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베를린법회
동독 출신 거사님과 함께 돌아본 독일 통일의 현장

안녕하세요? 오늘은 독일 통일의 현장, 베를린에서 전해온 정토행자들의 통일역사기행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이산의 아픔을 겪었던 동독 출신의 토마스 거사님의 안내로 더욱 생생하고 값진 기행이 되었다는데요. 장벽이 무너지던 날의 독일 시민들의 감격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 합니다.  


[독일정토회 베를린법회]
동독 출신 거사님과 함께 돌아본 독일 통일의 현장


▲ 왼쪽부터: 토마스 클레어 거사님, 한주연 보살님, 독일방문 중이신 장서희 보살님 어머님, 장서희 보살님, 송태윤 보살님, 조문성 법우님, 이희정 총무님

 쨍쨍한 한여름 날씨였던 지난 7월 18일 토요일, 베를린 정토법회 천일결사자들은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통일기행을 다녀왔습니다. 보른홀머 다리에서 시작하여 베르나우어 거리에 있는 베를린장벽, 화해의 교회, 베를린장벽 기념 자료센터, 브란덴부르크 문을 거쳐 고요의 방에서 마무리한 이번 통일기행 소식을 베를린의 한주연 보살님이 정리했습니다.



철통 같던 보른홀머 검문소가 열리던 날

독일 통일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람의 실수로 이루어진 것이라 합니다. 동독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자, 출국 자유에 관한 법을 발표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때 어떤 기자가 "적용은 언제부터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당시 공산당 고위간부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얼떨결에 "지금부터입니다."라고 잘못 대답한 것이 역사를 바꿨다고 합니다. 기자회견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하고 있던 동베를린 시민들은 검문소로 몰려가 서베를린 쪽으로 통행허가를 요구했고, 상부로부터 분명한 지시를 받지 못한 군인들이 우왕좌왕하다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급기야 밤 10시에는 철통 같던 보른홀머 검문소 문을 열어주게 되었고, 바로 그 순간 동서 장벽이 허물어졌던 것입니다. 이 날을 기념하여 전철역 위에 있는 보른홀머 다리가 끝나는 동쪽 지점에 ‘1989년 11월 9일 광장’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에서 되새긴 우리의 염원

전철로 베르나우어 거리에 있는 베를린 장벽을 돌아보고, 독일 분단과 통일에 관한 두 편의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서독을 방문한 구 동독 시민들의 감격이 그대로 전해져와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기쁨이 언젠가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되새기게 되었고,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습니다.


▲ 1989년 11월 9일 광장: 전시물을 설명하고 질문에 답해주는 토마스 거사님 

"마치 세상이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로 바뀌는 것 같았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이희정 총무님은 토마스 거사님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주연 보살님의 남편인 토마스 거사님은 동독 출신으로 이산의 아픔을 겪은 분입니다. 15살 때, 아버지가 서독에 거주하는 친지 방문을 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서 아버지와는 갑작스레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3년간 편지만 주고받다가 드디어 출국 허가를 받고 서독에 와서 정착했는데, 6개월 후에 장벽이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서독에 왔을 때의 첫 느낌을 물어보니 "마치 세상이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로 바뀌는 것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의 증언을 현장에서 직접 들으니 그때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화해의 교회에서 고요의 방까지

식사 후에는 근처에 있는 화해의 교회’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동베를린 지역에 있던 아름다운 교회 건물이 장벽을 감시하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1985년 폭파되었는데, 다시 그 자리에 2002년 지금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분단의 역사를 극복한 기념 건물로 장벽에서 돌아가신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고 합니다. 길 건너편 장벽 기념 자료센터엔 동독 민주화 운동을 한 이들의 자료들을 전시해 놓아, 이들의 개인사까지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장벽과 독일의 DMZ인 죽음의 선을 조망해볼 수 있는 전망대에도 올라갔습니다. 

다시 전철을 타고 장벽이 서있던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갔습니다. 마침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매주 세 번째 토요일엔 이곳에서 세월호 문제를 알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남한 안에서조차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 (좌) 브란데부르크 문:세월호 진상 규명 집회 / (우) 고요의 방 입구 벽에 쓰여진 한글

다음엔 브란덴부르크 문 안에 있는 ‘고요의 방’을 찾았습니다. 종교와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나 독일 분단에 대해 생각하며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여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라고 하는데, 입구에 ‘고요’라고 쓰인 한글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햇살이 가려진 고요의 방에 앉아 각자 명상을 하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 보았습니다. 

기행을 마치며 독일 통일의 현장을 돌아본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독일을 방문한 어머니와 함께 통일기행에 참가한 장서희 보살님은 “간혹 지나치곤 하던 곳이어서 꼭 한 번 가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이런 기회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안내자가 있어서 그때의 상황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조문성 법우님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통일을 반대하는 이유는 통일이라는 주제를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열망으로 피어올라야 이뤄질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통일이라는 주제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설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한주연 보살님은 “독일 통일 과정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잘못들이 있었겠지만, 평화 통일을 해낸 점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넘어선 인권과 평화의 문제인 것 같아요. 항상 통일에 관심을 갖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습니다.”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송태윤 보살님은 “독일 통일은 서독의 무한한 인내와 투자로 이루어졌다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노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듯 해요. ‘우리 한민족은 하나’라고 외치려면 과연 뭐부터 해야 할까요? 우선 나부터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희정 보살님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통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어요.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소박한 삶을 통해 남는 것을 나누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통일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토행자들이 통일을 제일 잘 준비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돌아보는 자전거 통일기행을 기약하며

베를린이라는 통일의 역사 현장에 살면서도 무심하게 스쳐 지났던 장소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더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산 증인이 동행한 자리여서 더욱더 생생한 통일기행이었는데요. 휴가철이어서 더 많은 도반들이 동참하지 못한 것이 못내  . 앞으로 많은 독일인과 한국인이 같이 통일기행을 한다면 멋진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엔 토마스 클레어 거사님과 일정을 짜서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 장벽을 돌아보는 기행을 같이 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 통일기행이 기대 됩니다.  Posted by 신재숙 희망리포터

* '토마스 거사님'이란 표현은, 법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보살님의 남편'을 '거사님'이라 부르는 관례에 따랐습니다. 기행은 독일어로 이루어지고, 필요에 따라 부인이 해설을 도왔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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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희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이뤄야 할 일이라는 말씀에 절대 공감합니다. 그 시기를 앞 당기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겠지요~~^^

2015-08-10 12:42:24

정은영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며 우리의 통일도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을 하니 가스뭉클해집니다

2015-08-07 12:54:32

황소연

울림이 있는 소식이네요^^ 다시 한번 우리의 통일을 생각하게되고 더 간절해집니다! 그리고 그 먼 곳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고 하니 더욱 놀라웠습니다. 소식 고맙습니다,

2015-08-06 22: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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