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파리법회
입재식마다 국경을 넘는 파리정토법회의 두 도반 이야기

파리정토법회에는 매 입재식 마다 먼 길을 달려와 참석하는 도반이 두 분 있습니다. 스위스와 아일랜드에 살면서 파리법회와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는 이선화 님과 오민 님입니다. 이 두 분 덕에 파리법회 다른 도반들도 힘을 얻고, 백 일에 한 번 만날 때마다 더없이 기쁘고 반갑습니다. 두 분의 수행담 소개해 드립니다.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 거주 중이며, 유럽지구에서 시행된 온라인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는 이선화 님의 이야기입니다.

스위스 몽트뢰
▲ 스위스 몽트뢰

유튜브로 시작해 파리법회까지

아이들 키우는 게 힘이 들고, 화도 많이 내고, 신랑하고도 많이 싸우고, 스위스까지 와서 아이를 키워 주던 친정엄마하고도 힘들어서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러다 지인이 전에 언급한 법륜스님을 유튜브로 찾았습니다. 유튜브 법문을 들으면서 스스로 108배를 시작했고 내 업식을 돌아보며 참회했습니다.

2012년 가을, 법륜스님이 스위스 취리히에서 즉문즉설을 할 때 제 고민을 말씀드렸습니다. 2014년 유럽 순회 때는 암스테르담, 브뤼셀, 그리고 파리로 스님의 강연 일정을 쫓아 즉문즉설에 참석했습니다. 그렇게 파리정토법회와 인연이 되어 파리 법회 총무인 박지현 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지현 님은 제네바에서 오는 나에게 본인 집에서 자라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친정과도 같은 파리정토법회

파리정토법회는 저에게 친정과 같은 곳입니다. 언제나 친정엄마 같은 마음으로 챙겨주는 정갈한 밥상과 마음 통하는 도반들이 모인 곳입니다. 첫 연인과 같은 곳이죠. 그리고 제가 파리라는 도시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입재식마다 참석하고, 스님이 오면 작은 봉사를 함께 하는 그런 곳입니다.

천일결사와 나만의 기도문

언제 천일결사를 처음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초반보다 요즘은 절실함이 덜 해 기도를 빼먹기도 하지만, 겉껍데기를 벗는 날 수행만이 가져갈 귀중품인 걸 알아 평생 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정한 기도문이 있다면 “그냥 저항 없이 하자”는 것입니다. 정진하며 가장 힘든 부분이 모든 저항을 내려놓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있어 정토회 활동과 천일결사는 외적인 걸 내려놓고 끊임없이 내면을 여행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이 좋은 법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제게는 정토회가 미세하고 완벽한 체계를 갖춘 것 같아서 어느 곳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방랑아적 기질을 가진 제게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법사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시원하게 트여 참 좋습니다. 자유로운 방랑아적인 기질도 놓고 그냥 한다를 실천하는 것이 제 수행 과제라 그것을 체득하는 것이 제 평생 기도문입니다. 이 좋은 법이 세계로 퍼져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앞줄 가장 왼쪽 이선화 님
▲ 앞줄 가장 왼쪽 이선화 님

다음은 아일랜드 코크에 거주 중이며 한국과 프랑스 및 아일랜드에서 여러 활동에 참여해온 오민 님의 수행담입니다.

이 사이비(?)같은 집단은 뭐지?

나와 쌍둥이같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국에 잠시 돌아갔을 때 친구가 유튜브에서 즉문즉설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웬 스님이 나와 그냥 꺼버리려다 친구에 대한 예의로 한편은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슴 저 멀리서 툭 하는 무언가가 흔들렸습니다. 나처럼 종교인에게 거부감이 강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이건 뭘까? 대형 사이비는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유튜브에 있는 즉문즉설을 분류했습니다. 즉문즉설을 분류하면서 제 문제가 단순해지기 시작할 때, 친구에게 법륜스님을 보러 가자는 전화를 받았고, 충주 체육관에서 열린 7-7차 천일결사대회에 갔습니다. 조금 있으면 ‘법륜스님이 나뭇잎 타고 등장하시겠구나’ 싶은 느낌의 낯설고 거북한 자리였지만 친구와 대화 후 천일결사 입재를 했고 봉사도 시작했습니다.

나를 믿는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가 불러온 큰 변화

친구는 “누군가가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를 100일 동안 해볼래?’라고 스치듯 말할 때 무심히 ‘그래’라고 답하고, 100일 동안 새벽 5시 일어나 108배를 한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 사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겠지”라고 대답하자, 39년 평생 아침에 잠에서 벌떡 일어난 적 없는 나에게, 친구는 내 눈을 빤히 보며 “너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생각도 안 나지만 당시에는 괴로움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 단절에 얼이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때 즉문즉설을 분석하면서 문제가 너무나 간단해졌고, 내 이 깊은 괴로움이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나에게 그리 크게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서점에 가면 위대했거나 위대한 사람들은 차고 넘쳐났으니까요. 그런데 저 자신도 다시 못 일어난다고 당연히 생각하는 저를 믿는다는 친구의 그 말이 그때 제게는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친구의 그 말에 취해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목에 염주를 걸고 입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못 일어나니 밤새 놀다 새벽에 절하고 자며 백일동안 쓴 수행일지를 제출하고 끝내려고 간 다음 천일결사에서 저는 또 서초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다가 평화재단에서 한 달 동안 실무자들과 함께 서초법당에 살며 법륜스님과 한국을 방문하신 INEB 소속 스님들의 통역 자원봉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더블린 강연 총괄 당시, 남편과
▲ 2014년 더블린 강연 총괄 당시, 남편과

한국에서 파리로, 다시 아일랜드로

INEB 동남아 스님 방문 통역 봉사가 끝날때쯤 파리법회 총무 박지현 님이 한국에 와서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파리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파리정토회는 박지현 님과 그 외 도반들의 돈독한 마음나누기로 계속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아일랜드로 이사하게 되어 2014년에는 희망세상 만들기 더블린 강연 담당자 일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에펠탑 앞에서 이뤄진 평화시위와 홍대 거리에서 외국인에게 평화 협정을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제 삶의 한마디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입니다. 생각이 많아질 때 가만히 지켜보니 시간이나 공간에 갇혀 헛감정을 습관적으로 쓰는 것 같아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놓치기도 하지만 정토회란 큰 가지 아래에서 이천몇일 낙숫물을 맞으며 오늘이 온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은 달라진 게 뭐가 있나 싶지만, 시공에 대한 개념은 좀 성숙해 진 것 같습니다. 상대나 상황을 분석하는 습관이 아직도 강하게 있지만 동시에 제가 과연 맑은 마음으로 그것을 보고 있는가를 놓치는 와중에도 ‘아차차’ 하며 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요즘도 누가 뭘 시키면 안 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럴때는 그냥 그 마음을 바라봅니다. 지금 이 순간에 깨어서 말이지요.

뒷줄 오른쪽부터 오민 님, 이선화 님
▲ 뒷줄 오른쪽부터 오민 님, 이선화 님


두 도반이 나누어 준 마음속 이야기가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법회 때마다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백일에 한 번 입재식과 여러 행사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또 앞장서서 봉사하는 두 도반은 파리정토법회의 가족입니다. 앞으로도 소중한 인연 잘 이어나가기를 바랍니다.

글_최연희 희망리포터(파리법회)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

전체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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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겉껍데기를 벗는 날 수행만이 가져갈 귀중품이라는 말씀 정말 좋습니다~ 이선화 보살님 오민 보살님 모두 홧팅 ^^

2019-09-10 15:15:21

별자리

법륜스님이 나뭇잎을 타고 나타나실 차례라는 대목에서 그만 빵 터지고 말았네요.
멋진 수행담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09-10 04:20:18

지명화

오늘도 읽으며 마음에 담아 봅니다

2019-09-09 15: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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