이 참여하지만, 베트남 현지 분들이 많이 호응을 해 줍니다. 특히나 청소년들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베트남 사람들이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하며 밝게 웃으며 모금에 참여해 줄 때는 ‘한류가 이렇게 위력적이구나!’ 싶어서 아이돌 스타에게 새삼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은 따라 배운다

거리모금의 처음 컨셉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JTS 거리모금’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주자는 것이 큰 목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참여하던 아이들이 더운 여름이 되면서 날은 덥지, 별로 재미는 없지 하다 보니 한 명 두 명 안 하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모금활동에 참여 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어리석게도 모금활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저녁값을 더 줘보자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나오기는 했지만 마지못해 시간만 보내고 가려는 모습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자발적이면 놀이가 되고, 돈 받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노동이 된다.’더니 정말 그랬습니다.

6월 거리 모금 모습: 용돈 준다는 말에 마지 못해 ‘모금 노동’ 나온 아이들, 표정이 정말 심각합니다.
▲ 6월 거리 모금 모습: 용돈 준다는 말에 마지 못해 ‘모금 노동’ 나온 아이들, 표정이 정말 심각합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다음부터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하라고 하니 다음 모금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모금 통을 든 아이들을 앞세우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봐주는 것 같아서 덜 민망했는데, 어른들끼리 모금 통을 들고 있으니 분위기도 너무 썰렁하고 사람들도 별 관심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없으니, 마치 발가벗고 서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까지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 준다고 거리 모금을 하라고 했는데, ‘사실은 내가 아이들 뒤에 숨어서 나의 민망한 마음을 숨기려고 했었구나!’ ‘아이들에게 의지는 못 될망정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을 의지했구나!’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참여하든 안 하든 우리는 하기로 한 것은 한다.’라는 생각으로 모금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날이 다시 시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끼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다시 거리 모금에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할 것도 없이 어른들이 외치는 구호와 캠페인 송을 몇 번 따라 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구호와 캠페인 송을 주도합니다. 그것도 너무 재미있게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본보기라더니 이 역시 정말 그랬습니다.

7월 거리모금: 아이들이 정말 아무도 나오지 않아 어른들끼리만 거리모금을 했습니다.
▲ 7월 거리모금: 아이들이 정말 아무도 나오지 않아 어른들끼리만 거리모금을 했습니다.

거리모금이 쑥과 마늘입니다

곰을 사람으로 만든 것은 쑥과 마늘입니다. 하노이 법회의 쑥과 마늘은 거리모금입니다. 지난 열 달간 거리 모금이라는 쑥과 마늘을 꼬박꼬박 먹는 것이 어땠는지 거리모금에 참여한 도반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 “지난 열 달간 거리모금을 진행하면서, 남을 덜 의식하게 되어 자유로워 졌습니다. 기부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올라오면서 세상을 위해 잘 쓰일 수 있어 감사합니다.”

  • “매달 하는 모금활동이 이제 거의 일 년이 되어갑니다. 처음 거리로 나설 때 쭈뼛거리던 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감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앞에서 끌어주셔서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모금함에 보시하는 작은 행동으로 오히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나의 작은 힘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해나가겠습니다.”

  • “매달 하는 모금활동 덕분에 숙이는 연습 확실히 합니다. 쑥스럽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수월해졌습니다. 내가 특별할 게 없다는 '무아'의 마음을 익히니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제 수행이 세상에도 좋은 일이 된다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나날이 진화하는 거리 모금

처음에는 한국 사람만 대상으로 한 거리 모금이었습니다. 예상외로 현지 사람들의 참여가 많아지며 자연스레 베트남어 버전 홍보물도 준비가 되었습니다. 한국어로만 외치던 구호를 이제는 베트남어와 영어로도 외칩니다. 그렇게 안 외워지던 베트남어 구호가 이제는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것은 반복의 힘입니다. 처음에는 모깃소리로 겨우 하던 캠페인 송에 이제는 펄쩍 펄쩍 율동도 더해졌습니다. 이만하면 베트남법회가 역사를 다시 썼다 할 만하지요? 다음에는 베트남어 버전 캠페인 송을 능숙히 부르는 모습으로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베트남법회 화이팅입니다!

글_고명주 희망리포터(하노이법회)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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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향

대단하십니다.응원합니다
해외에서 적응하기도 어려운데
진정한 수행자 모습에 감동했어요~^^

2019-11-21 23:00:01

young yi yun

아이들 미소만큼 날씨도 맑고
푸른하늘 처럼 정토세상을 위해
다가가는 모습 감동입니다
화이팅!!!

2019-11-16 07:55:35

김혜진

기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생각은 해 볼 수 있더라도 실제로 꾸준히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려운 걸 해내내요. 하노이 멋져요!! ^^;;

2019-11-14 13: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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