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여수법당
엄마의 손을 붙잡고 참회하다

2018년 6월 17일 광주전라지부 졸업수련을 광주법당에서 진행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의 한 순서로 김지현 님은 졸업소감 겸 수행사례담을 발표하였습니다.
여수법당 불교대학 담당자로서 그 자리에 참석하여 들었던 이 사례담은 그곳에서만 듣기에는 무척 아깝고 감동적이어서 더 많은 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네요

불교대학 1년을 함께한 도반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지현 님.
▲ 불교대학 1년을 함께한 도반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지현 님.

길 것만 같았던 1년간의 불교대학이 어느덧 한 달여 남짓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지 조금 맛보기 시작했는데 벌써 졸업이라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지난 1년여 간 불교대학을 뒤돌아보면서 과연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우선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에 조금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런 변화가 생기기까지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아이의 공이 제일 컸습니다. 4년간 타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첫째 아이는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친구관계의 부적응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때문에 심리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첫째 아이는 엄마인 나와의 관계에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4시간 중에서 학교생활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스트레스가 많다니 놀라웠습니다. 사실 저 역시 첫째 아이와의 관계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과연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기에 그런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자존감부터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조언은, 자라면서 지금까지 부모로부터 자존감이라는 것을 한 번도 느껴보지도 받아보지도 못한 나에게 대단히 큰 숙제이자 무거운 짐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법륜스님의 행복톡>에서 가을불교대학 학생을 모집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 정말 “나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래,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도전해 보자!” 이런 마음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2017년 광주법당 가을불교대학 주간반 입학식. 오른쪽 뒷줄 두 번째가 김지현 님.
▲ 2017년 광주법당 가을불교대학 주간반 입학식. 오른쪽 뒷줄 두 번째가 김지현 님.

그 때의 엄마와 나를 마주하다

그런데 수업이 계속될수록 행복해지기는커녕 지금까지 없었던 괴로운 마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나누기를 할 때면 과거의 상처와 열등감, 피해의식들이 올라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이런 나의 못난 업식들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사정없이 혼내고 비난하고 심지어 때리기도 하고, 지금 돌이켜 보니 정말 나는 엄마가 아니라 제 성질에 못 이겨 미쳐 날뛰는 야생말이었습니다. 이 못난 업식을 물려 준 할머니와 친정엄마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고 미웠습니다. 항상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혼내고, 일이 너무 하기 싫어 투정이라도 부리면 욕설과 비난을 스스럼없이 하셨던 할머니, 일의 노예가 된 것처럼 일만 하는 부모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무관심에 늘 외로웠던 나.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먼저 잘못했다고 빌어.”라는 말이었는데 지도법사님은 왜 언제나 나보고만 참회하라고 하는지, 생각만 해도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런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내라니 원망과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이 났습니다.

나의 엄마. 그 때의 나의 엄마...
늘 자식을 못마땅해 하고, "네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냐, 왜 맨날 그 모양이냐"라는 등의 비난이 말버릇이 되어버린 엄마였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그동안 쌓아 두었던 원망을 절규하듯 다 쏟아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잘사는 것인지 한 번도 가르쳐 준 적도 없으면서 왜 비난만 하느냐,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제발 좀 가르쳐달라고,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쏟아냈더니 오히려 엄마는 "다 필요 없다. 이제 인연 끊자!"라며 매정하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대판 싸우고 나서 '이런 엄마를 두고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괴로움의 업식을 내 대에서 정말로 끊을 수 있을까?'라며  울면서 도망치듯 <깨달음의장>을 갔습니다.

모든 괴로운 짐들을 다 내려놓고 가리라고 마음먹고 시작한 <깨달음의장>은 첫날부터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점점 가슴이 답답해 오고 머리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파왔고 그 자리에 앉아 있기조차 힘이 들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불교대학처럼 이곳도 괜히 왔구나.’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괴로움의 시간이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니 생각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모진 말을 하지는 않는다!’
‘지난날 나의 어리석음으로 무심코 했던 말들이 내 아이들에게도 상처가 되었겠구나!’
‘우리 엄마도 어리석어서 그랬었구나!’
‘첫째 아이도 나처럼 그렇게 상처가 되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거였구나!’

지금까지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나름 성실하게 살아온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것들에 대해 참회의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나의 어리석음이 이 모든 괴로움을 만들었음을 보았습니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말한 참회

그 후 어느 날 친정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친정엄마가 아직도 내가 한 말 때문에 마음의 응어리가 많으니 와서 풀어줬으면 한다는 부탁이었습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울면서 내가 왜 못마땅한지 쭉 열거하는 친정엄마가 공감되지 않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잘못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식이라서, 지금 엄마가 괴로워하고 있는 그 마음을 공감 못하는 딸이어서 죄송하다는 마음으로 참회하였습니다.

먼저 이해하는 마음을 내니 엄마보다 내가 더 어른스러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것이 바로 주인 된 삶이구나.',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라는 부처님의 그 가르침이 진실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어리석은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전부터 수많은 분이 준비하고 수고하고 있었음을 압니다. 내 삶을 통틀어 제일 큰 사랑을 선물 받아서 감사하고 지금까지 어리석게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도 부모님과 아이들과 관계에서 또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겠지만, 이 경험을 늘 가슴에 새기며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임을 알아 부지런히 수행하며 잘 쓰이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졸업을 앞둔 지금, 무엇보다 내 인생의 주인을 찾게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제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졸업식 및 수계식에서.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지현 님.
▲ 이제 제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졸업식 및 수계식에서.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지현 님.

'나도 엄마도 어리석었다...'
어머니와 불가능할 것 같은 화해를 하고, 이게 바로 주인 된 삶이라고 독백하는 김지현 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과 대단함을 느낍니다. 저도 어리석음을 버리고 주인 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합니다.

글_김지현(광주정토회 광주법당)
정리_신규호 희망리포터(순천정토회 여수법당)
편집_양지원(광주전라지부)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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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등명

주인된 삶을 살때 행복이 온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8-08 09:32:51

무량덕

진솔한 나누기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아쉽게도 저의 어머님은 이미 돌아가셔서 잘 해 드릴 수 없어 안타깝네요.

2018-08-05 14:46:15

손아름

마음이 찡하면서 저또한 비슷한 상황이라 공감이 많이 되네요

2018-08-04 12: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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