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충주법당
잘 물든 단풍처럼 수행에 물들다!

법당에서 맡은 소임은 없지만, 필요한 곳이면 항상 잘 쓰이는 이진숙 님! 60대 후반에 요양원에서 주, 야간을 교대로 근무하면서도, 법당에서 찾으면, 항상 '예'하고 달려와 주십니다. 이전 직장에서 조리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법당에 오는 날은 반찬을 이것저것 만들어 자전거에 싣고 오십니다. 도반들은 법당 앞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으면 '그 분이 오셨구나!' 하고 반갑게 계단을 오르게 됩니다. 자전거에 반찬도 나르고, 희망도 나르고, 행복도 나르는 이진숙 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새벽기도 후에 도반들과 함께(아래 가운데 이진숙 님)
▲ 새벽기도 후에 도반들과 함께(아래 가운데 이진숙 님)

복 없는 사람

1952년 정월 초하루 설날 아침, 재수 없는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재수 없는 아이, 복 없는 아이, 팔자 센 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와 저를 남겨놓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한스러운 원망과 욕설을 들으며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보고 듣고 자란 게 판박이가 되어, 똑같이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저는, 시부모님의 사랑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에서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복 없는 여자는 결혼생활 13년으로 끝났습니다. 3남매와 시부모님을 남겨놓고, 남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말 희망도 꿈도 없이 아이들만 빨리 자라길 바라며, 온갖 고생을 하며 세월만 흘러가길 바랐습니다.

정토회원이 되다

저를 아껴주던 시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애들은 모두 자기 가정을 찾아 떠났습니다. 이제는 끝났다 하고 한숨 돌리니 둥지증후군(허전한 심리상태)이 찾아왔습니다. 사는 것이 허탈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끝나고 퇴근하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학창시절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불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 공부까지 마쳤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음의장>도 다녀오고 1일 명상도 경험하면서 정말 신났습니다.
'예'하고 합니다, 내가 옳다는 고집, 내가 해야만 한다는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보니, 세상이 달라져 보였습니다. 많이 참고 살아온 모습이 보이고,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알아차려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덕분입니다." 이런 말들만 생각날 뿐, 부정적인 사고는 아주 멀리 떠나버렸습니다. 제 인생에 돈이 많이 생긴 것도 아니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관점을 바꾸니, 암울하던 과거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원망스러운 부모 자식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선물로 생각되었습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문제 될 게 없고, 걱정할 일이 없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엄마가 이상한 종교에 빠지지 않았나 걱정할 때, 며느리가 법륜스님은 훌륭하신 분이라고 지지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다녔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마야부인 역할(가운데가 이진숙 님)
▲ 부처님 오신날 마야부인 역할(가운데가 이진숙 님)

직장은 수행처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생각을 돌리면 스트레스 받을 일보다 웃을 일이 더 많습니다. 화낼 일이 없고, 문제 될 일이 없음을 압니다. 직장이 내 수행처라 생각하니 항상 즐겁게 생활합니다. 법당에 있는 <월간정토>를 가져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수행맛보기> 책을 직장에서 틈틈이 보며 생활합니다. 수행문, 참회문, 보왕삼매론은 직장에서 힘들 때마다 읽는 명심문입니다.

사실 저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자랄 때 부모에게서 받은 성격과 성장배경에서 고집이 센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항상 옳다고 고집하고, 자식들에게도 공부가 최고라고 주장하던 엄마였습니다. 정토회 와서 108배를 열심히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다 보니 화가 나는 것도 알아차리게 되고, 착한 여자로 살겠다는 마음이 강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 생각들에서 벗어나니 괴로움이 없어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직장을 다니며, 치매 노인들을 대하니 수행처가 따로 없습니다. 근무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지금 건강하니 감사하고, 모두가 고마운 일들뿐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노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정신은 오히려 어린아이가 됩니다. 치매 노인들은 과거에 집착을 많이 합니다. 그런 어르신들을 보면서, 현재에 깨어 있는 연습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몇 년 후에 다가올 미래 모습임을 알아차리며, 그분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려고 합니다.

법당 생활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휴무 때만 되면 법당으로 달려갑니다. 새벽기도와 수행법회를 주, 야간으로 돌아가며 참석합니다. 통일정진 때도 틈나면 참석하려 했습니다. 1일 명상이나 천일결사, 그 밖의 법당 법회에 되도록 참석하려 노력합니다. 연초에는 삼천배에 도전해서 간신히 1000배를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절할 때가 가장 좋습니다. 남들이 힘들지 않냐고 하지만 오히려 절을 하면서 무릎과 허리가 좋아졌습니다. 108배 절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 중의 하나입니다. 정토회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좋습니다. 우리가 적게 쓰고, 아껴 쓰고, 일회용품 안 쓰는 게 불편할 뿐이지, 불평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희망

아직 하고 싶은 게 더 있긴 합니다. <인도성지순례>를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은 문경수련원에 가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나이 들면서 수행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시간이 많아질수록 수행공동체가 큰 위안이 됩니다. 더 이상 외롭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도반들과 함께 불교대학 거리홍보(맨 오른쪽이 이진숙 님)
▲ 도반들과 함께 불교대학 거리홍보(맨 오른쪽이 이진숙 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같이만 행복하면 됩니다."라며 웃으시는 모습에서 나이가 듦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잘 물든 단풍은 정말 봄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음을 실감합니다. 어느 곳에나 필요한 사람으로 달려가시는 이진숙 님. 진정 어른이시구나 느껴졌습니다.

글_최익란 희망리포터(청주정토회 충추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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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

저도 화가 참 많았던것 같은데 정토회에
온 이후로 조금씩 나이지고 있는것 같아요

2018-08-08 01:17:39

반청

관점바꾸기를 통해 인생이 완전히 바뀌셨네요
축하드립니다

2018-07-26 17:36:27

신규호

잔잔한 글.
폭풍같은 삶을 잔잔한 삶으로 바꾼 분.
자유인.
잘 읽었습니다.

2018-07-26 11: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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