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파주법당
어쩌다 정토행자 패밀리

오늘은 불교대학 입학한 인연으로 ‘어쩌다 정토행자’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천경기서부지부 일산정토회 파주법당 희망리포터 박상미, 바로 제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나처럼 한 발만 담근 채 투덜대며 가는 수행자도 있다. 그래도 행복하다’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2016년, 시어머니 덕분에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남편이 외아들인데, 혼자 멀리 떨어져 사는 시어머니께서 편찮으시거나 연락이 안 될 때마다 마음에 걸렸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나중에 못 움직이면 그 때 같이 살자 하셨지만, 미리 좋은 기억을 쌓아두지 않으면 병든 시어머니를 간호할 엄두도 나지 않을 것 같아 조금씩 합가 연습을 해보자고 제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가졌던 좋은 의도와는 달리 시어머니가 오실 때마다 갈등이 있었고, 그 일로 남편과 싸우는 일도 잦았습니다.

평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매일 들으며 지냈지만 정토회에 대해서는 그저 스님이 계시는 절 정도라고 생각했을 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힘들고 답답하니, 정토불교대학 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입학 신청을 하였습니다. 불교 공부를 하다보면 착한 며느리가 되거나, 다 버리고 뛰쳐나오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마친 지금 저는 ‘착한 며느리’는 결국 되지 못했고 대신 ‘어쩌다 정토행자’가 되어, 시어머니는 나를 정토회로 이끄신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라 믿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은 ‘엄마 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는, 내 옳다는 생각’

불교대학에 다닐 당시, 저는 유산 후 난임휴직 중이었는데 시험관 시술을 여러 번 받아도 임신은 되지 않았습니다. 휴직 전 직장생활도 지옥을 매일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정의롭고, 열심히 하는데 능력 없는 직원들이 날 모함하고 못살게 군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신해서 보란 듯이 당당하게 복직하고 싶었는데, 아무 성과 없이 복직하려니 밤새워 열심히 공부했는데 빵점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원하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반들이 여러 번 추천해도 미뤄왔던 <깨달음의장>에 갈 마음이 났습니다. <깨달음의장>을 통해, 엄마 되지 못한 슬픔보다 원하고 노력했던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데 대한 억울함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은 ‘엄마 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는, 내 옳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이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108배 기도를 시작했고 9-1차 천일결사에도 입재하였습니다. 정토회에 빚 갚는 심정으로 JTS 모금에도 나가 보고, 발심행자도 하고, 희망리포터 소임과 경전반 담당도 맡아 해보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제가 제일 자신없어하는 공양 꼭지장을 맡으라는 총무님의 말에 못한다는 말도 못하고 얼굴이 하얘지기도 했습니다. 소임을 수락할 때마다 5초 정도는 ‘예 하고 합니다’를 실천했다는 마음에 뿌듯했고, 소임 내내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탓을 하며 직장에서 업무 처리하듯 꾸역꾸역 했습니다. 지금은 불교대학 가을 저녁반 담당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데, 역시 미루다 미루다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해놓고 5초 동안만 뿌듯해 했습니다. 언젠가는 주어진 인연 따라 ‘예, 알겠습니다’하며 기꺼이 쓰이는 사람이 되기를 서원해 봅니다.

9-6차 입재식_왼쪽 중간 흰색 윗옷
▲ 9-6차 입재식_왼쪽 중간 흰색 윗옷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봉사 소임을 맡으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에 고마운 마음이 다시 듭니다. ‘정토회에 진 빚 얼른 갚아 버리고 편하게 살리라’ 늘 투덜거렸지만, 갚기는커녕 빚이 더 늘어난 기분입니다.
‘모두 내 아이입니다’ 외치며 인도 아이들을 위한 모금을 하는 것이 내 아이를 바라던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부처님 오신 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공양 준비를 하고, 이름 모를 영가들을 위한 천도재 준비를 돕는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JTS 봉사를 하면서 굶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심정이 이해가 되고, 내가 겪고 있는 난임은 별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살림을 못해서 시어머니 오시는 것도 겁내고 제사 음식 장만하는 것도 싫어하던 며느리인데, 백중 천도재에 참석하고 나니, 우리 집 제사 지내는 것에 대해 하기 싫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논리적으로 불평할 근거는 없어졌습니다.

JTS 모금_오른쪽에서 두 번째
▲ JTS 모금_오른쪽에서 두 번째

부처님 오신날 공연중_ 맨 오른쪽
▲ 부처님 오신날 공연중_ 맨 오른쪽

평화대회 참석_첫줄 오른쪽
▲ 평화대회 참석_첫줄 오른쪽

남편은 2017년 8월 <깨달음의장>을 다녀오고, 그 해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나와 같은 법당은 다니기 부담스럽다며 운정법당으로 등록했는데 지금은 경전반 학생이면서 담당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는 이웃에 사는 둘째 시누가 운정법당 불교대학에 등록하면서, 아침마다 수행하며 마음나누기하는 도반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시누이가 정토회에 다니니 주위 사람들은 모두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 마음이라더니,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 남편이 정토회를 다니지 않으면서, 적당히 하라고 할 때는 남편도 이 좋은 법 만나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이 정토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다 싶으니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러다 돈은 안 벌어오고 정토회 활동이 주가 되면 어떻게 하나’하는 마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적당히 좀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얼마전까지 정토회 활동을 시비하던 남편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나는 정토회 활동이 어떤지 아는데도 이렇게 불만이 생기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남편은 나보다 훨씬 불안하고 못마땅했겠구나, ‘내가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뭐라 한다’며 말도 안하고 아침 일찍 법당 갈 때 남편이 화를 내는 게 당연했구나, 그럴 만 했다 싶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면서 저절로 참회가 되었습니다.

9-6차 천일결사 입재식 _ 남편과 시누
▲ 9-6차 천일결사 입재식 _ 남편과 시누

전에는 내 인생이 파란만장한 신파극 같았는데 지금은 시트콤처럼 가볍습니다.

파주법당에는 활동한 지 오래되신 훌륭한 선배 도반들이 많습니다. 나는 주로 그 분들이 열심히 할 때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예요?’,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라며 이상해하는 축에 듭니다. 그런 제게 <행자의하루>에 수행담을 쓰라고 하니 처음에는 부끄럽고 막막했습니다. 매일 읽는 수행담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대단해 보여서, 그들과 비교하는 마음과 잘 써야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업식대로 투덜거리며 꾸역꾸역 다 쓰고 보니, 정토회 다닌 2년이 정리가 되어 지금 마음은 고맙고 가볍습니다. 정토회 다니기 전에는 제 인생이 파란만장한 신파극 같았는데 지금은 시트콤처럼 가볍습니다. 그리고, 2018년 가을 불교대학 파주법당 신입생들께, 저도 졸업했으니 꼭 졸업할 수 있다고 같이 졸업하자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불교대학 홍보중_맨오른쪽
▲ 불교대학 홍보중_맨오른쪽

임진각 통일기도 마치고_왼쪽에서 세번째
▲ 임진각 통일기도 마치고_왼쪽에서 세번째

글_박상미 희망리포터 (일산정토회 파주법당)
편집_ 한명수 (인천경기서부)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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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워주는 수행담이네요. 감사합니다.

2018-09-21 09:05:07

세명

제 인생이 파란만장한 신파극 같았는데 지금은 시트콤처럼 가볍습니다.
이 표현이 정말 정곡을 찌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솔직한 글 정말 고맙습니다.

2018-09-21 04:50:55

명륜행

글이 넘 잼있어요~^^ 사진 포즈도 깜찍하시구~ 여느 정토행자들과 다른 느낌이지만 반갑습니다~^^

2018-09-20 19: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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