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김포법당
남편은 나의 부처님

김포법당 부총무를 맡고 있는 윤선희 님께서 김재숙 님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김재숙 님이 “나? <정토행자의 하루>에 나올 정도 아니야. 나 못해!”하며 손사래를 치셨어요. 거기에 윤선희 님의 답변, “도반님! 그거 다 아상인거 알지? 그냥 해! 넘어지면 넘어진 대로!” 김재숙 님은 ‘아상(我象)’이라는 정곡을 찌르는 말씀에 더 이상은 거절하지 못하셨다고 해요. 지난 6월 18일 김포법당에서 김재숙 님을 만났습니다. 아상을 넘어서는 김재숙 님의 수행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궁금했습니다. 정토회는 어떤 인연으로 오셨어요?

2013년 남편과 가족문제로 정말 힘들 때 동생이 소개해줘서 팟캐스트를 통해 법륜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틀어놓고 계속 들었어요. 보는 시야를 밝게 해주시고 막혔던 게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팟캐스트 아래 배너에 ‘가을불교대학모집’이라고 써 있는 걸 보고 무작정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요. 집이 김포인데 가장 가까운 곳이 일산정토회였어요. 거리는 가깝지만 교통편이 애매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다녀야 했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차로 태워다준다는 거였어요. 그때 남편하고 싸워서 말도 안하는 상태에서 남편이 일산 쪽으로 출근하면서 데려다주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해서 두 번 가보고 안 나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한 번 더 가보라고 해서 그게 쭉 오늘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남편 때문에 정토회를 오게 되었는데, 남편 덕분에 편하게 잘 다녔습니다.

2016년 암발병 전 jts 거리모금 중인 김재숙 님. 맨 오른쪽
▲ 2016년 암발병 전 jts 거리모금 중인 김재숙 님. 맨 오른쪽

이혼할 마음이었는데, 불교공부와 수행, 상담을 병행하니 빠르게 변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이혼할 마음이었거든요. 남편은 거의 날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고, 집에 와서도 또 혼자 술을 마셔요. 저는 그게 너무너무 싫은 거예요. 싫으니까 입을 꾹 닫아버렸고, 부부관계는 아주 안 좋아졌습니다. 큰 아들이 군대 가기 전이었는데, 아들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서 심리상담을 받았었어요. 그런데 상담사 말씀이 아들보다 엄마가 더 시급하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큰 아들과 저 둘이 상담을 받았어요. 불교공부와 수행, 상담을 병행하니 빠르게 변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들 역시 알게 모르게 변화되었어요. 10개월 동안의 상담을 종료하고 난 후 가벼운 마음으로 큰아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었고요.

나를 붙잡고 있던 걸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불교대학 졸업 전에 <깨달음의장>에 다녀왔어요. 거기서 속에 있는 걸 많이 내놓았고, 나를 붙잡고 있던 걸 내려놓을 수 있는 힘도 되었어요. 그리고 천일결사 입재를 하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입재하고 1년 반은 새벽 5시 기도를 빼먹지 않고 간절하게 했어요. 무엇보다 업식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어요. 아빠와 아들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그게 남편과 나의 관계 문제더라고요. 큰아들이 느려요. 그런데 저는 조급증이 있다 보니 정해진 틀에 맞추려 애썼고 아이의 자립심을 내가 다 눌러버렸어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박혀있었고요. 남편 역시 비슷한 성향이다 보니 그런 부모 밑에서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도가 느슨해져서 보니 제가 살만해진 거였어요.

(인터뷰 중 남편에게 전화가 옴) 두 분이 서로 엄청 생각하고 챙기는 것 같아요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입니다'라는 말이 정말 맞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남편을 “나의 부처님”이라고 휴대폰에 입력해놨어요. 남편에 대한 나의 반감과 거부를 살펴보니 저희 친정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그대로 남편에게 온 걸 알았어요.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셔서 정말 많이 미워했었어요. 친근함도 없었고, 아버지는 엄마 힘들게 하는 존재로 그렇게 생각했지요. 술 때문에 남편의 다른 좋은 점도 가려지고, 오직 술 마시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술 마시면 화를 많이 냈는데 제가 그걸 받아주질 못하니까 트러블이 생겼죠. 수행을 하며 우리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입니다' 라는 말이 정말 맞구나 알게 되었어요. 심성이 독하지 못한 사람인데 사업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거예요. 제가 변하니 어느 순간 남편도 많이 편안해지고 부부관계도 좋아지게 되었어요. 남편은 알밤 같은 사람이에요. 맛있는 알밤을 얻기 위해서는 겉에 가시를 벗겨내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사람은 참 좋은 사람, 진국인데 그걸 제가 몰라준 거죠.

봉사를 많이 하잖아요. 어떠세요?

할수 있는 만큼 해본다는 생각으로 해요

2년 동안 일산으로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다녔는데, 남편이 아침에 출근하며 일찍 데려다주니까, 아침에 법당과 공양간 청소를 했어요. 경전반을 다니고 있을 때 김포법당 불사가 있었는데, 그때 경비가 많이 나가니까 영수증 정리만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법당 회계 일로 이어졌어요. 주먹구구식으로 전화로 물어보면서 회계 일을 익혀서 했어요.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차분하게 앉아서 혼자 하는 일이 적성에 맞네요. 수요법회 주간반 진행하면서 영상 담당하고 있고, 가을경전반 밥 지어주고 있어요. 참, 천일결사 모둠장도 하고 있네요. 저는 일이 주어졌을 때 일단 물러서고 보는 업식이 있어요. 마음에 ‘나 못하는데, 못하는데……’가 들어있어서 부담스럽게 느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본다는 생각으로 하고요. 법당에 행사 있을 때는 나오려 해요. 조금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지금은 회계를 3년 동안 해서 다른 소임을 맡는다면 무얼 맡을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2017년 부처님오신날 마야부인 역할을 한 김재숙 님. 왼쪽에서 두번째 한복입은 분
▲ 2017년 부처님오신날 마야부인 역할을 한 김재숙 님. 왼쪽에서 두번째 한복입은 분

9-5차 천일결사 백일기도 입재식.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재숙 님
▲ 9-5차 천일결사 백일기도 입재식.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재숙 님

암 투병하셨다고 들었는데요 ?

경전반까지 졸업하고 둘째 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무렵이었어요. 아들들 둘 다 군대 가면 남편하고 둘이 재미있게 살아야지 하고 있었는데요. 건강검진 결과 유방암 2기 초로 진단받았어요. 그때 스님 법문 들으면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원래 건강검진 받는 해가 아니었는데 받은 덕에 일찍 발견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당황하지 않고 남편에게 “나 암이래.” 말하는데 편안했어요. 오히려 저보다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죠. 자기 때문에 제가 아프다고 생각해서 자책도 많이 했고 펑펑 울기도 했고요. 저는 제가 자존감 없이 나를 괴롭히며 살아온 과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당시에도 회계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정회원이 아니었어요. 정회원 교육이 잡혀있었는데 수술날짜 받은 상태에서 교육도 다녀왔고요. 수술하는 1개월만 소임을 다른 분께 부탁드리고 한 달 뒤부터는 봉사를 이어서 했어요. 수술하고서도 웃고 일어날 수 있는 게 기도의 힘이 아닐까 싶었어요. 가피 가피 하는데 그게 가장 큰 가피 아닐까 싶었습니다.

앞으로 나만의 수행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남편과의 관계가 편안한건 수행을 한 덕도 있지만, 제가 아프고 난 후 남편이 저에게 맞춰주는 부분도 크거든요. 남편은 어릴 때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부인이 아프면 걱정이 넘쳐서 화가 날 정도인 거예요. 부인이 변했다는 걸 인정하고, 저를 법당까지 데려다주는 걸로 본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술하고 2년이 지나니까 다시 남편이 술 먹는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아프고 나서 절을 안했는데 이번 정일사를 계기로 다시 절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기도의 맛을 아니 수월하게 다시 할 수 있었지요.

남에게 맞춰주기보단 나부터 살고보자로 바뀌었어요.

아프고 나서는 남에게 맞춰주기보단 나부터 살고보자로 바뀌었어요. 아들 업식 끊어지는 건 간절하게 기도가 되었는데, 내 몸 아픈데 기도가 안 되는 걸 보고 신기했거든요. 남에게 맞추어주며 내 존재감 없이 살았는데 그게 오히려 남을 힘들게 했어요. 내 생각하고 살라고 아픈 건가보다 싶었어요. 지금은 화가 나는 나를 내가 알아주니 그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고요. “내 마음이 이래.”, “나 이거 하고 싶지 않아.”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생겨 좋아요.

9-5차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가운데가 김재숙 님
▲ 9-5차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가운데가 김재숙 님

수행을 하며 가장 많이 바뀐 것에 대한 질문에 바로 “제 얼굴이에요.”라고 답하신 김재숙 님.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마음을 살피며 수행하다보니 얼굴이 환해진 게 스스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희망리포터가 법당에 갈 때마다 환한 미소로 따뜻하게 반겨주기에 특히 공감되는 말씀이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 듣고 알아갈 수 있는 게 행복하다는 걸 깊이 느낀 첫 취재였습니다.

글_조은영 희망리포터 (일산정토회 김포법당)
편집_한명수 (인청경기서부 지부)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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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

수행을 하며 밝아지고 환해지는 얼굴이 참 좋습니다

2018-07-10 12:20:02

무량덕

정말 감동입니다. 아들이 남편이 진정 부처님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2018-07-04 15:03:33

최은영

잘읽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것이 수행의 시작. 가볍게 나눠주셨지만 제겐 큰 도움과 울림되네요.
고맙습니다♥

2018-07-02 1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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