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제천법당
모든 게 부처님 법 만나기 위한 디딤돌이었습니다

2018년 봄불교대학에 이어 지금은 경전반에 다니고 있는 민태금 님. 새벽예불 집전을 하는 중에 분노, 좌절, 원망으로 똘똘 뭉쳐져 웅크리며 떨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 후 변해가는 민태금 님의 수행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묘광법사님이 다음에 얼마나 변했나 본다고 직접 찍어준 사진
▲ 묘광법사님이 다음에 얼마나 변했나 본다고 직접 찍어준 사진

고단한 삶의 연속

육 남매 중에 막내로 외동딸이었던 나는, 술만 마시면 고함을 지르고 밥상을 엎고 부수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싫고 무서웠습니다. 철이 들면서, 삶이 고단해 보이는 어머니가 안쓰러웠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억누르며 지내다, 고3 때인가 아버지에게 대들었고 이런 힘든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일찍 사회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작게만 움츠리고 살아온 탓에 관계 맺음이 어려웠습니다.
10여 년의 직장 생활에 지쳐갈 무렵에 도피처가 필요한 나는 모두가 (심지어 무속인까지) 반대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모두 반대했지만 내 선택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오기가 발등을 찍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지만, 마음속에선 계속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혼인신고도 아이 출생신고도 7년 동안 하지 않았습니다. 시부모님은 당신 아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다 보니, 나에게 욕설과 폭언을 했습니다.
살아보겠다고 애써 보았지만, 결혼 생활 10여 년 만에 유방암이 찾아왔습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저를 본 딸이 “엄마 어디 여행 가요?”라고 말할 정도로 암이라는 사실보다는 잠시나마 집을 나올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항암 치료 8번, 방사선 치료 27번 그렇게 1년여의 투병 생활 중에도 가게와 살림은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힘겹게 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친정아버지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을 그렇게 풀었구나 하는 생각에 친정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벼랑 끝에서 잡은 줄이 사기였습니다

모든 게 당신 탓인 양 여기던 어머니는 돌아가시던 순간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의지처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지쳐 삶을 포기하고 정리할 때쯤에 달콤한 유혹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더 살아보라는 줄로 착각하고 잡아보니 사기였습니다. 펜션 매입 명목으로 1억여 원의 돈을 잃고 나니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스스로 구속하고 그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살았구나, 다만 남편은 핑계였구나, 그러면서 모든 것을 남편 탓이라고 원망하였구나 하는 것을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아이들이 그 동안 서운했던 점을 쏟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살아보려 애를 썼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니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아들이 어느 한순간 엄마가 사라질 것 같아 불안하다면서, 엄마는 이제 건강하니 그것 하나면 되지 않느냐 하면서 눈물을 쏟아 냈습니다.

입제식 때, 모둠원들과 함께 (아래 왼쪽에서 두번째가 민태금 님)
▲ 입제식 때, 모둠원들과 함께 (아래 왼쪽에서 두번째가 민태금 님)

정토불교대학을 만나다

복잡한 마음으로 방황하고 있을 때, “불교공부 한번 제대로 해봐, 그러면 삶이 바뀔 거야“라는 봄불교대학 홍보 글귀가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법당 주위 맴돌기를 여러 번, 그러던 어느 날 반려견이 가는 대로 가보니 법당이었습니다. 들어가 보라는 듯 쳐다보는 반려견, 그러나 또다시 돌아왔습니다. 답답한 행동을 보다 못한 아들이 다니다 많이 힘들면 그 때 그만두라면서 봄불교대학을 입학 신청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인기피증이 심해서 마음 나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리를 못 잡고 겉돌기만 하다 보니, 그만 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용기를 주던 선배 도반들과 지금까지도 카톡으로 좋은 글을 보내주고 응원해주는 친정 오라버니와 불교공부 한다고 시간을 배려해주는 직장 사장님, 그리고 핸드폰이 능숙하지 못한 엄마를 귀찮다고 안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아들,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정말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은 없다는 것을 또 배워갑니다.

나 자신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다

지난해 수행맛보기가 끝나고 계속 이어지는 새벽예불기도에서 조금씩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원망을 표현한 것을 서운해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니, 나는 그저 가정부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고집이 센지 몰랐습니다. 정말 내가 잘 난 줄 알고 살았습니다.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남편은 아내에게 그저 나 좀 봐달라는 떼쟁이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시부모님들께는 귀한 아들이니 그분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생각 돌이켜 알아차려지니 옆에 있는 반려견까지도 달라 보입니다.

엄마의 변화가 아직 적응이 안 된다면서도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는 아들을 보면서 그동안 불안하고 힘들어했을 아들에게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밖으로 자주 나가는 것이 싫어 가끔 짜증을 내지만 그래도 지켜봐 주는 남편과 혼자 멀리 떨어져서 가슴앓이하고 있을 딸에게도 머지않아 내 변화된 마음과 모습이 전해지리라 믿어 봅니다.

2019년 봄불대 홍보활동 중인 민태금님(가운데)
▲ 2019년 봄불대 홍보활동 중인 민태금님(가운데)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수행정진하겠습니다

새벽예불에 참석하는 도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하는 예불집전 경험은 나를 많이 성장하게 하였습니다. 한 달 집전하는 동안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들여다보던 중에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분노, 좌절, 원망으로 뭉쳐있는 내가 나를 공격해오던 그 순간, 초라하고 작디작은 또 하나의 나는 멀리서 웅크리고 떨고 있습니다. 그 한 시간이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새벽예불 도반들이 돌아가고 빈 법당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부처님께 엎드리고 또 엎드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다 토해낸 듯 홀가분하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모든 게 부처님 법 만나기 위한 디딤돌이었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그 모든 인연이 스승이었습니다.

지도법사님의 환하게 웃는 그 맑은 미소를 닮고 싶습니다. 남산순례 때 처음 잡아본 지도법사님의 손에서 받은 특별한 느낌이 너무 소중합니다. 흔들리고 넘어질 때마다 그것을 기억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수행정진 하라는 참뜻을 되새겨 봅니다. 이제는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글_장영근 희망리포터(제천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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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aTaeCJ

1

2023-11-15 23:22:27

보광화

보살님~~
이제 꽃길만 남았습니다!

2020-12-01 10:05:07

법안행

감동적인 글 눈물이 흐릅니다 절절하게 표현해 주신 희망리포터님도 감사합니다
다시 건강하게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보살님 응원합니다

2019-08-29 18: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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