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원법당
엄마는 법륜스님, 딸은 혜민스님

토요일 연휴에 수원법당 봄불교대학 담당자인 박선영 님의 인터뷰를 위해 법당으로 갔는데 뜻밖의 손님을 만났습니다.
다름 아닌 선영 님의 고등학교 2학년 큰딸 정연희 양이었는데요. 연희 양의 재기발랄함에 인터뷰 내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엄마와 심리학이나 불법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은 다른 가정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제 눈엔 신기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연희 양의 귀여운 반항과, 그런 딸을 보며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박선영 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행복' - 정연희 양(왼쪽)이 들고 있는 책은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고, 박선영 님(오른쪽)이 들고 있는 책은 법륜스님의 ‘행복’입니다.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행복' - 정연희 양(왼쪽)이 들고 있는 책은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고, 박선영 님(오른쪽)이 들고 있는 책은 법륜스님의 ‘행복’입니다.

엄마를 통해 불교를 만난 연희

선영 님은 슬하에 아이 셋을 두고 있습니다. 그중 첫째 딸이 연희입니다.
연희는 엄마를 통해 불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의 반항기라서일까요? 인터뷰어인 저와 이야기하면서 순수하게 쏟아내는 대답들이 얼마나 신선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인 선영 님은 정토회에서 법륜스님의 말씀에 따라 수행 정진하는데, 정작 딸은 혜민스님이 좋다고 하네요.

“법륜스님도 좋긴 한데, 좀 무서울 것 같아요.”
“왜? 지도법사님이 얼마나 인자하신데.”
“질문하는 아줌마들한테 자꾸 108배 해라고….”
“그럼 혜민스님은 안 무서울 것 같애?”
“혜민스님은 그, 그, 트위터로 다정다감하게 대답해주는 게 좋아요. 제 스타일이에요. 삼촌같아요.”
“법륜스님도 다정다감하셔….”

뒤이어 선영 님이 딸의 대답에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둘이서 작게나마 불교에 대해 옥신각신 몇 마디가 오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연희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학교 교과서에 현각스님 나와요. 숭산스님인가? 그 스님 따라 한국에 와서 출가했다고 하던데? 뉴스에 그 스님 나오는 거 보니까 신기했어요. 그 스님도 진짜 멋진 것 같아요. 물론 아직은 혜민스님이 최고지만.”

여지없이 밝은 이 소녀는 한 달에 두 번 심리상담을 받고, 어머니의 품에서 불교의 끈을 잡고 살아가면서 점점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선영 님은 큰 딸인 연희를 보면서, 지난 날을 떠올리면 연신 미안한 마음만 든다고 합니다. 엄마로서 해서는 안될 말과 행동들로 상처를 줬었기 때문입니다.

선영 님은 연희가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기는 걸 본 후, 자신의 대학교 시절부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갔어요. 너무 힘들어서.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나보고 이야기하라 그래놓고 아무것도 안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약만 주는 정신과더군요.
그 후에 결혼했어요. 임신 기간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남편을 잘 만난 게, 남편은 내 과거를 다 듣고 받아주었어요. 그래도 저보고 결혼하자고 했어요. 첫 아이가 연희예요. 남편은 지금도 다 받아주고 있어요.”

그녀는 수행하면서 항상 모든 것을 자기 쪽으로 돌렸습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돌아보며 자기 자신에 대한 회고와 참회,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참회, 도반들과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참회….
모든 소임에 빠지지 않고 참여 해 선배도반들의 칭찬도 많이 받는 선영 님. 그녀는 흐트러진 자기 인생을 정리해나가기 위해 항상 길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다가 정토회와 지도법사님을 만나면서 그녀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번에 지도법사님과 함께 한 명상이 인생의 전환점이에요. 명상 다녀온 게 내 무의식에 들어가서 내 상처를 살짝 들여다보고 온 느낌이거든요. 새벽에 불 꺼놓고 대중이 같이 명상을 하는데,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옆에 사람이 80명이나 있는데도. 불 꺼지니까 산에 나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았어요. 다리 펴고 싶고, 눈 뜨고 싶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막 일어났어요. 처음엔 그 불안, 고통이 부담스러워서 뛰쳐나가고 싶은 걸 참았어요. 바라보기가 처음부터 안 되잖아요. 그 두려움을 바라보는 순간, 뭔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왔어요. 그건 내가 살면서 가장 아파했던 거였어요.
내가 수행 정진하는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연희도 나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구나, 그 생각이 들었죠.”

연희는 자기 이름이 나오자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었습니다. 처음 보여줬던 발랄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이 잠시 얌전해졌습니다.

박선영 님은 지도법사님과 함께한 명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 박선영 님은 지도법사님과 함께한 명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

선영 님은 지난 8-9차 백일 동안 300배 정진을 회향하였습니다. 10차에 들어서 두 번째 300배 정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세 아이 모두가 정진할수록 정신적으로 편안해지는 게 눈으로 보이는 게 놀라웠다고 합니다.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말을 이때 실감했다고 합니다.

명상을 통해서 그 길을 찾은 거네요?

네. 특히 명상 가서 가부좌하고 앉아 스님 말씀을 들었는데 머리를 딱 스치는 게 있었어요. 방황하고 정리가 안 되었던 생각들이 모조리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 괴로운 기억, 그건 한낮 망상에 불과했구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저를 할아버지 집에 보냈었어요. 그때 꼭 자다가 일어나면 주변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있는 거예요. 그러면 난 항상 가위에 눌렸어요. 그런 적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 기억들이 명상하면서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살면서 항상 마음 한쪽이 불안했거든요. 일어나면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리고, 불안해져 오고, 공황장애처럼 숨이 막혀왔어요. 그게 내 인생에 영향을 많이 줬어요. 이번 새벽 명상을 하면서 그게 고쳐진 느낌이었어요. 그걸 애써 회상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불 꺼놓고 명상하고 있는데 그 시간을 이겨내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편해지고, 어딘가 뻥 뚫렸던 구멍이 메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 불안감이 이제 생각이 나지 않아요. 예전에는 그 기억을 떠올리면 곧바로 두려움이 몰려왔는데, 지금은 떠올리면 아무렇지 않아요. ‘맞아. 예전에 나한테 그런 일이 있었지.’하고 담담해지는 거예요.

공포 속에서 그걸 바라보고 거기서 내려오니까 마음 바라보기가 선명하게 잘 되더라고요. 선명하게 알아차려 지는 거예요. 물론 아직 힘든 것도 있어요. 너무 많이 알아차려 지니까 정신이 없는 거 있죠? 막 올라오는 거예요.
도반들에게 <나눔의장> 다녀온 후 꼭 명상을 다녀오라고 권하려고 해요. 특히 지도법사님과 하는 명상은 더더욱이요.

선영 님의 밝은 웃음을 찾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했지만, 그 열매는 참 달았습니다.
▲ 선영 님의 밝은 웃음을 찾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했지만, 그 열매는 참 달았습니다.

선영 님과 연희의 관계를 떠올리면, 선영 님의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 상상이 안 갑니다.

저희 어머니는 나와 성격이 반대였어요. ‘아내가 남편을 억압하면, 아내가 싫어하는 남편의 모습을 자식이 그대로 닮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아빠 성격을 더 많이 닮았어요. 우리 어머니는 여리고, 마음 약하고, 애정결핍 같은 걸 싫어하셨어요. 아버지는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었거든요. 우리 어머니는 태생적으로 무뚝뚝했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어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 보니 늘 아버지를 억압하고, 항상 단점을 지적하고, 잘하는 동생과 비교하면서 경쟁시키고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더 위로 올라가면, 저희 할아버지도 증조할머니한테 그렇게 똑같이 컸데요. 할아버지가 전형적인 애정 결핍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증조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성격이 비슷했대요. 차갑고, 이성적이고. 우리 집은 맏이에 대해 굉장히 냉정하더군요. 저도 맏이여서 그걸 그대로 물려받았죠. 항상 동생들과 비교당하면서 구박받았어요. “네가 잘해야 동생들이 본받지!” 이런 거 말이죠.

저희 아버지는 그나마 저희한테는 좀 덜한 편이래요. 하지만 항상 가슴 속에 허전한 게 있으니까 술을 많이 드셨어요. 그 애정결핍을 술 드시는 거로 많이 풀었어요. 지도법사님께서 그러시잖아요. 남편이 그럴 때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많이 감싸줘야 한다고.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기분이 나쁘면 꽁해서 말을 안 하세요.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를 봤을 땐, 친구 좋아하고, 술만 좋아하고, 주변인들에게 다 퍼주는 것들이 늘 못마땅했던 거예요.

평소에는 괜찮았던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폭력적으로 변했어요. 4살 때를 떠올리면, 아버지가 술 드시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도끼눈을 뜨고 대하시고, 그때부터 집기 부수고, 언성이 오가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도 막내로 자라서 천성이 그렇게 모진 사람은 아닌데, 친정에서 보지 못했던 아버지 같은 스타일을 보면서 힘드셨죠. 그 상황에서 성격이 모질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아버지 말씀 들어보면 예전 할아버지 할머니가 밥상 엎으면서 싸우는 걸 보고 자라셨대요. 안 그래야지 하면서 어머니한테 그러셨고, 어머니는 그 스트레스를 저한테 그대로 하신 거죠.

연희가 심리 상담받기 전에 아무것도 몰랐을 땐 제가 연희에게 그렇게 똑같이 했었어요. 때리고, 책도 막 찢고 말이죠. 업식은 대를 물려 내려오면서 두꺼워진다 그러잖아요? 내 마음속에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어요. 어릴 땐 잘 모르니까 사고를 크게 치는 사람이 눈에 먼저 들어오잖아요. 일단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고, 물건을 부쉈고, 나는 그것 때문에 어머니가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버지를 되게 미워했었어요. 불법 만나고 공부해보니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더군요. 누가 나쁜 게 아니라, 두 분 다 어리석었고, 피해자였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받은 걸 어머니에게 풀었고, 어머니는 나에게 풀었고, 나는 그걸… 어렸을 땐 동생들에게 그대로 풀었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과 애들한테, 특히 큰애한테 많이 풀었다는 걸 알았죠. 그게 무서운 상대 앞에서는 참았다가 약한 상대가 나타나면 푸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 연희는 나처럼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분석도 받고, 수행도 하고, 그랬었죠.

연희는 웃는 얼굴이 제일 귀여웠습니다.
▲ 연희는 웃는 얼굴이 제일 귀여웠습니다.

심리 상담과 수행을 번갈아가면서 해보니 그렇게 알게 되신 거죠?

네. 처음에는 연희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해서 상담받으러 갔다가 나도 만성 우울증이 있다고 해서 같이 치료받았어요. 그러다가 좀 더 개선되고 싶어서 정토회를 왔죠. 스님 유튜브를 보다가 불교대학에 입학했고, <깨달음의장>, <나눔의장> 하면서 내 모습을 천천히 발견하기 시작했지만 뭔가 결정적인 것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도법사님과 함께 한 명상수련을 참여해보니,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쌓였던 불안함과 소외감이 떠오르면서 어루만져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도 옛날 업식이 다 없어지진 않았어요. 하지만 핵심적인 불안함은 많이 좋아졌어요.

선영 님에게 이제야 치유할 기회가 왔네요. 지금도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수행하시나요?

저는 심리상담이 끝나고 수행만 해요. 연희는 한 달에 두 번 가서 상담을 받아요.

연희가 다섯살 때 쯤,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켰거든요. 안 돌아가실 줄 알고 다른 식구들은 다 집에 가셨고, 저만 병원에 있었을 때였어요. 근데 그 때 무슨 정신이었는지 몰라도 저희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할아버지, 이제 저희 집안의 악순환 고리를 제가 끊겠습니다.”라며 울었던 기억이 나요. 할아버지 당신도 그 업식을 그만하고 싶으신데 길을 못 찾았던 것 같아요. 감사하고 다행이에요.

지금 선영 님은 어머니와 어떠세요?

음, 엄마를 대하다 보면 한계를 느낄 때가 있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더 수행정진 해야겠다’라는 생각만 해요. 사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을 충실히 사는 거잖아요. 그 마음으로 돌이키는 건 제가 봄불교대학 담당을 맡으면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저희 반에 연세 있는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거예요. 그 전엔 ‘우리 어머니는 원래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강했거든요. 근데 불교대학 도반들을 보면서 ‘아, 우리 어머니도 불법을 못 만나서 그 이치를 모르니까 그러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어머니가 더는 밉지 않은 거예요.

전 요즘 친정에 가서 어머니를 보면 ‘아, 예비불대생이다.’ 이런 마음으로 대해요. 그러면 화가 안나요. 3월에는 불교대학 학생들이 저에게 온갖 속 이야기를 많이 쏟아냈었어요. 그랬던 분들이 수행을 시작하면서 많이 변해가잖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니까 ‘어머니는 아직 예비불대생이고, 공부하기 전이니까 저런 말을 할 수 있구나.’라고 받아주게 되는 거예요.

연희와 선영 님의 ‘불교와 심리의 대화’는 재치있고, 편안하게 이어갔습니다. 그 현장을 못 보여줘서 아쉽네요.
▲ 연희와 선영 님의 ‘불교와 심리의 대화’는 재치있고, 편안하게 이어갔습니다. 그 현장을 못 보여줘서 아쉽네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행복

숨막히게 달려온 업식을 멈추는 순간, 선영 님은 연희를 통해 행복을 찾았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일요법회를 같이 참석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남편분은 아직 불교에 흥미가 없다고 같이하려 하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옆에서 연희가 살짝 호기심을 가지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엄마, 법문이 뭔데?”
“즉문즉설.”
“법륜스님 오셔?”
“아니. 영상법문.”

실제로 스님이 오셔서 하는 법문이 아니라는 말에 다시 스마트폰에 고개를 묻었습니다. 그러다가 뭐가 떠올랐는지 다시 묻습니다.

“나도 명상가도 돼?”
“넌 아직 못해. <깨달음의장> 다녀와야 돼. 대신 스무 살이 되면 청년불대에 가는 건 어때?”
“혜민스님 <마음치유학교>부터 가고 나서 갈게.”
“…그래도 돼.”

선영 님은 다시 스마트폰에 시선을 돌리는 딸을 보며 빙긋이 웃어 보였습니다.

“법륜스님도 편안한데, 그래도 아직은 혜민스님이 좋아.”

선영 님은 내심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희가 자신보다 불법을 일찍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일까요.


두 모녀의 인터뷰를 마치며, 수행 정진하는 길이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가족의 괴로움과, 크게 보면 대를 이어 내려온 악습을 끊을 수 있는 길임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연희가 스무 살이 넘으면, 엄마와 함께 지도법사님의 희망강연에 같이 참석하여 웃고 공감하는 모습을 만나게 되겠지요?

글_전은정 희망리포터(수원정토회 수원법당)

전체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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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원

너무 눈물이 나요.
소중한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0-08-01 14:32:42

관음성

자신의 아픔을 알아차리고 딸과 함께 극복해가시는 모습이 정말 좋습니다
화이팅!! 입니다^^

2020-07-30 11:43:48

무지랭이

모든 존재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기를_()_

2019-03-27 12: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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