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은평법당
답답하면 나누자! 은평법당 희망리포터와 이순모 보살님의 나누기

안녕하세요. 은평법당 희망리포터 김회정입니다. 어느덧 겨울을 훌쩍 넘어 봄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문뜩 내 마음은 봄바람처럼 가벼워지고 있는지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을 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점검을 하나마나 아직도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을까 싶어 고민하던 차에 이러한 제 마음을 선배 도반님과 함께 나누기를 해 보며 풀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은평불사 후 첫 법당 부총무님으로 소임을 하시고 지금은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순모 보살님과 나누기를 들려드립니다.

희망리포터: 안녕하세요. 보살님. 오랜만에 봬요. 대의원 되시고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잘 지내셨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순모님: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은 은평법당 목요일 봄경전반 지원을 나가고 있고 월,화는 용산법당에는 봄,가을불대에 가고 있어요.

희망리포터: 여전히 열심히 지내고 계시네요. 잘 쓰이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오늘이 기회라 생각되어 보살님께 답답한 제 이야기도 하려고 뵙기를 청했습니다. 가볍게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순모님: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냥 하려고요. 무슨 일이 있나요?

희망리포터: 보살님, 저는 요즘 몸과 마음에 감기가 걸려서 괴로운 날이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저랑 친한 도반님이 최근에 이런 저에게 ‘강박’에 관련된 강연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강박이 심한 것 같다고 알려주었는데요. 3년정도를 저랑 함께 봉사하면서 제 모습을 지켜본 도반이니 저를 객관적으로 잘 봐주는 것 같아요. 돌아보니 제가 정말 쫓기듯 사는 게 많아서 늘 불안했는데 그걸 콕 집어서 말해주니 참 고마웠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자유롭게 살라고 했는데 자유롭게 안 살고 있는 건 알겠는데 자유롭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려던 참에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 때문에 부침이 좀 있어요. 대학원 1년 동안은 체력적으로 힘들었는데 이번에 개강을 하고 나니 사람들하고 자꾸 일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사람들하고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좀 불편해질 것 같으면 제가 물러서거나 착한 척하고 상황을 피하는데요.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한 번 두 번 세 번 이렇게 자꾸 문제가 생기니 몸에 병이 확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마음이 들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이순모님: 그러게요. 아이고 어쩌면 좋을까요. 음.. 스님이 법문 말미에 늘 유익했어요? 행복해요? 물어보시잖아요. 저는 거기에 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대 누구를 만나던 어떤 경우에 부딪혔을 때 자문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왜 괴롭지? 내가 행복해야 하는데 왜 괴롭지? 방법을 찾아야 해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하잖아요. 나는 그런 식으로 풀어요. 이 사람하고 풀 수 있으면 일대일로 붙어봐야 하고 그럴 수 없으면 이 사람을 놔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문제를 내 안으로 끌어들여서 풀어요.

희망리포터: 머리론 아는데 늘 제가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또 알게 되네요. 제 문제네요. (웃음) 보살님 저는 나이 들어서 공부하니까 머리가 안돼요. 그리고 체력이 안돼서 정말 집중이 안될 때가 많아요. 하고 싶은 만큼 안되니까 결과도 그 만큼 안 따라온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도 그게 참 안돼요…

이순모님: 그러게요. 참 쉽지가 않아요. 그죠. 은평법당에 처음에 부총무로 오게 되어 저도 좀 부침이 있었어요. 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법당마다 사정이 있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기도를 하던 중에 나의 오십 대가 생각이 났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심정이 하나 둘 이해가 가기 시작하더라고요.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해가 되었어요. 지나고 보면 조급하다고 그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다보면 되면 되고 안되면 할 수 없는 거고 그런 거고. 내가 막 조급하게 한다고 반드시 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즐거운 수행자!아자! 왼쪽 첫 번째 이순모 보살님
▲ 우리는 즐거운 수행자!아자! 왼쪽 첫 번째 이순모 보살님

희망리포터: 은평법당 보살님 없었으면 자리 잡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순모님: 그건 모르지요. 지부에서 나를 은평법당으로 보냈으니까 나는 그냥 정토회 원칙을 지키는 것뿐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었어요. 그때는 엄청 부대끼고 기도하면서 나 나름대로 이겨낸 건데 돌이켜보면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희망리포터: 어려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는 것 같아요. 뜨겁다고 하면서 놓지 않으니 제가 참 어리석어요. 정토회에서 있으면서 큰 깨달음을 얻어 삶의 방향을 바꾸고 직업을 바꾸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하게 말해서 불교대학수업도 깨달음의장도 순간순간 얻어 오는 것은 있었지만 뭔가 확연하게 깨달아지는 것은 없었어요. 저는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그냥 뭐가 달라졌다 이런 느낌은 별로 없어요.

이순모님: 스님께서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걸 믿어요. 해야한다는 마음이 없이 그냥 해요. 가끔 불교대학교에 와서 수행하시겠다고 하는 분들 중에 ‘불교대학 다니면서 해탈할거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아, 저 분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오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분들이 오셔서 수행하시며 전법하는 모습을 보면 저분들은 얼마나 많은 공덕을 쌓았길래 젊어서부터 저렇게 수행할 수 있을까 부러운 마음이 들어요. 하지만 나도 나이는 먹었지만 인연이 되어서 지금 이렇게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할 일이다라고 다독이기도 합니다. 수행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해요.

 천일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기도하고 받은 선물
▲ 천일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기도하고 받은 선물

저는 처음 시작할 때 법륜스님도 모르고 정토회를 왔어요. 내가 힘들어서 찾고 찾고 찾다보니 정토회의 깨달음의장을 알게 되어 신청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제가 정토회 깨달음의장에 가게 된 것이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마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같은데 깨달음의장을 통해서 불교대학을 다니고 졸업 후 불교대학 담당자를 맞으면서 경전반을 졸업하고 수행법회를 나가고 그러면서 차츰 법당에서 다른 소임도 맞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희망리포터: 보살님께서는 늘 꾸준히 기도하시고 저는 했다가 안 했다가 하니 수행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이순모님: 지금도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이 먹을수록 정말 필요한 건 수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이 수행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생각이 들어요. 부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이 나이에라도 수행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내 친구들이나 주변인들을 보면 몸이 아파서 활동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저는 여기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상황에 따라 힘은 들지만 정말 너무 감사해요.

봉사는 나의 힘! 서대문정토회 희망강연 봉사도 열심히 해요. 오른쪽 첫 번째 이순모 보살님
▲ 봉사는 나의 힘! 서대문정토회 희망강연 봉사도 열심히 해요. 오른쪽 첫 번째 이순모 보살님

한해 한해 먹을수록 108배를 하고 있는 동안 너무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요. 친구들이 건강 때문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소연을 해요. 저도 아파요. 허리도 무릎도 여기저기 관절이 아프긴 아프지만 아프다고 다가오지 않아요.

사실 저는 첫째를 낳고 산후풍이 와서 10년을 한의원이며 병원 찾아 다니며 고생했어요. 한여름에도 수돗물에 손을 담그지 못해서 늘 물을 데워서 사용했고 아이 둘을 더 출산하면서 차츰 좋아지긴 했지만 늘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남편이 머리카락은 안 아프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내 몸 아픈 중에도 애들은 키워야 하니까 늘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면서 살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 나이에 이것도 안 아파? 이런 마음이에요.

희망리포터: 보살님은 어린 시절은 어떠셨어요? 힘들었던 기억은 없으세요?

이순모님: 살아온 것도 가정적으로 어렵긴 했어요. 아버지가 바람도 피웠는데 어머니께서 잘해주셔서 그게 크게 걸림돌이 안되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현명한 분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스님법문을 들어보니 어머니께서 정말 맞게 잘하셨던 거더라고요.

우리 어렸을 적에는 너무 철이 없어서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큰 문제가 안 되는 줄 알았어요.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그게 잘 못된 일이라 생각되어 어머니에게도 아버지를 흉을 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한번도 아버지를 나무라지 않으셨어요.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를 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좋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자식들에게는 전혀 내색을 안 하셨어요. 오히려 우리를 버리진 않았다. 이러시면서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두둔하시고 아버지를 위상을 꺾지 않으셨어요. 어머니가 문제 삼지 않으셔서 아버지의 바람문제로 가정에 불화가 전혀 없었어요.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때 우리어머니는 참 현명하게 처신을 하셨어요.

그래서 살림은 어렵지만 집이 편안했고 아버지는 바람은 피우셨지만 정의로운 분이셨어요. 동네에서 어려운 이웃이 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앞장서서 도와줄 방법을 강구를 하셔서 해결을 하셨어요. 우리 어렸을 때는 너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구호품이나 물품이 나오곤 했어요. 근데 그때만 해도 중간에서 가로채고 실제로 어려운 사람에게는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버지는 그런 일이 생기면 해결을 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곤 하셨어요. 그래서 동네 분들에게 인심도 얻고 인정도 많이 받으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비록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비굴하거나 안 좋은 일을 겪은 기억이 없어요. 그런 집안의 분위기가 우리들에게 자존감을 살려주었던 것 같아요.

희망리포터: 참 대단하시네요. 보살님 부모님들께서는 정말 마음이 넉넉하신 분들이셨네요.

이순모님: 그래서 돈에 대한 집착이 생기질 않았어요. 있는 예산 내에서 그냥 살 수 있는 대로 살았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냥 편안하게 살았어요. 그래서 남편과 사별한 일이 내 인생에 가장 힘든 일이었고 두 번째가 은평법당에서 부총무 소임을 맞았을 때였어요.

손에 깁스를 풀기 몇 일을 앞두고 9박10일 명상을 갈 기회가 생겼어요. 9박10일 명상을 늘 가고 싶었는데 인연이 안되었어요. 여름에 제사가 두 번 있는데 꼭 하나씩은 9박10일 명상일과 일정이 겹치더라고요. 3년동안 그렇게 가려고 해도 기회가 안 오더라고요. 2016년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은평법당 부총무로 부대끼고 있는 그 해 여름 그 기회가 찾아오더라고요. 참 신기했는데… 해볼까 갈까 하면 길이 열리더라고요. 깁스를 일찍 풀어서 손이 아플 수 있었는데 4,5일은 은평법당에서 있었던 일들이 올라와 손 아픈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죽을 것처럼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내려놔 지더라고요. 6일째, 7일째.. 그렇게 9일이 지나니 환희심이 말로 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명상을 잘 마치고 정일사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법당에서 생기는 일을 견뎠어요. 그러면서 어려울수록 기도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공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냥 견디면 되지. 다 겪는 건데 뭐. 이제는 두려운 마음보다는 뭐 견디면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기도를 놓지 못하고 하는 이유는 그것 같아요.

희망리포터: 보살님 어떤 일을 할 때 두려운 마음이 들면 어떻게 하세요? 저는 제가 하고 싶어서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요. 이제 취직을 해야하니 이력서를 쓰고 면접도 보고 시강도 해야 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이고 취직인데 막상 하려고 하면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그 일을 하고자 공부를 하겠다고 했으면서도 이러는 마음을 보면 참 답답합니다.

이순모님: 왜 없겠어요. 시작하기 전엔 싫다는 마음이 올라와요. 하기 싫어요. 은평법당에 부총무로 가라고 했을 때 주저하는 마음이 많이 있었어요. 제가 육십만 되어도 기꺼이 하겠다라는 마음이 나는데 그때도 육십 대 중반이었고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가기 싫다고 했어요. 부총무라는 직함도 너무 버거웠어요. 그래서 책임자로 가겠다고 했는데 그런 직함은 없고 부총무이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 부총무로 갔어요.

아자! 봉사하자! 첫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이순모 보살님.
▲ 아자! 봉사하자! 첫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이순모 보살님.

그 때 은평법당이 불사가 되어 초반에 자리잡으면서 여러 사정이 있었고 막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선뜻 그 자리로 가겠다고 하기 어려웠어요.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독립적인 권한이 주어져 크게 눈치 보는 사람 없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부총무라는 것은 나에게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근데 마지막 결론은 하겠다고 한 사람은 ‘나’잖아요. 내가 결정했으니 내가 고리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그냥 했어요.

대의원도 되기 전에는 안되었으면 좋겠고 그랬어요. 그런데 막상 되니 ‘그냥 해야지’라고 생각해요. 기도할 때도 그런 식으로 많이 나를 세뇌시킨다고 할까요.‘닥친 일 그냥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서도 분별심이 나고 그러면 닥친 일 그냥 하겠습니다 하고 해요. 순간순간 오는 것은 많아요. 그래서 기도를 매일 꾸준히 기도를 하라고 하는 거예요.

희망리포터: 그냥 하는 마음.. 스님도 늘 말씀하셨는데. 저도 돌아보니 잘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잘 못 할 까봐 두려운 마음이 많아서 괴로워하는 것 같아요. 알면서도 늘 또 넘어지고 걸리고.. 에고. 그래서 늘 수행이 필요한데 게으른 제가 괴로운 저를 만들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됩니다. 보살님은 지금까지 하신 수행 중에서 어떤 수행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이순모님: 깨달음의장은 사실은 나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성격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라 어물쩍 넘어갈 수 없어서 안내자였던 보수법사님께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나요. 깨달음의장에서 이치는 알게 되었지만 불교대학에서 배우면서 수행을 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명상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지만 제가 경전반을 졸업할 때는 명상이나 나눔의장이 필수였어요. 하라는 것은 다 해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무릎관절이 있었지만 용기를 내서 명상을 했어요. 처음에 처음에 명상을 할 때는 무릎을 칼로 도려내는 고통을 겪었어요. 죽을 것 같아서 다시는 안 오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지막날 숙제로 매일 명상을 하라고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래서 명상수련을 다녀오고 나서 또 1년을 명상을 했어요.

숙제는 꼭 합니다.
▲ 숙제는 꼭 합니다.

집에 와서 숙제로 40분을 하려니 정말 죽을 맛있어요. 근데 정말 희한한 건 4박 5일을 하고 나니 다리가 죽을만큼 아프지는 않고 아프긴 했지만 명상을 하는 동안은 참을 수 있었어요. 그래도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기를 하는 거죠. 알람 소리에만 집중을 했어요. 40분 명상이 아니라 40분 견디기에 도전을 했던 것 같아요. 다리를 풀고 싶은데 어느 날은 알람이 안 울리는 거예요. 눈을 감고 알람이 왜 안올리나 생각하며 계속 왜? 뭐야? 왜이래? 그러면서 알람소리를 기다렸는데 울리지가 않더라고요. 결국 이제는 정말 못 참겠다 생각이 들어서 눈을 뜨고 확인했더니 1시간 30분이 지났더라고요. 핸드폰 설정에 이상이 생겼는지 알람이 울리지 않았던 거였는데 그 후로는 40분, 1시간은 명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다리가 아픈 것은 여전하지만 내 몸이 받아드리고 나니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희망리포터: 보살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는 사람은 깁스를 풀고 그 기회를 잡는 것이고 그 기회가 왔는데도 외면하는 사람은 핑계를 대고 깁스를 안 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언제든 기회는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기회가 올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기도이기에 수행의 끈을 놓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침이 있었던 사람들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점검이 필요해서 그런 상황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옳다는 것을 내려 놓을 때 괴로움도 함께 내려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때 보다 희망리포터로 기사를 쓰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는 시기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아프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나니 정말 힘들었던 것은 화살을 남에게 돌리며 원망하고 있었던 그 마음이 였다는 것을 알고 참회했습니다. 어느덧 제 마음에도 봄 꽃이 피어나고 연두빛 잎새들이 돋아 나고 있는 것을 느낌니다. 이 꽃과 잎새가 그냥 사그라들지 않도록 부지런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감사합니다.

글_김회정 희망리포터 (서대문정토회 은평법당)
편집_권지연 (서울제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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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재

두분의 나누기에서 수행자의 삶을 봅니다. 보살님 많이 힘드셨다는 말씀에 괜히 울컥해집니다. 보살님 건강하셔서 오래 오래 함께해요. 어떤 경우에도 행복을 찾아가겠습니다.

2017-05-08 20:13:42

금강주

두 분 나누기에 또한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2017-05-08 18:28:30

기우

이순모 보살님 덕분에 처음으로 아침기도도 하기 전에 100일 동안 108배 해보기도 하고 목탁도 배우면서, 제 생활에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

2017-05-08 17: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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