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강화법당
마니산 참성단에서 양강도 출신 동생을 얻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개천절 노래'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음력 시월 상달의 초사흘 날, 이날은 한아버님 단군이 하늘을 연 날입니다.

인천시 강화군 마니산의 참성단은 단군께서 만드시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해발 469미터 높이의 마니산 정상에 위가 네모나고 아래가 둥근 상방하원(上方下圓) 모양의 제단을 쌓고 단군께서는 자신을 아래 세상으로 보내 준 천지(天地)와 선조(先祖)의 은혜에 보답하는 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원종도 제를 올렸고 조선 시대에도 임금을 대신하여 강화유수가 하늘에 고하고 감사의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참성단에서의 천제(天祭)

 참성단을 향해 오르는 길, 등에 진 짐이 가볍기만 합니다
▲ 참성단을 향해 오르는 길, 등에 진 짐이 가볍기만 합니다

드넓은 강화 들판의 벼들도 다 베어지고, 감나무에 달린 홍시는 저절로 붉게 익어갑니다. 봄과 여름내 땀 흘려 가꾼 곡식들을 거두고 갈무리하는 시월 상달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이렇게 풍성한 가을을 주신 하늘에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옛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제천의식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해마다 강화정토법당에서는 시월 상달에 마니산의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11월 5일(음력 10월 6일) 오전 8시 30분에 마니산 입구에는 짐 보따리를 등에 지거나 손에 든 사람들이 여럿 모였습니다. 그중에는 너덧 살짜리 어린 여자애의 손을 잡은 사람도 있고 예닐곱 살짜리 사내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추운지 모두 때 이른 겨울옷을 꺼내 입고 왔습니다.

정토회 인천경기서부의 '좋은 벗'들과 강화법당의 도반들이 마니산 참성단에 천제를 모시러 왔습니다.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마니산 참성단까지는 산 들머리에서 근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립니다.

어른 걸음으로는 한 시간여 만에 오를 수 있지만 짐을 손에 든 데다 어린 애까지 딸려 있으니 자연 발걸음은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모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참성단을 향해 산을 오릅니다.

부옇게 안개가 낀 산 아래 마을은 마치 우리 민족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분단의 사슬에 묶여서 움쭉달싹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처지는 안개가 부옇게 낀 저 들판과도 같지만, 해가 뜨면 안개는 형체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것처럼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도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봅니다. 잠시 다리쉼을 하며 바라본 아랫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입니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 발원

 우리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하늘에 빕니다
▲ 우리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하늘에 빕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엎드려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비는 절을 올립니다. 모든 천신과 조상님들께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남과 북이 통일되어 번영하는 통일 한국을 이룰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인 우리 국민 모두가 주인 된 자의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교와 이념, 세대와 빈부의 차, 그리고 남녀와 지역갈등 등으로 흩어지고 찢어진 우리 사회가 화합하고 안정이 되기를 또한 빕니다.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여 같이 잘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평화로운 우리나라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빕니다.

둘로 나뉜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 반목하고 백안시하는 것을 버리고 화해하고 협력하여 동북아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빕니다. 한반도에 영원토록 평화가 정착되기를 또한 발원합니다. 더 나아가 하루속히 남북이 통일되어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또한 희구합니다.

우리 민족이 우리만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어려운 나라의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빕니다. 폭력과 전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배타적인 문명이 아니라 함께 발전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또한 바랍니다.

한 핏줄로 태어난 북쪽의 우리 형제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빕니다. 지난여름의 대홍수 때 피해를 본 북한 주민들이 하루빨리 안정을 찾기를 또한 기원합니다.

먼 나라들도 북한을 돌보는 데 가장 가까이 있는, 형제인 우리는 외면했음을 참회하며 더는 죄를 짓지 않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하는 기도도 올렸습니다. 참성단을 찾아온 관람객들도 둘러서서 함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마음으로 우리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양강도가 고향인 새터민과 강화도 사람이 같이 엎드려 하늘에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 양강도가 고향인 새터민과 강화도 사람이 같이 엎드려 하늘에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우리들의 이 통일 발원이 이루어져서 과거 고구려의 대왕들이 '국동대혈'에서 천신과 조상들께 감사의 제사를 지냈던 것처럼 남과 북 우리도 하나가 되어 다시 그때처럼 한마음으로 천제를 지낼 수 있기를 발원하였습니다.

드넓은 만주 벌판을 말을 타고 달리던 우리 조상님들처럼 우리 후손들도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옵나니, 조상님들이시여 도와주시옵소서.

새터민과 관람객도 함께 한 천제

특별히 이 자리에는 북쪽에서 내려온 '새터민'도 함께 하였습니다. 북녘 땅 양강도가 고향인 그 새터민은 벌써 세 해째 빠지지 않고 마니산 천제에 참여하였습니다. 술을 따라 하늘에 고하는 그분을 바라보자니 왠지 모를 처연함이 느껴졌습니다. 두고 온 고향과 부모 형제를 그리는 마음이 절을 하는 그의 엎드린 등에 어려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천제를 올린 다음 제상에 올렸던 음식을 관람객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내년을 또 약속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함께했던 관람객들은 그 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님들을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했고 또 미래의 우리나라를 꿈꾸는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통일된 이 땅에서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우리를 꿈꾸는 그것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을 것 같습니다.

천제를 올린 후 각자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개천절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백두산 높은 터에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 따라 하늘이 텄다. 이날이 시월상달에 초사흘이니 이날이 시월 상달에 초사흘이니.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핀 단목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산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네 살배기 딸아이를 업은 새터민의 투박한 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톱이 이지러져 있었습니다. 그 손은 그가 걸어온 길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강화 마니산 개천절 천제
▲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강화 마니산 개천절 천제

새터민인 민영 아빠에게서 내 동생이 보였습니다. 온몸을 놀려 밥벌이를 하는 내 동생의 손도 그렇게 두텁고 상처투성이입니다. 쪼개진 채 자란 손톱이며 상처투성이의 그 손은 열심히 살아온 민영 아빠의 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민영 아빠, 다치지 말고 몸조심하세요. 그저 몸조심하며 사세요."

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니 민영 아빠의 눈에 살짝 물기가 비치는 듯했습니다. 그런 민영 아빠가 내 동생 같았습니다. 실제로도 그의 나이는 내 동생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농담 삼아 "양강도 동생" 하고 불렀더니 민영 아빠는 "누나" 하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제(天祭)가 맺어준 인연

산을 내려와서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우리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마니산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 집은 마당도 넓고 동물들도 있어 어린애들이 놀기에도 좋습니다. 민영 아빠만 초대하면 그가 쑥스러워할 것 같아 다 같이 초대를 하였더니 그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집 뒤 곁에는 벌통이 여러 개 있습니다. 남편이 취미 삼아 키우는 벌들입니다. 올봄에 양봉을 시작했기 때문에 벌을 키우는 것에 대해서 아직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갔던 민영 아빠가 벌통을 본 모양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 신이 나서 벌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지 뭡니까.

"우리 집에서는 할아버지 때부터 벌을 키웠어요. 아버지도 양봉했어요. 벌은 말이에요..."

남한 사람들 속에 섞여서 쭈뼛대던 민영 아빠가 벌 이야기를 하면서 완전 좌중을 휘어잡았습니다. 자기가 잘 아는 이야기인 데다 고향 이야기까지 하니 얼마나 신이 나고 재미가 있었겠습니까. 듣는 우리도 다 신이 났습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개천절 노래를 소리 높여 부릅니다
▲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개천절 노래를 소리 높여 부릅니다

북한의 벌 키우는 방법도 남한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어휘들은 달랐지만 그 역시 별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벌 키우는 이야기로 남과 북은 통일을 하였습니다.

"민영 아빠, 내년 봄에 내가 벌을 한 통 줄 테니까 우리 집에 와서 벌 키워 볼래요? 주말에 와서 벌도 키우고 그러면 될 것 같은데, 어때요?"

남편이 선뜻 그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민영 아빠의 순박한 모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습니다. '벌'이라는 공통분모가 둘을 하나로 묶어준 듯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민영 아빠는 벌통을 한 번 더 보고 갔습니다. 어쩌면 북녘의 고향 땅을 그 벌통에서 보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낯 설은 남한 땅이 정겹게 다가왔을 것도 같았습니다.

마니산 천제가 우리를 맺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한 뿌리, 한 샘에서 뻗어 나온 한 형제였습니다. 민영 아빠의 고향은 양강도지만 민영이는 양강도뿐만 아니라 강화도가 새로운 고향이 되길 빌었습니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민영 아빠의 차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글_이승숙 희망리포터 (인천정토회_강화법당)
편집_유재숙 (인천경기서부지부 홍보팀)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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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원

마니산 참성단의 공기가 제 마음에도 시원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시며 실천하시는 모습에 감동합니다.

2016-12-12 12:55:58

정주행

마음이 짠하네요
빨리 통일이 되야할텐데요

2016-12-10 19:46:21

지현맘

민영아빠도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만날때마다 강화도누님 말씀을 하시더군요... ^^
여러가지로 어려운 시기에 정성을 다해
마니산천제를 준비해주신 강화법당도반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016-12-09 11: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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