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방콕법당
연어처럼 다시 정토로 돌아왔어요

얼마 전 폭우로 깊은 동굴 속에 갇혔다가 실종17일 만에 무사히 전원 구조되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13명 동굴 소년들을 기억하시죠? 그 소년들의 나라 태국은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5배가량 넓습니다. 오늘 소개할 우명근 님은 태국 수도 방콕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공업 도시 라용에 거주하면서 매주 일요일마다 법회 참석을 위해 왕복 5시간의 장거리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 부지런한 정토행자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밖에 없는 귀한 휴일에도 방콕으로 출근하는 우명근 님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인연의 시작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 슬하에서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장사하시느라 늘 집을 비우셨고 위의 형들과는 터울이 많아 항상 바로 위 쌍둥이 형과 24시간 짝꿍이 되어 학교도 교회도 함께 다녔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교회 수련회에서 저는 바닷가로, 쌍둥이 형은 계곡으로 물놀이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수련장으로 돌아와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누가 죽었다는데 형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저를 피하는 듯 하고, 어렴풋이 형이 죽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형의 사고는 저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 3학년 때 친한 친구 아버님의 죽음을 다시 한번 겪으며 기독교에 더욱 진지하게 몰입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을 담당하는 우명근 님(오른쪽에서 세 번째)
▲ 천일결사 입재식을 담당하는 우명근 님(오른쪽에서 세 번째)

철학을 전공하던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강경대 열사 사건으로 학교가 소란스럽고 집회가 잦았습니다. 탈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집회에 많이 참석했지만, 중심적인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고 주변에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의 영향으로 비폭력 학생운동을 주장했는데 사실 선배들이나 친구들처럼 화염병 던지고 쇠파이프로 전경과 맞서는 것이 멋져 보이긴 하면서도 두들겨 맞고, 다치고, 아프고, 잡혀서 감옥에 가는 것은 두려웠습니다. 종교로 포장된 나의 비폭력 주장이 내 안의 비겁함을 감추려는 방편처럼 보였습니다. 그 이후 철학과 사회과학 등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기독교의 가르침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커져 점점 기독교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교육문화부 청소년 쉼터에서 근무하며 직장 동료와 결혼을 했고 코이카 해외 봉사단으로 태국 방콕에 와서 봉사하며 풍물패를 만들어 지도하던 중 2006년 정토회 대표로 계신 홍정혜 님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홍정혜 님이 법륜스님 법문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건네주셨습니다. 그 당시 제가 많이 고민하던 것이 제 내면의 죄의식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인간이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누구나 죄인이라고 합니다. 머리로는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가치 있는 일만 하며 살고 싶은데 세속적인 욕망에 끌려다니는 제 모습이 싫고 괴로웠습니다. 너무 좋다며 꼭 들어보라고 주셨기에 혼자 있는 밤 심심할 때 듣다가 어느 법문에서 스님께서 "죄란 것이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리석어 습관을 잘못 만든 것뿐"이라는 말씀이 제게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알아온 기독교가 주지 못한 자유로움과 합리적인 부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 더 배우고 싶어 불교 대학도 졸업하고 경전반도 공부했습니다.

법당에서 도반들과 빈 그릇 운동 실천하는 우명근 님(왼쪽 첫 번째)
▲ 법당에서 도반들과 빈 그릇 운동 실천하는 우명근 님(왼쪽 첫 번째)

백일 출가가 가르쳐 준 것들

정토회의 환경 실천 공부가 밑거름이 되어 한국에 돌아온 후 환경 단체에서 3년 정도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잘 살고 있다고, 돈은 적게 벌지라도 남들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지 않고 사회와 타인을 위해 좋은 일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이혼하자니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는 아픔보다 ‘어떻게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선후배들이 어떻게 볼까?’ 친구들, 형제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더 큰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둘 사이에 아이도 없었고 함께 살며 생기는 갈등도 있었기에 마음 한쪽에는 다시 혼자인 시절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사죄하고 사정했지만 돌아선 사람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면서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정말 잘 살았나? 지금 나는 행복한가? 가정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힘든 점이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입장이 다를 땐 화도 나고 짜증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소진된다고 하죠. 처음 일 시작했을 때의 마음과 달리 힘들고, 지치고, 화나고, 짜증 나고... 그래서 백일 출가를 했습니다.

도반들과 법당 일을 논의 중인 우명근 님
▲ 도반들과 법당 일을 논의 중인 우명근 님

백일 출가를 통해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아내에 대한 서운함도 많이 내려 놓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올라오고 예전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듯해 계속 이렇게 살면 내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많고 많은 다생겁래 삶 중에서 이번 삶은 정토 세상을 만드는데 써보면 어떨까? 제법 뭔가 알고 깨친 것 같아, 법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친김에 행자 대학원도 입학해 생활을 시작한 지 두어 달 후 잠시 집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하고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는데 어머님이 마지못해 보내주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머님 입장에서는 아들을 보내는 맘이 너무 아프셨나 봅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만 짓는 어머니를 보고 뒤돌아서는데 기분이 너무 울적해서 마음 좀 가볍게 해야겠다 하고 좋아하는 만화방에 가서 잠시 만화를 본다는 게 저녁이 되고, 밤이 되고,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제 습관 중 하나가 일이 부담스러우면 잠수 타는 버릇이 있는데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다 보니 스스로를 한심하다 자책하며 다시 정토회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행자 대학원의 단체 생활이 좋으면서도 잠시 예전 친구들을 만나면서 누린 세상 속 즐거움이 더 좋았나 봅니다. 백일 출가까지 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제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좋은 일 하지 말고 돈이나 벌고, 수행이니 뭐니 안 하고 세상 물결에 휩쓸려 그냥 남들처럼 편하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수행도 놓고 기도도 놓고 정토를 떠나 도망치듯이 태국으로 와서 5년 동안 아는 사람들과 연락 없이 살았습니다.

방콕 불사 기원 300배 정진 중인 우명근 님
▲ 방콕 불사 기원 300배 정진 중인 우명근 님

다시 정토로

그렇게 내 마음대로 원 없이 살고 있던 작년 연말 즈음, 차를 운전하며 욕을 입에 달고 있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달콤하게 누릴 수 있는 세상 속 즐거움을 다 누리면서 편하게 사는데도 너무 허전하고 화와 짜증이 터져 버릴 것 같이 꽉 차 있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지? 곰곰이 돌이켜 보니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며 살고 있더라고요. 이혼한 것도, 행자 대학원 하다가 포기한 것도 그냥 나의 모습일 뿐인데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전전긍긍하며 부끄러워했습니다. ‘후배들에게는 멋진 선배이고 싶고, 친구들에게는 좋은 벗이고 싶고 도반들에게는 수행 잘하는 도반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 일절 연락 끊고 이렇게 숨어 살고 있구나’ 하고 제 모습이 보이니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문득 ‘부끄러운 것도 창피할 것도 없는데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구나...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반대로 엉뚱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연락도 하고, 도반이 그리워서 다시 정토로 돌아왔습니다.

점심 공양 후 설거지 봉사 중인 우명근 님
▲ 점심 공양 후 설거지 봉사 중인 우명근 님

바로 지금 이 자리

요즘은 기도하면서 전 부인에 대한 참회가 많이 올라옵니다. 정법이란 이름으로 환경 실천이나 부처님 법을 강요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로써 폭력을 휘두르고 옥죄며 괴롭히는 줄도 모르고 괴롭혔으니 그 사람 참 힘들었겠다.’ 하며 참회가 됩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나 여자친구 때문에 요즘도 가끔 넘어지고 괴롭기도 합니다. 요 며칠은 기도를 빼 먹었네요. 한동안 기도가 잘 된다 생각했었는데 또 자만했나 봅니다.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는데 나 잘났다 병이 다시 도졌나 봅니다. 그 와중에 안 되는 나를 보고, 집착하는 나를 보게 됨이 또한 좋습니다.

기도를 다시 시작하면서 예전에는 나의 약한 몸, 잘 생기지 않은 얼굴, 특별한 재능도 없어 남들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는 열등감이 있었고 그 열등감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삶, 가치 있는 삶으로 나를 삼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어서 괴로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것이라 착각하고 스스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세상의 풀처럼, 다람쥐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대로 살고 싶습니다. 바램 없이, 기대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한 줄 알아 그냥 살겠습니다.

주 6일 근무로 힘든 와중에도 자원 활동 담당, 일요법회 사시예불 담당, 매주 방콕 불사 기원 300배 정진 등 주어진 소임을 흔쾌히 맡아 척척 진행해 나가는 방콕의 든든한 기둥 우명근 도반의 이야기를 쓰며 넘어졌다가도 일어나고, 동굴 속에 갇혔다가도 다시 걸어 나오는 것이 곧 진정한 수행임을 깨닫습니다. 진솔하게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우명근 도반님, 감사합니다.

글_우명근(방콕법당)
정리_박동주 희망리포터(방콕법당)
편집_이진선(해외지부)

전체댓글 16

0/200

elle

다시 돌아오심을 축하드리고 더욱 정진하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2018-08-08 04:13:12

월광명

수행이 무엇인지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어렴풋이 알겠습니다 멋진 수행담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8-08-02 13:48:53

다람쥐

처음 일 시작했을때와 달리 지치고 화나고 짜증나고...그래서 박일출가를 택하셨군요.
그래서 쉼과 비움을 택했습니다.ㅎ
나잘났다병도 저랑 같은 병명이네요. 많은 부분 너무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도기대됩니다~~ 좋은 도반으로 남아주시길 바라는 마음 올라옵니다.

2018-08-01 10:54:37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방콕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