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작법당
아이를 믿어주고 품어주는 사랑

"나 힘든 것만 생각하고 아이를 믿어주는 사랑을 못 했습니다."

불교대학만 마치고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정토회 문을 두드린 동작법당 이정희 님의 사연을 들어봅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정희 님.
▲ 환하게 웃고 있는 이정희 님.

자녀 양육을 한창 해야 했던 시절, 이정희 님의 마음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이정희 님에게 육아우울증이 왔고 그로 인해 엄마도, 아이들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혼자 꽁꽁 싸맨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10여 년 전 정토회와 인연이 된 것은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 중인 시기였습니다. 교사로 몸담은 학교를 3년 동안 휴직했었죠. 마지막 3년째가 되던 해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한 마음을 올라왔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육아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요.
불교대학을 다니고 <깨달음의장>을 다녀오며 밖으로만 화살을 돌려 탓하던 마음을 내 안으로 돌려 볼 수 있었습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지요. 복직해서 교사정토회에서 활동하고 한동안 스님 녹취 봉사도 했습니다. 정토회가 내 인생을 잡아주는 튼튼한 밧줄이 되어 믿음직했습니다. 그 밧줄을 잡고 튼실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이 키우랴 직장 다니랴 힘들다는 핑계로 법당과 멀어지고 봉사 소임도 놓게 됐습니다. 백일기도 입재식도 안 가게 되었지요. 여전히 스님 법문을 찾아 듣고 아침에 일어나 절을 하려고는 했지만 규칙적으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시늉만 하는 식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힘든 시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최고는 아니어도 성실하게 잘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자꾸만 벌어졌습니다. 드센 아이들이 많은 반을 만나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착실하다고 믿었던 아들이 자꾸 엇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 돌덩이를 얹는 듯 무거워지기 시작했지요. 저는 제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에만 꽁꽁 싸맨 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 힘들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가까운 동작법당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2015년 가을 경전반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경전반 도반들과 나누기를 하면서 다시 마음을 내어놓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조금씩 틔어가는 것 같았지요.
그러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학교의 아이들에게 지치고 아들은 더더욱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뭐 하나 뜻대로 안 되는구나 절망은 더 깊어져 갔지요. 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렵게 휴직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법회를 다니기로 했습니다. 법당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총무님으로부터 불교대학 담당 제의받았습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인생에 이럴 때가 또 언제 있겠어요’라는 말씀에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선물로 안았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법당에 자주 나와 법문을 들으며 조금씩 내 마음을 내어놓았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머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하염없이 눈물만 나오더라고요. 그때 울면서 넋두리처럼 같은 말 또 하고 또 하는 아기 같은 내 모습을 말없이 보아주고 들어주었던 도반들께 한없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가을불교대학 34기 입학식 날 이정희 님(오른쪽 두 번째). 불교대학 담당 소임으로 내 마음을 많이 들여다보았습니다.
▲ 가을불교대학 34기 입학식 날 이정희 님(오른쪽 두 번째). 불교대학 담당 소임으로 내 마음을 많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를 믿어주는 사랑을 못 했구나

스님 법문에는 엄마의 자세, 역할, 마음가짐 등에 대해 많이 나왔습니다. 그 법문을 들으면서 "아, 내가 품어주는 사랑을 못 했구나. 나 힘든 것만 생각했구나"하는 생각이 올라왔어요. 그러자 자책이 더 됐어요. 하지만 참회란 자책이 아님을 알아가고 힘든 내 마음도 돌봐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특히 정토회 정일사를 3번 회향하면서 더 깊은 마음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에 맺힌 것을 잘 털어내지 못해 회향하면서 많이도 울었습니다. 법사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열심히 산 것 밖엔 없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나에게 억울함이 있구나" 알게 됐어요. 제 마음이 어떤지를 보게 된 거죠. 회향이 거듭되며 깊이도 더해졌습니다. 막연히 아이를 믿어줘야 한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했더라고요. 아이들로 인해 내가 더 빛나 보이려는 욕심, 경쟁과 비교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칭찬도 듣고 싶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 회향을 하면서 비로소 "아이들을 믿어줘야겠다. 믿어주는 게 큰 사랑이구나"하는 것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라는 것 없는 믿음이야말로 내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이런 밑마음이 객관적으로 보였던 것이 3번의 회향을 통해서였습니다. 그전에는 담담하게 아이들을 지켜보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거리를 두면서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훨씬 성숙해져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고, 나를 키우는 데 더 열중하게 됐어요. 지금도 100% 잘 되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방향은 잡은 것 같아요.

봉사하면서 분별심이 올라왔지만 '하심'을 정확히 알았죠

다시 복직하면서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내려놓고 법당 행정 관련 봉사를 맡았습니다. 천일결사, 정일사 교육수련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문서를 작업했어요. 작년 한 해는 휴직 중이어서 봉사가 어렵지 않았는데, 직장을 다니며 봉사를 하니 내 부정적인 업식이 더 삐죽삐죽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행정 관련 일이 법당에 자주 안 나오고 집에서 짬을 내어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이 겹치며 피곤하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날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쪼잔한 마음이 비집고 나왔습니다. "내 앞가림도 못 하면서 이걸 계속해야 하나" 하면서 분별심이 일어났습니다.

정일사 회향때 이 문제를 내어놓았습니다. 법사님과의 말씀을 통해 "아,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와 같은 말을 듣기를 원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법사님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정성으로 봉사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봉사는 정토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거라고. 봉사하며 하심하고 하심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순간 머리가 멍했습니다. 비로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봉사해야 할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사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아침에 수행하고 돌이키고 봉사하며 올라오는 마음을 돌아보고 정일사 회향하며 마음을 점검받으며 살면 되겠구나 하면서 자신감이 차오릅니다. 

정일사 때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고 있는 이정희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 정일사 때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고 있는 이정희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경전반 도반이었던 이정희 님의 눈물을 저는 기억합니다. 아마 경전반 나누기 내내 많이 우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정희 님의 얼굴은 그때가 언제였냐는 듯 환한 달이 돼 있었습니다.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결과입니다. 자기 밑마음이 무엇인지 이리저리 연구하면서 걸어온 이정희 님의 수행 길이 앞으로 꽃길이 되길 바라봅니다.

글_김은진 희망리포터(서울정토회 동작법당)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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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명

같은 고민을 안고 힘들어하는 저에게 큰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부지런히 수행하고 나를 위해 봉사한다는 말씀 새깁니다 고맙습니다 ~

2018-08-15 13:19:54

이기사

감사합니다

2018-08-14 20:03:42

무량덕

믿어주는 게 사랑이다를 저도 실천 중입니다. 많이 공감하고 감동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8-08-14 15: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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