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강화법당
금강경과 함께 부부의 정을 더 도탑게 쌓으리라

넉넉하게 군불을 넣은 구들방 아랫목은 잘잘 끓습니다. 바깥은 아직도 바람이 차지만 방 안은 따뜻합니다. 저는 읽다 만 책을 다시 끌어당겨서 펼쳐 들었습니다. 그 책은 '여시아문([如是我聞),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로 시작이 되는 금강경입니다.

몇 년 전, 불교대학 경전반을 다닐 때 금강경을 공부했지만, 저는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아는 것이라고는 '좋다 나쁘다 구분을 짓지 말며, 상(相)을 만들지 말라'는 것 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만 해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공부에 열중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내 마음에 들어온 ‘금강경’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다닐 때, 출석은 잘 했지만 공부는 등한시했습니다. 법문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이 좋아서 다녔던 것뿐이었습니다. 놀듯이 공부하는 제가 민망스러울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도반들은 "놀듯이 공부하는 것도 좋은 것이지요. 놀이 삼아 다니는 것도 괜찮아요." 하며 저를 감싸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핑계 삼아 법문 듣기를 게을리 하였고, 심지어 힘이 들면 뒷자리에 누워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2015년 초파일의 강화법당(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 2015년 초파일의 강화법당(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저는 믿는 게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저를 힐책하지 않으시리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너그러우시니 분명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 네가 힘들었구나. 뒤에서 한 숨 자고 일어나서 힘을 내거라." 저는 진짜로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법문 듣다가 힘들면 누워서 잠을 잔적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일주일에 한 편씩 신문 연재기사를 쓸 때여서 사실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이런 저를 가엽게 봐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핑계였고, 사실을 말하자면 열심히 공부하는 도반들에게는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반들은 마음을 닦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늘 저를 좋게 봐주었습니다. 그래서 불교대학도 또 경전반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딴 짓을 하면서 경전반을 다녔으니 아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반야심경도, 금강경도, 그리고 육조단경도 이름만 알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언젠가 다시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문득 금강경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남편과 함께 읽는 ‘금강경’

지난 2월 초순의 일입니다. 그날 문득 금강경이 궁금해서 책꽂이를 이리저리 살펴봤습니다. 우리 집에는 금강경을 풀이해놓은 책이 두어 권 있는데다, 때마침 법당에서 법륜스님이 해석한 책도 빌려왔던 터였습니다. 이왕 내친 김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영어로 된 것도 찾아보았습니다. 금강경을 영어로는 '다이아몬드 수트라(Diamond Sutra)'라고 하는데, 영어 경전은 우리 말로 번역된 것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2013년 2월, 경전반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세번째)
▲ 2013년 2월, 경전반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세번째)

사실 불경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만, 한자를 잘 모르는 한글세대들이 읽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더구나 익숙하지 않은 불교식 용어들까지 등장하니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나 일반대중들이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날부터 '여시아문,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금강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인가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있는데, 남편이 제 옆에 앉더니 관심을 보이지 뭡니까? 남편은 ‘금강경’을 왜 ‘금강경’이라 부르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옳다구나, 남편이 드디어 불교에 관심을 보이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정성을 들여 첫 회분부터 다시 찬찬히 읽어나갔습니다.

금강경의 첫 회분인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즉 ‘법회가 열리던 날’은 아주 소소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시시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는데, 큰 스님 일천 이백 오십 명과 더불어 함께 하셨더니, 세존이 식사하실 때가 되어 옷을 입으시고 바리때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셔서 빌어 잡숫는데, 성 안에서 차례로 구걸을 마치시고 본디 계시는 곳으로 돌아오셔서 음식을 드시고 옷과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닦으시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평범한 일상에서 최고의 가르침이...

‘금강경’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것을 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뭐가 이렇게 시시한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옷을 입고 그릇을 챙겨 밥을 빌어 드시고,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또 옷과 바리때를 제 자리에 챙겨두고 발을 씻고 자리에 앉았다’라니, 기대했던 사람들은 일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모든 것은 여기에 다 담겨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평범한 일상의 모습에 최고의 도가 있음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기에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설법을 청하는 형식으로 경전이 전개되고, 그것을 통해 자세하고 풍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그날부터 매일 한 회분씩 금강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군불을 때서 잘잘 끓는 구들방에 나란히 누워 경전을 읽고 새기노라면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충만감이 들었습니다.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금강반야바라밀경'
▲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경은 전부 다 해서 32회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회분씩 읽어나간다면 약 한 달이면 다 끝마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이렇게 둘이서 같이 경전을 읽으니 참 좋다고 하면서, 매일 같이 공부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건네 보았습니다. 제가 읽어주는 금강경을 들으며 남편은 잠에 빠져버리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는 좋았던지 그러마고 제 제안에 응해 주었습니다. 어느 결에 남편 역시 금강경을 알아가는 재미에 빠져 버렸던 것입니다.

이 봄은 ‘금강경’과 함께 경전반 공부를...

그렇게 일주일 가까이 금강경을 읽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던 중에 외국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여행을 하면서도 날마다 공부하리라 생각하며 책을 챙겨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인 여행 일정을 소화하느라 책을 꺼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은 장대했으나 끝은 흐지부지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3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경전반 신학기가 시작됩니다. 때마침 같이 불교대학을 다녔던 시원행 임영미 보살이 전화를 해서 경전반 공부를 한 번 더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그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진달래가 피고 새가 우는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이면 산과 들이 유혹을 할 텐데, 저는 그 부름을 뿌리치고 법당에 앉아 법문을 잘 들을 수 있을까요? 또 예전처럼 딴 짓을 하며 공부에 소홀하지는 않을는지 벌써부터 걱정이 듭니다. 하지만 나름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다가 그만 둔 ‘남편과 함께 금강경 읽기’를 다시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저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할 터이니, 자연 성실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올 봄은 금강경과 함께 할 것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경전반 개강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4년 8월, '법륜스님과 함께 한 동북아역사기행' 중 백두산 천지에서 남편과 함께...
▲ 2014년 8월, '법륜스님과 함께 한 동북아역사기행' 중 백두산 천지에서 남편과 함께...

글 | 이승숙 희망리포터 (인천정토회 강화법당)
편집 | 한명수 (인천경기서부 지부 편집담당)

전체댓글 6

0/200

대지행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2017-03-23 09:28:53

공덕화

글 재미읽게 읽고 갑니다.^^
저도 매일 금강경 읽어주는 도반이 있으면 좋겠어요~

2017-03-18 17:12:56

유진영

금강경을 배우고도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는데
그런 뜻이 오마나 다시 새겨집니다.

2017-03-18 0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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