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영통법당
다시 태어난다면
좀 더 빨리 정토회를 만나고 싶어요

78세, 적지 않은 나이와 오랜 관절염으로 다리가 많이 불편하지만, 입재식, JTS 거리모금, 수행법회, 통일의병, 행복학교 등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영통법당의 제일 큰 언니 조윤선 님의 잘 물든 단풍 같은 인생 이야기입니다.

 불교대학 홍보중인 조윤선 님
▲ 불교대학 홍보중인 조윤선 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어머니로 인한 열등감에 사로잡히다

어머니는 굉장한 엘리트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정부 지원을 받아서 일본 대학을 나오셨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프라이드가 대단하셨음에도 결혼 후에는 굉장히 엄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시고 집에만 계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스카이캐슬' 드라마처럼 자식들에게 집착하셨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본인보다 못한 것에 굉장히 속상해하고, 불만이셨습니다. 당신이 받은 상장들을 보여주면서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못하냐’ 하면서 혼을 많이 내셨습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어렸을 때부터 항상 기죽어서 살았고, 내성적이고 열등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은행에 다니셨으니 잘사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맨날 화내는 것도 이상하고, 기를 못 펴고 사는 어머니도 불쌍했습니다. 어린 제 눈에는 행복한 가정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제 마음속에는 ‘돈은 쓸 만큼만 있으면 되지. 돈이 많이 있어 봤자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펼치지 못한 것이 곪아 병이 되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어머니가 불쌍해서 나는 아버지처럼 무서운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울까?

아버지가 무섭고 집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중매로 남편을 만나 한 달 만에 결혼했습니다. 아버지와 정반대인 순한 성격이 좋을 것 같아 결혼했는데 남편은 자기주장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우유부단하며 말이 너무 없었습니다. 감정평가 일을 했던 남편은 출장이 잦았고 집에 오더라도 한밤중에 들어오니까 항상 외로웠습니다.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뭐 때문에 사나 싶은데, 연년생으로 아이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해서 낳아서 수유도 제대로 되지 않고 힘들기만 했습니다. 오죽하면 시어머니가 ‘너는 애 둘 키우면서 열 명 낳은 것처럼 힘들게 키우는구나’ 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 가니 체력이 다했는지 누워있으면 천정이 뱅글뱅글 돌고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도 치우고 할 일도 많은데 못 일어나서 병원에 입원 한 적도 있습니다. 혈압이 30-60까지 떨어지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우울증까지 왔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삶에 다른 문제도 없어서 괴로워할 이유가 없는데 왜 이렇게 괴롭나 싶었습니다. 그때는 남편이 먹는 거 밝히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너무 보기 싫어하면서 저 혼자 고상한척 하늘 위에 붕붕 떠서 살았습니다. 법륜스님 만나고 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저 혼자 잘났다고 막 떼쓴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남편과 함께
▲ 남편과 함께

71살에 정토회를 처음 만나 법당의 주인으로 나서다

주변 사람을 통해 정토회에 대해 알던 중, 길 가다가 ‘법륜스님과의 희망강연’ 포스터를 보고 한번 가봤습니다. 즉석에서 질문 하는데 바로 편안하게 답변을 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수원법당을 찾아가 불교대학에 등록 했습니다. 워낙 살아온 환경이 그렇다 보니까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수원법당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영통법당으로 옮기면서 소임을 맡아야만 나이를 핑계로 법당에 나가기 싫은 마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뭔가 해야 빠지지 않고 법당을 나가게 되지, 피곤하다며 한두 번 빠지게 되면 법당에 나가는 게 점점 어색해 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 모둠장, 공양간 담당 등 가리지 않고 소임을 맡아서 활동했고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법당에서 발생하는 재활용 쓰레기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나이 든 사람은 환영받기 힘든데, 다들 싫어하는 쓰레기 취합을 맡아서 하게 되니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꾸준히 법당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포장만 벗겨서 법당에 가지고 오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게 아니냐고 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요즘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이 매우 심각한데, 소소하지만 자꾸 뭔가 불편하게 함으로써 덜 먹게 되고 덜 쓰게 되어 결국 쓰레기도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JTS 거리모금에서, 오른쪽 빨간모자를 쓰신 조윤선 님
▲ JTS 거리모금에서, 오른쪽 빨간모자를 쓰신 조윤선 님

늦었지만, 지금도 좋다

어머니로 인한 열등감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각종 상담 프로그램을 자주 접했었습니다. 거기에 빠져서 돈 내고 집단상담이나 대화기법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청소년들을 직접 지도 하게 되고 관련된 길이 자꾸 열리더니 조금씩 돈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 활동을 하면서 나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머리로만 알았던 것들을 수행을 하면서 ‘이게 이렇게 하니까 저렇게 되는 거구나’ 하고 제대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머리로만 알았던 것들을 스님의 법문이나 경전을 통해 다시 마주하니 정말 조심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륜 스님을 알고 정토회를 만나게 되어 긍정적으로 제 자신을 보게 되고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보다 그래서 그렇구나 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마음먹으니 편안해집니다.
절하면서 수행을 시작 했을 때는 제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아 진짜로 정말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관절염 때문에 다리가 아파서 절을 못하게 되니까 실망스럽고 너무 속상했습니다. 지금은 절은 못 하지만 경전 독송하고 기도문도 읽고 명상 30분 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 때문에 <깨달음의장>, <나눔의 장>을 못 가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일찌감치 정토회를 만나서 봉사도 많이 하고 신나게 활동 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합니다. 나이가 이렇게나 많아 정토회를 부지런히 다니는 저를 보고 사람들이 속으로 욕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정토회를 만나서 이렇게 재미 붙이고 사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법당 정회원 모임에서, 둘째 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 법당 정회원 모임에서, 둘째 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이제야 비로소 내 인생을 살게 되다

40대 후반인 둘째 아들과 70이 넘은 여동생 둘도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들이랑 동생들 결혼 못 시킨 게 굉장히 큰 잘못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괴로움은 사실 제가 짓는 거지 마음을 비우면 그들은 그냥 잘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살까? 저렇게 살면 좋을 텐데’ 하면서 항상 남편 걱정, 아들 걱정, 맨날 남 걱정만 하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씀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수행을 하면서 진짜 마음을 비우니까 다들 아무 문제 없이 잘살고 있는 겁니다. 제가 지레 겁먹고 괜히 남 걱정만 하다가 제 인생이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평화협정 서명운동에서, 분홍모자 쓰신 조윤선 님
▲ 평화협정 서명운동에서, 분홍모자 쓰신 조윤선 님

정토회를 만나 꾸준히 수행을 하다 보니 깨어있게 되었습니다. 관점을 바꾸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느끼는 감정과 마음을 잘 살피게 되니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길 가다가 넘어져도 아프다고 짜증 내기 보다는 ‘이만하길 다행이다’라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돌리니 편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순간순간 깨어서 잡념 없이 지금 여기서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제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4월에 법륜스님과 함께 가는 용추계곡 나들이가 기대된다며 소녀처럼 활짝 웃으시는 조윤선 님을 바라보며 리포터의 마음에도 어느새 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퇴근 후 늦은 인터뷰에 커피로 졸음을 쫓으며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던 조윤선 님의 열정에 다시 한번 온 마음을 다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글_차미나 희망리포터(수원 영통법당)
편집_임도영(광주전라지부)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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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진솔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함께 소식전해 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1-01-07 06:21:23

정미선

나를 돌아보고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쉬어도 이제는 마음이 편할것 같습니다

2019-04-30 22:10:04

임두이

어머님 덕분에 감동스러운 마음이 올라옵니다. 따듯한 글 감사합니다

2019-04-30 0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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